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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40화 (140/194)

140화. 잘 부탁드림돠!

모든 뱀파이어들의 시발점이자.

뱀파이어 로드가 되기 위해 가야 할 곳.

블라드 캐슬.

뱀파이어 로드의 직위를 거머쥐기 위해.

우리는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블라드 캐슬에 가까워질수록, 까마귀 울음소리 또한 커져갔다.

까아아악!

그 소름 돋는 울음소리 때문일까.

햇빛 하나 제대로 들지 않는, 이 깊은 숲의 분위기는 더더욱 스산하게 느껴졌다.

내가 봐도 진짜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일 정도였으니.

물론 워낙 우리 쪽에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이들이 많았기에 두려움에 떠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앤드류는 조금 신이 나 보이기까지 하였다.

"히힛! 엘프 마을에는 못 가봐서 굉장히 아쉬웠었는데......뱀파이어 로드 성에는 가 볼 수 있다니! 히히힛!"

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자꾸 '히힛' 거리니, 얼핏 미친놈 같아 보이기도 했다.

나만 그 생각을 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렌델 역시도 같은 생각인듯하였으니 말이다.

"그만 히힛 거리면 안 됩니까? 정신이 없습니다."

"에이. 신 나는 데 어떻게 참아요 이걸!"

"염력으로 확 입을 막아버릴까 보다. 실수로 코도 좀 막고."

"......"

그렌델의 눈빛에서 살기가 느껴지자.

드디어 앤드류의 입도 좀 다물어졌다.

나야 그러거나 말거나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았다.

저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다만 피코가 조금 걱정스러웠다.

나는 디아즈의 옆으로 붙어, 작게 물었다.

"피코는 좀 어때? 아직도 잠을 자는 중인가?"

"아, 예......천 년의 얼음골에 올라간 이후로 계속......"

"흠. 너무 추웠던 게 문제일까?"

"잘......모르겠습니다. 불사조에 관해 아는 사람도 없고......"

피코는 요 며칠째, 거의 하루종일 잠을 자고 있는 중이었다.

밥을 먹을 때만 잠깐 일어나서 몇 입만 먹고는.

또 자고, 또 자고.

처음엔 금방 회복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 기간이 길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당장 아프다고 하지는 않으니까......후우. 동물 병원이라도 찾아야 하나."

"......"

괜히 또 아프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간 미운 정 고운 정, 많이도 쌓인 모양이었다.

피코가 내게 준 불사조의 회복 능력을 떠나서 말이다.

"다음번에 눈을 뜨면, 어디가 어떻게 불편한지 정확하게 한 번 물어봐."

"알겠습니다, 로한 님."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는 사이.

어느새 우리는, 뱀파이어 로드의 성.

블라드 캐슬의 정문 앞에 서게 되었으니.

가장 앞에 서서 길을 안내하던 오르헬은 그 거대한 문 앞에 서더니.

콰득.

엄지를 살짝 물어 피를 내고는, 그 피를 손바닥 전체로 넓게 퍼트려서.

처억.

성문의 정중앙에 피 묻은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끼이이이익......

성문이 저절로 열렸다.

아무도 없었음에도.

* * *

"나올. 여기서 좀 기다려. 무슨 일 있으면 크게 소리 지르고."

"나올도 같이 가고 싶다."

"이 녀석아. 네가 들어가면 저기 다 무너져."

"아, 알겠다......"

그렇게 나올은 입구에 주저앉아, 잠시 기다리기로 하고.

나머지 인원들은 본격적으로 블라드 캐슬 내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안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제법 서늘한 기운이 우리를 반겼다.

"오, 오! 이제 좀 흥미진진한데?"

앤드류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눈알을 연신 굴리며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거의 놀이 공원에 있는 유령의 집에 처음 들어온 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이제는 그렌델도 지쳤는지, 딱히 딴죽도 걸지 않고 그대로 걸어나갔다.

그렇게 조금 더 들어가자.

푸드드드득!

뱀파이어 성의 흔한 클리셰인, 박쥐 떼가 우리를 반기는 게 아닌가.

