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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30화 (130/194)

130화. 들어 볼 수 있겠나?

"크뢰이트으으으은! 언젠가는 내가 네놈을 진정 죽여버릴 것이다! 아주 조각조각 시체조차 찾을 수 없도록......!"

휘리리릭!

그것이 헬페리온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몸통을 잃은 헬페리온의 머리는,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나와 크뢰이튼의 봉인에 완전히 삼켜져 버렸으니까.

"두 조각을 누구도 다시 꺼내지 못할 곳으로 처리하도록 하세."

우리는 크뢰이튼의 말에 따라.

잘려진 헬페리온의 머리와 몸통을 각각 다른 분화구 속으로 던져버렸다.

풍덩! 꼬르르르르륵......

그렇게 헬페리온은, 천 년의 얼음골에서 벗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화산지대의 용암 저 아래에 잠겨 버렸다.

* * *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스승님?"

그렌델의 그 질문에, 나를 비롯한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어디서부터 물어보는 것이더냐?"

그에 크뢰이튼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 인자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렌델은 뚱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여기는 어떻게 오신 겁니까?"

"어떻게 오기는. 배 타고 왔지. 엄청 멀더구나."

"......"

그런델은 깨달았다.

크뢰이튼이 장난을 치고 있다는 걸.

원래 이런 식이었다.

한참을 묻고 또 물어야 결국 원하는 대답에 닿을 수 있는 패턴 말이다.

그에 그렌델은 눈빛으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나 역시 지금은 듣고 싶은 것들이 꽤나 많았기에.

그녀의 지원 요청을 받아주었다.

"배까지 타고 휴가 온 건 아닐 테고. 그렇게 먼 거리를 건너온 이유가 있지 않나?"

"하하. 이유라......있긴 있지. 불씨의 거신 헬페리온에게 볼 일이 좀 있었다네."

"그런 것 같더군. 그런데 왜 네가 헬페리온에게 볼 일이 있는 건지, 그게 더 궁금한데."

그리고 이어서 나온 크뢰이튼의 대답은.

"내가 바로, 헬페리온의 네 번째 팔이었다네. 정확히는 그의 잘린 팔에서, 내가 태어났지."

"......!"

그 대답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 * *

충격적인 대답.

나나 오르헬, 그렌델은 물론이요.

불의 정령왕인 마그마로스조차 자금은 입만 뻐끔 거리고 있었다.

화염 마법의 대가라는 건 알고 있었다.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나올 때도 항상 주변의 엑스트라들에게, 불꽃을 다루는 솜씨가 장난이 아니라는 말도 많이 들었고.

불지옥의 악마들조차도 크뢰이튼의 화염 마법에는 치명타를 입고 치를 떨었으니까.

'그래도 이런 전개는 생각 못했단 말이지......'

하지만 동시에 납득이 되긴 했다.

방금 전까지 직접 헬페리온과 대적해보지 않았던가.

헬페리온의 위용은, 솔직히 나로서도 벅차다는 느낌이 강했다.

한 방 한 방 묵직한 주먹의 물리력과.

마그마로스와 내 화염 마법의 주도권까지 뺏어버릴 정도의 마법 능력.

그리고 미칠듯한 육체의 내구도까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실 마그마로스가 준비한 봉인 마법은, 생각보다는 불안정한 방법이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풀려버리는......마그마로스가 직접 이 화산 지대에 남아 계속해서 헬페리온을 붙잡고 있어야 하는 그런 방법 말이다.

그러나 크뢰이튼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우리의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그것도 굉장히 좋은 방향으로.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이런 내용을 모른 채, 크뢰이튼이 해낸 것들을 보며.

크뢰이튼은 마그마로스조차 해내지 못한, 완벽에 가까운 봉인술까지 완성해서 보여주었으니까.

불의 정령왕도 해내지 못한 것을 일개 마법사가 해낸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크뢰이튼이 헬페리온의 팔에서 태어난 마법사라면......

'그 정도 능력이 안되는 것도 오히려 이상하겠지.'

거신족의 힘을 이어받은 존재일 테니까.

