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46화 (146/194)

146화. 장난 같나?

내가 혈석을 보며 잠시 멈칫하자.

"뭔데? 알아보는 눈치인데? 설마, 혈석에 대해 뭐 알고 있는 게 있는 거야?"

오르헬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어왔다.

그도 그럴게, 오르헬은 평생 혈석이 무엇인지에 관해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해왔다고 하였다.

그나마 최근에는 수집할 정보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서는, 일단 혈석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기 때문이었으니까.

하나 이곳에 오는 동안 들은 말에 따르면 결국 오르헬이 알아낸 것은 거의 없었다.

불멸에 가까운 생에 동안 혈석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였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내가 보자마자 반응을 하니.

"진짜 알고 있는 거야? 브라더? 어?"

나는 일단 오르헬을 말렸다.

나 역시 아직은 확신이 서지 않을 까닭이었다.

'생긴 건......후속작에 나온다고 했던 그 모양이랑 똑같아.'

파오갓의 후속작에 대한 떡밥은 꽤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작품 자체도 흥행을 못한 게 아닌데 이대로 없어지기엔 아쉽지 않겠는가.

실제로 차기작을 기대하는 유저들 역시 한둘이 아니었고 말이다.

하나 결국 긴 세월이 다 가도록 후속작은 나오지 않았다.

단지 후속작은 이럴 거다, 저럴 거다 추측성 정보들만 흘러나올 뿐.

그런 것들 중의 하나가 [고대 권능의 돌] 이었다.

기본적으로 파오갓 세계관에서는 권능이라는 시스템이 큰 매력으로 작용하는 요소였다.

내가 워낙 이 고유 스킬, 저 고유 스킬 다 먹어치워서 그렇지......일반적으론 단 하나만 가질 수 있었던 거고.

'권능 리미트가 아예 없다 보니 잊고 있었네.'

그렇다 보니 여러 가지 권능을 써보려면 새로 캐릭터를 키우는 수밖에 없었는데.

소위 파오갓 2에서는 재미있는 시스템이 추가 될 거란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다.

그게 바로 [고대 권능의 돌]을 이용한, 고유 스킬 대여 시스템.

소문으로는 기본으로 가진 권능에, 빌리는 권능 하나를 더 추가해 두 가지 권능을 이용해서 훨씬 더 다양한 조합과 컨트롤로 새로운 재미를 준다고 했던 걸로 기억한다.

'재미있겠다 생각은 했는데......'

너무 복잡해져서 구현하지 못한 게 아닐까라는 이야기가 도는 것 같더니.

결국은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던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혈석'이, 당시 나돌던 고대 권능의 돌 이미지와 똑같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나 또한 파오갓 2에 관심이 많았던 유저의 한 사람으로서.

당시에 파오갓 2 이미지를 찾아보면서 게임을 즐길 상상을 펼쳤었다.

때문에 꽤나 유심히 고대 권능의 돌을 쳐다봤었는데......

'맞는 거......같다!'

이건 아무리 봐도 그때 그 이미지와 완전히 동일한 물건이었다.

* * *

"고대 권능의 돌."

나는 오르헬의 물음에 짧은 대답을 하였다.

"고, 고대 권능의 돌......이라고?"

아니, 사실은 짧은 대답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 권능의 돌에 대해서는 나도 정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르헬이 다시 물어왔지만.

"고대 권능의 돌이라니? 권능의 돌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고대라는 말이 붙은 놈은 처음 듣는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이름 외에는 정확한 건 알지 못한다."

"그래?......"

오르헬은 턱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고대 권능의 돌이라......일반적인 권능의 돌이라면, 그거잖아. 특별한 힘이 깃든 보석 같은 돌."

그것을 들은 리치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 맞네요, 뭐. 특별한 힘이 깃든 보석 같은 돌. 혈석."

그에 오르헬도 긍정을 하였다.

"지금 보니, 마, 맞긴 맞네......"

리치몬드는 팔짱을 끼며 오르헬에게 말을 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요? 이게 권능의 돌일 수도 있다는 걸? 특성이 이렇게나 똑같은데."

"그, 그러게......"

무심결에 대답을 하던 오르헬은.

한 가지 의문을 던졌다.

"아니지. 근데 원래 권능의 돌이라는 게, 그 돌을 쥔 자에게 가지고 있던 힘을 부여하고. 그 이후에는 돌은 그냥 무용지물이 되는 거잖아?"

이 자리에서 나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권능의 돌을 만져본 앤드류가, 오르헬의 의문에 답하였다.