그에 오르헬은 버럭 성질을 내었다.

"에이 씨. 귀찮게 별걸 다 해놨어?"

한바탕 박쥐 무리가 머리 위를 지나갔으나.

우리들의 진행 속도는 1도 줄지 않았다.

애초에 저 정도 장난질에 물러설 레벨은 진작에 넘어섰었으니까.

한데 저쪽에서 준비해 둔 것도, 박쥐가 전부는 아닌 모양이었다.

이어서 늑대들까지 슬금슬금 기어나오는 것이었다.

물론 진짜 늑대가 아니었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가짜 늑대.

그렇기에 원래는 더 무서워야 하는 것이었지만.

"크르르르......!"

"컹! 컹! 컹!"

"으르르르르릉!"

아쉽게도 이 정도 장난질 역시 통할 리가 만무하였다.

악마나 거신과도 싸웠는데 고작 늑대라니......

"오! 귀여워! 오! 깜찍해!"

역으로 앤드류의 흥만 더 키울 뿐이었다.

오르헬도 그냥 짜증을 부릴 뿐이었다.

"야 이놈들아! 저리 가, 인마! 쯧. 간식 없어! 훠이!"

놈들도 오르헬이 뱀파이어 로드라는 것을 느꼈는지.

슬금슬금 물러서기 시작하더니.

휘잉......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뱀파이어 로드의 성을 거침 없이 돌파하는 집단이 또 있었을까?

문득 궁금해지는 날이었다.

* * *

몇 차례의 간소한 환영 행사가 이어진 후.

우리는 마침내 이 블라드 캐슬의 최 심층부에 다다랐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뭐가 나오든 그냥 대충 쫓아버리고 끝나버렸으니.

다만 여기까지 오는 길에, 오르헬은 여러 가지 잡것들 때문에 꽤나 심기가 불편해진 것 같았다.

최심층부의 그 문을.

콰아앙!

박차고 들어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문이 열리자.

가장 먼저 기다랗고 붉은 카펫이 보였고.

좌우로 두꺼운 기둥들이 천장을 바치고 있었다.

드넓은 공간.

마치 보스전을 한다면, 이런 곳이 딱 적합하겠다 싶은 장소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고 붉은 카펫의 끝에는......

황금의 옥좌에 앉아 턱을 괴고 있는 한 노인이 보였다.

그 노인은, 눈을 살짝 치켜뜨더니.

어둠 속에서 핏빛이 담긴 그 눈을 발광시켰다.

번뜩!

"감히......이곳이 어딘지 알고 그리 소란을 피우는 것인가?"

그 목소리에 오르헬이 코웃음을 쳤다.

"어. 알지. 너무 잘 알지."

"후후후. 그 말인즉, 이 왕좌에 앉아 있는 본좌가 누구인지도......알고 있다는 말이렷다?"

"어. 그것도 알지. 너무 잘 알지."

"이것 참......이렇게 건방진 놈은 또 오랜만이로구만. 어디, 그 면상 한 번 볼까?"

"오냐, 그래. 면상 여깄수다."

오르헬은 한 발 앞으로 나가며, 기둥 그림자에 가려있던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는 한 마디를 더 쏘아붙였다.

"개폼 잡고 있네. 팍! 씨."

"헉! 오, 오르헬?"

"오르헬? 야 이 새끼야. 내가 니 친구냐?"

"아, 아닙니다! 놀라서 그랬습니다, 혀, 형님!"

그 예상치 못한 장면에.

나를 포함해,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뭔......일이야?......'

* * *

빠악!

오르헬이 뒤통수를 후리자.

지금까지 권좌에서 위엄있는 모습을 보이던 노인은, 쭈구리 같은 모습으로 양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야, 인마. 내가 거기 앉지 말랬지?"

"......죄송함돠......"

"한 번만 더 앉으면 진짜 가만 안 둬. 알아들어?"

"옙! 물론입니답!"

한참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인물을 혼내는 그 모습에.

모두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앤드류였다.

"그......오르헬 형님. 아무리 그래도 연장자를 그렇게 막 대하시면......"

