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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19화 (119/194)

119화. 자네는 이게 검으로 보이나?

리베카의 비웃음에 레바르센이 미간을 찌푸렸다.

"불의......정령왕......이라니......"

"......"

하지만 리베카의 입에서는 더 이상 대답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절명한 것이었다.

그에 훔카리안이 혀를 찼다.

"흥! 머리가 잘린 주제에 오래도 버텼군."

리베카의 친우였던 레바르센도 그의 언행에 딴죽을 걸지는 못했다.

다크 엘프로서의 리베카가 훔카리안에게 했던 짓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훔카리안 역시 그만 물러나는 것으로 그나마 인내심을 보였다.

아마 속에 있는 마음 그대로 행동을 했더라면, 이미 잘린 머리라도 박살을 내었으리라.

레바르센 또한 그의 배려를 알고 있었다.

그렇게 더 이상 험한 꼴은 나지 않은 채 상황이 마무리되었으나......

훔카리안은 걱정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큰일이군......불을 삼키는 그림자 그놈이, 정령왕급 존재가 직접 나서야 하는 존재라고? 죽으면서까지 한 방 먹이는군."

하나 디아즈는 조금은 다른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로한 님. 불가능한 일은......아니지 않습니까?"

나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도 그렇다."

우리 둘의 대화를 들은 훔카리안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가왔다.

"설마......불의 정령왕을 찾을 방법이 있다는 소린가?"

"그런 건 아니고."

불의 정령왕을 내가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그 대답에 퍽 실망을 한 훔카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불의 정령왕을 무슨 수로 찾아. 그럼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는 건 무슨 소린가?"

"불의 정령왕은 찾을 수 없긴 한데......그 힘은 쓸 수 있거든."

"......? 뭔 소리야 그게. 알아듣게 말 좀 해 보라고."

훔카리안은 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와 디아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물론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불의 정령왕이 가진 힘이, 그렇듯 아무나 쉭쉭 쓸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하지만 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전부니까.

"쓸 수 있다고. 그 힘."

"돌겠네.....뭔 소리야 대체."

* * *

훔카리안의 대장간.

그곳에서 몇 분의 설명이 더 이어지고 나서야, 그는 겨우 내 말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 그러니까......당신이 그 힘을, 불의 정령도 아니고 불의 정령'왕'! 의 힘을 쓸 수 있다고?......"

왕에 엄청난 임팩트를 주며 말을 하는 훔카리안.

혹여나 내가 잘못 이해한 걸까 봐 강조를 하는 게 뻔히 보였다.

한데, 잘못 이해한 게 아니니 나는 사실대로 대답을 하였다.

"맞다."

벌써 몇 번의 대답을 들은 훔카리안은, 이제 자신이 오해한 게 아니라는 걸.

그리고 내가 잘못 말한 게 아니라는 걸 인정하였다.

"허, 허허......허허허. 차라리 불의 정령왕을 데려온다고 했다면 덜 놀랐을 것 같군."

"그럴 걸 그랬나?"

"그것도 가능한가?"

"아니."

작은 농담을 던졌는데, 이제 훔카리안은 그게 농담인지 진담인지도 구별 못 하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뭐, 뭐?"

"농담이다. 불가능하다."

"......그쪽은 농담을 좀 안 했으면 좋겠는데. 농담도 농담처럼 해야지, 그쪽이 하면 농담이라고 생각을 못하겠단 말일세."

작은 투덜거림 이후.

훔카리안이 내게 물어왔다.

"그러면......그 불을, 정령왕의 불을 어느 정도 쓸 수 있나?"

"그런 방향으로 테스트해 본 적은 없어 모르겠지만......유지만 하는 거라면 꽤 오랜 시간도 가능할 것 같다."

"좋아!"

내 대답을 들은 훔카리안은 갑자기 바삐 움직이는 게 아닌가.

그는 여기저기를 휘젓고 다니며,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모두들 어리둥절 한 채 그의 모습을 쳐다볼 뿐이었다.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고.

그렇게 한참을 쏘다니던 훔카리안은, 대장간의 저 안쪽으로 휙 사라져버렸다.

잠시 후.

그는 다시 고개를 쑥 내밀더니.

"뭐 해? 얼른 오지 않고!"

나를 콕 집으며 말을 했다.

* * *

우당탕탕!

나는 영문도 알지 못하고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안쪽에서 바지런히 움직이는 훔카리안의 모습이 보였다.

"저기, 저쪽에 앉게."

그가 가리킨 방향은, 용광로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었다.

그 옆에 자그마하게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일단 그의 말대로,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훔카리안은 망치와 이것저것 장비들을 준비하더니.