그러고 나니 모든 게 설명이 되는 느낌이었다.

당혹해하는 우리들을 향해, 크뢰이튼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특히 나를 돌아다 보며.

"로한 경에게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네. 미리 언질이라도 했어야 하는 것인데."

그에 나 대신 그렌델이 발끈하였다.

"맞습니다! 왜 여태 입도 뻥끗 안 하신 겁니까!"

"네게 한 이야기 아니다만?"

"저도 몰랐잖습니까!"

"넌 몰라도 되니까?"

"이놈의 영감탱이가!"

"허허. 오랜만에 한 번 덤벼보겠다는 게냐? 간만에 우리 제자님 실력 한 번 봐야겠구나."

"그래 보십시다, 어디!"

애정 가득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좀 더 즐기도록 놔두고 싶었지만.

지금은 들어봐야 할 이야기가 산더미였다.

"그건 나중에 했으면 좋겠는데."

내가 끼어들자, 그렌델은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한발 물러섰고.

크뢰이튼이 피식 웃었다.

"우리 제자가, 이제 이 스승보다 더 따르는 사람이 생겼구나."

"시끄럽습니다."

그렌델은 팔짱을 끼며 의자 하나에 툭 앉았다.

그제서야 크뢰이튼의 시선이, 내게로 다시 돌아왔다.

"같이 다녀 봐서 알겠지만, 제자 녀석이 워낙 제멋대로라서 말일세."

"잘 모르겠던데."

"그래? 정말인가? 하루에 세 번은 말을 안 들어야 정상인데......"

"내겐, 왜 숨겼나?"

"내가 거신족에게서 태어났다는 것, 말인가?"

"그래."

크뢰이튼은 장난기 섞인 표정을 싹 지우고, 약간은 겁이 날 정도로 매서운 얼굴로 다시 입을 떼었다.

"그대는, 검은 천둥을 다루었으니까."

검은 천둥......

그 말에, 나는 과거 크뢰이튼이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었을지 약간은 이해가 되었다.

"내가......거신족 쪽의 사람이라 생각했겠군."

그럴 수밖에.

크뢰이튼은 본인 역시도 거신족의 팔에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던가.

자신 같은 케이스가 더 없으리라는 보장을 과연 누가 하겠나?

게다가 검은 빛의 마법까지 부린다?

이건 의심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존재가, 크뢰이튼처럼 거신족에게 적대적이라는 보장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내 예상대로, 크뢰이튼이 인정을 하였다.

"그렇다네. 그 검은 천둥. 확실히 거신족의 힘이었다네. 그대가 거신족 쪽의 사람인지 아닌지. 나로서는 당장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네.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으니 말이지. 하는 수 없이 내 힘을 숨겼지. 내 힘과, 그리고 속내를......"

"드러낼 수 없었던 거로군. 한데."

"음?"

"내게 숨긴 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 여기까지 왜 온 것인지는 알 수가 없군."

"아......여기에 내가 온 이유 말인가?"

"그래."

"이건 그대에 대한 우려와는 별개의 이야기였네만......간단하게 말하자면 결착을 짓기 위해서라네."

크뢰이튼은, 조금 더 오래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 * *

"거신족 헬페리온은, 아를렘에게 팔이 잘리고 봉인이 되는 수치를 당했었네. 뻔하게도, 봤다시피 헬페리온은 분노 그 자체가 되었지. 아를렘에 대해 복수만을 꿈꾸는 분노 말일세. 그리고 앞서 말했듯, 나는 그의 잘린 팔에서 태어난 존재였지."

그는 자신이 태어나던 순간부터 말을 이어 나갔다.

"내가 처음 세상에 나와, 눈을 떴을 때. 나의 앞에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자연스럽게도 아를렘이었네. 그녀는 고민을 했다네. 나를 없애버릴지, 아니면 조금 더 지켜볼 것인지."

나였더라도 큰 고민이겠다 싶었다.

적에게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던가.

언제 등에 칼을 꽂을 지도 모를 후환을 누가 남겨 놓고 싶겠는가.

