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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54화 (154/194)

154화. 인간치고는 제법

"캬, 캬아아아아!"

히드라의 엄청난 개수의 머리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위협을 가해왔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머리가 돋아난 히드라는, 제대로 도망도 치지 못하며 뒤뚱뒤뚱 겨우 물러나는 정도였고.

늘어난 몸무게에 날개는 무용지물이 되었으며.

각자 미묘하게 다른 성격을 가진 머리들이 서로에게 뒤엉켜 점점 더 엉망진창이 되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히드라였다.

그런 녀석을 보며, 가우리엘이 내 옆으로 다가섰다.

"이제......어쩔 생각인가?"

말은 가우리엘이 꺼냈지만.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전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뭐, 일단은 나도 구상해 둔 다음 수가 있었기에.

그들의 시선에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굳이 목을 쳐서 죽일 필요는 없지."

"그, 그게 무슨 뜻인가?"

"상대를 죽이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거든."

"......"

아직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았기에.

나는 직접 보여주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백 번 말로 해주는 것보다는 한 번 제대로 보여주는 게 낫지 않던가.

나는 검을 갈무리하고는 히드라를 향해 걸어갔다.

저벅, 저벅.

무기가 없는 빈손임에도.

나를 바라보는 히드라의 눈들은, 지진이라도 난 듯 거세게 흔들렸다.

그 나약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씨익 미소가 지어졌다.

그에 히드라를 붙잡고 서 있던 오르헬이 혀를 내둘렀다.

"어우. 무서워......"

리치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형님의 형님이라도, 무서웠죠?"

"너라면 안 무섭겠냐?"

"......무섭죠."

나는 둘의 대화는 못 들은 척 하며.

히드라의 바로 앞에 섰다.

그리고는 슬슬 작업을 시작했다.

먼저 가장 가까운 모가지부터.

타앗!

나는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라.

화염 채찍을 만들어 히드라의 목을 꽈아아아악 졸랐다.

"케에에엑! 케엑! 케에에에......!"

나름 네임드급 괴수라 그런지.

히드라는 목을 졸려, 머리로 가는 혈액을 차단했음에도 꽤나 오래 버텼다.

그러나 오래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결국에는......

"케......"

추욱.

머리 하나가, 눈을 뒤집어 까고 죽었다.

잘리지도 않고 머리 하나가 죽어버리자.

나머지 머리들이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더 이상 부활하지 않는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만약 머리가 저만큼 많지 않았더라면......조금 전처럼 다른 머리들이, 죽은 머리를 뜯어냈을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머리가 너무 많아진 탓에 움직일 수조차 없으니.

그런 식의 부활조차 불가능해진 것이었다.

나는 이제 한 번에 몇 마리씩 한 번에 처치를 해나가기 시작하였고.

촘촘하게 뒤엉켜 있던 놈들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죽어나갔다.

이내 마지막 머리 하나만 남았을 때.

처음으로 히드라의 눈동자에, 겁이란 게 드러났다.

죽음이 다가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리라.

지금껏 단 한 번도 생각지 않았던 죽음이.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놈은.

내게 마지막 괴성을 질렀다.

"캬, 캬아아아아아!"

* * *

쿠우우웅......!

모든 머리가 죽은 히드라는.

육중한 몸뚱이를 기우뚱하더니 옆으로 쓰러졌다.

아주 큰 땅 울림과 함께.

'끝났......'

이 골치 아픈 녀석을 큰 피해 없이 잘 마무리 했다고 생각하며 돌아서려던 그때.

나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조르고 있던 히드라의 목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막 흐르고 있는 게 보였던 까닭이었다.

나의 눈에 보이는 그것은, 핏줄이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부분에 송곳니를 박아 넣고, 피를 빨아 먹는다면 놈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문득 느껴지는 이 갈증을......없앨 수 있으리라고.

꿀꺽!

그러나 내 이성은, 흡혈을 하고 싶지는 않다고 외치고 있었다.

일단 히드라의 피를 마신다는 것 자체가 거부감이 들었을뿐더러.

딱히 흡혈을 하지 않더라도 저 힘을 가질 방법도 저절로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빨을 들이밀지 않고.

그저 손바닥을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도, 저 힘을 가져올 수 있었다.

잠시 고민을 한 나는.

정확히 동맥 위에 손바닥을 붙였고.

솨아아아아......!

물밀듯 밀려드는 히드라의 생명력이 느껴진 것이었다.

몇 초 후.

놈의 동맥에서 손을 뗀 나는.

놀란 눈으로 내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이게......뭐야?......'

이것은 단순한 기운 따위가 아니었다.

이것은......

'생명력. 그 자체다......!'

상위 신에 필적할만한 존재의 생명력.

그것은 매우 달콤했으며.

더 많은 생명력을 탐하고 싶게 만들었다.

만약 내가 가진 첫 번째 힘이, 악신 그룬트의 힘이었다면......

'이 충동에 잡혀먹혔을 것이다.'

그런 끔찍한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 충동에 이기지 못하고, 영영 끌려다니는.

피를 갈망하는 미친 괴물이 되는 상상이.

하나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미 거신의 힘을 포함해.

정령왕의 힘이나 불사조의 힘까지 품고 있었다.

그 많은 기운들이, 악신의 욕망을 어느 정도 막아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아주 옅기는 하지만, 그룬트에게서 얻은 힘 자체에서도 미약한 신성력이 스며 있어.

그 또한 내가 폭주하는 것에 브레이크 걸어주고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천만 다행이네.'

