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그냥 동상 아니었어?
[이 녀석을 만들 때, 자네의 머리카락을 집어넣었다네.]
[내 머리카락을? 대체......언제?]
[그게 뭐가 중한가? 하하하하.]
[......]
나는 이 페가수스 골렘의 앞에 서서.
녀석을 넘겨받던 당시 훔카리안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페가수스 골렘의 갈기를 쓰다듬어보았다.
갈기는 뭘로 만들었는지 찰랑거렸지만, 목 부분은 차가운 금속 재질의 촉감만이 손을 통해 느껴질 뿐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녀석의 행동은 보통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푸르르르르."
마치 주인을 대하듯 내 손바닥에 스스로 머리를 문지르는 게 아닌가.
그 거대한 덩치에 압도되는 느낌이 들면서도, 묘하게 동시에 귀여운 느낌이 들었다.
"이름......이라도 지어 줄까?"
"푸르르르!"
말도 알아듣는 건가?
신통방통한 녀석이네.
나는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을 시작하였다.
뭘로 지으면 좋을까?
이왕이면 부르기도 좀 편하면 좋겠고.
이 녀석 마음에도 들면 좋겠고.
"흠. 그냥 페가수스라고 하자. 다른 걸로 하면 괜히 헷갈릴 거 같기도 하고."
"히히히힝!"
"마음에 드는 건가?"
"히히히히히힝!"
미묘하게 녀석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분명히 금속으로 만든 골렘인데......
이상하게 나도 웃음이 났다.
"잘 부탁한다."
"푸르르르!"
녀석과 처음 교감을 한 것 같던 그 순간.
"......어?"
내 시야에, 내 얼굴이 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페가수스의 시야를......나도 볼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이게.....무슨 일이지......?"
* * *
휘이이이이잉!
피부를 베는 것 같은 살벌한 한기.
끊임 없이 몰아치는 바람과 눈발.
그 지독한 냉기에, 순간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만 같았다.
불의 기운을 품은 나조차도 이럴진대.
다른 이들은 어떻겠는가.
"으드드드드......!"
"후우, 후우, 후우......!"
덜덜 떠는 그 모습을 보니, 호흡에서마저도 추위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나마 마그마로스가 계속해서 열기를 피워주는 덕에 버티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오래 버티기는 힘들 것 같은데.'
털썩!
그 생각이 들기 무섭게.
한 결사대원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괜찮나?"
"어, 어."
주변에서 그를 챙기자, 그는 그래도 금방 눈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다시 행군에 합류를 해내었다.
하지만 이미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체력 손실이 결코 적지 않아 보였다.
다들 이를 악물고 참고 있는 것이리라.
나는 그에 결단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병력을 물리는 게 어떻겠나?"
내 말에, 노이어 결사대의 단장 에이트럼이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병력을......말이오?"
"지금 우리의 목적이 전투가 아닌 이상, 굳이 이렇게 다 이동할 필요는 없을 수 있다. 물론 이 얼음골을 관통하며 통과하면 이동 속도가 빨라지기는 하겠지만, 이대로 강행한다면 전투력 손실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시간이 좀 들더라도 일부 병력은 골짜기를 크게 돌아 합류하는 게 어떻겠는가?"
이 무리를 이끄는 자들 중 하나로서.
나는 이 행군을 억지로 밀어붙이면 안 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저들 하나하나가 오르헬이나 마그마로스처럼 강대한 존재는 아니지만, 그래도 전투에서 가용 가능한 병력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달랐다.
당장에 전술의 선택 폭 역시 변동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내 입장에서는, 가능하다면 저들의 건강을 관리해 두는 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유리하다는 결론이 섰던 것이다.
물론 노이어 결사대 병력의 최종 결정권자는 에이트럼이니까.
나는 노이어 결사대의 지휘관이라는 그의 위치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월권 행위는 다수의 인원을 관리 할 때 도움이 되지 않는 짓이었다.
"......"
나는 잠시 아무 말 없이 그의 결단을 기다렸다.
에이트럼은 뒤에 쭉 늘어선 결사대원들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
"경의 말이 옳소. 내가 너무 강행군을 요구하고 있었군."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의견에 동의를 해주었다.
"지휘관으로서. 함께 내려가는 게 어떻겠나? 어차피 물의 정령왕이 있던 천 년의 얼음골로 향하는 건, 나와 마그마로스 정도로 충분하다. 굳이 우르르 갈 필요가 없을 것 같군."
"괜찮겠소?"
"물론이지. 우리는 그대로 관통해서 내려가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겠다."
"배려, 고맙소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에이트럼은 결사대를 향해 돌아서며 크게 외쳤다.
"현 시간부로 행군을 중지하고, 골짜기 아래로 회군하겠다!"
갑작스러운 에이트럼의 그 외침에.
결사대원들은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이내 큰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예!"
* * *
그렇게 노이어 결사대의 회군이 결정되고.
나는 이제 디아즈, 그렌델, 앤드류를 돌아보았다.
"너희들도 저들과 함께 내려가라."
"저, 저희들도 말입니까?"
"으드드드......괜찮습니다!"
"그, 그럼요. 손에 감각이 없는 거 말고는 괜찮죠."
앤드류는 굳이 설득할 필요도 없어 보이고.
나는 디아즈를 향해 물었다.
"피코, 아직도 상태가 좋지 않지?"
"......예."
어느 정도 온도가 내려가기 시작한 시점부터 피코는 디아즈의 품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거의 겨울잠을 자는 것처럼.
모르긴 몰라도, 아직은 어린 피코가 이런 환경에서 오래 버티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았다.
"아마 이렇게 냉기가 가득한 곳에서는, 그 작은 몸으로는 버거울 것이다. 잘 데리고 내려가라."
"......"