'솔직히 나였다면......죽일 수 있을 때, 그 자리에서 죽였을 것이다.'

뒤에 귀찮은 일이 벌어지는 건 딱 질색이었다.

하지만 아를렘의 선택은, 나와는 조금 달랐던 것 같았다.

"아를렘은 나를 지켜보기로 하였다네. 그 자리에서 모든 걱정거리를 끝낼 수 있었음에도. 하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 머릿속에는 의문이 점점 더 커졌네. 왜 그때 그냥 나를 죽이지 않았을까? 어째서 살려둔 것인가? 내가 만일 아를렘이었다고 해도, 원수의 자식은 그 싹을 잘라버리고 싶었을 듯했으니까."

크뢰이튼은 그때를 회상하였다.

"물론 그 의도 자체는 알고 있다네. 죄를 짓지도 않은 자를 처벌하고 싶지 않다, 라는 생각이었지. 참으로 안일하기 그지없지 않은가? 그래도 신이라는 자가, 그렇게 약해빠져서야 되겠느냐는 말이네. 악마나 거신족들은, 그야말로 악랄하게 물고 늘어지는데."

그는, 시선을 올려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반대로 말하자면. 악마와 거신족들이 그리 악랄하게 몰아쳐도, 이길 자신이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나는 직접 아를렘을 보았던 사람일세. 그만큼 그녀의 무한한 힘이 가진 무서움도 직접 느꼈지."

"그래서 강자 쪽으로 돌아선 거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력이 아니라 심력이 강한 쪽을 택했다고 해야겠지."

"심력......이라."

크뢰이튼의 말에, 마그마로스가 끼어들었다.

"그럼, 아를렘의 명을 받고 헬페리온과 싸우러 왔다는 소리인가?"

"아니. 그렇지는 않네. 단지 내가 직접 끊고 싶었을 뿐이네. 헬페리온과연 연결 고리를. 하지만 봤다시피 거신족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네. 거신들의 왕인, 크로토스가 죽지 않는 한."

"크로......토스. 입에 담기도 두려운......이름이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름이 튀어나오자.

마그마로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앤드류도 나와 같이 그 이름은 처음 들었는지.

오르헬에게 슬며시 물었다.

"크로토스가 뭔데요?"

"스스로 신의 자리에 오른 최초의 존재. 거신들의 왕. 혹은 모든 것의 지배자. 절대로 죽지 않는, 대자연 그 자체."

"뭐, 뭔 별명이 그렇게 많아요? 별명 부자네."

"그만큼 골치 아픈 존재라는 거지."

"근데, 그놈이 지금 어디 있는데요?"

"몰라."

오르헬도 그 질문에는 고개를 저었다.

그에 크뢰이튼이 대신 대답을 하였다.

"그건 아무도 모른다네. 아를렘과 그녀를 따르는 대천사들만이 알고 있지. 엄청난 공을 들여서 봉인해두었다는 것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이라네. 문제는......그 봉인도 무한하지는 않다는 게지. 시간이 흐를수록 크로토스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힘으로 봉인을 야금야금 망가뜨려 가고 있었으니......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최근 알아낸 바로는, 크로토스의 부활을 믿고, 거신족이 악마들과 거래를 한 것 같더군."

나는 그 대답을 듣고는 턱을 쓰다듬었다.

"그 크로토스라는 놈이 봉인에서 풀려나게 되면.......어떻게 되는 것이지?"

"아무도 막을 수가 없을 걸세. 제아무리 아를렘이라 한들, 크로토스와 두 번 싸워 두 번 모두 이기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을 테니까."

"......"

그때.

크뢰이튼이 굉장히 놀랍다는 표정으로, 다시 입을 떼었다.

그런데......그 놀라움이, 좀 이상했다.

"정말 로한 경은 볼 때마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군. 거신족의 검은 천둥도 모자라서 이번에는 아를렘의 기운까지. 정말......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혹시 들어 볼 수 있겠나?"

"......?"

이게 무슨 소리야.

라는 말이 튀어나오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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