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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18화 (118/194)

118화. 저쪽인 것 같은데?

"크윽!"

리베카는 정신이 없었다.

뭔가 대책을 생각할 틈조차 없을 정도로.

수십 년 만에 만난 레바르센의 칼날이.

연신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날아들고 있었기에.

촥! 촤악!

레바르센의 실력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함께 하프 엘프로 서로에 의지하며 지내던 시절부터.

그때부터도 레바르센은 자신보다 강했다.

자신보다 민첩하고, 자신보다 묵직한 한 방도 가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전반적으로 상위 호환.

하프 엘프들은 그랬다.

특별한 몇몇을 빼고 거의 대부분 비슷한 수준을 가진 엘프들과 달리.

하프 엘프는 극단적이었다.

확실히 강하거나.

정말 안타까울 정도로 약하거나.

안타깝게도 리베카 자신은, 후자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힘을 원했다.

처음에는 갖가지 방법으로 스스로를 갈고 닦으며 검을 연마해보기도 하고.

마법을 배워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없던 재능이 그런다고 솟아날 리가 없었다.

그때, 그녀의 눈앞에는 기회처럼 보이는 한순간이 다가왔던 것이다.

악마였다.

거신족이라고 스스로를 밝힌 자가 데려다 준......악마.

그 악마는, 리베카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탈바꿈시켜 주었다.

조금 더 아름다운 외모와.

훨씬 강력한 힘.

그리고 조금 흉측하긴 하지만......그 힘을 담을, 거미와 비슷하게 생긴 이 육체.

리베카는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 같은 쾌감에 휩싸였었다.

육체는 감출 수 있었고.

미모는 빛이 났다.

더불어, 자신감은......하늘을 찔렀다.

물론 악마의 힘을 가진 후로는 오히려 제대로 힘을 발휘할 일이 없긴 했다.

오히려 힘이 생기고, 자신감이 붙게 되니.

그 당당함이 겉으로 드러나며 상대들을 물러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힘의 격차를 알아보지 못하고 덤벼드는 것은, 고작해야 동네 뒷골목의 양아치들 정도?

하지만 그런 순간조차도 압도적으로 강해진 힘은, 그 진가를 발휘하였으니.

리베카는 스스로가 이제 한 차원을 뛰어넘은 존재가 되었다고 여기고 있었다.

한데 지금.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 세월 동안 레바르센 역시도 예전과는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는......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힘을 얻은 자신보다도 오히려 더 강해진 것 같았다.

세상 참 더러웠다.

자신은 있는 걸 전부 포기하고 버리고 해서 겨우 얻어낸 힘이었는데.....

어째서 레바르센은......!

'모든 걸 거저 얻는 것이지?'

불공평하지 않은가.

짜증이 올라오는 와중에, 한 방 한 방 묵직한 살기가 담긴 훔카리안의 도끼질이 날아들었다.

모든 게 다 분했다.

모든 게......전부 다!

* * *

뚜두둑! 뚜둑!

리베카의 이성이 날아가는 순간.

육신은 완전히 악마의 소유가 되었다.

이제 세상에 리베카는 존재하지 않았다.

저게 다크 엘프의 숙명이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나......결국에는 악마로 변해, 자아를 완전히 잃고 괴물이 되는 운명.

그리고 그렇게 진정한 다크 엘프가 된 자들은......

"쿠워어어어어어!"

찢어질 듯 주둥이를 벌리며 괴성을 질렀다.

아니, 실제로 찢어졌다.

턱이 크게 아래로 빠지더니.

뚝!

입이 길게 벌어지고, 턱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며 괴이한 형태의 모양이 되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끝에 칼날 같은 손톱이 달린 촉수도 마치 날개처럼 어려 가닥이 뻗쳤다.

갈비뼈가 뱃가죽을 뚫고 튀어나왔고.

내장들이 쏟아졌다.

이미 평범한 생명체가 아니었기에, 필요 없는 장기들이 버려진 것이었다.

이게 다크 엘프였고......이게 악마의 힘을 가진 자가 치러야 할 대가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건과 체프먼의 입도 쩍 벌어졌다.

"리, 리베카가......더 이상하게......!"

"우웁!"

헛구역질까지 하는 녀석들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하게 변했다고? 글쎄......저게 너희들이 그리도 원하던 여인 실제 모습이다."

그에 모건과 체프먼 서로를 한 번 쳐다보았다.

