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52화 (152/194)

152화. 바닥 끝까지 끌어내려 주마!

하늘 위에서는.

말도 안 되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마치 괴수 영화에서나 볼 법한 거대한 생명체들의 전투가!

우리들은 모두 목을 한껏 꺾은 채.

하늘의 상황을 눈에 담기에 바빴다.

네 기의 드래곤들은 순식간에 히드라를 둘러싸며.

언제라도 공격을 할 빈틈만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히드라에게 달려들기란 쉽지 않은듯하였다.

히드라의 실제 모습은, 뱀이라는 이름과 달리 드래곤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다른 드래곤들보다 훨씬 큰 몸통에 날개가 달려 있었고.

세 줄기의 긴 목이 뻗친 형태였다.

히드라의 세 머리가, 자신을 둘러싼 드래곤들을 향해 각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었다.

"샤아아아아아!"

하늘을 진동시키는 히드라의 괴성에.

"크워어어어어어!"

네 기의 드래곤들 또한 물러서지 않고 히드라를 향해 살벌한 포효를 내질렀다.

그리고 그 포효를 기점으로.

침략자인 히드라에 대한 드래곤들의 본격적인 공격이 개시되었다.

공격의 첫 시작은, 붉은빛을 가진 드래곤의 브레스였다.

콰아아아아아!

그것은 화염으로 이루어진 브레스임에도 거의 레이저처럼 쭈욱 뻗어 나갔다.

그만큼 강하게 농축이 된 것이리라.

그러나 히드라는 세 개의 머리를 달고도 버틸 정도의 육중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기민한 공중 기동을 뽐내며 순식간에 공격 범위를 벗어났다.

물론 아직 남은 드래곤도 셋이나 되었다.

그들은 각자의 무기를 이용해 다시금 히드라에게 쏘아졌다.

돌덩이 같은 몸통을 이용한 박치기와.

얼음으로 이루어진 날카로운 발톱.

혹은 바람을 이용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어 히드라의 날개를 노렸다.

굉장히 조직적이면서도 위력적인 연계 공격이었다.

도도하게 홀로 움직일 것 같은 드래곤들의 연합 공격도 놀라웠지만.

사실 더욱 놀라운 것은 히드라 쪽이었다.

그 거대한 몸뚱이를 가지고도 녀석은, 유려하다고도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움직임을 해내었던 것이다.

당연히 날아드는 모든 공격을 피하기는 어려웠기에, 몇몇 공격은 몸으로 맞섰지만.

촤악! 빠악!

정작 치명적인 공격들은 모조리 회피해내고 있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아무 계산 없이 마구잡이로 싸우는 것이 아닌, 정확한 판단이 바탕이 된 전투에 임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건,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심지어 히드라는, 반대로 공격을 하던 드래곤들에게 기습적으로 반격까지 해왔다.

"캬아아아아!"

그렇게 전투가 길어질수록 드래곤 쪽의 상처는 점점 늘어갔고.

히드라는 그 상식을 넘어서는 재생 능력으로, 처음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채였다.

그 결과, 오히려 숫자가 많은 드래곤들 쪽이 쫓기는 형세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 저 드래곤들을 못 본 채 내버려 두었다가는......결과는 뻔했다.

'나라도 합세해야......'

그런 판단을 내리던 찰나.

문득 우리들을 향해 접근하는 한 기척이, 제3의 눈에 딱 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우리엘 역시 그것을 느꼈는지.

나와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긴 로브를 두른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저 이상한 괴물은 무엇이지? 대체 뭘 끌고 온 것이냐? 가우리엘!"

"바포레트......"

이름을 듣고 나서, 나는 다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가 바로......드래곤 로드였다.

* * *

드래곤 로드라서 용의 모습일 것이라 생각을 했었다.

당장 하늘 위의 드래곤들도, 내가 상상하던 그 모습 그대로이지 않던가.

한데 아니었다.

