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네가 그렇게 재생을 잘해?
드래곤 로드, 바포레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평소 감정의 변화가 없는 편인 바포레트 치고는, 큰 동요라 할 수 있었다.
'머, 머리가 단순히 재생된 것도 아니고......늘어나다니......!'
그만큼 히드라의 저 요사스러운 재생력은.
두려움까지 느끼게 만들 정도였다.
심지어 네 개의 머리가 된 히드라는.
이전보다도 더 강력해진 것만 같았다.
"샤아아아아아!"
머리가 늘어난 만큼 공격 속도는 더 빨라졌고.
시야의 사각은 줄어들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있던 빈틈이 거의 사라졌다는 이야기였다.
그에 바포레트는, 침음을 흘렸다.
로드 가드 드래곤들 역시 곤란해하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오히려 이제는 그들이 쫓기는 형국이 되었으니.
바포레트는 드래곤 로드로서.
이 상황을 타개해내야 했다.
그게 군주로서의 역할이었으니까.
자신들의 땅을 지키고.
동족들의 윤택한 삶을 지키는 것.
오로지 그 하나 때문에, 바포레트 자신이 군주로서 그 많은 혜택과 존경을 받는 이유였으니.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올라, 공중을 돌며 히드라를 유심히 살필 바포레트는.
히드라와 로드 가드들의 전투를 지켜보며.
한 가지 묘안을 내었다.
"그래. 한 번 해보자, 이 괴물 놈!"
그리고는 곧장 방향을 틀어 다시 전투가 일어나고 있는 곳으로 급강하하였다.
* * *
바포레트는 브레스를 뿜던 붉은 드래곤의 옆에 바짝 붙어 날며 입을 열었다.
붉은 드래곤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바포레트를 쳐다보았다.
"로드시여! 저 괴물 놈의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체력도 상상 이상이고......이대로는 저희가 먼저 나가떨어질 것 같습니다."
그에 바포레트가 히드라에게 시선을 돌리며 대답하였다.
"내가 다시 놈의 목을 치겠다."
"하지만......그러다가 목이 더 늘어나기라도 한다면......"
우려 섞인 목소리에.
바포레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가 또, 늘어나겠지."
"그런데 왜 그런 방법을 꺼내 드신 겁니까?"
"내가 놈의 목을 친 직후. 그다음부터가 중요하다."
"예?"
"놈의 머리가 늘어나기 전에, 네 브레스로 놈의 절단 부위를 지져버려라!"
그제서야 붉은 드래곤의 눈에, 놀라움이 어렸다.
회복하기 전에 상처를 불로 지져 막아버린다.
그 신묘한 수에, 붉은 드래곤은 희망을 본 것 같았다.
"그런 방법이......!"
붉은 드래곤의 절망에 절여졌던 눈빛이, 다시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바포레트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날개를 틀어 상승 기류를 타고 올라갔다.
그러는 사이 다시 로드 가드들이 이를 악물며 협공을 시작하였고.
바포레트는 높은 고도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자신을 따르는 로드 가드 드래곤들이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음에도.
바포레트는 꾸욱 참으며 절묘한 타이밍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이다!'
완벽한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다시금 놈의 목을 치고.
동시에 붉은 드래곤이 정면에서 절단부를 지져버릴 수 있는 그때가!
바포레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급강하를 하였고.
직전과 똑같은 수로 히드라의 목을 쳤다.
촤아아아악!
사방으로 피가 튐과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아!
붉은 브레스가 직격을 하였으니.
'됐다!'
모든 것이 계산대로 완벽하게 흘러갔다.
바포레트는 입꼬리를 올리며, 날개의 방향을 틀어 놈을 쳐다보았다.
그런데......눈 앞에서는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콰득! 콰득!
남은 히드라의 머리들이, 화염에 아물어 버린 부분을 물어뜯고 있는 게 아닌가!
순식간에 아물었던 상처는 다시 아물기 직전의 상태로 되돌아가 버렸고.
촤아아악! 촤악!
두 개의 머리가 더 솟아났다.
"......!"
바포레트의 눈은, 부릅 떠질 수밖에 없었다.
* * *
히드라를 지상으로 끌어내리려던 나는.
바포레트의 움직임에 잠시 멈칫하였다.
그가 무언가를 하려는 게 보였던 까닭이었다.
