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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56화 (156/194)

156화. 그때와는 분명 다를 겁니다

우리는 미로아 섬으로 향하기 위한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앤드류는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내 눈치를 슬쩍 살피며 물어왔다.

"무슨 사연일까요?......"

그러나 나 역시 알지는 못했고.

굳이 나서서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호기심이 발동한듯한 앤드류를 향해.

리치몬드가 다그쳤다.

"동생아. 모른 척 넘어가 주는 게 좋을 때도 있는 법이다. 가까운 사이이면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맞는 말씀이라 반박을 못 하겠네요."

물론 앤드류 뿐만이 아니라.

나 또한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차원을 가르는 마녀, 레데이아의 스승이라면......

'나도 완전히 모르는 건 또 아니니까.'

나는 레데이아의 스승이라는 힌트 하나만으로, 그렌델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눈치를 챘다.

다만 그들도 그들만의 사정이 있을 테니.

그래서 캐내려 들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사라진 마녀, 오르테미스라면. 작은 일은 아니긴 한데.'

본편의 스토리에서는 이미 종적을 감춘.

사라진 마녀, 오르테미스.

그녀는 수도 없이 많은 금지된 마법을 찾아내고 익힌.

마녀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최초로 각인시킨 존재라고 하였다.

어찌보면 지금 마녀라는 이미지를 고착시킨 인물이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만큼 금지된 마법을 탐하던 다른 존재들의 타겟이 될 수밖에는 없었고.

그 끝에 종적을 감추었다고 알려진 자였다.

'그런 오르테미스에게 딸이 있었다니.....심지어 그 딸이 그렌델이고.'

이건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크뢰이튼의 인생이 참으로 굴곡이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 *

"왜......숨기셨습니까? 문 앞에 버려진 절 주웠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마녀라니......"

그렌델은 서운한 눈빛으로 크뢰이튼에게 물었다.

그의 말이 거짓이라고는 생각도 못 한 까닭이었다.

크뢰이튼은 대외적으로는 헤세테 왕국의 왕실 마법사였고.

충분히 버려진 아이 하나쯤은 보듬을 수 있는 역량이 되었기에.

그가 그렇다고 하니, 다른 생각은 해 본 적도 없던 그렌델이었다.

그에 크뢰이튼은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시선을 돌리고서는 답하였다.

"이것 또한 너의 어머니가 내게 한 부탁이었단다."

"......예? 무슨 뜻입니까?"

"너를 노리는 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 했다. 네가 성장하기 전까지는, 숨겨달라는 뜻이었지."

"대체......무슨 일이......있었던 겁니까?"

"이십 년 전. 나는 갓난아이를 안고, 초췌한 모습으로 정신없이 빗속을 도망치는 한 여인을 만났었다."

크뢰이튼은 그 당시를 회상하며.

눈동자를 위로 올렸다.

"그 여인은, 이미 생명을 거의 다 잃은 채였다. 나로서는 아무런 방법도 없는 상황이었지. 그런 그녀가, 품 안에 소중하게 품고 있던 너를 내게 넘겼다. 아이만이라도 제발 구원해달라며 말이다. 솔직히 고민했었다. 무슨 일에 엮이는 건지 알 수 없었으니. 나 또한 할 일이 많았고."

"하지만, 결국......받으셨군요."

"후후. 버리고 가기에는 너무 귀여운 아이였거든."

그 때의 그렌델이 떠올랐는지.

크뢰이튼은 작게 웃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니, 차마 그렌델도 더 이상 강한 어조를 쓸 수가 없었다.

일면식도 없던 자신을......지금 이날이 되도록 키워 준 것이 바로 크뢰이튼이었으니까.

그렌델에게 있어서 크뢰이튼은, 스승이자, 어머니이자, 아버지였고.

하나뿐인 가족이자, 유일하게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존재였다.

그렇게 믿고 있었기에 거짓말에 조금 화가 나긴 했지만.

그래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그녀는 그 이유를 듣고 싶었다.

"숨기려면 차라리 영원히 꼭꼭 숨기시지, 왜 이제 와서 밝히신 겁니까?"

"너의 친모, 오르테미스가 내게 했던 말이 있었다."

"......예?"

"때가 되면......모든 사실을 알리라고. 나는 되물었다. 그 때라는 게 언제냐고. 그녀는 알 수 없는 대답을 하더구나. 때가 되면, 저절로 알 게 될 것이라고."

"그게 지금인 겁니까?"

"글쎄. 확신은 할 수 없구나. 다만......내 생각은 그러했다."

그렌델은 잠시 아무런 말도 없이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엄청난 사람이었지. 마녀들 중에서도."

"그건 나쁜 의미인 겁니까?"

"순전히 좋은 의미라 할 수는 없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오르테미스는 금지된 마법을 훔치고 뺏어 정점의 위치에 오른 사람이었다더구나."

"스승님의 대답에선, 좋게 볼 구석이 없어 보입니다만."

크뢰이튼은 고개를 저었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녀는 진정 위험한 마법들은 전부 봉인해버렸단다. 스스로를 희생해서. 그 때문에 많은 적이 생겼고, 아마 너를 안고 도망가던 당시에도 그런 적들 중 하나에게 당한 게 아닌가 싶구나."

"......마지막 선은 넘지 않았나 봅니다."

"나도 그리 생각한다. 그러니 너무 나쁘게 보지만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가 인자한 미소를 보였다.

오랜 세월 크뢰이튼을 봐왔던 그렌델은, 알 수 있었다.

혹여나 언젠가 자신에게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말해주게 될 날을 위해, 그 나름대로 저런 내용들을 조사한 것이리라.

자신이 크게 실망할까 봐.

상처 입을까 봐, 걱정이 되어서.