"어. 맞아요. 저도 일곱 기사단의 일원이니까, 권능의 돌을 가졌는데. 실제로 권능을 흡수한 다음에 지인에게 권능의 돌을 쥐어 줘 봤더니......아무 일도 없더라고요."

앤드류가 그 말을 하자.

리치몬드가 깜짝 놀랐다.

"뭐야? 동생, 권능의 돌을 만져 본 적이 있다고?"

"엥? 몰랐어요? 저 나름 일곱 기사단 일원이거든요?"

"일곱 기사단이라면......"

"여기 레시아 대륙 말고, 저쪽 안테아 대륙에서는 꽤 유명한 기사였다고요, 저."

"알지. 일곱 기사단. 그쯤 되면 바다 건너서도 명성이 들릴 정도이니까."

앤드류가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을 척 가리켰다.

"그 대단한 게 바로, 저! 아니겠습니까. 여기 로한 형님도 일곱 기사단이고."

"아하......어쩐지. 로한 형님은 벌써 첫인상부터 굉장하더라고."

"저는요? 저는 첫 인상 어땠는데요?"

"어......우리 앤드류 동생은, 그 뭣이냐......"

"음? 음?"

해맑은 표정으로 대답을 기다리는 앤드류.

그에 리치몬드가, 적합한 단어를 찾았는지 손가락을 탁 튕기며 말을 이었다.

"안 어울려! 너어어무 안 어울려!"

"......저 약간 무시하고 있었던 거에요?"

"약간이라니."

"헤헤, 그럼 그렇......"

"개무시하고 있었지."

"......!"

그대로 앤드류가 얼어붙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앤드류를 앤드류식 화법으로 제압하는 건.

* * *

잠시 앤드류와 리치몬드에게 정신이 팔렸지만, 나와 오르헬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크흠. 여, 여하튼. 권능의 돌은 그런 식이잖아. 일회성. 하지만 혈석은 달라. 일회성이 아니야."

오르헬은 이 혈석이 권능의 돌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나 그 부분에 관해서는 나도 짧은 첨언밖에 할 수가 없었다.

"고대 권능의 돌은, 힘을 빌려 쓰게 할 수도 있다고 들었다."

"그, 그래? 흐흠......그럼 진짜 이게 권능의 돌인 건가?"

오르헬은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혈석으로 돌렸다.

"물론 이 혈석의 진짜 정체가 권능의 돌이라는 걸 알아낼 수만 있다면, 나도 새로운 방식으로 내 과거에 접근해 볼 수 있을 것 같긴 한데......하지만 증명을 할 방법이 없잖아."

상식적으로 봤을 땐.

오르헬의 말도 옳았다.

단지 둘 다 힘을 빌려 주는 보석이라고 해서, 같은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비슷한 능력을 지닌 별개의 신비한 물건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었다.

똑 부러지는 정답을 찾지 못하고 헤매던 그때.

앤드류가 재미있는 의견을 내었다.

정확히는 의견이라기보다는 하소연이었지만......내 귀에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후. 권능의 돌을 집어 본 사람이 저 혈석의 능력도 흡수해보면 딱일 텐데."

그 말에 오르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야, 권능의 돌을 딱 잡으면 느낌이 오거든요. 뭔가 혈관을 타고 권능이 흘러들어오는 느낌? 권능의 돌을 잡아 본 사람이 그 감각을 기억하고 있으면, 비교해 볼 수 있잖아요?"

"근데 권능의 돌은 한 번밖에 받아들이지 못하잖아."

"예, 뭐. 그렇죠. 그게 문제라는 거에요. 만약 저게 권능의 돌이면, 로한 형님이 흡수도 못 할 거고. 만약 권능의 돌이 아니라도, 아직 다수 뱀파이어 로드들의 인정이 없으니, 안 될 거고. 이러나저러나 결과는 안 되니까요. 비교 자체가 안 되죠."

나는 앤드류의 의견에, 내 의견을 덧붙여 보았다.

"만약 가능하다면?"

"......예?"

"만약 내가, 이미 가진 권능에다가 다른 권능을 또 가질 수 있다면?"

"그, 그게 될 리가 없잖아요. 하하하하."

앤드류는 웃음으로 마무리 지으려 했지만.

내가 대답하지 않고, 진지한 얼굴을 유지하자 그제서야 내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웃음이 점점 어색해졌다.

"하, 하하, 하하하. 지, 진심 아니죠?"