피코의 이야기가 나오니 디아즈도 한 수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렌델을 쳐다보았다.
"앤드류 좀 챙기고. 저 녀석도 상태가 영 별로다. 의외로 추위를 많이 타는군."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부분의 인원이 얼음골에서 후퇴를 하였고.
나와 마그마로스, 오르헬 그리고 크뢰이튼까지.
남은 넷만이 계속해서 천 년의 얼음골을 돌파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출발하지."
* * *
쿠구구구구구......!
얼음골의 중심부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바람 소리는 점점 바람을 뛰어넘어 폭풍에 가깝게 변해가고 있었다.
여기까지 결사대를 이끌고 왔더라면, 최소한 절반 정도는 동사를 하였으리라.
미리 그들을 내려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우리는 힘겨운 걸음을 하나, 하나 더해나갔다.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짙어지자.
마그마로스가 불의 기운을 더 끌어 올리며 목소리를 내었다.
"아무리 이 천 년의 얼음골 주인이 사라졌다고는 하나......이 정도로 사정없이 폭풍이 휘몰아치다니. 물의 정령왕이 이곳에 터를 잡기 전에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워낙 냉풍이 강력한 탓에.
마그마로스는 거의 소리를 지르는 듯 목소리를 키웠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던 나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물의 정령왕이 죽었다고 했었지?"
"그렇네."
"원인은 모른다고 했고?"
"음. 모른다고는 했지만, 추측 정도는 하고 있다네."
"어떤 추측?"
마그마로스는 몰아치는 바람에 팔로 얼굴을 가리며 말을 이었다.
"아마도 수명이 다했겠지."
"......정령왕은 불로불사가 아닌가?"
"누가 그러던가? 정령왕이 불로불사라고."
마그마로스가 그렇게 받아치니, 나도 깨닫게 되었다.
그랬다.
그 누구도 정령왕이 불로불사라고 말한 적은 없었다.
"정령왕은 다른 존재들보다 조금 더 긴 생을 살아갈 뿐이네. 물론 보통의 필멸자들 눈에는 영겁에 가까운 삶을 사는 것 같겠지. 다만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네. 정령왕도 결국은 죽기 마련이야. 죽음은......생각보다도 훨씬 무서운 존재거든."
"그렇군......"
"다만 물의 정령왕의 오른팔이었던 대장군 트레이톤은 조금 다르네. 그는 인공 생명체. 일종의 골렘이었거든. 그래서 물의 정령왕이 죽었더라도 트레이톤 그자가 어느 정도 정령왕의 힘을 컨트롤하고 있을 진데......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일세."
마그마로스가 바람에 흩날리는 눈을 보며 눈동자를 굴렸다.
"제어를 하고 있다고 보기엔......이 폭풍은 너무 규칙이 없어. 제멋대로인 느낌이야."
내가 느끼기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폭풍은 수시로 방향을 바꾸며 눈을 뿌려 댔다.
마치 이성을 잃고 날뛰는 맹수처럼.
나는, 그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럼, 정찰을 먼저 보내보는 게 좋겠군. 혹시나 모르니까."
"정찰?......어떻게......"
눈발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시야.
하나 내 시선의 방향은 정확했다.
그리고 허공을 바라보며.
"휘이익!"
휘파람을 불자, 잠시 후.
휘이이이이잉!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눈 폭풍 속에서 검은 말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
그 모습을 처음 본 오르헬과 마그마로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게......"
"그냥 동상 아니었어?"
* * *
제작자인 훔카리안도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알고도 그냥 잊어버리고 말을 안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페가수스에게는 한 가지 특별한 능력이 더 있었다
[시야 공유]
놀랍게도 페가수스의 눈으로 보는 것은, 나도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몇 번의 실험을 거치며 나는 확실히 그 능력을 내 것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고.
지금은 꽤나 능숙하게 시점을 전환하는 것도 가능했다.
익숙해지고 나니, 굉장히 쓸만한 능력이었다.
눈이 하나 더 생긴 것 아닌가.
그것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눈이.
그에 나는 페가수스의 사용법에 대해 한 가지 꾀를 내었다.
'드론처럼 써 보자.'
실제로 내가 원래 있던 지구의 미군들은.
드론을 이용해 공중에서 시야를 잡고,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며 전투를 이끌어가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같이 훈련하면서 말이다.
그때에는 그저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내 전용 드론이 생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오히려 드론보다도 더 편하지.
실제로 페가수스는, 내 의지대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마치 내 몸을 움직이는 것처럼.
팔이나 다리를 쓰듯 자연스럽게 적응이 되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페가수스의 시선에 집중을 하였다.
그러자,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야가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할 때마다 신기하단 말이지.'
평소에는 별개의 존재로서 움직이다가도.
지금처럼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 페가수스의 시야가 훤히 보였다.
의외로 페가수스의 시선에서는 거센 눈보라도 어느 정도 필터링 되어 들어오고 있었다.
덕분에 정찰에는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그 능력을 이용하여, 천 년의 얼음골 안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점점 더 안쪽으로.
안쪽으로......
그렇게 꽤나 깊숙이 들어가던 어느 순간.
"......!"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혹시, 트레이톤이라는 녀석이 저 녀석인가? 얼음으로 조각된 것 같은 녀석."
"얼음으로 조각? 아, 그렇긴 하, 하네만."
마그마로스의 대답에,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트레이톤이라는 친구는 이미 두 조각이 나 있군. 그리고......매복이 있다. 이건......거신족이군."
그런 나를 보며, 셋은 조금 다른 포인트에서 화들짝 놀랐다.
"그, 그걸로 볼 수가 있다고?"
"동상, 아니, 골렘의 눈으로?"
"......브라더야, 적당히 놀래켜라. 뱀파이어 심장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