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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26화 (126/194)

126화.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여기서, 이렇게 회전을 넣는다는 느낌으로?"

마그마로스의 설명을 따라, 그대로 팔을 휘저으며 불의 기운을 움직이니.

콰과가가가가가각!

작은 화염의 소용돌이가 생겨나며, 주변을 시커멓게 불살라버렸다.

물론 힘 조절을 한 것이기에 크기가 크지 않았던 것이고.

만약 전력으로 휘두른다면 꽤나 강력한 불기둥이 솟아났으리라 추측할 수 있었다.

그 불의 소용돌이를 보며 마그마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 느낌일세. 그게 맞기는 한데......이거, 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진도가 나가는구만."

나는 그를 돌아다 보았다.

"시간이 없으니까. 나도 여유로이 하나씩 익혀나가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거신족 놈들이 움직이기 전에 끝낼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니 말이지."

"뭐, 이해는 되네. 이해는 되는데......"

"이제 다음은 무엇이지?"

"끝이거든."

"......?"

마그마로스가 피식 웃었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나. 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진도가 나가버렸다고. 이제 내가 그대에게 더 가르칠 것은......없다네."

나는 그의 말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분명, 당신이 쓰는 화염은 조금 더 유려하고, 유연하고, 유효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내 불꽃은 아직 그렇지 않아."

"불꽃의 인정을 받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걸세. 그대는 이제 막 교감을 한 정도라고. 욕심이 과한 것 아닌가?"

"불꽃의 인정이라니......"

불에 무슨 인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불에 무슨 인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라는 생각을 한 것 같구만."

"......"

독심술이라도 쓰는 건가?

이 정도까지 정확하게 읽어낼 줄이야.

속으로는 꽤나 놀랐지만, 나는 무표정을 유지하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많이들 보아 왔다네. 나 역시 그러하였고."

"당신도 그랬다니......그게 무슨 소리이지? 불의 정령왕이 왜?"

"불의 정령왕은, 불의 지배자가 아닐세. 단지 불의 힘을 쓸 수 있는 정령들의 왕인 것이지."

아......그럼 불은 불대로 따로고, 정령왕은 그 힘을 쓸 수만 있는 건가?

약간 이해가 되기 시작하던 때.

마그마로스가 말을 이었다.

"이 불이라는 것은 말일세. 거신족보다도 먼저 존재했던 힘이네. 그야말로 고대로부터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라는 뜻이지. 단지 우리는 그것을 이용하는 것뿐."

그는 손바닥 위에 작은 화염을 피워 올렸다.

"이 화염이 내는 소리를 잘 들어보게. 그렇게만 된다면......"

다시 마그마로스의 눈동자가 내게 돌아왔다.

"자네는 나처럼. 아니, 나보다도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게야."

"......더 높은 경지라니......"

솔직히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과연 마그마로스보다도 더 화염을 잘 다룰 수가 있단 말인가?

아니, 그 전에......불이 내는 소리를 어떻게 듣는다는 말인가?

말은 알아들었는데......납득이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나를 보며.

마그마로스가 작게 미소를 지었다.

"기술적인 것은 여기까지가 끝이네. 다른 것들은 얼마나 이것들을 잘 융합하느냐, 혹은 새롭게 창조하느냐에 달린 것이지."

"흠."

"대신, 이제부터가 진짜일세. 불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가야 할 테니까. 그건......다음 목적지로 가면서 설명하도록 하지. 오늘은 여기까지일세."

그리 말을 마친 마그마로스는.

뒷짐을 진 채로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고요해진 공간.

혼자 남은 나는.

조용히 손바닥 위에 작은 불꽃을 피워 보았다.

화르르륵!

하지만 미약한 열기만 느껴질 뿐.

아무런 말도 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불꽃을 향해 중얼거렸다.

"무슨 말을......어떻게 들어야 한다는 걸까?"

지금까지 배운 그 어느 것보다도......어려웠다.

* * *

다음 목적지는 이미 정해진 것과 다름이 없었다.

불을 삼키는 그림자의 주인이자.

불씨의 거신.

"헬페리온. 그자가 여기 있단 말이지?"