드래곤 로드의 모습은, 평범한 중년 사내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물론 완전 평범하기보다는......굉장히 듬직하고도 묵직한 느낌이 가득한......

마치 어느 왕실 기사단장까지 올라섰다가 전역을 하고.

지금은 숲 한구석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은퇴 기사 같은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여하튼.

특별히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또 동시에 보통 사람 같지도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지금의 그는, 매우 화가 난 얼굴이었다.

그 때문에 바포레트가 내뿜는 위압감은 한층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가우리엘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싸울 의지가 없다는 의미로, 손바닥을 뻗어 보였다.

"히드라는 내가 끌어들인 것이 아니다."

그 대답에.

바포레트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누구도 쉬이 믿지 않겠다는 의지가 슬며시 보이는 모습이었다.

따져보자면 저게 오히려 합리적인 행동이었다.

상대 말만 듣고 대충대충 넘어가 버리는 게 오히려 멍청한 짓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한 종족의 수장인만큼.

그의 의심에, 나는 딱히 불편한 감정을 가지지는 않았다.

하나 내가 불편하지 않는다고 해서.

판단을 질질 끌 시간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캬아아아아!"

"쿠어어어어어어!"

히드라의 이빨에, 짙은 갈색을 한 드래곤의 목이 물렸다.

바포레트 역시 눈은 가우리엘을 향하고 있으면서도.

미간을 찌푸리는 걸 보니, 저쪽에 신경을 놓지는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바포레트는 눈동자를 움직여 가우리엘 이외에 다른 이들도 살폈다.

특히 그의 눈이 멈췄던 것은, 같은 로드급 존재인 오르헬과 리치몬드.

"어이, 오랜만?"

"간만에 뵙소."

그리고 불의 정령왕 마그마로스였다.

"처음 뵈오."

그리고 아주 잠깐 눈을 한 번 더 움직여 나를 슬쩍 보고는.

다시 가우리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히드라? 그게 저 괴물의 이름인가?"

뭐지?

히드라를 처음 보는 건가?

하긴 나도 지구의 신화에서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지.

파오갓 세계에도 히드라가 존재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있긴 했었다.

아무래도 이 세계의 존재들에게 히드라는 그리 유명한 편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서일까.

바포레트는 공중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쪽을 더 경계하는 눈치였다.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이쪽 멤버도 나름 화려하기는 했으니.

"도대체 이게 무슨 조합인지 모르겠군."

그러나 가우리엘은, 히드라의 이름도 알고.

그 무서움도 이미 알고 있는듯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하늘 위를 가리켰고.

"일단은 저들부터 돕고 나서 못다 한 말들을 하는 게 어떻겠나?"

때마침, 한 드래곤이.

휘우우우우우......콰가가가가가강!

근처로 추락을 하며, 나무들을 모조리 쓰러뜨렸다.

지진처럼 느껴질 정도로 바닥이 크게 흔들렸으니.

이제는 바포레트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보였다.

"금방 끝낼 테니, 허튼짓 하지 마라."

"내가 그럴 놈으로 보이나?"

"모르지. 그 속을 내가 어찌 알겠나?"

바포레트는, 송곳니를 드러내어 위협을 하고는 휙 뒤로 돌아섰는데.

그 순간 로브가 펄럭이는 것 같더니.

화아아악!

어느새 그는 진정한 모습으로 돌아가, 자신의 날개를 펼쳤다.

시야를 가려버릴 정도로 거대한 날개를.

다른 드래곤보다도 압도적인 크기의 바포레트는.

발을 크게 구르며.

쿠우우웅......!

엄청난 풍압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 * *

바포레트는 드래곤의 형상으로 변하고 날아오르며 뒤를 슬쩍 흘겨 보았다.

혹여나 가우리엘도 뒤통수를 칠까 싶어.

하나 가우리엘에게 수상한 낌새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저건 누구지?'

이상하게 신경이 쓰이는 사내가 하나 있었다.

인간 같아 보이기는 한데.

묘하게 무거운 기운이 깔려 있는 것 같았다.

