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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20화 (120/194)

120화. 이제 내가 네 주인이다!

"이, 이게......진짜 신검이라고요?"

앤드류는 눈에 광채를 띠며.

덜덜 떠는 손을 천천히 내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무래도 검을 쓰는 기사에게 있어서 신검이라는 물건은 뭔가 꿈의 존재 같은 장비였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영웅의 서사시마다 한 자루씩 등장하는 그런 전설의 검.

그러한 신검들은 하나같이 신비한 능력을 가진 것들로 묘사되곤 하였다.

하나 그 검들이 전부 실제로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조차 확인할 길이 없었으니.

전해지는 이야기에서 잠재된 힘이 너무나도 강력한 검이거나, 혹은 단 한 번도 목격된 적이 없다고 알려진 검들은 오히려 상상의 산물이라 여겨지기도 하였다.

그런 검들 중 하나가 바로 지금 내 손에 들린 신검, 모르테논이었다.

그런데.

가뭄에 콩 나듯.

모르테논처럼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여겼던 검이 실제로 나타나는 일이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모르테논의 전설을 알고 있던 앤드류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 마냥 좀비처럼 다가왔다.

"저, 저도 모르테논이 나오는 영웅 이야기를 듣고 처음 검을 잡았는데 말이죠......이, 이게......!"

그가 내 검을 붙잡기 직전의 그때.

빠악!

오르헬이 앤드류의 머리를 가격하였다.

"우악! 뭐, 뭔데요?"

"정신 차려. 이거 네 거 아냐."

"허, 헉!"

그제서야 앤드류는 자신이 뭘 하고 있었는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나, 나도 모르게......"

겨우 제정신을 차린 앤드류.

순간적으로 이성을 놓칠 만큼, 모르테논의 검신은 아름다웠다.

나도 지금 살짝 얼어붙어 있을 지경이었으니까.

'이, 이게 이렇게 굴러 들어올 줄이야......'

* * *

용병 클래스로 파오갓의 메인 스토리를 진행할 경우.

극악의 확률을 뚫고 특정 퀘스트가 발동되는 케이스가 있는데.

그것을 해내면 얻게 되는 게 바로 이 신검, 모르테논이었다.

해서,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모르테논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얻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용병 클래스의 특정 퀘스트까지 진행할 방법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건......용병 클래스 캐릭터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고유 스킬이 필요했으니까.'

본투비 고유 스킬을 내가 어찌 가로채겠나?

그래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게 제 발로 이렇게 굴러 들어오다니

훔카리안은 내 손에 들린 모르테논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보이지 않는 칼날을 가진 검. 그게 바로 모르테논의 또 다른 이명일세."

앤드류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본 적이 있어요. 모르테논이 날을 세우는 걸 본다면, 당신은 이미 베여 있을 것이다!"

앤드류의 말에 오르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그런 말도 있어?"

"모르셨어요? 이거 진짜 유명한 검인데? 제가 이거 이야기를 책에서 보고 푹 빠져서 처음에 목검을 휘두르기 시작한 거거든요."

"별로 안 궁금해."

"에잉. 왜요. 좀 궁금해 줘요!"

"싫어. 궁금해하면 술이 나오냐? 고기가 나오냐?"

"칫......"

입술을 삐죽 내민 앤드류는, 다시 검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런데 생긴 건 오히려 좀 평범하네요?"

확실히.

아마 모르고 봤더라면 모르테논은, 저렴한 검이라 오해할 수도 있을 외형이었다.

그만큼 딱 필요한 모양만 갖추고 있는 형태였다.

게다가 색깔도 새까매서는, 더 눈에 띄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훔카리안은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한 표정으로 검지를 들어 흔들어 보였다.

"신검이라는 게......왜 신검인 줄 아는가?"

"예? 왜 신검이냐니.......그야 좋은 검이라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렇게 단순하면 그냥 명검으로 불리우겠지. 거기 그쪽이 허리에 차고 있는 검처럼."

"옷......! 이 검을 알아보시는 군요?"

"대장장이 눈 무시하지 말게. 이래 봬도 망치질만 300년이야."

"사, 삼백......!"

생각보다 굉장히 경력직이셨네.

"생각보다 굉장히 동안이시네요!"

나는 앤드류의 말에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저 순간에 저런 생각이 튀어나오다니.

하여간.

미소를 지은 건 훔카리안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웃어보는군. 하하하하!"