그에 오르헬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연장자? 이놈 말하는 거야? 얘가 연장자라고? 얘 그냥 노안이라 이래. 나보다도 한참 어린 녀석이다."

"......?"

오르헬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를 보자.

그 노인도 우리를 향해 넉살 좋게 인사를 건넸다.

첫 인상과는 많이 다른 느낌으로.

"아,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뱀파이어 로드 리치몬드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허허허허."

이거......인사 한 마디 하는 걸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좀 아니긴 한데.

딱 보아하니......

'앤드류 스타일인데?......'

그리고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오르헬이 앤드류를 가리키며 교통정리를 시작하였다.

"어, 여기는 새로 생긴 동생. 너희들도 서로 형 동생으로 지내. 들어온 순서대로 따지자고 했으니까, 리치먼드 쪽이 형."

리치몬드는 처음 보여주었던 그 위압감 가득한 모습은 어디 가고.

흔한 동네 형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오! 동생. 반가워. 편하게 지내자고!"

"음. 그러죠, 형님! 잘 부탁드립니다!"

역시, 잘 맞네.

이어서 오르헬은 나를 가리켰는데.

"어......이쪽도 새로운 브라더인데......"

"아, 여기도 새로운 동생이요?"

"......아니."

"예?"

"저기는......니가 동생 하는 게 낫겠다."

"......예?"

리치몬드가 슬며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이, 형님. 동생 늘어나는 것 정도야 제가 납득을 하죠. 하지만......"

그 눈빛이, 다시 처음 마주했을 때의 그 핏빛으로 변하였다.

"저의 형님이 되는 건 그리 쉬운 게 아니라고요. 저, 이래 봬도 로드입니다, 뱀파이어 로! 드!"

끝 음을 특별히 강조하는 리치몬드.

오르헬은 재미있다는 듯, 한마디 거들었다.

"아, 그렇지? 내가 잠깐 잊을 뻔했네. 너 뱀파이어 로드였구나."

"예! 섭섭합니다, 형님."

"그러면 그냥 형 동생을 대충 정할 수야 없지. 어떻게, 간단하게 힘겨루기라도 해볼래?"

"허허. 힘겨루기라니, 그런 저급한 걸로 가를 수야 있겠습니까?"

리치몬드는 계속해서 나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어디 전력으로 덤벼 보시오. 내 힘의 격차를 직접 보여 주겠......"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오르헬이 나를 보며, 잠깐 치고 들어왔다.

"브라더. 살살해, 살살. 그 드레트노어 죽일 때처럼 무작스럽게 하지 말고."

명백히 장난기 가득한 겁주기였다.

하나 거기에 이미 넘어간 리치몬드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하였다.

"드, 드레트노어......? 도, 독혈의......?"

"아, 그리고. 그 헬페리온 목 칠 때 쓴 기술도 웬만하면 쓰지 말아 줘. 여기 무너진다."

"헤, 헬페......"

오르헬의 장난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니.

"물의 정령왕이 되고 나서 쓰던 그 뭐시냐......아, 바르바우 죽일 때 사용한 그 힘도 조금 참아줬으면 좋겠는데."

"무, 물의 정령왕에......호수의 거신 바, 바르......"

그 말을 듣다 보니 나도 살짝 장난기가 올라왔다.

"이것저것 다 안 쓸 수야 있나. 그래도 상대가 뱀파이어 로드인데, 전력을 다해야지."

"아.....그것도 그런가? 너무 대충 하는 것도 매너가 아닌가?"

"그럼."

오르헬은 내 맞장구에 신이 났는지, 템포를 올렸다.

"오케이! 그럼 성이야 뭐 나중에 수리하면 되니까. 자, 슬슬 시작해보자고. 리치몬드? 준비됐지?"

"자, 잠깐만요! 형님!"

다급히 양팔을 뻗으며 외치는 리치몬드.

그는 내게 고개를 푹! 숙이며.

"처음 뵙겠습니다! 로한 형님! 앞으로 잘 부탁드림돠!"

뱀파이어 로드 동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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