'뭐......굳이 내가 해치울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바포레트는 나름 괜찮은 방법을 찾아낸 것 같았다.
'딱 보자마자 나도 생각해본 방법이긴 하네.'
나야 내가 살던 세계에서도, 저 히드라와 비슷한 신화가 있지 않았던가.
헤라클레스 신화.
그리고 그 해결책도 바포레트가 생각해낸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한데 놀랍게도 바포레트의 그 공략에.
히드라 또한 나름의 파훼법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스스로의 살점을 뜯어버려, 새로운 머리를 결국 만들어낸 것이다.
히드라가 그렇게까지 나오니.
바포레트와 로드 가드 드래곤들 역시도 기겁을 하며 얼어붙었다.
그러나 한창 전투가 일어나는 와중이라면, 그런 찰나의 멈칫거림도 위험하였으니......
콰악! 퍼어어억!
히드라는 미처 드래곤들이 반응을 하지도 못할 정도로 빠르게 드래곤 둘을 더 바닥으로 추락시켜버렸다.
그것으로 바포레트의 전략은 실패한 것이, 증명이 되었다.
내가 움직일 때가 된 것이었다.
나는 더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황금의 창이 소환해내었고.
파아아앗!
모두의 시선이 일순간 집중되었다.
잘 된 일이었다.
어차피 불러 모을 생각이었으니까.
"트레이톤, 오르헬."
"예. 주군!"
"어, 어, 어. 브라더. 왜?"
나는 창을 히드라의 날개를 향해 조준을 하며, 그들에게 외쳤다.
"놈의 날개를 노려라! 놈이 회복하는 족족 잘라버려서, 바닥으로 끌어 내린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뭐? 뭐? 아, 알겠어! 잠깐만!"
가장 먼저 내가 황금의 창을 던졌고.
휘이이익!
히드라의 날개와 몸통을 연결하고 있던 연결부를, 황금의 창이 정확히 뚫고 지나가며.
촤악!
날개가 뜯겨졌고.
공중을 날던 히드라가 기우뚱하며 무너졌다.
그러나 예상대로 히드라는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새로운 날개를 펼쳤다.
물론 예상했기에 당황하지도 않았다.
이어서 트레이톤이 얼음 화살을 쏘아내었다.
휘유우우우웅......촤악!
"케에에에엑!"
또다시 추락을 하는 히드라.
하지만 그것도 놈을 바닥까지 끌어내리지는 못하였다.
히드라의 날개도 다시 돋아났기에.
다만 문제는 아니었다.
이미 오르헬 역시 준비를 하고 있던 터였으니.
촤아아아악!
히드라의 날개는 돋아나자마자 재차 날아갔다.
"케에에엑! 샤아아아아!"
나는 벌써 다음 황금의 창을 준비하고 있었다.
* * *
쿠우우우웅......!
결국 바닥까지 히드라를 끌어내린 우리는.
놈이 추락한 장소를 향해 달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그 자리에 나타나자.
"캬아아아아아악!"
히드라는 나를 향해 위협적인 괴성을 질러 대었다.
다섯 개의 모든 머리가 오로지 나만을 향해서.
그만큼 나를 견제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를 견제한다고 해서......무슨 수가 있을까?
피식.
나는 작게 코웃음을 치며 놈에게 한 발 한 발 더 다가갔다.
"캬아아아아아!"
하나 내 눈에 그것은, 그저 겁에 질린 놈이 질러대는 비명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서걱!
굳이 그 비명을 끝까지 들어 줄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나는 바로 놈의 목 하나를 공간째 베어 버렸다.
너무나도 깔끔하게.
그 광경에 모두가 놀랐다.
드래곤들도.
가우리엘도.
오르헬이나 리치몬드를 포함한 나머지 일행들 역시.
그렇지만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드래곤들은 나를 내려다보며 절망과 더불어 한숨을.
"저걸 왜!"
"베면 안 되는 걸 모른단 말인가?"
"젠장!"
가우리엘은 당혹스러움을 보였고.
"대, 대체......무슨 생각으로......"
오르헬과 리치몬드는......별 생각이 없음을 보였다.
"뭐, 이유가 있겠지?"
"그렇겠죠?"
"음. 그럴 거야."
리치몬드 역시 팔짱을 끼고는 끄덕끄덕.
"네. 그런 거 같네요."
* * *
내 선공에 히드라는 잠시 당황하는듯했으나.
