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내가 가도 되고.
얼핏 놓칠 뻔한 옅은 악마의 악취.
이런 비슷한 경험을 나는 겪은 적이 있었다.
'악마 자체라기보다는......악마와 계약을 한 인간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에 내가 파티장 안쪽으로 시선을 던지자.
그 앞을 지키고 있던, 가드로 보이는 사내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섰다.
나보다는 머리 하나쯤은 더 큰 그 덩치로 내려다보면서.
"참석자시오?"
실제로 가드의 키는 거의 2미터에 달해 보였다.
귀족들을 지키는 일이라 그런가, 체격 조건을 많이 따진 모양이었다.
"초대장을 받고 오신 건지 물었소."
나를 위아래로 스윽 훑는 그 눈빛이 짜증 났지만.
소란을 일으켰다가 괜히 상대 쪽에서 눈치를 채고 도망갈까 봐 나는 조용히 대답을 했다.
"초대장은 받지 못하였다."
그에 가드는 작게 코웃음을 한 번 치더니.
"흥."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얼굴로 내 어깨를 툭 밀쳤다.
"여기는 네놈들 먹을 음식 있는 곳이 아니다. 당장 꺼져."
아무래도 덩치에서 밀리다 보니, 단박에 얕보인 모양이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안쪽으로 시선을 잠깐 돌렸다.
대체 어떤 놈이, 악마 특유의 악취를 풍기는지 확인하고 싶었기에.
하지만 가드는 그것조차 허용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사람이 말을 하면 들어 처먹어야지. 안 그래? 하여간 못 배운 새끼들이 꼭 이렇다니까?"
그리고는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밀치려는지.
손을 뻗으며 입을 놀렸다.
"눈 착하게 뜨고 새끼야."
덥썩.
입은 막지 못했지만, 나는 가드의 손가락은 잡아채 막았다.
그러자 가드는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듯한 얼굴로 말이다.
"어쭈. 잡아? 잡으면 어쩔 건데? 내가 누군지 몰라? 하긴 처음 보는 면상인 걸 보니, 정보가 많이 딸리는 모양이네."
"네가 누군데?"
"이 몸이 바로, 전직 슬로프 기사단의 기사다 이 말씀이야. 어때? 이제 정신이 좀 드나?"
하나 나는 여전히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슬로프 기사단도 모르는 애송이였나?"
그는 내 뒤에 선 사람들을 향해 엄포를 놓았다.
"어이. 끼어들 생각일랑 접어 둬라. 괜히 끼어들었다가, 네놈들 팔모가지도 꺾이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이놈은 이미 글렀으니까 포기들 하고."
그러자 앤드류가 작게 웃었다.
"풉. 아, 실수, 실수. 미안해요. 마음대로 하세요. 안 끼어들 테니까. 그쵸?"
그리고는 옆에 있던 오르헬에게 물었다.
오르헬 역시 다르지 않았다.
"어어. 안 끼어들어. 안 끼어들고말고. 할 수 있으면 해보던가."
그에 가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것들이......단체로 미쳤나. 어디, 눈앞에서 손 작살나는 꼴을 봐도 계속 헛소리할 수 있나 보자고."
저쪽 대륙에 있을 땐, 시작부터 일곱 기사단으로 스타트를 해서 이런 일은 드물었는데......
고작해야 제일 첫날에, 마차 위에서나 무시당했었지.
'간만에 이런 대우......재밌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가드는 손을 휘리릭 돌려, 자신의 손가락을 붙든 내 팔뚝을 붙잡았다.
나름 손기술이 나쁘진 않았다.
슬로프 기사단이 뭐하는 건진 몰라도, 나름 이름을 자랑스럽게 알릴만한 곳이긴 한 모양이었다.
마침내 그는, 한 손으로 내 손목이 안쪽으로 꺾이도록 붙잡은 후.
입꼬리를 싸악 말아 올리며 힘을 주기 시작했다.
꾸우우우욱!
"후회해도 늦었어!"
* * *
"이, 이게 왜 안 되는 거지?......"
가드는 계속해서 내 손을 꺾기 위해 힘을 주었다.
그러나 그 정도로 꺾일 손이었다면, 크라켄 같은 놈들을 상대했을 땐 진작 박살이 났어야 했다.
"왜! 왜 안 되는......흐으으읍!"
가드는 목과 관자놀이에 핏대를 잔뜩 세우며 힘을 주었다.
옆에 있던 다른 가드 역시 처음에는 장난치는 줄 알고 미소를 머금고 있었으나.
상황이 지속되자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다가왔다.
"이봐......지금 제대로 하는 거 아니지?"
