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네가 왜 거기서 나와?
태양.
마치 작은 태양이 내 손안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가장 놀라는 것은 역시 마법에 일가견이 있는 그렌델이었다.
"로한 경의 손 안에......태양의 힘이......!"
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스, 스승님도 저런 불덩이는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 말에, 디아즈가 깜짝 놀랐다.
"화염 마법의 대가라 불리우는 그 크뢰이튼 경이 말입니까?"
"예. 저런 거 만들 수 있었으면, 제가 무시 하지 않았겠죠."
"......"
아......무시하고 있었구나......
그건 또 몰랐네.
어쨌든.
당장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이 거대한 놈을 어찌하느냐......'
일단 만들기는 만들었는데.
함부로 어디 투척하기도 곤란했다.
분명 큰 폭발을 일으킬 것이 뻔했으니까.
그렇게 불덩이를 들고 두리번거리던 그때.
오르헬이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것은 모르자돈의 괴수가 숨어 있다가 튀어나오면서 생긴 구덩이였다.
"저기다 던져 보는 건 어때? 사이즈도 얼추 비슷하고, 저쪽 근처에는 풀도 다 날아가서 더 불길이 번질 일이 없기도 없고."
"그건, 괜찮겠군."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모두들 구덩이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안전거리가 확보된 걸 확인한 나는, 크게 도약을 해 그대로 위로 뛰어올라.
타닷!
공중에서 아래로 그 불덩어리를 던졌다.
쿠구구구......!
격렬하게 타들어 가며 아래로 내리꽂힌 그것은.
퍼어어어어어엉!
숨이 턱 막힐 듯한 뜨거운 열기와 함께, 강력한 폭발을 만들어내며.
"크윽!"
"우아아아악?"
"여, 여기까지도 여파가......!"
"아이고, 뱀파이어 로드 살려!"
"삐약!"
생각보다 더 거대한 범위까지 그 충격파를 날렸다.
* * *
'근데 이걸.....쓸 일이 있으려나?'
구덩이 반대편 바닥에 잘 착지한 나는, 내가 던진 화염구가 만들어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효과는 굉장했다.
하지만, 동시에 약간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나 화끈한 힘을 얻었는데......
어디다가 쓴단 말인가?
악마 대침공의 원인인, 모르자돈의 괴수를 죽였다.
대침공이 일어나기 전에.
그러니 이제는......
쐐애애애액!
생각을 채 정리하기도 전에.
저 먼 곳에서부터 불길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전등이 가득한, 내가 살던 세상과는 달리.
이곳에는 밤하늘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는 불빛이 드물었다.
해서 미간을 찌푸리며 집중을 하였는데......
"......!"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 멀리에서 무언가가 이리 날아오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대체 저게 무슨......!'
그러는 사이 의문의 물체는 지척까지 다가왔고.
이제는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차, 창......?"
우리에게 날아오고 있는 것은.
거대한 창이었다.
사람이 던지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창.
그것은 바람이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흐으으읍!"
나는 반사적으로 왼팔을 뻗어.
카가가가가각!
창날의 옆면을 잡아 버텼다.
그럼에도 꽤나 큰 힘에, 발이 밀려 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지지직.
그래도 막기는 잘 막았는데.
문제는 하나의 창이 이어서 더 날아왔다는 것이었다.
그 두 번째 창은 곧장 나와는 반대편인, 오르헬이 있던 곳으로 떨어졌는데......
"제, 젠장!"
평소의 오르헬이었다면, 버겁기는 해도 충분히 그것을 막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조금 좋지 않았다.
멀쩡한 척을 하고 있어도, 그는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으니까.
반 박자 늦게 오르헬이 창을 막아내기 위해 팔을 뻗었다.
하지만 뻔히 보였다.
'막을 수 없겠어.....!'
그리 판단을 내린 나는, 다급히 날개를 펼쳐 그들이 서 있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다만 그럼에도 제때 도착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창이 날아드는 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주륵......
