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우릴 지켜주기로 했잖나!
쓰러지기 직전의 함선이 정박한 필로렌 항구.
그 근처의 주점에서는 비슷한 이야기들로 활기가 돌았다.
다름 아닌 크라켄.
그도 그럴 것이, 뱃사람들에게서는 크라켄만큼 재해 아닌 재해도 없었을 뿐더러.
매일 바다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있어서 이것 만큼 재미있는 뉴스거리도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저게......크라켄이랑 싸운 흔적이라고?"
"그렇다던데? 실제로 크라켄 사체도 끌고 왔었다고 하더라고."
"뭐, 아무것도 없더만."
"시청에서 가져갔겠지. 크라켄 아닌가."
"에이......못 믿겠는데?"
"그거야 네놈이 늦게 입항해서 구경거리 다 놓쳤으니까 하는 소리지. 실제로 본 사람이 여기 몇인데."
그럼에도 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거짓말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괴물을 만났는데 어떻게 살아서 항구까지 들어온 거야?"
"죽였다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사체 끌고 온 거 아니겠어."
"......내가 귀가 슬슬 먹었나. 헛소리가 들리네."
"싸워서 죽였대. 크라켄."
"......"
사내는 잠시 멈칫하더니.
급발진을 하였다.
"야. 이 자식아. 내가 만만하냐? 왜 자꾸 거짓말을 하고 지랄이야!"
"아니 이 새끼가 속고만 살았나! 저기 저 사람들 모여 있는 거 안 보여?"
"저게 뭐? 저게 뭐! 사람들이 저기 왜 모여 있는데?"
"크라켄 죽였다는 그 괴물이랑 같이 배를 탔던 선장이, 저기 앉아 있다니까? 벌써 소문 쫙 퍼졌다고! 너만 몰라, 너만!"
이야기를 듣던 사내는, 바글바글한 사람들을 보며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 진짜라고? 그럼 지금까지 한 말이 장난이 아니라 다 진짜였다고?......"
맞은 편에 말을 꺼냈던 사내는 그런 그를 보며, 가슴을 퍽퍽 쳤다.
"아! 답답해 뒤지겠네!"
* * *
"지치긴 하네."
장장 삼 개월.
우리가 바다에 떠 있었던 시간이었다.
말이 석 달이지, 실제로 망망대해에서의 석 달은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것도 오는 길의 절반 이상은, 크라켄 때문에 반파된 상태로 항해까지 했으니......
나는 숙소의 침대에 털썩 드러누웠다.
"후우......"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난 후.
야식 거리를 좀 챙기고 금방 돌아오겠다며 나갔던 앤드류가, 문을 열고 돌아왔다.
"히힛!"
그를 본 오르헬이 미간을 찌푸렸다.
"금방 온다던 놈이 왜 이리 오래 걸렸어?"
"아니, 글쎄, 형님. 밖에 지금 난리도 아니라니까요?"
"뭐가? 무슨 일인데?"
"우리 완전 영웅 됐다니까요?"
"뭐? 영웅?"
앤드류는 손에 들고 있던 각종 음식들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크라켄 잡았잖아요, 크라켄을! 뱃사람들한테는 완전 악몽 그 자체였던 모양이더라고요. 죽은 사람도 엄청 많고."
"뭐. 그야 그렇겠지. 크라켄이 보통 괴물이더냐?"
"그러니까요! 당장에 크라켄 사체도 우리가 끌고 왔으니, 의심의 여지는 없고. 우리 배 선장도 지금 완전 인기 폭발한다니까요?"
"어이, 작은 브라더."
"예......?"
한껏 들뜬 앤드류를 보며 오르헬이 눈을 매섭게 떴다.
"너 지금 그래서, 저 밑에서 인기 실감한다고 놀다가 온 거지? 그래서 늦은 거고......그래서 술이 이렇게 다 미지근하게 된 거냐?"
확신할 수 있었다.
오르헬이 화난 이유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그저 미지근해진 술 때문이라는 걸.
"아, 아니......그게......그렇긴 한데요."
"에라이 철없는 놈아!"
오르헬이 손바닥을 세우고 앤드류를 쫓았고.
맞기 싫은 앤드류는 방을 빙빙 돌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들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혀를 찼다.
지금 술 온도를 걱정할 타이밍 아니었다.
"조용히 움직이려고 했는데. 이러다가 또 창이라도 날아온다면......"
그에, 오르헬은 발을 잠시 멈추고는 내 중얼거림에 대답을 하였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을 거 같더라고."
"음? 무슨 뜻이지?"