"장난 같나?"

"아뇨......"

분위기가 바뀌자.

오르헬이 내게 물었다.

"지, 진짜 그런 게 가능하다고?"

"불가능하진 않다."

"이럴......수가......"

오르헬은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아니, 잠깐만.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브, 브라더가 권능을 이미 가지고서 또 다른 권능을 가질 수가 있다면......만약 저게 진짜 권능의 돌이라면......"

혼란스러워하는 그를 위해.

내가 대신 정리를 도왔다.

"내가 힘을 흡수할 수 있다면, 저것도 권능의 돌일 것이고. 만약 흡수할 수 없다면, 권능의 돌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라고 보는 게 옳겠지. 하지만 걱정되는 부분이 하나 있다."

"뭐, 뭔데?"

"혈석이 가진 힘을......내가 전부 흡수해버리는 경우."

"그, 그건 또 뭔 소리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봐."

잊고 있었는데.

막상 고대 권능의 돌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순간 머리를 스친 내용이 하나 있었다.

[고대 권능의 돌은, 기존과 다르게 새로이 준비한 거대 공성전에서도 판도를 뒤집을 수도 있는 시스템입니다. 고대 권능의 돌을 차지한 길드 마스터는 그 힘을 길드원들에게 빌려 줄 수 있으며, 이것은 곧 전쟁의 승패를 바꿀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앞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뒤의 내용.

고대 권능의 돌을 차지한 길드 마스터, 바로 이 부분이었다.

'이건 한 명의 인간이 고대 권능의 돌이 지닌 힘을 전부 가질 수도 있다는 뜻이잖아.'

그 말인즉, 까딱했다간 다른 뱀파이어 로드들이 가진 힘도 내가 다 흡수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나는 그것을 오르헬에게, 천천히 설명하였다.

* * *

꿀꺽!

내 이야기를 전부 들은 오르헬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럼......혈석이 권능의 돌이라면, 자칫 브라더가 모든 뱀파이어 로드의 힘을 다 가지게 된다는 거지?"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

두려움이란 무지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역시 가장 무서운 것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오르헬이나 리치몬드가 모든 힘을 잃을지도 몰랐고.

어쩌면 둘 모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들이 애초에 이런 긴 생애를 살아올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혈석이었으니 말이다.

근데 그 힘을 내가 독식해버린다면......

'죽을 수도 있다......'

도망친 로크나 목이 잘린 레메데스는 죽든 말든 관심 없었다.

그러나 오르헬은......

앤드류도 나와 같은 생각인 모양이었다.

"리스크가 너무 커요. 아무리 그래도 목숨을 걸기에는......"

그때.

결단을 내린 오르헬이, 앤드류의 말을 잘랐으니.

"해 봐!"

앤드류는 그 대답에 화들짝 놀라며 목소리를 내었다.

"오르헬 형님!"

그러나 오르헬은 오히려 담담했다.

"어차피 오래 살았어. 내가 누군지 알아내지 못한 게 아쉽긴 해도......뒤져도 여한은 없다."

리치몬드 역시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인생 뭐 없더라고요. 은근히 귀찮은 일도 많고."

"브라더. 저질러 버려! 걱정하지 말고. 내가 다 책임질 테니까!"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물론 혈마법이, 뱀파이어 로드가 탐나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저들의 목숨까지 대가로 지불하기엔......

그때.

휘익!

오르헬이 갑자기 무언가를 내게 던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잡아챘다.

척!

"이게 갑자기 무슨......"

나는 손바닥을 펼쳐 오르헬이 던진 물건을 확인했다.

그런데 그것은 다름 아닌.

'혈석?!'

언제 저걸 집어 든 것인지, 오르헬은 내게 혈석을 던진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슈화아아아악!

내 주변으로 거대한 붉은 기운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하였다.

오르헬과 리치몬드가 그 광경에 숨을 들이켰다.

"지, 진짜 이게 브라더의 말대로 고대 권능의 돌이었던가?"

"......형님! 로한 형님에게 혈석의 기운이 흡수되고 있어요!"

얼어붙은 것은 그 둘 뿐만이 아니었다.

마그마로스와 크뢰이튼도 다르지 않았다.

"정말 또 다른 권능까지 집어삼키다니......!"

"로한 경은......대체......"

그러나 그들의 놀란 목소리를 듣는 것도 거기까지였다.

모두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것 같더니.

곧이어 나는 온전히 혈석이 만들어낸 소용돌이 안에 푹 잠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