"아니!......이게, 이러면 안 되는 건데......!"
한 30초 정도 여유로이 기다려준 나는.
이제 인내력이 바닥을 쳤다.
그래서.
휘리리릭, 뚜둑!
가드가 펼쳤던 그 동작 그대로 카피를 하여 돌려주었다.
"우악!"
2미터 정도의 그 거한의 가드는 팔이 과도하게 뒤틀린 탓에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신음을 흘렸다.
나름 자존심은 있는지 비명은 끝까지 지르지 않는 그였다.
"끄으으으으!"
나로서는 고마웠다.
괜히 소란을 피워 이쪽으로 시선이 몰리게 된다면.
내쪽에서 저 파티장 안의 악마를 간파하기 전에, 먼저 이쪽이 걸릴 테니까.
그리고 동시에 무릎도 꿇어 준 덕분에 내부 현장도 눈에 확 들어왔다.
나는 가드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천천히 눈동자를 굴려 목표물을 찾았다.
이 악취의 근원을.
'어느 놈이냐?......음?'
그 와중에 눈에 띈 한 인물이 있었으니.
귀족들 사이에서 교태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다.
타겟을 확인한 나는.
지금은 잠깐 물러서기로 하였다.
여기서 추격전을 벌여 봤자, 내게만 불리할 테니까.
'일곱 기사단의 명성도, 이단 심문관의 명성도 없는 지금은......여인을 쫓아봤자 나만 견제당하겠지.'
괜히 그랬다가 저 악마와 결탁한 여인이 도망이라도 쳐서 숨어버렸다간.
찾아 내는 게 몇 배는 더 힘들어질 터였다.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접근을 해야, 붙잡아도 놓치지 않을 터였다.
'시장에게 부탁을 해보면 뭔가 방도가 나오지 않을까?'
그래도 시장인 더스템 남작은, 내가 크라켄을 잡아 온 걸 제대로 알고 있는 권력자였으니까.
첫 만남에서 느낀 뉘앙스로는......나름 나와 인맥을 만들어 놓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이런 세상에서는 무력을 가진 사람이 대우를 받는 법이니까.'
나는 그런 궁리를 하며.
무릎을 꿇은 가드를 내려다보았다.
"다음부터는 잘 보고 덤벼."
"크윽......!"
나는 더 이상의 소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이쯤에서 참아주기로 하였다.
내가 놈의 손을 놓아주자.
가드는 손목을 품에 끌어당겨 쓰다듬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근데 그 눈빛이 좀 아니꼬운 것 같아 보였다.
"눈 착하게 뜨고."
그 순간, 가드의 눈빛이 홱 바뀌었다.
"이, 이 정도면 착하지 않나요?"
* * *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곧장 시청으로 향하기로 하였다.
더스템 남작을 만나, 조금 전 그 파티장에 들어갈 방법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손님. 자리를 비우신 사이, 손님 앞으로 서신이 하나 왔는뎁쇼?"
"서신?"
"예. 여기 있습니다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여관 주인이 내미는 서신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펼쳐 보았다.
"......"
그 내용을 살핀 나는, 약간 어이가 없어서 그대로 멈췄다.
그에 오르헬이 물어왔다.
"뭔데 그래?"
"굳이 시장을 찾아갈 필요가 없을 것 같군."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굳이 대답을 하지 않고, 들고 있던 서신을 빙글 돌려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로한 경에게.
경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오는 주말 무도회에 초대를 하는 바입니다.
많은 귀족들께서도 참가하실 예정이오니 부디 함께 자리를 빛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필로렌 시, 더스템 시장.]
그걸 본 오르헬이 피식 웃었다.
"히야. 시장 놈, 센스가 있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이야. 부러운데. 거기 들어가면 좋은 술도 많을 거 아냐? 크. 내가 여자였으면 따라 들어가는 건데."
그 말에, 디아즈와 그렌델의 표정이 찰나의 순간 잠깐 바뀐 것 같았다.
'착각인가......'
앤드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여자면 따라갈 수 있어요?"
오르헬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이고, 이 모자란 놈아. 너 무도회 한 번도 안 가봤지?"
"......예."
"무도회를 남자 혼자 가느냐? 아리따운 여성 분이랑 함께 샥 들어가는 거지."
"그런 거였어요?"
"너 어디 가서 입 열지 마라. 너도 입만 안 열면 꽤 멀쩡하게 생겼거든."
"......칫."
삐친 앤드류를 뒤로하고.
오르헬은 내게 질문을 했다.
"그래서, 누구 데려갈 거야?"
"......?"