내 뺨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자칫하다간, 저들을 한 번에 모조리 잃을 수도 있었다.
'아, 안 돼......!'
이 세상에 유일한 내 편들이었다.
원래 살던 세상에서도, 저들만큼 나를 위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어느샌가 그들은 내 마음속에서, 가족과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 있을 정도였으니.
두 눈 멀쩡히 뜨고 그들을 모두 잃기 직전......
타닷!
수풀 속에서 하나의 인영이 튀어 오르더니.
"흐으읍!"
기합과 함께, 날아드는 거대한 창의 옆면을 타격하였다.
투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일순간 거대한 창의 궤도가 흐트러졌고.
그 찰나를 놓치지 않은 오르헬은.
"크으으으으윽!"
이를 갈며, 창의 각도를 비틀었다.
혼자 피하려면 피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랬다면 뒤에 서 있는 다른 이들이 죽었을 터.
자신의 뒤에 선 디아즈, 그렌델 그리고 앤드류를 위해 전력으로 버틴 오르헬이었다.
"혀, 형님!"
앤드류 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행히도.
오르헬은 창의 타격점을 다른 곳으로 돌려내는 데에 성공을 하였고.
쿠구구구궁......
거대한 창은, 그 사이즈에 걸맞는 굉음과 함께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꽂혔다.
털썩.
그리고 동시에 오르헬은 그대로 바닥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그는 누워서 하소연을 하였다.
"아이고, 오늘 진짜 뒤지게 힘드네!"
덕분에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자.
이제 모두의 시선은, 수풀 속에서 튀어나온 의문의 인물에게 돌아갔다.
그자는 깊게 눌러쓴 후드를 뒤로 젖히며.
"오랜만이네? 로한."
활짝 웃는 얼굴로 내게 인사를 해왔다.
나도 그녀를 알아보았다.
도적 플레이어블 캐릭터이자 하프 엘프인......
"레바르센?"
구면의 여인이었다.
* * *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내 첫 질문에, 레바르센의 예쁜 눈동자가 나에게 꽂혔다.
"원래는......다른 볼 일이 있었거든."
그녀의 눈동자는 이어서.
바닥에 나뒹굴고 있던 모르자돈의 괴수 머리를 향해 돌아갔다.
'저 놈......때문에 온 건가?'
내 예상이 적중한듯 하였다.
"그런데 벌써 처리를 해버렸네?......"
그녀는 놀랍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나도 나름 다른 방면에서 대침공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는 했는데......모르자돈의 괴수는, 솔직히 방법이 없다 싶었거든."
그리고는 다시 내게 눈길을 주었다.
"해서, 우리 노이아 결사대가 움직였지. 이곳에 모두 묻힐 각오로."
하나 나는 레바르센을 쳐다보지 않고, 그녀의 등 뒤로 시선을 던졌다.
인기척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사실, 창을 막아낸 직후부터 벌써 나는 급격히 가까워지고 있는 한 무리의 인원을 감지했었다.
당장 창을 막느라 정신이 없었었는데......
그 인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저들이 바로......
"반갑소. 나는 노이아 결사대의 에이트럼이오."
노이아 결사대였다.
익숙한 얼굴들도 있었다.
특히 가장 먼저 나선 중년의 사내, 에이트럼.
그저 결사대의 일원이라고만 소개했지만, 나는 그를 알고 있었다.
'노이아 결사대의 단장.'
노이아 결사대는 의외로 그 규모가 작지는 않은 단체였다.
결사대의 수장이 가장 최상부에 존재하고.
그 직속으로 세 명의 단장이 존재하였다.
각 단장들은, 자신이 맡은 구역의 실질적인 사령관이었는데.
에이트럼이 바로 원작에서 등장하는 다섯 왕국 등지 전반을 총괄하는 단장이었던 것이다.
노이아 결사대 자체가 엘프들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에이트럼 역시 겉은 저래 보여도 실제로는 꽤나 오랜 세월을 살아온 존재였다.
그 에이트럼이, 내게 악수를 청해왔다.
