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저 안에 몇 놈이......!
"왜, 왜 그러나?"
"이거......아무래도 이상한 것 같은데?......"
나의 그 말에.
에이트럼이 바짝 얼어붙었다.
"이상하다고?"
"부자연스럽다."
"뭐, 뭐가 말인가?"
"그냥......"
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고요 속에서.
오로지 저 기사의 신음만이 옅게 들리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싸악 훑어 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전부다."
"음?"
"어색하지 않은 게 없다. 왕실의 기사단이었다면, 분명 진영을 갖추고 싸우는 게 익숙할 텐데......저렇게 덜렁 혼자 떨어져 있다고?"
"낙오......되었을 수도 있지 않소?"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저들이 진입한 게 언제라고 했는지 기억나나?"
"일주일 전이라고 했지."
"일주일......일주일 전에 낙오된 병사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살아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해 보니 확실히......!"
수상쩍은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찌 운 좋게 살았다고 치지. 그럼 기사단이 이겨서 구출을 하러 오던가, 아니면 기사단을 몰살시킨 그림자들이 완전히 숨통을 끊으러 오던가. 둘 중에 하나는 일어났어야지. 저대로 그냥 방치하는 건......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앞뒤가 맞지 않다."
"그러면......?"
"함정이다."
"......!"
나는 계속해서 시야를 넓게 두고 사방을 살폈다.
"그리고 여긴 희한하리만치 깔끔하군. 전투의 흔적도 없이."
"듣고 보니, 이상한 점 투성이긴 하오."
이제 에이트럼이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무시하고 그냥 지나가는 수도 있긴 하겠지만......"
그는 찜찜한 얼굴을 하였다.
물론 나도 그 의도를 알아챘다.
"뒤에 적을 두고 지나간다면, 아무래도 후방에서 기습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
"그렇소."
"그럼 여기서 한 번 테스트해보는 것도 좋겠지."
"......테스트라......"
나의 말에, 에이트럼 역시 결심을 굳힌 얼굴을 하였다.
"저게 생존자가 아니라면, 보나 마나 그림자 괴물일 것일 테고. 우리의 전략이 먹히는지 아닌지 한 번 보자는 것이로군."
그의 말에 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를 판단하는 기점이 될 터였다.
* * *
수상한 기사를 둘러싼 노이어 결사대.
그들이 천천히 신음을 흘리는 의문의 기사에게 점점 거리를 좁히며 다가갔다.
사방에서 동시에 횃불이 다가오니.
확실히 그림자가 생기기조차 힘들 상황이었다.
다만......
"엎드린 자세 때문에, 팔 아래쪽으로는 그림자가 약간 져 있소."
"저 그림자 안에서 튀어나올 수도 있겠군."
"저쪽을 집중적으로 주시하라고 신호를 보내겠소."
에이트럼이 조용히 수신호를 보내자.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그 수신호를 옆으로, 옆으로 전달하였다.
꽤나 익숙한 모습으로 간결하게 의사전달을 해나갔다.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이제 서로의 공격이 닿을 정도의 가까운 거리까지 닿던 그 순간.
문득 바닥에 쓰러져 있는 기사의 신음이 멈추었다.
동시에 약간 보이던 움직임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완전히 시체처럼 아무런 생체 징후를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꿀꺽!
누군가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작은 소리마저도, 이제는 크게 들리고 있었다.
원래 이곳은 지독하리만치 조용했다.
그런데 저 기사가 신음을 뚝 멈추니......소리라는 게 세상에서 사라진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나 우리는 진격을 멈추지는 않았다.
이런 순간을 예측하고 대비해서, 전략전술을 준비해 온 게 아니던가.
내가 손을 들어, 손바닥을 아래로 내리자.
스으윽.
둥글게 횃불을 들고 선 결사대 인원들 중, 한 명 건너 한 명씩 쪼그려 앉기 시작하였다.
낮은 높이의 횃불.
그것이 남은 사각의 그림자들까지 모조리 조여들어 가기 시작했다.
점점 사라지는 그림자.