"그 창. 어디서 봤는지 가물가물했는데, 크라켄이랑 싸우다가 생각났어. 그거 바루툼의 창이다. 그 거신 놈, 천리안의 힘을 이용해서 다시 창을 던지려면 1년은 걸려. 우리가 배 탄 게 석 달에, 이것저것 준비했던 거 다 따져도......아직 반년 이상은 남았다는 소리지."
"그래?"
의외로 좋은 소식이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날아드는 창이, 사실 꽤나 부담스럽기는 했었기에.
내게 설명을 마친 오르헬은 다시 앤드류의 뒤를 쫓기 시작하였다.
앤드류는 억울한 얼굴로 머리를 감싸 막은 채 도망쳤다.
"아니, 왜요! 나도 크라켄이랑 싸웠잖아요!"
"싸우기는 개뿔! 바다에 들어가지도 않은 놈이!"
"들어가려고 하기는 했단 말이에요!"
"결국 안 들어갔잖아!"
그러는 사이에도 앤드류와 오르헬의 거리가 점차 줄어들었다.
역시 신체 능력은 오르헬 쪽이 조금 더 나은 것 같았다.
"공짜 술도 주던데!"
멈칫.
잔머리 굴리는 건 앤드류 쪽이 조금 더 나은 것 같고.
"고, 공짜 술을......준다고?"
"당연하죠! 저것도 공짜로 받아온 거라니까요? 밑에 내려가 봐요. 완전 대양의 영웅 취급이라 술 그냥 퍼준다니까요?"
"......"
잠시 고장이 난 듯 가만히 서 있던 오르헬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크흠......잠깐 바람 좀 쐬고 올까? 오래간만에 육지 구경도 좀 할 겸......"
"같이 가시죠!"
"그, 그럴까? 하하하!"
점점 앤드류가 오르헬을 잘 컨트롤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시끄러운 둘이 사라진 후.
혼자 남은 방에.
똑똑똑.
기척이 들려왔다.
아무도 없었기에, 나는 직접 일어서서 문을 열었다.
그러자 에이트럼의 얼굴이 보였다.
"이 밤 중에 무슨 일 있나?"
에이트럼은 애매한 얼굴로 말을 했다.
"일전에 이야기했었던 드워프 말이오."
아, 새로운 검을 만들어줄 거라던 드워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고 있다."
"방금 만나고 오는 길이오."
"벌써?"
우리가 항구에 도착한 건 이제 막 반나절쯤 지났을 뿐이었다.
한데 벌써 만나고 오다니.
대단한 체력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만나고 왔다는 사람의 얼굴이 왜 저렇단 말인가.
뭔가 잘못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검을 제작하는 데에 조금의 걸림돌이 생겼다고 하오."
감히 누가 내 새로운 검을 만드는 데 방해를 한단 말인가?
나는 인상을 쓰며 물었다.
"자세히 설명을 듣고 싶은데."
내 눈빛이 순간 워낙 살벌했는지.
에이트럼이 살짝 당황을 하였다.
"아, 아니 그게 실은......두 가지 문제라고 하는데. 하나는 대장간의 불이 꺼졌다 하오."
"불이 꺼졌다고?"
"그렇소. 물론 보통의 불이 아니라, 불의 정령이 피워낸 불이라고 하는데......그게 꺼져버려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태라고 하더이다."
뭐야.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쓰는 불이 정령왕의 불 아닌가.
보통 불의 정령과는 급이 다른, 정령왕의 힘 말이다.
해서 나는 다음 문제점을 들어보기로 했다.
"또 다른 건?"
내가 너무 쉽게 다음 단계로 넘겨버리자.
에이트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법이 있소? 불의 정령이 만든 불이라 구하기 힘들 텐데......"
"어렵진 않을 것 같군."
"저, 정말이오?"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크라켄과 싸울 때 자기도 제 눈으로 봤으면서, 그게 뭔지도 몰랐던 모양이다.
"그렇다. 또 다른 문제는 무엇이라고?"
"아, 그, 그게......첫 번째 문제가 진짜 큰 걸림돌이었고, 두 번째 건은 조금 사소한 문제인데. 대장간 근처에 수상한 자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하오. 이 부분은 단순히 검을 만들기만 하는 것에서는 방해가 되지 않는데......아무래도 보안상의 문제가 있어 보여서 말이오."
나는 그의 말에 긍정을 하였다.
"뭔지 모를 놈들이 얼쩡거리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지. 내가 동행하겠다."
"알겠소. 귀하께서 힘을 보태어 주신다면 큰 힘이 될 것이오."
그렇게 우리는, 드워프를 만나기 위해.
다음 날 곧바로 숙소를 나섰다.
* * *
나무가 울창한 숲.