"말씀 많이 전해 들었소. 귀하께서 그......"
"로한이다."
"로한. 로한 경."
그는 나와 맞잡은 손을 쥐며, 물어왔다.
"과거 노이아 결사대의 일원이셨다고 들었소."
아, 맞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레바르센에게 그런 거짓말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상황만 일단 넘기려고 그랬던 건데......'
이렇게 되돌아올 줄이야.
하지만 나는 침착하게, 표정이 변하는 걸 참아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순간에 대한 대비책이 전혀 없는 건 또 아니었으니까.
'혹시나 이럴 줄 알고, 변명 거리를 생각해두긴 했었지.'
나는 내 준비성에 스스로 감탄을 하며, 입을 열었다.
"에이트럼. 그대가 이어받은 그 유산은, 때가 되면 빛을 발할 것이다."
"......!"
더 길게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그 정도만으로도 에이트럼은 알아들은 모양이었으니.
"그, 그걸 어찌......"
레바르센 시나리오의 종장.
에이트럼은 결국 대침공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가 이어받았던 고대 엘프의 유산인, 찬란한 눈물이라는 이름의 반지를 레바르센에게 넘긴다.
레바르센은 마지막 전투에서 그 힘으로 승리를 거머쥐게 되는데......
에이트럼이 레바르센에게 찬란한 눈물을 넘겨주기 직전.
그런 대사를 한다.
[내가 이어 받은 이 유산은, 때가 되면 빛을 발한다 했었지. 그때가 바로 지금인듯하다......이 물건의 존재는 오로지 나와 내 스승님만 알고 있는 것. 악마도 대항할 방법이 없을지니......쿨럭!]
내가 그런 대사를 잊을 리가 있겠는가.
실제로 에이트럼의 얼굴은 놀라움과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또한 굉장히 궁금한 게 많아 보이는 표정이었는데......
지금은 내 쪽에서 오히려 물어보고 싶은 게 더 많았다.
"어찌 알고 있는지는 차차 설명하도록 하지. 다만, 이 창. 이 창이 뭔지부터 좀 알고 싶은데."
어차피 이 대화의 주도권은 내게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에이트럼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은 질문을 삼키고 대답부터 꺼내었다.
* * *
"거신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오?"
"거신족? 지금의 신들, 그 이전의 신들이지."
"그렇소. 저 모르자돈의 괴수 역시 진정한 거신족은 아니오. 그들의 분노가 실체화된 괴물에 불과한 것이오."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땅에 박힌 창을 쳐다보았다.
'설마......'
"이 창을 던진 자가, 거신족이라는 말인가?"
에이트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어째서? 무엇 때문에? 그냥 심심해서 던졌는데, 하필 우연히 여기로 날아온 건 아닐 테고."
"귀하를 노린 것이 아닐까 싶소."
"나를? 왜?"
"위험한 존재이니까. 걸림돌이니까."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내가 언제 거신족과 만났다고......
"우리도 얼마 전에 알아낸 것이오만......거신족의 목적은, 악마들의 대침공이 일어나는 것이었소. 그러니 그걸 막은 귀하는 그들에게 굉장히 귀찮은 존재일 것이오."
지금까지의 내 활약으로, 대침공 자체는 막아진 게 맞는 모양이었다.
그걸 이루기는 했는데......
또 다른 게 튀어나왔다.
"거신족이? 왜?"
"아무래도 이야기가 좀 길어질 것 같소만. 함께 가시겠소? 그 검도 새로 고칠 겸."
에이트럼의 턱짓에, 내 옆구리의 검을 확인했다.
'이런......'
내가 던진 화염구의 여파 때문인가?
검집 째 검이 약간 흐물흐물하게 휘어 있었던 것이다.
"좋은 놈으로 구해 드리리다."
에이트럼은 사람 좋은 웃음을 보였고.
나는 그의 동행 권유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하지."
그렇게, 우리는.
갑작스럽지만 엘프 결사대와 함께 그들의 은거지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