순간적으로 흡혈의 충동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나는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릴 정도였다.

왜 악신 그룬트가 그렇게 피를 마시며 돌아다녔는지 이해가 될 만큼이나.

물론, 그 강렬한 충동만큼이나 지금 내 손바닥에는 엄청난 기운이 몰려 있었다.

나는 그 힘을 일단 갈무리하며.

가우리엘을 돌아다 보았다.

가우리엘은, 복잡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 *

드래곤 로드, 바포레트는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히드라의 시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 괴물을......진짜 죽였......다고?......"

다른 로드 가드 드래곤들 역시도 반쯤 넋이 나간 채로 히드라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하지만 가우리엘만은 내게 시선이 고정된 채였다.

"괜......찮은가?"

가우리엘의 조심스러운 물음.

그가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어느 정도는 예상이 되었다.

흡혈의 욕구를 느끼던 그 찰나.

아마도 내게서 그룬트와 비슷한 기감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그 위험한 기운을 풍겼다는 걸.

그러나 가우리엘은 모르는 눈치였지만, 실제로는 조금 다르긴 했다.

'코앞에서 느낀 진짜 그룬트의 압박감은......이 정도 악의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경험한 것 역시 그저 정신체에 불과한 그룬트였다.

육신과 정신이 합쳐진 전성기의 그룬트였더라면......말 그대로 살기.

그 자체였으리라.

나야 그런 위험한 상태는 아니었기에.

가우리엘의 목소리에 이성적으로 대답하였다.

"괜찮다."

"후우......다행이군."

"하지만."

"음?"

"물어봐야 할 게 하나 생겼다."

"갑자기? 무엇인데 그러는가?"

"베르티엘."

"......?"

나는 희한하게도 악신의 힘에 섞여 있는 그 신성력의 출처를 알 것만 같았다.

아니.

정확히 알고 있었다.

모르는 게 정상임에도.

'이건 분명히 지혜의 대천사, 베르티엘의 신성력이다.'

베르티엘의 신성력은 놀랍게도, 광기에 날뛰는 악신의 힘을 컨트롤해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말인즉.

혈석을 창조한 베르티엘은 이 그룬트의 힘을 제어하는 방법을 만들어 내었다는 뜻이었다.

'히드라에게서 흡수한 이 힘......이 정도의 힘 몇 번만 더 취할 수만 있다면. 상위 거신들에게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

그러나 마냥 전망이 밝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힘의 크기가 너무 방대해지고 있었기에.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베르티엘이 만든 제어 방법을 나도 터득한다면......

'불가능은 아니다.'

그렇기에 베르티엘을 만나야겠다는 생각부터 퍼뜩 들었다.

나는 가우리엘에게 하던 말을 이었다.

"베르티엘은 만나야 한다. 그녀의 도움이 필요하다."

"설마, 그룬트의 힘이......날뛰는 건......!"

그룬트라는 이름이 튀어나오자.

바포레트도 히드라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이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룬트? 대체 무슨 이야기들을 하는 거지? 그 이름이 왜 나오는 것이냐?"

가우리엘은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바포레트를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

"이야기하자면 조금 길다네. 지금은, 잠시만 기다려주게."

"......"

바포레트는 불만이 있어 보였지만.

일단은 하고 싶은 말을 삼키는 그였다.

바포레트가 한발 물러서자.

가우리엘은 나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괜찮은가?"

"문제 없다."

"저, 정말인가?"

"지금은."

나는 조금 더 설명을 보태었다.

"더 많은 힘을 취했다가는, 지금으로서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럼 여기까지만 하고, 앞으로는......"

"그랬다가는 상위 거신들은 상대할 수 없겠지."

"......"

그 말에, 가우리엘의 입이 턱 막혔다.

진퇴양난.

딱 그런 상황을 마주한 자의 모습이었다.

그에 바포레트가, 우리들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면, 일단은 내 레어로 들어가서 하는 건 어떤가?"

* * *

"내 영역까지 찾아온 걸 보니, 내게 할 말이 있는 것을 테고. 그럼 나도 대화를 알아는 들을 수 있도록 설명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바포레트는 냉철하게 눈앞에 펼쳐진 일들을 바탕으로.

완벽하게 상황을 파악해내고 있었다.

역시 로드라는 이름이 모자라지 않은 자였다.

"특히 그 악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걸 보면, 나도 모른 척 할 수는 없다."

오르헬이나 리치몬드랑은 참 다르게.

가우리엘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바포레트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봐서 알겠지만, 이쪽은 로한 경. 거신족에게 맞서는 데에 힘을 보태주고 있다네."

"인간치고는 제법이었어. 머리를 쓸 줄 아는 자더군."

드래곤 특유의 그 내려다보는 눈빛으로 나를 훑는 바포레트.

그러나 내 실체를 알고 있는 가우리엘은, 약간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슬쩍 웃었다.

"왜 웃는 것이지? 내게 이 정도 칭찬을 듣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단순히 인간이라고 칭하기에는......맞지 않아서."

"무슨 뜻이냐?"

"여기 로한 경은, 물의 정령왕이기도 하니까."

"......!"

바포레트의 눈이, 부릅떠지며 내게 돌아왔다.

하나 가우리엘의 말은 이제 시작이었다.

"동시에 뱀파이어 로드이기도 하고."

"로......드?"

"그걸 뛰어넘어, 중간계 최초의 신......이네."

마지막 말을 듣는 순간.

"뭐, 억? 마, 말도, 어......그게 정말......헉?!"

바포레트가, 고장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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