"어허. 브라더까지 왜 그래. 멍청한 건 앤드류 놈 하나로 충분하다고. 둘 중 하나는 데려가야 할 거 아냐? 둘 다 데려가는 건 좀 오바고."
오르헬은 옆에 선 디아즈와 그렌델을 쳐다보았다.
"....."
"....."
묘한 긴장감이......숙소 내에 흘렀다.
그리고.
금세 다가온 주말.
나는 초대장을 들고.
그곳에 적힌 파티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앞서 들은 소문에 의하면, 이번 무도회는 매년 주기적으로 열리는.
나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무도회라고 하였다.
때문에 우리는 며칠 전부터 나름의 준비를 했는데......
나와 내 옆에 나름 잘 차려입은 여인은, 그 노력의 성과를 오늘 확인하게 될 터였다.
* * *
며칠 전.
오르헬이 누굴 데려갈 거냐는 질문에.
나는 즉답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이것이었다.
"옷을 입어보고 결정하지. 어색하지 않은 쪽을 데려가겠다."
한 템포 쉬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는데......
뭔가 그렌델과 디아즈 사이에선 더 격한,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펼쳐지게 된 것 같았다.
앤드류는 머리 뒤로 깍지를 끼며 웃었다.
"에이. 별거 도 아닌 일 가지고 뭐 그렇게 신경을 곤두세워요, 다들? 그냥 대충 아무나 가면 되지. 어차피 진짜 무도회 즐기러 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 다음 순간.
번뜩!
두 여인이 서늘한 시선을 보내었고.
앤드류는 식은땀을 흘리며 눈동자를 창 밖으로 돌렸다.
"어, 어......날씨 좋네. 오, 옷 보러 가시죠!"
그렇게 우리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을 안은 채.
몇 군데를 돌게 되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먼저 나가떨어진 것은 그렌델이었다.
"어째서 레시아 대륙 사람들 옷은 왜 이렇게 다 크냐고!"
키가 작은 그렌델에게는, 사이즈가 맞는 파티복을 도무지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디아즈가 낙첨이 되었느냐?
그건 또 아니었다.
콰당!
그녀는 어찌 된 영문인지, 하이힐을 신고 열 걸음도 걷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었다.
"......"
총체적 난국이었다.
심지어는 앤드류도 힐을 신고 저렇게 잘 달리는데.
"우하하하! 이거 키 엄청 커 보이지 않아요? 히히히히!"
그때였다.
때마침 우리가 있던 곳에 레바르센이 찾아온 것은.
"뭐 하고 있어? 얘는 또 왜 자빠져 있고?"
눈치가 빠른 레바르센은 순식간에 상황을 읽어버렸다.
"뭐야? 설마......한 명은 옷이 안 맞고, 한 명은 힐을 못 신는 거야?"
어이없다는 표정이 된 레바르센은.
디아즈를 부축해 일으켜주었다.
"고, 고맙습니다."
레바르센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어쩔 거야? 주말이라고 해도 며칠 안 남았잖아? 다른 사람이라도 찾아 줘? 아니면......"
그녀가 갑자기 말꼬리를 흐리기에.
나는 되물었다.
"아니면?"
"아니면......뭐, 내가 가도 되고. 옷도 대충 맞을 거고, 힐도 신을 줄은 아니까."
하긴.
확실히 레바르센도 굉장히 미녀 축에 속하는......
"주, 주말까지 확실히 걷는 법을 마스터 하겠습니다!"
라고 생각을 채 끝내기도 전에.
디아즈가 전의에 불타는 눈빛으로 내게 외쳤다.
그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으, 으음."
"예!"
뭘 또 이런 데서 고집을 피우는지......
디아즈는 주말까지 발 뒤꿈치가 다 쓸리도록 연습을 해냈고.
결국은 힐을 신고도 지금처럼 멀쩡히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내 팔짱을 낀 디아즈는.
"들어가시죠."
"......그러지."
완벽히 귀족 여식의 흉내를 내며 웃어 보였고.
생각보다 아름다운 그 모습에, 순간 나는 대답을 잠깐 삼켰다가, 겨우 해내었다.
그렇게 우리 둘은.
"무도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시장인 더스템 남작의 안내를 받으며, 무도회장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어? 어어? 네, 네놈이 왜......"
며칠 전 마주했던 그 가드도 또 마주하게 되었다.
때마침 더스템 남작이 허리를 숙이고는 팔을 펼쳐 무도회장 안쪽으로 나를 안내하였는데.
"들어오시지요, 로한 경!"
그 모습을 본 가드는, 입을 뻐끔뻐끔 거렸다.
붕어처럼.
"왜, 왜......왜?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