"자! 이거면 대충 필요한 건 다 챙겼고."

그 말을 하고는.

"불을 피우게!"

"불을......?"

훔카리안이 간만에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용광로. 저래 봬도 불의 정령이 직접 만들어준 것이라네. 꽤나 버텨낼 걸세. 강한 불꽃이라 하더라도."

"그건 알겠는데......"

"정령왕의 불이 있는데, 지금 아니면 언제 만들어보겠나."

"만들다니? 뭘?"

"끝내주는 거! 하하하!"

그렇게 말한 훔카리안은, 저 어딘가에서 희한한 검은 금속을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그것을 용광로에 던졌다.

"자! 시작해 보자고!"

나는 얼떨결에 그 신호에 맞추어 화염을 피워내었고.

"크! 불꽃 작살나는구만! 이거지, 이거! 아, 맞다. 뭐 쓸만한 재료 같은 거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에 나는 품에서 필멸조의 발톱을 꺼내었다.

"이게......필멸조라는 놈의 발톱인데."

"오! 필멸조? 알지, 알지. 이리 주게."

불을 보고 갑자기 올라간 텐션에.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걸 내밀었다.

"걱정하지 말게! 다 자네 주려고 만드는 것이니까! 하하하하!"

필멸조의 발톱을 받아든 훔카리안은 그것을 휙 용광로 던져 녹여버리고는.

그 쇳물을 틀에 담아.

깡! 깡! 깡! 깡!

신명 나게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장비를 만드는 드워프 장인의 모습은, 굉장히 사람을 매료시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한 분야에서 극에 달한 자가.

온 열정을 쏟아 붓고 있기 때문일까.

'멋있......네.'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새어 나온 감탄과 함께.

새로운 무언가가 대장장이의 손에서 창조되기 시작하였다.

* * *

훔카리안의 체력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꼬박 3일.

우리는 거의 쉴 틈도 없이 내달렸다.

최소한의 식사와 최소한의 수면.

그것만 겨우 유지한 채로 나머지 모든 시간을, 망치질에 쏟아 부었다.

하지만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칼이......이렇게 만드는 거라고?'

지금 훔카리안의 손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는 무언가는, 어떻게 보아도 검이라고 하기는 힘든 형태였다.

마치 거대한 덩어리 형태.

훔카리안은 그것을 계속 두들기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결국 의구심이 생긴 나는, 입을 떼었다.

"원래 검을 이렇게 만드는 것인가?"

3일만의 첫 질문.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조금 황당하였다.

"검이라고? 그게 무슨 소린가?"

"......?"

무슨 소리냐니.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기껏 필멸조의 발톱까지 내어주었는데 이게 무슨 황당무계한 상황이란 말인가?

"자네는 이게 검으로 보이나?"

"......아닌 것 같은데."

"맞아. 검 아닐세. 눈이 옹이구멍은 아니군."

거기까지만 딱 대답을 해준 훔카리안은.

다시 온 영혼과 정신을 담아 망치질을 시작해 버렸다.

저렇게까지 사람이 집중을 하니.

차마 다시 말을 걸어 멈추게 하기도 어려운 분위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어쨌든 내가 쓸 걸 만들어 준다고도 했는데......

'어, 어쩌지......방해하기는 좀 그런데......'

그렇게 한동안 나는 불꽃을 피우는 역할만 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이틀이 더 지나간 후에 나는.

"자, 이제 남은 잔열로도 충분하니 나가보게. 여기서부터는 혼자 집중을 해야 하는 구간일세!"

심지어 대장간에서 쫓겨나기에 이르렀으니.

결국 나는 훔카리안이 대체 무엇을 만들려고 하는 것인지 알지도 못한 채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별 수 없이 나는 숙소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로한 님?"

"어? 끝나신 겁니까?"

"브라더. 벌써 왔어?"

"오, 왔어요?"

숙소에는 디아즈, 그렌델, 오르헬, 앤드류를 비롯하여.

"로한 경."

"로한?"

에이트럼과 레바르센도 함께 둘러앉아 있었다.

그들 가운데의 테이블에는 책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는데.

나는 그 중 하나를 집어 들어 스윽 훑어 보았다.

아마도 불을 삼키는 그림자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자연스럽게 디아즈가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일단은 시장인 더스템 남작의 지원 덕분에 주점 항구의 이슬을 수색 중에 있습니다. 저희가 가져온 건 그 안에 있던 자료들 중 일부입니다."

"용케도 의심 없이 지원을 해주었군."