어느새 여섯 개의 머리가 된 놈은.
금방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나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턱!
순식간에 녀석은 내가 서 있던 자리를 깨물었다.
나는 바로 몸을 날려 위치를 바꾸었고.
콱! 콱!
이어서 다른 머리들도 다시 바뀐 위치를 향해 공격을 해왔다.
하지만 너무 의도가 뻔히 보이는 직선적인 공격에 당할 내가 아니었다.
나는 그 공격을 피해내며 다시 검을 휘둘렀고.
서걱! 서걱!
두 개의 머리를 더 잘라버렸다.
이제 히드라의 머리는 여덟.
결국 보다 못한 바포레트가 지상에 내려앉아.
내게 소리를 쳤다.
"멈추어라! 네 녀석은 눈이 없나? 가우리엘이 데려온 놈이라 참고 봐주었건만......일을 키우는 것은 거기까지다!"
나는 그에게 살짝 눈동자를 돌리고는 되물었다.
"그럼 뭐 뾰족한 방법은 있고?"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해도 더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네놈도 방법이 없는 건 매한가지....."
"있다."
"......뭐?"
"생각 있으니까, 빠지라고."
"......"
내가 그렇게 나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지.
의외로 바포레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다.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히드라를 주시하였다.
바포레트의 말에 대꾸를 해주면서 히드라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히드라는 그리 무디지 않았으니까.
"캬아아아아아!"
연달아 날아오는 여덟 머리의 공격.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놈의 머리를 베고, 또 베었다.
늘어나는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아니, 오히려 늘어나는 것을 노리는 것이었다.
멈출 생각도 없이 놈의 머리를 계속 베어버리니.
히드라 놈도 주춤주춤 물러서기 시작하였다.
아마 히드라도 나 같은 놈은 처음이지 않을까 싶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도망치게 해 줄 수는 없었다.
지금 내 머릿속 계획은, 어중간하게 멈추었다가는 오히려 위험해질 것이었으니까.
나는 당장 마그마로스와 크뢰이튼을 불렀다.
"화염 채찍으로 놈을 붙잡아! 도망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아, 알겠네!"
"그렇, 그렇게 하지!"
촤라라라라락!
둘은 동시에 채찍을 날려 히드라의 몸통을 꽈아악 붙잡았고.
히드라의 머리가 그들을 향해 날아들었지만.
촤아악! 촤악!
나는 또 그 머리들을 잘라버리며, 마그마로스와 크뢰이튼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히드라는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녀석의 힘이 얼마나 무식할 정도로 강했는지.
마그마로스와 크뢰이튼조차도 끌려가기 시작을 하였다.
그 모습을 본 가우리엘이 얼른 크뢰이튼의 뒤에 붙어, 함께 채찍을 붙잡았고.
바포레트 역시도 마그마로스에게 힘을 보태주었다.
이내 로드 가드 드래곤들과 오르헬, 리치몬드도 히드라의 꼬리를 붙들고 늘어지며 합류를 하니.
"당겨어어어어!"
"힘 좀 쓰라고오오오!"
"흐으읍!"
"힘이......무슨! 아오!"
제아무리 히드라라고 한들, 슬슬 움직임이 둔해지고 있었다.
개개인의 힘은 히드라에 비해 모자람이 있었으나, 그 힘이 모이니 이제는 히드라조차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된 것이었다.
저벅, 저벅.
이제 나는 천천히 걸어.
히드라의 앞으로 다가갔다.
놈은 물러서지도 못하며 내게 눈을 부라렸다.
그런 놈을 향해.
나는 검을 뻗어 보였다.
"네가 그렇게 재생을 잘해?"
촤자자자자자작!
난도질의 시작이었다.
순식간에 히드라의 머리가 바닥에 후두둑 떨어지고.
다시 새로운 머리가 재생되며.
점점 놈의 몸통에는, 허용 범위 이상의 머리가 돋아나고 있었다.
그 결과.
놈의 머리끼리 서로 바짝 끼고 뒤엉키면서.
아예 꼼짝달싹도 못할 정도가 되었다.
이제 히드라는, 누군가를 공격하지도.
숨조차 제대로 쉬지도 못하게 된 것이었니.
"케엑, 케엑!"
"크아악! 크아아아악!"
"크르르륵.......!"
그 예상치 못한 광경에.
바포레트는 눈만 껌뻑였다.
"이, 이럴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