하나 바포레트는 그것을 그냥 넘기기로 하였다.

전투가 일어나는 상황이니, 착각한 것이리라.

그렇게 여긴 것이었다.

바포레트는 날갯짓을 더 세차게 하며, 솟구쳤고.

뒤에서는 가우리엘이 소리를 치는 게 들려왔다.

"바포레트! 히드라의 목을 잘라서는 안 되네!"

저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목을 자르지 말라니.

'살려두라는 뜻인가? 어림없는 소리!'

바포레트는 코웃음을 쳤다.

감히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것도 모자라, 로드 가드 드래곤들에게 큰 상처를 입히기까지 하였다.

저 괴생명체의 정체가 그 무엇이든 간에.

바포레트는 숨을 끊어 버릴 생각이었다.

쐐애애애액!

히드라보다는 조금 작지만 다른 드래곤들에 비해서는 육중한 그 덩치가.

바람과 마법에 의해 가속도가 붙으니.

무게와 속도가 시너지를 일으켜, 바포레트의 몸 자체가 그야말로 살인적인 무기가 되었다.

그는 그대로 날개에 힘을 잔뜩 준 채 히드라의 왼쪽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로드 가드들이 시선을 끌어주는 사이.

촤악!

날개를 이용해 순식간에 세 갈래의 머리들 중 하나를 잘라버린 바포레트.

그는 다시 날개를 전면으로 펼쳐 순식간에 속도를 줄이고는.

코웃음을 치며 뒤를 돌아보았다.

"머리가 세 개면 뭐하나. 오히려 공격당할 약점만 늘어나는......"

그러나 바포레트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였으니.

"저, 저게 무슨......!"

다시 돌아본 히드라는.

네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자신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샤아아아아아아!"

* * *

"드래곤이 저렇게나 많은데......오히려 밀리는 거 같지 않아요?"

앤드류가 심란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른 이들 역시 불안한 얼굴인 것은 매한가지였다.

가우리엘도 그러하였다.

"히드라는, 거신족과 같은 세대의 괴물이라네. 어찌 보면 형제와도 같은 존재이지. 놈의 목은, 베어도 베어도 늘어날 뿐이네!"

오르헬이 그의 대답에 사색이 되었다.

"목을 잘라도......늘어난다고? 그건 거신족 놈들보다 더 골치인데?"

리치몬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요. 거신족도 그나마 목을 베어 놓으면, 죽은 듯 가만히 있기라도 하는데. 머리가 더 늘어나다니......이건 너무, 답이 없잖아요?"

모두가 혼란스러워하는 동안.

나는 유심히 히드라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 결과.

몇 가지를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첫 번째는......공중전은 저쪽이 더 강하다는 것.'

솔직히 말하자면 내 공중전 실력은, 히드라와 드래곤들에 비하자면 크게 모자람이 있었다.

그저 날 수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둬야 할 정도로.

일단 천계의 힘인 날개를 펼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다 보니.

숙련도를 올릴 시간도 많이 모자랐던 까닭이었다.

그러니 굳이 공중전을 하고 싶진 않았다.

상대가 유리한 전장에서 싸워 줄 필요가 무에 있겠는가.

'오히려 내가 유리한 전장으로 끌어들이면 몰라도.'

그리고 나는 그렇게 만들 생각이었다.

두 번째 정보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히드라의 재생력은 머리뿐만이 아니라 몸통에도 적용이 된다. 다만......원상 복구까지만.'

이것은 큰 발견이었다.

머리와 달리 다른 부분은 재생만 될 뿐, 더 늘어나지는 않았다.

그와 더불어, 재생의 속도 또한 어느 정도의 시간은 필요한 듯하였고.

그렇다면......회복 할 틈도 없이 날개에 구멍을 낸다면......?

나는 입꼬리를 싸악 올렸다.

'바닥 끝까지 끌어내려 주마!'

때마침 그다음 수도 떠오른 참이었다.

그 재생력을......역이용 할, 재미있는 공략법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