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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42화 (142/194)

142화. 수준 차이

"꾸에에에에엑!"

우리가 밖으로 나오자.

무언가에 목이 졸려 숨이 넘어가려는 나올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띠였다.

나올의 목은 잘 보이지 않는, 얇은 무언가에 의해 꽈악 조여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목의 형태를 보면 알 수 있었다.

나올은 손으로 목을 조르는 물체를 잡아내려 했지만, 살 깊숙이 파고든 그것을 손가락으로 잡아내기는 힘든 듯.

연신 헛손질을 해대고 있었다.

그 이상한 광경을 자세히 살펴보니.

나올의 목덜미에 매달려 있는 한 인영이 보였다.

죽은 듯 광채가 없는 시커먼 눈동자.

약간 곱슬진 채 길게 늘어진 머리.

그리고 자켓 없이 잘 차려입은 정장.

그런 모습을 한 의문 사내가 나올의 목덜미에서 무언가 당기는 듯한 형상으로 서 있었다.

오르헬이 그쪽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소리를 질렀다.

"레메데스!"

그러자 나올의 목을 조르던 놈의 눈동자가 오르헬의 방향으로 홱 돌아갔다.

한편.

계속 숨을 쉬지 못하고 버둥거리는 나올의 목소리는.

점점 더 급박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오, 오르헬 형님아! 사, 살려 줘......! 케엑......!"

그 대답을 들은 레메데스는 감정이 전혀 없는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거신족이 왜 오르헬에게 그런 호칭을 쓰는 것이지?"

그러나 나올은 이제 대답할 여력도 없었으니.

"켁! 켁!"

이제는 아예 기침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는 나올이었다.

상황이 심각함을 느낀 오르헬은.

바르바우와의 결전에서 보여주었던, 그 기다란 혈의 창을 소환해 내었다.

손으로 잡는 게 아니라, 손바닥 위에 두둥실 만들어진 그 창은.

쐐애액!

오르헬이 팔을 앞으로 뻗자, 순식간에 쏘아졌다.

팔에 들어간 힘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정확히 레메데스를 향해 날아가는 혈의 창.

한 번 본 적이 있는 기술이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즉각 해서 만들어져 날아가는 그것은 내가 보기에도 감탄이 새어 나올 정도로 꽤나 정교한 기술이었다.

'게다가 마음만 먹으면 수십 개의 창을 동시에 만들어 쏘기도 했으니까.'

지금은 정확도를 위해 한 발의 투창만 한 것 같지만.

바르바우 전에서는 대규모 투창도 가능했으니 말이다.

내가 감탄을 하는 사이.

혈의 창은 레메데스의 지척에 다다랐고.

그것을 확인한 놈은 혀를 한 번 차고는.

"칫."

훌쩍 뒤로 뛰어 날아오르는 레메데스.

그때.

오르헬이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팔을 비틀었다.

그러자.

휘이이이익!

혈의 창이 허공에서 방향을 틀며 날아가는 게 아닌가!

'저런 것도 가능했다고?'

역시 뱀파이어 로드는 로드인 건가.

나 또한 황금의 창을 이용해 투창이라는 능력을 사용하는 사용자였다.

그렇기에 저렇게 이미 날려버린 창을 컨트롤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렌델과 같은 염력 능력자조차 쉽지 않을 터.

실제로 그렌델도 그 광경을 보고 놀라고 있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저, 저 정도 거리에서도 제어가 되는 거라고?......"

솔직히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기예였다.

그만큼 혈마법이라는 게, 다른 마법과는 또 차이점을 가진.

새로운 영역이라는 의미였다.

'물론 오르헬이 그 능력을 사용하는 컨트롤 능력 자체가 뛰어난 것도 있겠지만.'

하나 오르헬의 그 기예도 놀라웠지만.

레메데스도 같은 뱀파이어 로드였다.

파파파팟!

계속해서 자신을 쫓아오는 혈의 창을.

눈 깜짝할 새에 산산조각을 냈으니 말이다.

그 모습에 오르헬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크으으윽......!"

* * *

"오르헬. 자리를 비운 줄 알았는데......하필 지금 복귀한 것인가?"

"그래. 타이밍이 나빴네. 하필 내가 있을 때 덤벼오다니."

"덤벼온 적 없다. 싸울 생각은 없으니까."

감정이 없어 보이던 그 외형과 마찬가지로, 레메데스의 말투는 생기가 없었다.