마침내 한 결사대원이, 직접 손을 뻗어 그 기사를 뒤집었고.
툭.
기사의 팔은 힘없이 축 처졌다.
고개 역시도 끈 떨어진 인형처럼 아무런 저항이 없었다.
영락 없이 죽은 자.
그것이 확인된 순간.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저 죽은 자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신음을 내며 움직이고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은 그 무엇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횃불의 불길에 타 죽은 건가?......"
결사대원 중 하나가 그렇게 속삭이던 그 순간.
쩌억!
갑자기 시체의 입이 벌어졌다.
동시에 시체의 벌어진 입 사이로.
"샤아아아아!"
검은 손 하나가 예고도 없이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왔다.
촥!
그것은 시체에 접근했었던 결사대원의 뺨을 할퀴었고.
"크아아악!"
그는 깜짝 놀라며 뒤로 엎어졌다.
그럴만 했다.
그 입안에서 튀어나온 것은......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팔이었다.
처음 튀어나온 팔에 이어서 몇 개나 더 튀어나온 것이다.
그에 주저앉은 결사대원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도, 도대체 저 안에 몇 놈이......!"
하지만 정신을 놓고 있을 틈이 우리에겐 없었다.
곧이어 다른 대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후방에 다수의 그림자 접근 중! 후방에서 다수의 그림자가 접근 중이다아아아!"
나는 검을 뽑으며.
스르릉!
가볍게 휘둘러 보았다.
샤악.
그러자 그 그림자 팔들이 일격에 후두둑 잘려 떨어지고.
그 후,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전원 전투 준비!"
* * *
먼저 검으로 그림자 팔을 베어 본 것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그것으로 인해 전체의 사기가 극도로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그림자라고 해도 벨 수 있다는 걸 직접 눈으로 보여주었으니까.
사실 시도를 해 본 나도 반신반의하며 도전한 것이기는 했다.
'혹시나 안되면 어쩌나 쫄았는데......되긴 되네.'
그래도 어느 정도의 자신감이 있기는 했다.
그림자 팔을 딱 마주하는 순간.
제3의 눈이 예리하게 캐치를 해준 것이다.
그림자 팔에, 미세하게 베인 흔적이 남아 있는 걸.
'아마도 왕실 직속 기사들과 전투 중에 생긴 것이었겠지.'
그들도 마냥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물론 그럼에도 저 정도 상처밖에 남기지 못하고 패했다는 게 더 큰 문제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다를 것이었다.
놈들의 숫자가 적지 않을 거란 걸 어느 정도 예측한 우리는......
"기름에 불을 붙여라!"
미리 선제 작업을 쳐두었던 것이다.
이 왕궁 중심부에 오기 전.
우리는 크게 빙글 돌면서 진입을 했다.
불이 잘 붙는 기름으로 길을 만들어 두기 위해.
덕분에 지금 이 순간.
나의 신호에 따라 에이트럼이 바닥에 불을 붙였고.
그곳에 있던 기름을 타고.
화르르르륵!
순식간에 사방이 불로 휩싸여 버린 것이다.
당연히 우리들 역시 뜨겁고 괴로웠다.
그러나 준비해두었던, 다들 물을 온몸에 붓고.
젖은 천으로 입과 코를 가릴 수 있게 묶어 착용을 하니.
스릉! 스릉!
참을 수 있을만한 정도는 되었다.
반면에 갑작스럽게 화염에 갇힌 그림자들은, 위왕좌왕하며 어찌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캬아아아!"
"크르르르르!"
그림자가 있었다면 어디로라도 숨겠지만.
지금은 그럴 그림자조차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완전히 그 모습이 드러난 놈들.
놈들의 모습은 굉장히 기괴하였다.
시커먼 색깔밖에 존재하지 않는 몸체에.
그 모습조차도 일정하지 않고, 일렁일렁 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급습을 당했더라면 정말 두려웠으리라.
심지어는 빛이 없다면 그림자 속에 숨어서 사방에서 덤벼들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모든 그림자를 없애버린 우리들 앞에서.