마그마로스는 우리가 리베카 일당에게서 찾아낸 지도를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이상한데?......이거, 확실한 정보 맞나?"

그의 의심에, 오르헬이 짜증을 내었다.

"뭐! 뭐! 아, 뭐가 또 불만인 건데?"

"신들의 전쟁 당시, 승리를 차지한 현재의 신들은 불사의 존재인 거신족을 죽일 수 없어 중간계에 가두었다."

"그건 다 알고 있는 거고."

"지금보다도 더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자연의 힘을 가진 거신족들은, 다른 계로 쫓아낼 수도 없었기에 중간계에 묶어둔 것이었지. 헬페리온 역시 그런 괴물들 중 하나였고."

"뭔 소리를 하고 싶은 건데?"

마그마로스가 오르헬을 쳐다보았다.

"자네라면, 헬페리온을 어디에 가둬 두겠나?"

"뭐? 헬페리온을? 헬페리온이라면......불씨의 거신이니까. 물이나 얼음이 있는 곳?"

"정답일세. 헬페리온은 물의 정령왕의 영역인, 천 년의 얼음골. 그곳에 가두어졌네. 그에게 헬페리온을 책임지고 지키라는 뜻이었지."

"한데, 천 년의 얼음골은 한참이나 북쪽으로 더 가야 되는 곳이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이 지도에 표시된 대로라면, 이미 헬페리온은 그 얼음골을 탈출했다는 소리이지."

오르헬은 혀를 찼다.

"하여간 정령왕 놈들. 일하는 거 마음에 안 든다니까."

그러나 마그마로스의 얼굴은 여전히 심각한 채로, 큰 변화가 없었다.

"천 년의 얼음골에서 탈출을 한 헬페리온이, 이곳에 숨어 있을 거라고?"

그쯤 되니 나 역시 마그마로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는 지도를 보며 입을 떼었다.

"사방이......강과 호수. 그리고 바다로군."

마그마로스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볼 줄 아는군. 내 말이 그 말이라네. 불씨의 거신이, 제 발로 물 근처로 숨는다? 이건 물의 정령들에게 자신을 찾아달라고 소문내는 꼴밖에 되지 않아."

"그렇다면, 이 지도의 표시는......"

"기만전술.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겠군."

그 말에 나는 가만히 지도의 지형을 살폈다.

'이게 거짓이라면. 그럼 나였다면......과연 어디에 몸을 숨길까?'

그때.

내 눈에 확 들어온 한 장소가 있었으니.

'음?'

나는 마그마로스에게 물어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그 역시 같은 장소를 본 모양이었다.

그의 눈과 내 눈이 마주치자.

마그마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대와 같은 생각인 것 같네."

우리 둘의 시선은, 다시 지도로 향했다.

세 개의 화산으로 둘러싸진 저 페라이 화산지대로.

* * *

노이어 결사대원들을 비롯하여 모두가 분주하게 다음 목표인 페라이 화산지대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르헬. 그대는 할 일 없나? 놀고만 있는 거 같은데?"

"뭐? 너야말로 시비 걸러 왔냐? 할 일 없어?"

오르헬의 눈빛에는 약간의 살기가 감돌았다.

다른 이들이 있을 때는 조금 참았지만......지금은 굳이 참고 싶지 않았기에.

그런 그를 보며 마그마로스가 조심히 말문을 열었다.

"미안하다."

"......뭐?"

"지금이라도 사과한다면......받아 주겠나?"

오르헬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표정은 오히려 조금 전보다도 더 사나워져 있었다.

"그때의 판단. 아마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같은 판단을 할 수밖에 없을 걸세. 그럼에도......사과는 하고 싶었네."

"글쎄. 사과한다고 해도 죽은 놈이 다시 돌아오는 건 아니니까."

"그렇지. 죽은 자가 다시 돌아오지는 않지. 그래서 살아있는 자네에게라도 사과하려는 거 아니겠나."

"재수 없는 소리 하기는."

오르헬은 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마 그 아이가 죽지 않았더라면, 내 다음 순혈의 로드가 되었을 거다. 그러면 이 자리에 있는 것도 내가 아니라 그 녀석이었겠지. 나야 저 어딘가 구석에 처박혀서 유유자적 술병이나 기울이고 있었을 거고."