크뢰이튼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크뢰이튼의 성향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그렌델은 더 이상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다만, 아직 의문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특히 베르티엘.

그 대천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그러했다.

"그런데 베르티엘은, 왜 저를 노리는 겁니까?"

"그것까지는 나도 모른단다. 그 정신 나간 대천사가 너를 노린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나는 바로 도망쳤거든. 너를 지키면서 대천사를 상대하는 건 아무래도 어려웠으니 내겐 선택지가 없었다."

"......"

"그래서 하는 말이다만. 개인적으로 나는 네가 그 미로아 섬으로는 가지 않았으면 한다. 베르티엘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성격을 가진 자란다. 그때는 비록 너를 잡지 못했지만......십 년이 지난 지금 다시 기회가 온다면, 결코 놓치지 않으려 들 것이다."

크뢰이튼은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였으나.

그렌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크뢰이튼은 힘닿는 대로 자신의 어머니, 오르테미스에 대해 조사를 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알아낸 것은 고작 이게 전부였다.

더 많은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직접 호랑이 굴로 걸어 들어가는 수밖에는 없어 보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직접 미로아 섬에 가 보고 싶은 그렌델이었다.

해서 그녀는, 크뢰이튼을 안심시켰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때는 스승님 혼자 저를 지켜야 했지만. 지금은 저 역시 어느 정도는 성장을 했고. 또......로한 경도 있지 않습니까?"

"......로한 경을 언급하면 나도 반박을 하기가 힘들긴 한데 말이지."

"뿐만이 아닙니다. 오르헬 경, 리치몬드 경. 그리고 앤드류도 있습니다. 그때와는 분명 다를 겁니다."

너무 맞는 말만 다다다 내뱉으니.

크뢰이튼도 할 말을 잃었다.

"하여간, 말로는 너를 이기기 너무 힘들구나.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결국 이번에는, 크뢰이튼이 한발 물러서 주었다.

* * *

조용히 대화를 나눈 크뢰이튼과 그렌델은.

내게로 와, 있었던 이야기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해서......경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네."

나는 팔짱을 끼고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베르티엘이 왜 그렌델을 노리는지는 일단 모르는 건가?"

"지금으로서는 그러하네. 짐작 가는 바는 있네만."

"짐작?"

"아마도 오르테미스의 마법과 연관된 것이 아닐까 싶네. 어쩌면 그녀의 마법을 이미 찾아내었는데......그 열쇠가 그렌델일 수도 있지 않겠나?"

"흠."

충분히 타당한 추측이기는 하였다.

다만 결과적으로는, 일단 베르티엘을 만나야 모든 의문이 풀린다는 것.

그것 하나만이 명확한 상황이었다.

준비는 이미 끝났다.

"가서, 직접 부딪혀 보는 게 제일 확실하겠군."

출항을 미룰 필요는 전혀 없었기에.

한 명의 빠짐도 없이 미로이 섬으로 향하는 게 결정된 순간.

우리는 곧장 배를 띄웠다.

배에 타기는 너무 눈에 띄는 거신, 나올만 제외한 채로.

그리고 이틀 후.

우리는 미로이 섬에 발을 디뎠다.

"여기가 미로이 섬인가? 날씨 좋은데요?"

앤드류의 첫발을 시작으로.

"어후. 배는 진짜 적응 안 된다니까."

"저는 나름 재미있는 것 같던데요, 형님?"

오르헬과 리치몬드.

그리고 마그마로스가 차례대로 내렸고.

그 뒤로 크뢰이튼과 그렌델, 마지막으로 나와 가우리엘이 배에서 내렸다.

"후우......이 섬에 다시 올 날이 있을 줄이야......"

크뢰이튼은 복잡한 얼굴로 섬을 넓게 돌아다 보았다.

* * *

"근데 이거 어디서부터 찾아봐야 해요?"

앤드류의 물음에.

크뢰이튼이 대답하였다.

"일단, 내가 기억하던 곳으로 가보는 것은 어떠한가?"

그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더 이상 좋은 방법은 없어 보였기에.

그렇게 우리는 배를 정박시켜 둔 채.

조심스럽게 섬의 숲을 향해 진입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곧 앞서 한 고민이 쓸데 없는 것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베르티엘의 흔적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이게 뭐야......"

가장 선두에 선 앤드류는.

그 흔적을 찾자마자, 발을 멈춰 세울 수밖에 없었으니.

대천사가 있는 땅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눈앞에 펼쳐진 미로아 섬의 전경은, 마치 지옥이었다.

숲의 색은......붉었다.

나무마다 피가 묻어 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바닥에 고여 있는 개울들 역시 물이 고인 게 아니었다.

전부 피.

너무나 혈향이 지독한 탓에, 오르헬과 리치몬드가 힘들어할 지경이었다.

"뱀파이어도 이 정도로 저지르지는 않는데......"

오르헬이 혀를 찼고.

리치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천계에서 추방당했는지......알 것 같네요."

우리는 크뢰이튼을 따라.

조금 더 깊숙이 숲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일정 구간이 지나니, 그 지독한 광경이 어느 정도 사라지기는 했다.

그러나 여전히 아름다운 숲의 풍경은 볼 수 없었다.

군데군데 살점이 눌어붙어 있는 광경이 계속해서 나타나기는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이게 무슨 일이야? 마녀의 딸이 제 발로 굴러 왔네? 오랜만이야, 크뢰이튼."

우리는 순간 고개를 홱 돌려.

그 목소리의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한 여인이 불길한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가 바로 베르티엘이라는 것을.

우리 일행을 쭉 훑어보던 베르티엘은.

문득 나에게서 그 시선을 멈추더니.

낮게 읊조렸다.

"이런......마녀의 딸이 중요한 게 아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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