그림자 괴물 놈들 결국 한 가지 선택지밖에 남지 않았었다.
정면 승부.
놈들은 그림자답지 않게 괴성을 질러대며.
"캬아아아아아!"
"크라라라라!"
"캬아우우우!"
우리에게 달려들었고.
결사대원들 역시 놈들을 벨 수 있다는 걸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였기에.
"우아아아아!"
"전부 베어라!"
"놈들도 무적은 아니다! 돌겨어어어억!"
죽음을 불사하고 맞붙기 위해 달려나갔다.
오르헬 역시 어깨를 빙글 돌리며 풀더니.
"자, 한 번 가볼까?"
"예압!"
앤드류와 함께 나섰고.
나 또한 에이트럼, 레바르센과 눈을 마주치고는.
끄덕.
디아즈, 그렌델과 함께 뛰쳐나갔다.
"흐아아아아압!"
* * *
그림자에게 도망칠 곳을 없애는, 방화 작전은 꽤나 잘 먹혀들어갔다.
숨지 못하는 그림자 괴물들은.
촤악! 촥!
생각보다도 쉽게 상대할 수가 있었다.
일단 노이어 결사대 대원들의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가장 큰 주무기를 잃어버린 그림자 괴물들이었기에.
"키아아아아악!"
"케에에에......!"
유연한 대책을 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썰려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예상보다도 지능은 더 낮은듯하였다.
하지만 우리도 마냥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그림자가 없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불을 지르기는 했지만......
'슬슬 연기도 차오르고, 열기도 갇혀서 더 뜨거워지고 있어.'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를 가진 이상.
이곳에서 무한정 버틸 수는 없었던 까닭이었다.
속전속결.
작전을 구상하던 시점부터 우리의 목표는 속전속결, 그것이었다.
때문에 얼핏 유리해 보이는 전황이었지만, 모두들 하나같이 타임 어택이라도 하듯.
전력을 다해 그림자 괴물들의 수를 줄여나가고 있었다.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슬슬 숨도 턱턱 막히는 것 같았고.
땀도 줄줄 흘러내렸다.
그렌델이 염동력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안쪽의 뜨거운 공기를 위로 더 빠르게 빼내고 있기는 했지만......
'불이 새로이 만들어내는 열기가, 빠져나가는 열기보다 더 빠르다.'
불의 기운을 품고 있는 나도 이 정도인데.
다른 이들은 어떻겠는가?
솔직히 까딱 잘못 여유를 부리다가는, 그림자 괴물들을 죽이기 전에 우리가 먼저 죽을 판이었다.
그림자 괴물 놈들은 우리와 달리, 불 자체에 데미지를 입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해서 나는 더 집중력을 끌어 올려 착실히 그림자 괴물들을 베어나가기 시작했다.
샤샤삭! 파팍! 촤아아악!
내 쪽에서부터 확연히 빠른 속도로 줄어나가는 그림자 괴물들.
그 모습에 몇몇 결사대원들이 중얼거렸고.
"저, 저런 움직임이......!"
"방금 검이 닿지도 않았는데 베어진 거 같지 않아?"
"그럴 리가. 우리가 놓친 사이에 벌써 베었겠지."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놀란 눈으로 쳐다본 후.
정신을 차린 그들은 다시 기세를 끌어 올려 전투에 임하였다.
거센 불길과, 괴념치 않고 덤벼드는 그림자 괴물들.
더럽게 힘들고 괴로웠지만......
우리는 그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차라리 지금이 편한 상황이었음을.
픽, 피피픽.
어느 순간.
우리가 지펴 놓은 불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하더니.
"후우우웁!"
크게 숨을 들이켜는 소리와 함께.
남은 불씨들도 전부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게 아닌가!
사방은 눈 깜짝할 새에 어두워졌고.
나는, 모두에게 경고를 하듯 작게 읊조렸다.
"불을 삼키는 그림자가......온 것 같군."
내 말이 끝나자마자.
저 멀리서 시뻘건 눈동자가 희번덕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