"그편이 그대에게는 더 어울리기는 하지."

"그래. 그래서 그렇게 되고 싶었다. 네놈이 그 아이를 죽여버려서 이 꼴이 되었지만."

"자네도 지금은 알고 있지 않나. 그 아이......다른 꿍꿍이속이 있었네. 이미 그때부터 거신족과......"

"안다."

마그마로스의 말을, 오르헬은 끊어버렸다.

그는 매서운 눈동자로 마그마로스를 노려보았다.

"알아. 안다고. 그래도 나한테 말을 했어야지. 그리고 내 손으로 끝낼 수 있게 해 줬어야지. 넌 그랬어야 했다."

"......"

마그마로스는 정곡을 찌르는 말에.

한숨을 쉬고 인정을 하였다.

"그대 말이 옳다네. 맞아. 내가 경솔하였네. 그땐."

진심이 담긴 사과.

인정을 하는 마그마로스의 그 모습에, 오르헬은 혀를 찼다.

"쯧!......그 케케묵은 옛날이야기나 하려고 온 건가?"

"케케묵었어도 해야 할 말이었네. 조금 더 빨리하지 못해 아쉬운 거지."

"저리 말을 하니 화를 낼 수도 없고. 어후. 속이 더 타는 거 같네."

둘은 바깥을 내려다보며 한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로한이었다.

"물의 정령왕이 죽은 것 같네. 오르헬."

"뭐, 뭐라고? 그놈이 왜?"

"아직은 이렇다 할 증거는 없네. 다만 거신족이 움직인 것 같아."

"설마 불씨의 거신 헬페리온이 천 년의 얼음골에서 탈출한 것도......?"

"그 생각이 맞네. 물의 정령왕의 부재. 그게 원인이야. 그래서 지금은 물의 정령왕이 아닌, 물의 정령들이 놈을 찾으려고 움직이고 있는 걸세."

"......!"

오르헬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마그마로스에게 눈을 돌렸다.

그러나 마그마로스는 여전히 창 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어쩔 셈이야?"

"......저 로한이라는 자. 어떤가?"

"뭐? 그건 갑자기 왜?"

"재능이 있거든. 받아들이는 능력 자체가 달라."

"무슨 말이야?"

마그마로스는 천천히 오르헬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에게 맡겨 볼 생각이네. 물의 정령왕, 그 직위를!"

"역시 그냥 나타난 게 아니로구만?"

"아니. 정말로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네. 다만 그를 만나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어."

"안 돼!"

단호한 그 목소리에.

마그마로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내가 먼저 찜했어."

"......?"

"뱀파이어 로드로 제격이란 말이다!"

"로드......라니."

오르헬은 짜증이 난 듯 중얼거렸다.

"여튼 내가 먼저 찜했어. 넘보지 마라."

"로드의 자리는 이미 만석이지 않나?"

"아니. 아니니까 내 자리를 물려주려는 거고. 내 자리를 이어받게 될 때까지 내가 옆에서 자리 잡고 있는 거란 말이다. 내가 그거 때문에 여태 그 험한 일들도 참으면서 쫓아다닌 건데!"

"역시 꿍꿍이속이 있었구만?"

"꿍꿍이라니! 그, 그냥 우리 브라더 다 잘되라고......"

마그마로스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우고, 다시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다.

"한데......그 말은, 설마 로드 중 누가 죽었다는 말인가?"

"어. 독혈의 드레트노어가 저승으로 가버렸거든. 그래서 이제 남은 로드 숫자도 얼마 없다고."

"드레트노어 그 자가? 아니, 그 자가 누구한테 당해?"

"로한."

그 짧은 대답에.

마그마로스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듯 흔들렸다.

오르헬은 이 정도에 놀라지 말라는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그뿐인 줄 알아? 그 독혈의 힘도 쟤가 다 가져갔어."

"다......가져갔다?"

"그래. 그렇다니까?"

마그마로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면 굳이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그냥 지금 그를 로드로 추앙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이미 로드의 힘을 가졌잖나?"

그 대답에, 오르헬이 잠깐 굳었다.

"어......왜 그 생각을 못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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