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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27화 (127/194)

127화. 도둑놈이, 제 발로 찾아왔구나......!

"그런데, 드레트노어는 어쩌다 죽었나?"

마그마로스는 문득 궁금함이 떠올라 질문을 던졌다.

그에 오르헬이 입을 열었다.

"그놈. 악마랑 손을 잡았었다. 원래는 내가 내 손으로 직접 죽이려고 갔는데......운이 나쁘게도 나보다 먼저 당시의 로한에게 걸린 거지. 저 친구, 저래 봬도 저쪽 안테아 대륙에서는 꽤 대단한 직책을 가졌었거든. 아니, 지금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대단한 직책이라니?"

"이단 심문관."

"오호? 이단 시문관? 안테아 대륙에서 이단 심문관이라 함은......그 권한이 보통이 아니라고 들었네. 일곱 기사단에 비견 될 정도라고 하더군. 일곱 기사단이 그 가우리엘이 창시한 기사단이지 않나?"

오르헬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 그렇지. 가우리엘이 만든 기사단, 맞지."

"음. 일전에 안개의 힘을 쓰는 일곱 기사단의 일원을 만난 적이 있는데. 실력이 굉장하더군. 그 친구 말로는 자신보다 더 강한 일곱 기사도 있다고 하던데......"

"그게 아마 쟤일걸?"

오르헬은 턱짓으로 로한을 가리켰다.

마그마로스는 의아한 얼굴을 하였다.

"방금 이단 심문관이라고 했잖나?"

"그래. 이단 심문관이라고 했지."

"......한데, 내가 말한 건 일곱 기사단의 이야기인데?"

"그래. 그것도 쟤고, 저것도 쟤고."

마그마로스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일그러졌다.

"이단 심문관이 어떻게......"

"이단 심문관이 어떻게 일곱 기사단이냐고?"

"......"

"쟤가 최초야. 그 어려운 걸, 쟤가 해내더라고."

"......!"

마그마로스가 깜짝 놀라며, 로한을 쳐다보았다.

그 모습에 오르헬이 씨익 웃었다.

"놀랐지?"

"크, 크흠. 놀라기는 무슨."

마그마로스는 금세 다시 침착하게 돌아와서는 질문을 이었다.

"그런데, 뱀파이어 로드가 어째서 악마와 손을 잡았던 건가?"

"뻔하지. 뱀파이어 로드라는 게, 말만 번지르르하지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잖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를 못하겠군. 뱀파이어 로드만큼 중간계 내에서 강한 존재들은 드물잖나."

"솔직하게 말하자고. 지금 시대에 뱀파이어 로드는 그저 악마랑 비슷한 취급을 받을 뿐이야. 말이 좋아 로드이지."

"......"

오르헬은 고개를 들어 떠가는 구름을 쳐다보았다.

"나라고 왜 모르겠어? 뱀파이어 로드라는 게, 예전에는 왕국을 만들어 중간계를 호령하던 놈들이었어. 그 놈들, 그 맛을 다시 보고 싶은 거지. 왕의 지위를. 원래 그렇지 않던가 권력욕이라는 게, 한 번 맛보면 놓기 어렵거든. 어리석어. 제 손으로 놓았으면서."

"자네는......자네도 그립지 않나? 과거의 영광."

"나는 과거의 것들은 그냥 과거에 두고 싶을 뿐이다. 부질없잖아."

"그렇......구만."

오르헬은 그만 이제 옛날의 이야기는 끊고 싶어, 화제를 돌려버렸다.

"그나저나. 우리 브라더, 피도 안 먹는데......뱀파이어 로드, 시켜도 될라나?"

"피는 자네도 안 먹지 않나."

"아......그러네?"

오르헬이 머리를 살짝 긁었다.

"그, 뭣이냐. 그래도 뱀파이어도 아닌데 뱀파이어 로드라니......이게 되는 거 맞나?"

"안 된다는 규율이 있던가?"

"......없는데?"

"그런데 왜 안되는가?"

오르헬이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마그마로스를 돌아보았다.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은근히 개방적이다?"

"원래 그랬다네."

"어이. 그러면 물의 정령왕은 더 안 되지. 브라더를 당장에라도 뱀파이어 로드로 올릴 명분이 생겼는데, 내가 가만히 뺏기고 있을 거 같아? 브라더랑 더 오래 지낸 것도 나라고."