이런 숲길은 안테아 대륙에서도 흔히 지나다닌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 레시아 대륙의 나무들은 뭔가 조금 느낌이 다른 것 같았다.
'하긴. 거리가 이 정도 떨어진 대륙인데. 나무 품종이 다른 게 당연한 건가.'
익숙하면서도 묘하게 무언가 다른 숲 속을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갔다.
어느 정도 깊이 들어오니.
샥.
몸을 숨기고 있던 레바르센과 에이트럼의 부관이 합류를 하였다.
"오셨어요? 단장."
"별다른 이상 징후는 없었고?"
"예. 어제하고 오늘은 접근을 하지 않네요. 아무래도 우리 쪽 사람들이 잠복한 걸 눈치챘나 봐요."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감이 좋은 모양이로군."
"같은 생각이에요."
레바르센은 나를 돌아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방해꾼은 둘째 치더라도, 불씨를 다시 피울 방법은 있는 거야?"
그녀의 물음에 오르헬이 코웃음을 쳤다.
"별걱정을 다 하네. 브라더한테 불씨 피울 걱정을 다 하는구만. 눈으로 봐 놓고 말이지."
"......?"
"크라켄 통구이 만들 때 만들어 낸 불꽃. 그게 그럼 무슨 반딧불이 불빛인 줄 알았어?"
"무슨 말씀이신지......"
"그거, 불의 정령왕이 가진 것과 같은 힘이다. 정령왕급 불꽃이라고."
사람 민망하게 무슨 자랑을 저렇게도 거창하게 하는지.
뭐, 맞는 말이긴 하지만.
우뚝.
오르헬의 그 말에.
레바르센과 에이트럼이 얼어붙어 버렸다.
나는 그런 그들을 향해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그렇게 계속 얼어붙어 있을 거면, 불길이라도 쬐여줄까?"
"아, 아니오! 괜찮소이다!"
"가고 있잖아, 지금."
농담인데, 새파랗게 질려버린 둘을 보며 피식 웃음이 터졌다.
그제서야 그 말이 장난이란 걸 깨달은 에이트럼이 머쓱하게 같이 웃었고.
레바르센은 헛기침으로 넘어갔다.
"크흠. 어. 마침 도착했네. 저기야, 저기. 저곳이 대장장이 우두머리, 드워프 훔카리안의 대장간이야."
우리는 동시에 레바르센의 손가락 끝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저곳이 바로......'
내 새로운 검이 탄생할 곳인 모양이었다.
* * *
끼이익.
대장간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흔히 대장간이라 흠은 느껴져야 할 열기도, 철을 두드리는 소리도......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고요할 뿐.
텅 빈 대장간은, 아직 대낮임에도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때.
한 귀퉁이에서 갑작스러운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 작고 묵직한 인기척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어서는.
콰앙!
힘껏 도끼를 내려찍는 게 아닌가!
물론 나를 비롯한 일행들은, 가뿐하게 회피를 하였고.
더불어 에이트럼이나 레바르센 역시 보통내기는 아니었기에 충분히 그 일격을 피해냈다.
바닥에는 날이 무섭게 선 도끼가 박혀 있었는데......
'맞았으면 제대로 쪼개졌겠어......'
나무 바닥이 갈라진 걸 보니.
작정하고 휘둘렀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다시 바닥에서 도끼를 뽑아 올려 재차 공격을 하려 했다.
"으으으윽!"
후두두둑.
그런 그의 얼굴이, 우리가 열어둔 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에 살짝 드러났는데.
에이트럼이 그를 알아보았다.
"훔카리안? 잠깐! 멈추시오! 우리들이오!"
"에이트럼? 자네인가?"
묵직하면서도 걸걸한 노인의 목소리.
에이트럼은 그 물음에 대답을 하였다.
"그렇소! 훔카리안. 무슨 일이오?"
키가 작은 노인은, 도끼를 놓으며.
고개를 들었다.
허리 정도까지 오는 짤막한 키에.
고목나무처럼 두터운 팔, 다리.
작기는 하지만 정말 강인해 보이는 몸을 가진 노인이 우리들 앞에 섰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니, 훔카리안! 무슨 일이오!"
훔카리안은, 온몸이 무언가에 베인 듯 성한 곳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오래 서 있지도 못한 채.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그에 깜짝 놀란 에이트럼이 그의 옆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부축을 하였다.
"그대가! 그대가 우릴 지켜주기로 했잖나! 근데 이게 뭐냔 말이다!"
"아니, 대체......"
고개를 갸웃거리던 에이트럼은.
그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기울어지던 태양이.
대장간 내부를 밝혀준 탓이었다.
"이, 이럴 수가......!"
대장간의 바닥은.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의해 죽은, 드워프들로 가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