자신들이 뭘 하려고 했는지, 떠올림과 동시에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그리고 이제 나도 슬슬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디아즈, 훔카리안, 그리고 레바르센만으로는 힘들 터였다.

실제로 얼핏 비등비등하게 전투를 하는 것 같아 보이긴 했지만......

벌써부터 그들이 밀리는 게, 내 눈에는 보였던 까닭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모건과 체프먼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 어딜 가는 것이오?"

"지금 저긴 팽팽한 상태라 함부로 끼어들었다간 오히려 피해가 늘어날 수도 있소."

그들 역시 나름 기사로 활약을 하던 자들이었다.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진짜로 저리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어설프게 참견을 했다가는 그나마 맞춰지던 균형까지도 흐트러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었다.

특히 저들 셋처럼 이미 보통의 경지를 뛰어넘어, 극도로 섬세한 전투를 펼쳐내는 수준의 전투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제 놈들 생각이고.

압도적으로 실력 차이가 나는 사람이 끼어든다면......균형 따위는 다 무시할 수 있음이었다.

나는 앞으로 걸어나가며 모건과 체프먼의 걱정에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힐끔 돌아보는 얼굴로 대답했다.

"구경이나 하고 있어라."

펄럭!

악마에게는 천사가 제격이지 않나?

나는 가우리엘의 날개를 펼치며.

"허, 허억......!"

"나, 날개가! 빛을 뿜는 날개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 * *

"다들 물러서라!"

그 외침과 함께 나는.

파지지직!

왼손에 번개가 휘감겨진 황금의 창을 창조해내며.

높이 떠오른 몸을 아래로 활공하였다.

리베카의 정수리를 향하여.

샤아아아아아.

가볍게 바람이 귓가를 스쳐 지나가면서.

시원한 소리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는 리베카의 머리통에 닿기 직전.

펄럭!

다시 날개를 펼쳤고.

마치 폭격기가 폭탄을 떨구듯이.

리베카의 머리 꼭대기에 황금의 창을 내리꽂았다.

하강을 하는 추진력과, 거신병의 왼팔의 완력이 하나로 합쳐지며 창은 살벌하게 공기를 갈랐고.

쩌저저저정! 콰광! 쩌저저정!

몇 번의 스파크와 화려한 폭발을 일으키며 리베카를 일순간에 집어 삼켜버렸다.

거친 불빛이 까맣게 물든 밤을 마치 정오의 태양처럼 눈부시게 만들었다.

다른 이들은 듣지 못한 것 같지만.

그 안에서.

"크그그그그그극!"

리베카의 처량한 신음이 들리긴 했다.

간만에 만난 해볼만한 적이라 그런가.

그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이 성장을 해왔는지 한눈에 그 차이가 눈에 보일 정도였다.

실은 리베카 자체가 그리 약한 적은 아니었다.

잠재력이 엄청난 디아즈나 레바르센 역시 협공을 했음에도 순식간에 제압하는 게 불가능한 상태였다.

물론 이대로 시간을 끌면서 장기전으로 간다면 점점 더 유리해질 것 같기는 했지만......

진정한 다크 엘프가 되어 버린 리베카를 상대로는 그것조차 쉽지 않을 터였다.

심지어 맷집 하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회심의 일격 중 하나인 황금의 창을 정면으로 맞고서도.

"로한 님의 공격을 버, 버텼다고?......"

그 광경을 직접 눈으로 본 디아즈가 놀랄 정도였다.

그녀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 또한 혀를 내두르기는 매한가지였다.

가까운 거리에서 느끼기만 해도, 저 황금의 창이 얼마나 강력한 건지는 느낄 수 있었다.

황금의 창이 뿜어낸 번개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공기조차 진동시키고 있었으니.

레바르센과 훔카리안이 당혹스러워했고.

"저 번개를 맞고도 살아 있다니."

"괴물이군......"

모건과 체프먼은 거의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뭐, 뭐가 지금......이게 말이 되는......!"

"우리가 괴물 잡는 괴물한테 덤빌 뻔했네......."

나는 그들의 중얼거림을 뒤로 하고.

날개를 접으며 급격하게 아래로 내리꽂혔다.

놈에게 닿기 직전, 날개를 살짝 비틀어 발바닥이 아래로 가게끔 몸을 돌려.

빠아아악!