"그건 알겠는데, 왜 안되는가?"

다시 돌아온 이 물음에.

오르헬의 얼굴은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뭐, 뭐? 또 왜?"

"뱀파이어 로드, 그리고 물의 정령왕. 둘 다 하면 안 되는 건가? 그것도 안 된다는 규율은 없는 것 같은데."

"......없긴 없는데......"

오르헬은 이제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개방적인 수준이 아니라, 그냥 아예 다른 차원의 레벨이네."

"하하하. 칭찬으로 듣지."

하지만 오르헬은 아직 웃지 못했으니.

"그런데 말이야."

"또 문제가 있는가?"

"어......그게. 로한이 우리들 제안을......받을......까?"

"......그, 글쎄."

이번에는 마그마로스도 즉답을 하지 못했다.

둘의 시선이 로한에게 향했다.

그리고 나니, 갑자기 말을 꺼내기가 무서워졌다.

마그마로스도 벌써 며칠째 로한을 봐왔고.

오르헬은 이제 함께한 지 꽤 오래된 사이가 아니던가.

둘은 슬슬 로한의 성격을 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오르헬이었다.

"그, 근데......누가 먼저 말할래?"

꿀꺽.

긴장감이 살짝 감도는 둘 사이.

마그마로스가 대답하였다.

"그, 그럼 자네가 먼저 말을 꺼내보게."

"뭐? 왜, 인마!"

"친하다면서?"

"친하긴 한데......그거랑 그거랑은 다르지!"

"뭐가 달라!"

"뭐가 달라? 한 판 해보자는 건가!"

"오냐, 그래. 한 판 해보자!"

로한에게 말을 걸려다가, 괜히 싸움이 시작된 둘이었다.

* * *

페라이 화산지대로의 출발 준비도 슬슬 일단락되어가고 있을 무렵.

느닷 없이 내 앞으로 오르헬과 마그마로스가 같이 찾아왔다.

"할 말 있나?"

그러나 나의 질문에도 둘은 뭔가 우물쭈물 대고 있을 뿐이었다.

마그마로스가 오르헬의 옆구리를 쿡 찌르자.

"아! 안다고! 내가 먼저 하겠다고!"

둘이 이상한 짓을 하는가 싶더니.

이내 오르헬이 말문을 열었다.

"저......브라더."

"무슨 일이지?"

"물어볼 게 있는데."

"음."

"그 뭐냐......혹시 귀족이나 국왕 같은 것에 관심이 있나?"

갑자기 저게 무슨 소리야.

정말 밑도 끝도 없었다.

그래도 뭐 일단 질문을 해오니, 나는 대답을 해주었다.

"별로. 관심 없는데."

그런데.

대답을 들은 오르헬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당혹감에 반쯤 혼이 나간 얼굴?

뭐지? 원하던 답이 이게 아니었나?

오르헬이 말을 더듬으며 다시 물었다.

"아, 아예?"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건데?"

"그......게. 실은, 뱀파이어 로드 말이야."

"뱀파이어 로드?"

"어. 우리 브라더가 한 명 줄였잖아."

"드레트노어?"

"그렇지. 그 놈팽이가 죽으면서 공석이 하나 생겨가지고......내 생각엔 브라더가 그 자리, 가졌으면 해서."

"그 얘기를 하려고 귀족이니 국왕이니 같은 소릴 한 건가?"

"하, 하하......"

이제아 오르헬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이해를 한 나였다.

나는 대답 없이 잠시 고민을 하였다.

꿀꺽!

오르헬이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근데......이거는 내가 손해 볼 일이 전혀 아닌데?'

어차피 실질적으로 뱀파이어 로드가 하는 일은 없었다.

당장 오르헬만 봐도.

'맨날 술만 먹고 뒹굴기만 하는데.'

하지만 그에 비해 인센티브는 엄청났다.

'혈마법......!"

자신의 혈액에 마법을 걸어, 여러 방면으로 사용할 수 있는 뱀파이어만의 고유 마법!

그것은 하급 뱀파이어는 말할 것도 없고, 고위 뱀파이어조차 쓸 수 없는 능력이었다.