때문에 뭔가 시체와 이야기하는 듯한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다만, 또 언데드는 아니라는 걸 제3의 눈이 알려주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더더욱 그의 모습은 내게 기괴하게 비쳐졌다.

하나 그것이 익숙한지, 오르헬은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대화를 이었다.

"싸울 생각이 없다고? 내가 방금 본 건 뭔데?"

"혈석을 내어 놓아라. 그럼 조용히 사라져 주마."

"하, 이 새끼 이거.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인마. 떽!"

의외로 레메데스는 오르헬과의 싸움을 원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게 그간의 정이라던가, 해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적으로 두기엔 까다로운 상대라 이 말이겠지.'

걱정해주는 게 아니라, 너랑 싸우기 피곤하다.

그 정도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오르헬의 입지가 어느 정도인지 어림짐작은 되는 바였다.

"평화적으로 끝을 보지 않고, 굳이 피를 보겠다는 소리인가?"

"아니. 네놈이 조용히 물러나면 피를 보지 않아도 되겠지?"

"혈석은 받아가야겠다."

오르헬은 황당한지 코웃음을 쳤다.

"그걸 가져가서 뭐 하려고?"

"그건 몰라도 된다. 단지 혈석만 넘겨주면 모든 건 조용히 끝날 일이다."

"지랄 염병. 오냐, 그래 어디 누가 먼저 뒤지는 지 한 번 해보자.

그러나 둘의 의견이 이렇게도 첨예하게 대립을 하니.

레메데스가 싸우고 싶든, 그렇지 않든.

전투는 피하기 힘들어 보였다.

오르헬이 나서자, 나올도 목소리를 내었다.

"나올도 돕겠다! 오르헬 형님!"

그 소리를 들은 레메데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왜 거신족이 네게 그따위 호칭을 쓰는 것이지?"

"왜긴 왜야. 동생으로 삼았으니까 형님이라 부르는 거지."

"이해할 수 없군. 예전부터 불쾌했다, 그 호칭. 그런데 자진해서 부르다니. 뭐, 그건 그쪽 사정이라 관심은 없긴 하다만......오르헬. 네 녀석도 결국 거신족의 편에 서기로 마음을 돌린 것인가? 그렇다면 더더욱 싸울 필요는 없다."

"싸울 필요 있겠는데? 난 거신족의 편에 선 적 없거든. 우리 거신 동생이 내 편에 선 거지."

"......"

레메데스의 눈은 어이없다는 듯 나올과 오르헬을 번갈아 왔다 갔다 거렸다.

"거신이......거신족을 배신했다라? 후후. 이거 재미있는 소식이로군. 배신자의 등장이라니. 이 정도 정보라면 인정받을 수 있겠군."

처음으로 레메데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나 오르헬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 없을걸?"

"네가 날 막기라도 할 텐가? 거신족 하나가 더 붙어 있어 귀찮기는 하지만......작정한 나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도 눈을 모두 잃은 거신 따위와 함께 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지."

이미 나올과는 한 번 전투를 벌여 본 레메데스였기에, 나올의 상태 파악은 끝이 난 모양이었다.

실제로 지금의 나올은 큰 전력이 되지는 못했다.

나도 염두에 두고 있던 부분이었고.

그러나 굳이 그 사실을 적에게 알릴 필요는 없기에.

오르헬은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대충 대꾸하였다.

"아, 그래?"

"거신족들이 왜 네놈이 아니라 내게 접근했다고 생각하나?"

"글쎄? 네놈 대가리가 더 비어 보여서?"

"네 녀석보다 내가 더 강하기 때문이지."

"지랄."

말은 그렇게 하는 오르헬이었으나.

그의 표정도 완벽히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오래 그를 보아 왔기에 알 수 있었다.

* * *

'모르긴 몰라도, 저쪽도 보통은 아닌 모양이로군.'

하지만 이미 견적 계산은 끝이 났다.

저쪽도 오르헬을 껄끄러워한다는 말은 곧, 둘의 실력이 비슷하다는 뜻이었다.

레메데스가 자신이 더 강하다 칭하는 건 아마 상성의 차이 정도겠지.

그걸 따진다 하더라도, 이쪽의 전력이 훨씬 월등하였다.

솔직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봐야겠지.

그래서 의문이 들었다.

나는 조용히 눈동자만 살짝 돌렸다.