불을 삼키는 그림자에게 식솔들이 몰살당한 후.

한 번도 웃지 않은 그였는데.

'이럴 땐 앤드류처럼 능청스러운 게 도움이 되네.'

나는 못하는 부분이니까.

이 자리에선 오로지 앤드류만 할 수 있는 일이었지.

덕분에 훔카리안은 조금은 풀린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네도. 살짝 거짓말을 했던데? 아니. 아예 말을 안 했더군."

"......내가?"

"그래. 불사조의 불꽃. 자네의 그 불길. 정령왕의 힘뿐만 아니라 불사조의 힘도 섞여 있더군."

"......!"

그건 나도 눈치채지 못했던 포인트였다.

미간을 찌푸리며 내 표정을 살핀 훔카리안이 다시 물었다.

"혹시, 몰랐나?"

"모르고 있었다."

"허허, 참. 난 또 속이려고 한 줄 알았네. 하나! 내 눈을 속일 순 없지. 후하하하!"

훔카리안은 호탕하게 웃었다.

지금까지는 본 적이 없었지만......아마 저게 그의 진짜 모습이겠지.

그는 얼굴에 미소를 담은 채 내게 부탁을 하였다.

"마음 같아서는 자네와 함께 불을 삼키는 그림자와 싸우러 가고 싶다네. 하지만 리베카 놈과 싸우며 느꼈지. 아......내가 끼어드는 건 그저 방해밖에 되지 않겠구나. 나름 도끼로 싸우는 건 자신이 있다 생각했건만, 대장장이와 진짜 기사들의 실력 차이는 확실히 다르기는 다르구나, 하고 말일세."

그러는 사이 그의 미소 위에 약간의 씁쓸함이 쌓였다.

"그래서 내 결론은. 나는 내 일을 하고, 자네는 자네 일을 하는 것. 그게 최선이겠다. 그리 판단을 내렸네."

그럼에도 그의 눈동자는 분노에 휩싸여 있었으니.

"대신 부디 그 검과 함께, 싸워주게나. 불을 삼키는 그림자와. 그리고 그 배후에서 장난질을 치고 있는 거신 놈들과!"

그는 신검을 통해.

내게 자신의 의지를 넘겨 준 것이었다.

식솔들의 목숨 값을.

내 손에 쥐어진 검의 무게가.

조금은 더 무거워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무게를 나는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 * *

"하지만 이 신검이라는 게, 다른 검들과 달라. 검이 그 주인을 스스로 선택하지."

나는 그의 말을 곱씹었다.

"주인을 선택한다, 라......"

"만약 검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신검은 그 진정한 광채를 보여주지 않을 걸세."

"그렇다면......"

"그저 조금 날이 잘 드는 검일 뿐. 신비한 능력은 쓸 수 없다는 말이지."

이거 난감하네.

용병 클래스로는 모르테논의 힘을 잘 쓸 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클래스가 다른데, 가능.....할까?'

알 수 없었다.

훔카리안은 살짝은 걱정스러운 눈치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나야 로한 경이 보여준 그 경이로운 실력을 믿네만. 검의 인정이라는 건, 솔직히 나도 어떤 건지 잘 몰라서 말이지. 이 검이라는 게 말을 하지는 못하잖나. 그리고....."

훔카리안이 말끝을 흐리자 나는 의문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끄응......그 때문에 신검이라 하여도 정확히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경우, 본래의 힘을 끌어내기 힘들 수도 있다네."

그 말에 앤드류가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쳤다.

"아! 그런 얘기 들어 본 적 있어요. 어떤 왕가의 보물인 신검도, 그 사용법을 몰라서 그저 썩고 있는 일이 있다는......!"

"딱 그런 경우일세. 그런데 애석하게도.......이 모르테논 역시 특별한 기록이 남아 있는 건 아니란 말이지."

앤드류가 고개를 끄덕였다.

"책에서 봤을 때도 그랬어요. 보이지 않는 칼날......전부 다 뭔가 두루뭉술한 표현들뿐이어서,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그런 식일세. 내가 알고 있는 지식 또한 그리 다르지 않아."

그 부분은 걱정 없었다.

'나는 알고 있지.'

다들 고민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나는 그쪽 방면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단지 내가 신경 쓰고 있는 것은 단 하나.

과연 검이 나를 인정할 것인가.

그것 뿐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확인하려면......

'직접 써 보는 게 가장 빠르겠지.'