오로지 뱀파이어 로드만이 할 수 있는 마법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내용을 내가 알고 있는 건, 원작에서 아군이 되었던 고위 뱀파이어가 뱀파이어 로드로 추앙되며.

혈마법에 관한 이야기들이 살짝 풀렸기 때문이었다.

뱀파이어 로드가 되며 피를 자유자재로 다루던 그 모습.

그 화려한 임팩트가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더불어 나는 독혈까지도 가지고 있으니......

'잘만 쓸 수 있으면, 시너지도 좋을 거고.'

그러니 거절할 이유가 있겠는가.

"좋다. 하지, 그거."

나의 대답을 여태 기다리고 있던 오르헬은 눈을 크게 떴다.

"지, 진짜지? 정말이지?"

"그래. 네 부탁이니."

"하! 하하하하! 내가 이래서 우리 브라더를 사랑한다니까!"

"......사랑까지 할 필욘 없는데."

"사랑해!"

"꺼져."

그런데, 내 흔쾌한 대답을 옆에서 들은 마그마로스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나, 나도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네만!"

"......?"

"뱀파이어 로드 겸 물의 정령왕! 어떤가?"

이게 뭐야.

묻고 더블로 가는 것도 아니고 무슨.

그런데......

'개 좋은데?'

이것도......내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었다.

아니, 개이득이지.

내가 해달라고 매달려도 될까 말까한 것들일 텐데.

저절로 굴러들어온 꼴이니 말이다.

나는 일단은 살짝 튕기며 대답을 해주었다.

"한 번 들어는 볼 만할 것 같군."

그에 마그마로스가 작게 주먹을 꽉 쥐는 세레머니를 하는 게 아닌가.

너무 뻔히 다 보였다.

* * *

페라이 화산지대.

그곳은 더할 나위 없이 험준한 산맥의 지형을 가진 곳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끝도 없이 피어오르는 화산의 열기와, 용암.

그에 바닥은 거의 풀 한 포기를 찾아볼 수 없는 검은색의 땅이었다.

그리고 구석구석에서는 하얀 수증기가 연신 솟아오르고 있었다.

저 멀리서는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용암이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용암, 수증기, 검은 땅들이 뒤섞여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붉은색과 하얀색, 그리고 검은색으로만 이루어진 삭막한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콜록! 콜록! 우와, 냄새 장난 아닌데요?"

물론 유황 냄새가 계속해서 코를 찌르는 탓에.

오래 머물기 그리 좋은 환경이 아니기는 했다.

그렌델은 이곳을 쭈욱 둘러보더니.

"여기가, 불씨의 거신 헬페리온의 집인 겁니까?"

그녀의 공허한 물음에 오르헬이 대답하였다.

"글쎄. 저 불똥의 정령왕 말이 맞다면 그렇겠지."

생각도 못 한 새로운 별명에 마그마로스가 어이 없다는듯 쳐다보았다.

"불똥의 정령왕이라니."

그러거나 말거나 오르헬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래도......충분히 여기 있을 것 같아 보이기는 해."

내 생각 역시 같았다.

무언가 이곳에서는......

'불안감이 느껴진다.'

제3의 눈이 연신 울리는 경고.

그것 때문인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그 말인즉, 우리가 제대로 찾아왔다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진짜 거신족은 처음이라 그런 걸까.

간만에 약간의 두려움이 꿈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그들은 한때 이 세상을 지배하던 '신'이었으니.

과거의 신과 맞서려는데 두렵지 않은 게 더 이상하겠지.

그럼에도 마음을 추스르려 노력을 하던 그 순간.

쿠구구구구......!

"어, 어어!"

"지진인가!"

"다들 조심하게! 바닥이 꺼질 수도 있음이네! 딛는 곳을 유심히 살피게!"

지진에 당황할 틈도 없이.

화산 분출구 아래에서 거대한 검은 손이 하나 튀어나왔다.

그 거대한 손은, 척하고 바닥을 짚었다.

그에 사방으로 용암이 튀며, 연기를 자아내었다.

치이이이익!

이어서 시뻘건 눈동자가 살며시 드러났음에.

분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그마로스! 내 불씨를 훔친 도둑놈이, 제 발로 찾아왔구나......!"

헬페리온의 태산과도 같은 상체가, 천천히 우리들의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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