두 발바닥이 한 번에 놈의 면상에 찍혔다.

거의 숨 돌릴 틈도 없이 연타로 이어진 공격.

그 두 번의 공격에 리베카의 대벌레같이 생긴 몸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디아즈와 레바르센 그리고 훔카리안 역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각자의 무기를 앞세워 달려들었다.

하지만.

촤라락!

리베카는 눈을 뜨지도 않은 채, 그들 셋을 붙잡아 냈다.

아마 의식적으로 막아낸 것이 아닌, 무의식적으로 잡아챈 것 같았다.

"제, 젠장!"

"으으으윽!"

"무, 무슨 힘이 이렇게......!"

촉수에 한 번 붙잡히는 그 순간.

수 많은 다른 촉수들이 또 날아들어, 완전히 무력화를 시켜버렸다.

촉수 하나하나의 힘이나 강도는 크라켄에 미치지 못했으나......그 수가 가히 압도적이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물론 그 기이하게 휘어지는 팔, 다리는 나에게도 날아들었다.

나는 허공에서 방향을 예측 불가능하도록 불규칙적으로 바꾸며 다시 쏘아졌다.

쉭! 쉬이익! 파앗! 파앗!

몇 번이나 귓가를 촉수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럼에도 나를 붙잡은 놈은 없었다.

내 공중 기동이 다이내믹한 것도 있었지만.

촥! 촥!

공간 베기 역시 못 쓰는 건 아니었기에, 피하기 힘든 건 전부 잘라버린 까닭이었다.

그 사이 리베카의 본체가 정신을 차리며 눈을 떴다.

세로로 쭉 찢어진 그 눈동자가 나를 발견하고는.

"캬아아아아아악!"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질러댔다.

이성이 날아갔기 때문일까.

공포를 느끼는 것조차 잊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고마웠다.

저 긴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도망치는 게 더 귀찮았으니까.

재밌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는 마치 탄막 게임을 하듯, 그 아득한 촉수들을 다 지나쳐.

서걱.

대가리를 몸통에서 잘라내 버렸다.

* * *

툭......데굴데굴......

격렬한 저항과는 다르게 허망하게 떨어진 리베카의 머리.

괴물은 괴물인지, 그런 상태에서도 리베카는 아직 죽지도 않은 채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그리고 놈의 몸통도 주인을 잃은 채 날뛰고 있었고.

하나 완전히 통제력이 소실된 그 몸통의 허우적거림은.

콰악!

훔카리안의 도끼질에 금방 축 늘어지게 되었다.

"동족의 복수다......! 퉤!"

레바르센은 리베카의 머리 앞에 섰다.

완전한 다크 엘프로 각성한 시간이 짧았던 덕분일까.

리베카는 제정신으로 돌아와 레바르센을 알아보았다.

"예상은 했지만......이게 우리들의 결말이네......"

레바르센은 무릎을 꿇고 앉아 리베카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이런 걸 원한 건 아니었어."

"하지만......이렇게 될 거란 건 알고 있었겠지?"

"......"

"어차피 죽는 입장이니, 과거의 친구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해줄게......저 로한이라는 자. 너희들과 한패인 것 같은데, 불을 삼키는 그림자의 위치를 알고 싶어 하더라고."

"그래......우린 거신족과 싸울 생각이야."

"훗. 포기해. 거신족은 커녕, 너희는 불을 삼키는 그림자조차 이길 수 없을 거야. 불을 삼키는 그림자는......죽지 않는 존재야. 벨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지. 게다가 불의 정령들의 힘을 삼켜, 그 불꽃까지 쓸 수 있어."

리베카의 마지막 말을 듣고 있던 레바르센의 얼굴은 점차 굳어갔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던 훔카리안도.

우연히 진실을 알게 된 모건과 체프먼도 다르지 아니했다.

그들의 절망에 찬 얼굴에, 리베카는 갈라진 턱을 껄떡거리며 비웃었다.

"불의 정령왕이라도 직접 데려오지 않는 한. 방법은 없을 거야. 너희는 다 죽은 것이나 다르지 않아......그 순수하고 강렬한 불꽃만이 그림자조차도 집어삼킬 수 있거든. 레바르센......너희들은 적을 잘못 골랐어. 후후."

음? 불의 정령왕?

그럼......적을 잘못 고른 건......

'내가 아니라 저쪽인 것 같은데?'

내 입가에 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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