"모건과 체프먼이라는 두 기사가 함께 나서서 증언을 해 준 덕분에, 쉽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래?"

의외로 도움이 되는 구석도 있는 2인조였다.

싸울 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서 크게 기대도 안 했었는데 말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의자에 털썩 기대앉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한데......완성된 겁니까?"

디아즈를 비롯하여.

"근데, 브라더. 검은 어디 있는 건데?"

"나도 보여줘요!"

"저도 궁금합니다."

오르헬이나 앤드류, 그렌델도 질문을 던져왔지만.

내가 대답해 줄 수 있는 건 애석하게도 아무것도 없었다.

"......모른다."

"엥?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게요."

더 자세하게 설명해 줄 것조차 없었으니까.

"완성될 때까진 나도 알 방법이 없더군. 어쨌든, 우리는 불을 삼키는 그림자 원정을 준비한다. 항구의 이슬은 더스템 시장에게 맡겨 두고. 우리는 숲 속에 있을 다크 엘프의 은신처들을 찾아 조사부터 시작하지. 리베카가 숨으려고 했던 그 은신처."

디아즈와 그렌델은 익숙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알겠습니다."

"예!"

앤드류와 오르헬의 약간의 반향이 있긴 하였으나.

"으.....조사 귀찮은데......"

"내 말이. 귀찮은데, 브라더?"

찌릿!

"가, 갑니다."

"나도 같이 가."

금방 진압이 되었다.

곁에 있던 에이트럼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럼 우리는 식량이나 식수 등, 원정길에 필요한 물자들을 준비해두겠네. 조사가 끝나는 대로 출발할 수 있도록."

"부탁하지."

그리하여 조사가 시작된 지 일주일째.

은신처와 항구의 이슬에서 쓸만한 자료는 다 챙겼고.

이제 원정 출발 준비마저도 슬슬 마무리 단계에 돌입하고 있던 그때.

바깥에서 느닷없이 훔카리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로한! 로한 경! 안에 있나? 좀 나와보게!"

자료들을 조사하던 모두의 시선이 창 밖으로 향했다.

우리는 다 같이 일어서서는, 바깥으로 나가 보았다.

"훔카리안?"

"아! 로한 경. 다행이네. 없는 줄 알고 설마 벌써 출발했나 싶었거든."

그는 제대로 씻지도 않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마도 지금까지 계속 작업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정말이지 대단한 집중력이었다.

불길의 열기가 사방에 가득 찬 대장간은, 한껏 체력이 올라온 나조차도 오래 버티기 쉽지 않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내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었으니......

바로 그의 품에 들린 한 자루의 검이었다.

앤드류의 눈이 그걸 보고 휘둥그레졌다.

"오오! 저게 바로 드워프가 직접 만든 따끈따끈한 신상인가요?"

그에 훔카리안이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눈빛으로 앤드류를 쳐다보았다.

당황한 앤드류가 말을 더듬었다.

"왜, 왜요?"

"이걸 만들긴 무슨 수로 만들어?"

"엥? 그게 뭔 소리래요? 로한 경이 검에 들어가는 재료랑 불도 만들어 준 거 아니었어요?"

"재료랑 불을 피워준 건 맞는데. 그건 다른 거고. 이건 이거고."

"그럼 그건 뭔데요?"

"보면 모르나? 이거 신검, 모르테논인데. 대장장이 신이 만들어, 드래곤을 베었다던 그 검 말일세. 잘은 모르겠지만, 무슨 능력도 있던 거 같던데......"

"모, 모, 모......!"

앤드류가 저리 놀라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나도 지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인가 싶었으니까.

"내가 아무리 대단한 대장장이라지만, 이런 걸 무슨 수로 만들어? 로한 경이랑 같이 만들던 건 다른 거고."

앤드류의 말에 대답을 하던 훔카리안은.

나를 돌아다 보며 말을 이었다.

"아, 같이 만들던 놈은 아직 완성되려면 좀 남았네. 불을 삼키는 그림자랑 다 싸우고 나면 다시 들러. 그때쯤엔 완성해 놓을 테니까. 그래도 그 그림자 놈이랑 싸우러 가는데 빈손으로 보낼 순 없으니, 이거라도 가져온 걸세. 나름 대대로 우리 가문에 내려오던 놈인데, 아무래도 주인은 자네가 맞는 듯 허이."

이거라도, 라니.

이만한 무기는, 파오갓을 통틀어도 드문 명검이었다.

"자, 받게!"

그렇게 얼떨결에, 보이지 않는 칼날의 신검 모르테논이......

내 손에......들어와 버렸다.

'와, 와우. 개이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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