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이름부터가 거신병의 왼팔이었지?
우르르릉......콰광! 쩌저정!
번개와 함께 쏘아져 날아간 황금의 창.
모르자돈의 괴수는 그것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흐읍?"
그리고는 몸을 비틀어 피하는 게 아닌가.
그 짧은 찰나에, 막을 게 아니라 피해야 하는 공격이라는 것을 간파하다니......
무식하게 생긴 거에 비해, 확실히 감이 좋은 놈이긴 한듯싶었다.
"이것 봐라?......이놈, 인간이 이런 힘을 쓴다고?"
놈은 그것을 보고도, 쫄기는 커녕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는 사이 나는 놈을 향해 몸을 낮추어 전속력으로 발을 굴렸다.
비록 황금의 창이 빗나가기는 했으나, 시선은 확실히 끌었다.
나는 그 빈틈을 활용할 생각이었다.
더불어 이곳은 내게 유리한 전장이었다.
높게 솟은 수풀은 나를 완벽히 가려 주었으나, 거신족인 모르자돈의 괴수는 그대로 몸통이 드러나게 만들었다.
그 이점을, 나는 놈에게 내어 줄 생각이 없었다.
놈이 이 전장에 적응을 하기 전에.
사사삭!
나는 곧바로 내달렸고.
"흐읍!"
놈이 오르헬에게 저지른 것과 똑같은 상처를 만들어주기 위해 가로로 검을 그었다.
번쩍!
햇빛에 검날이 번뜩이며 휘둘러졌다.
모르자돈의 괴수는 자신의 발톱을 세워 내 검을 막으려 들었다.
평소대로라면, 상대가 내가 아니었더라면, 틀린 판단은 아니었으리라.
모르자돈의 괴수가 가진 저 발톱은, 베지 못하는 것이 없었을 테니까.
심지어는 그게 상대방의 칼날일지라도.
하나 이번에는 다를 터였다.
'어디 한 번 막아보던가!'
나에게는 공간 베기라는 걸출한 고유 스킬이 달려 있었으니까.
그렇게 내 칼날과 놈의 발톱이 닿기 직전의 그 순간.
휘익.
모르자돈의 괴수 자신의 발톱을 다급히 회수하며 뒤로 펄쩍 뛰어올랐다.
거리를 벌린 놈이 가만히 나를 노려보았다.
"......무, 무슨 짓을 한 것이더냐!"
공간째 놈의 발톱을 베어버리려 했는데......
'더럽게 감 좋네.'
놈의 감각은, 거의 초월적인 육감 수준에 다다라 있는듯하였다.
나도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공간 베기가 닿기도 전에 몸을 피하는 놈은, 나도 처음이라 솔직히 당혹스러웠으니까.
"궁금하면 부딪혀 보던가!"
나는 그대로 발을 구르며 재차 검격을 이었다.
하지만 모르자돈의 괴수는, 내 도발에 걸려들지 않고, 나의 속도에 발을 맞추며 뒤로 물러섰다.
휙! 휘익! 휙, 휙!
덕분에 내 공격은 전부 허공을 갈랐다.
'칫!'
지금껏 이렇게 촉이 바짝 선 놈은 처음이었다.
황금의 창도 피해야 된다는 걸 바로 알아채고.
공간 베기도 닿기도 전에 피하고.
게다가 나름 지금까지 꽤나 성장했다고 생각한 내 검격도, 모조리 피해버리다니.
'사마귀 같이 생겼어도......거신. 역시 신족이라 이건가?'
그때였다.
촤악! 촤아악!
더 많은 발톱들이 모르자돈의 괴수 옆구리를 뚫고 솟아난 것이었다.
그로 인해 놈의 발톱은 두 개에서 여섯 개로 급증을 하였다.
그리고 공격 역시 여섯 배 빨라졌다.
샥! 샥샥! 샤샤샥!
거의 난도질에 가까운 수준의 연참격.
아예 내가 공격할 타이밍 자체를 없애버리는, 기가 막힌 전략이었다.
"후하하하하! 그래, 도망쳐라! 도망치고 발버둥치다가, 결국 무릎 꿇으리라!"
* * *
이대로는 승산이 없었다.
애초에 원래의 계획부터 모조리 내 계산과 달리 틀어진 상황이었다.