나는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촥 감기는 맛이 일품이었다.

마치 내 손을 본떠서 알맞게 특수 제작한 것마냥.

그리고 살짝 힘을 주어 당기자.

스르르릉.

청량하면서도 서늘한 칼날의 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오오......!"

앤드류가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나도 같은 소리를 낼 뻔하였다.

그만큼 이건, 그 소리만으로도 날이 제대로 서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 눈동자는 드러나는 그 칼날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이거......기세가 장난이 아닌데?'

생명을 지니지 않은 칼임에도, 마치 칼날은 나를 집어 삼키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야말로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얌마! 네가 왜 정신을 놔?"

"헉!"

그 와중에 앤드류는 또 검에 홀릴 뻔한 것 같았다.

'진짜배기네, 이놈......'

앤드류도 나름 쟁쟁한 실력자인데.

나는 검을 꽈악 움켜쥐었다.

우우우우웅!

"거, 검이 울리는데요?"

그에 앤드류가 깜짝 놀랐다.

다른 이들 역시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나 나는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이 검을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정신을 흐트러뜨려서는 힘들 것 같았기에.

'어디......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고.'

나는 그렇게 쥔 검을 들고.

몸을 살짝 틀었다.

마침 앞에는 거대한 바위 하나가 보였는데.

거리가 가깝지는 않았다.

도약하지 않으면, 칼날이 닿지 않는 거리.

날의 길이가 두 배가 되지 않으면 어려울 정도의 위치였다.

'그치만 이건 모르테논이니까!'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발을 박아 넣고 서서.

화아악!

허공을 자르듯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서걱.

저 멀리 있던 바위가 잘려버린 것이었다!

그 광경을 직관한 앤드류가 소리를 쳤고.

오르헬이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이, 이럴 수가......! 분명히 날이 닿지 않았는데!"

"설마......이게 보이지 않는 칼날인가? 엄청나군......"

검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그렌델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물어왔다.

"어떻게 된 거에요? 그럼 신검의 인정을 받은 거에요?"

그에 나는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이제 내가 네 주인이다!'

모르테논이 나를 인정했다는 걸.

그 모습을 지켜보던 훔카리안이 헛웃음을 지었다.

"허, 허허......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확실히 제 주인이 맞는 것 같군."

* * *

타닥, 타닥!

모닥불이 타는 소리와 함께.

[빛이 있음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노니.

그림자여, 불을 삼켜라.

거신의 부름을 받아 스스로 불을 삼킨 그림자의 왕은, 더 깊고 짙은 어둠을 자아내며.

감히 왕에게 거역하는 무리들조차 자비로 받아들여, 그림자의 왕국을 쌓아 올림에.

영원한 왕국을 일으켜 불멸을 누릴지니!

모두 그림자의 왕을 두려워하고 경배하라.

그리고......포기하라.]

앤드류가 마지막 문장을 읽어내자.

오르헬이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비며 대꾸했다.

"뭔 개소리야 그게?"

"나도 모르죠. 문헌에 남아 있는 걸 읽은 거뿐인데."

오르헬은 잘 구워진 멧돼지 고기를 집어 들어.

"먹을래?"

내게 내밀었다.

"고맙군."

나는 그걸 받아 들고는 한 입 크게 물었다.

고소한 육즙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딱 적당하게 익은 느낌이었다.

"음. 그럼 어디 나도 먹어 볼까?"

그러면서 오르헬은 앞에 놓인 버섯구이를 하나 집어 입에 던져 넣었다.

"크! 역시 채식이 최고라니까!"

그는 우물우물 거리며 물었다.

"그러면 뭣이냐. 불을 삼키는 그림자가 왕이래?"

"앞에 다른 내용들까지 보자면......원래는 저 왕국의 왕이었대요. 불로불사를 꿈꾸다가, 거신족의 눈에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왕인 만큼, 아마 그 휘하에 다른 그림자들도 있는 모양이고요."

오르헬의 시선이 이제.

달빛 아래 살짝 드리워진 저 왕성으로 향했다.

"어디 보자......그러면 이번 적은, 그림자들로 이루어진 왕국 전체랑 싸운다 이거지? 하여간, 스케일 장난 아니네."

나 역시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림자 왕국이라......"

입을 쩌억 벌리고 우리를 기다리는 것 같은 저곳이.

흑백 빛깔로 유난히도 서늘하게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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