'우리 쪽에는 분명 리치몬드가 있다.'

비록 나나 다른 이들을 무시한다손 치더라도 뱀파이어 로드가 둘이었다.

대충 계산해도 저쪽이 불리할 텐데......

'이쪽이 만약 유인책이라면?'

나는 바로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던 리치몬드를 쳐다보았다.

"남은 뱀파이어 로드 하나가 더 있지 않나?"

"예? 아. 있습니다. 로크 형님이라고......넷째 뱀파이어 로드인데. 지금은 안 보이는데요?"

"그 녀석의 능력은 뭐지?"

"그는 짐승으로 변신하는 능력......"

대답을 하던 리치몬드의 눈이 흔들렸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려는지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하나만 더. 저기 레메데스라는 놈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지?"

그것은, 내가 레메데스를 상대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가름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그에 리치몬드가 대답을 했다.

"선혈의 뱀파이어라고 불립니다. 특수한 마법이 걸린 피를, 실처럼 얇고 가늘게 뽑아내어 그걸로 베기도 하고 방금처럼 목을 조르기도 하는 데 써요."

"선혈이라......피로 만든 선이라는 건가?"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지만 레메데스가 보여준 것들.

그리고 지금 리치몬드의 설명이 더해지니, 대강 놈의 공략법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나는 슬쩍 리치몬드를 쳐다보았다.

"그 로크라는 놈, 혈석의 위치는 알고 있고?"

"당연히 알고 있죠, 로크 형님도."

"당장 가서 혈석을 지켜라. 여긴 내가 맡지."

"예! 그럼 오르헬 형님과 로한 형님 두 분이서......."

"아니. 둘 다 가라."

나는 큰 목소리로 오르헬을 불렀다.

"오르헬! 혈석을 지켜라!"

"뭐? 브라더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병력을 돌린 것 같다. 저놈. 로크라는 놈이 혼자 별개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내 그 말에, 순간 레메데스의 눈썹이 움찔하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정곡이 찔린 모양이었다.

나는 레메데스의 눈을 마주 보며.

"저놈은 내가 맡지. 나머지는 다 혈석을 지키러 가라. 혈석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씨이익 웃어 보였다.

"저토록 탐을 내니까 괜히 주기 싫어지는군."

"푸훕! 그거 재미있는 발상인데? 맞는 말이긴 하지. 탐내면 주기 싫어지는 건."

내 말에 오르헬이 웃음을 터트리고.

레메데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오르헬은 레메데스의 반응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얼른 해치우고 오라고."

"금방 합류하도록 하지. 전력으로 싸울 거거든."

"그러면 금방 끝나겠네. 그럼 수고 좀 해주라고!"

그 말을 끝으로.

오르헬은 나머지 인원들을 이끌고 혈석을 향해 움직였고.

남은 것은 내부로 들어갈 수 없는 나올.

그리고 나와 레메데스.

우리 셋이 전부였다.

갑자기 벌어진 이 상황에 레메데스는 황당한 듯 보였다.

"네놈이 누군데 감히 나를 막겠다고 나선 것이지?"

그 간단한 질문에.

나는 조금 고민을 해야 했다.

"흠. 나를 뭐라고 해줘야 알아듣기 편하려나."

"뭐?"

"물의 정령왕? 아니면 가우리엘의 날개를 가진 자. 그것도 별로라면......드레트노어를 죽인 자?"

"......!"

옆에서 듣고 있던 나올도 소리를 쳤다.

"헤, 헬페리온이랑 바르바우의 목도 쳤다!"

아마 레메데스를 겁먹게 만들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의외로 그건 먹혔다.

레메데스의 얼굴이 어두워졌으니 말이다.

"네놈. 정체가 무어냐?"

"나도 궁금한데 그건. 어디 이거 보고 한 번 맞춰 봐!"

나는 그 말과 함께 등 뒤로 찬란한 대천사의 날개를 펼치며.

파아아앗!

찬란한 빛이 사방을 감쌌으니.

레메데스는 더 이상 웃음기를 보이지 않았다.

"이, 이건......가우리엘의 신성력?!"

전혀 예상치도 못했는지.

경악을 놈을 향해, 나는 작은 미소를 보이며 충고를 던졌다.

"오? 눈썰미가 좀 있는데? 근데 그렇게 눈썰미 좋은 놈이......왜 나와 네놈의 수준 차이는 모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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