'이렇게 될까 봐, 가우리엘의 날개부터 찾아야 했는데......!'
지금의 내가 모르자돈의 괴수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지금도 회피하기 급급한 수준이었으니까.
'이런 괴물을, 페트리엘은 어떻게 상대를 한 거지?'
원작의 스토리였다면.
이 자리에서는 페트리엘이 이겼어야 했다.
아니면 최소 무승부라도.
원작에서는 페트리엘도 등장했고, 모르자돈의 괴물도 모습을 드러내었으니까.
그러니 페트리엘이 지지 않았다는 소리인데......
거기까지 생각을 하다 보니 조금 이상했다.
'페트리엘도, 모르자돈의 괴수도. 원작에서는 포용의 날개를 가지진 않았다.'
그 말인즉, 내게 패배했던 그 페트리엘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모르자돈의 괴수와는 비등하게 싸워 냈다는 의미였다.
포용의 날개 없이도.
'대체 어떻게......?'
페트리엘 놈을 쓰러뜨린 나도 버거워 죽겠는데.
무슨 수로......
'아?'
그 순간.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내 뇌리를 스쳤다.
'공중전.'
페트리엘은 공중으로 날아올라 공격을 퍼붓는 스타일이었다.
내가 싸웠을 때도 그러한 전술을 썼었고, 원작에서도 똑같았다.
반면 모르자돈의 괴수는 바닥에 딱 붙어서 싸우는 존재였다.
그 상성의 차이.
그게 나와 페트리엘의 차이인듯싶었다.
그러나......
해답을 알았다고 한들 내게는 방법이 없었다.
나는 하늘로 날 수가......
'......없나? 왜?'
의문이 들었다.
왜 날 수 없다고 단정 지었을까.
나도 가우리엘의 날개를 가졌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내 한계를 의심하기 시작한 순간.
나는 한 발 더 진화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펄럭......!
* * *
내 어깨 뒤로, 거대하고도 새하얀 날개가 펼쳐졌다.
천사의 날개가!
모르자돈의 괴수가 그 광경을 보고서는, 잠시 공격을 멈추었다.
그냥 놀라서 멈춘 것이 아니었고, 경계심이 올라간 까닭이었다.
"역시......! 네놈! 가우리엘의 힘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나 모르자돈의 괴수가 멈칫하는 것도 잠시였다.
놈은 결국 천사를 잡아먹고 사는 존재였다.
오히려 그 날개를 보고는 더 군침을 흘리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샤아아아아!"
심지어는 반쯤 이성이 날아간 듯 보였다.
지금껏 내지 않던, 의미 있는 언어가 아닌 괴성을 내지르는 걸 보니.
내가 악마를 보면 광증이 돋듯, 놈은 천사를 보면 광증이 피어나는 모양이었다.
나는 날개를 펼치며 빠르게 뒤로 물러선 다음.
파앗!
두 발을 동시에 굴려 바닥을 박차고.
펄럭!
바람을 타고 활공하였다.
'이, 이렇게 하는 건가?'
태어나서 내 날개로 날아보는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상황이 워낙 급박하다보니, 또 금방 익혀지는 것 같았다.
'여기서......지금!'
날개의 방향을 비틀며, 나는 공중에서 급속 선회를 해내어.
모르자돈의 괴수 뒤를 잡아냈고.
화아아아악!
놈의 목덜미를 노리며, 검을 휘둘렀다.
쐐애액!
하지만 모르자돈의 괴수는 내 생각보다도, 조금 더 괴물이었다.
뚜두둑.
놈은 소름 돋는 소리와 함께 머리를 180도 회전시키더니.
나를 향해 여섯 개의 발톱을 동시에 뻗쳤다.
놈의 의도는 확실했다.
동귀어진.
방어를 포기하고 나와 함께 죽을 작정이었다.
'여기서 사마귀 따위랑 같이 죽을 순 없지!'
나는 양쪽 날개를 순식간에 급히 접으며, 날개 끝으로 바람을 타서 몸을 회전하게 만들었고.
휘리릭!
내 몸통이 급격하게 회전을 하며 놈의 발톱 사이를 피해 지나가고.
그와중에 나는 검을 뻗어, 다시 놈의 목덜미를 노렸다.
한데, 모르자돈의 괴수 역시 그냥 당하고 있지는 않았다.
놈은 여섯 개의 발톱 중 두 개의 방향을 틀어.
내 검과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
'이런......!'
나는 어쩔 수 없이 공격 방향을 바꾸어.
내 손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놈의 발톱을 향해 검로를 틀었고.
서걱.
그것을 잘라내었다.
다만 남은 하나의 발톱은, 내 검면을 향해 휘둘러졌고.
촤악!
결국, 검 역시 오르헬의 옆구리처럼 반이 날아가 버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모르자돈의 괴수는.
뒤에 감추어 두었던, 비수와 같은 발톱 하나를 더 뻗었다.
검이 무력화되었다는 판단하에 이루어진 완벽한 콤비네이션이었다.
하지만 내 무기는 단순히 검 한 자루가 아니었다.
화아아아악!
거신병의 왼팔에 거대한 힘이 응집되며.
콰각!
날이 날카롭게 선 발톱이 닿기 직전에, 날을 잡아내었다.
그 광경을 직접 목도한 모르자돈의 괴수는, 처음으로 목소리를 떨었다.
"그, 그건......! 그건 말도 안 되는......! 거신족의 힘을, 고작 잡새 따위인 네놈이 어떻게......!"
속으로 나는 깜짝 놀랐다.
아......!
그러고 보니 이 힘.
'이름부터가 거신병의 왼팔이었지?'
천사의 날개에는 크게 놀라지 않더니, 거신병의 팔이 나오자 분위기 자체가 바뀌었다.
물론 그런 빈틈은 내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나는 날개를 펼쳐 그 반동으로 놈의 면상에 양발을 박고는.
그대로 왼팔에 힘을 끌어모아.
뚜두두둑!
붙잡고 있던 놈의 앞다리를 뽑아버렸다.
"으, 으아아악! 아아아아악!"
사마귀의 비명이, 살라리온 고원에 울렸다.
* * *
펄럭!
다시 펼쳐진 날개로, 나는 바람을 타며 위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아래의 전경이 넓게 들어왔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굉장히 새로운 느낌이었다.
더불어 거대한 거신족, 모르자돈의 괴수 또한 위에서 보니 다른 느낌이었고.
나는 놈의 주변을 회전하며.
마치 먹이를 발견한 독수리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르자돈의 괴수가 내게 잡새라고 비하하기는 했는데.
'사마귀라면, 새한테는 그냥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일 뿐이잖아?'
먹이 사슬의 구조를 모르는 건가?
나는 상위 포식자답게, 다리를 하나 잃고 쩔뚝쩔뚝 거리며 도망치는 모르자돈의 괴수를 향해 급강하를 하였다.
검은 비록 못쓰게 되었지만......
거신병의 왼팔에, 오른손은 보랏빛의 맹독 손톱을 세우고.
도망치는 거대한 사마귀를 향해 날아들었다.
쐐애애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며.
엄청난 속도로 가까워지는 나와 모르자돈의 괴수.
놈이 남은 다섯 개의 앞발로 나를 위협했으나.
여섯 개일 때에도 안 됐는데, 지금 될 리가 있겠는가.
휘리릭.
나는 더 고도화된 회전과 함께 놈의 칼날을 전부 피하며.
뚜둑!
또 하나의 발톱을 뽑아내었다.
동시에 치명적인 맹독이 담긴 오른손의 손톱으로, 놈의 몸통도 한 번 할퀴어 주었다.
촤악.
"크륵! 크르르르......!"
독 때문일까?
놈의 입에서 이상한 액체가 질질 흘렀다.
딱 봐도 상태가 정상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오르헬에게 저지른 꼴을 생각하면, 좀 더 가지고 놀다가 죽이고 싶긴 했지만......
나 역시 슬슬 체력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생각보다 날개를 펼치는 것은 많은 스태미너를 소모하는 느낌이었다.
'중간계에서 천계의 능력을 사용한 탓이다.'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 공격을 마지막 일격으로 할 생각이었다.
검이 부러질 때를 대비해 준비해두었던 비상용 소형 단검 하나를 품에서 꺼내 들고는.
꾸우욱!
오른손에 역수로 움켜쥐고.
쐐애애애애액!
다시 모르자돈의 괴수를 향해 활공하였다.
"캬아아악! 캬악!"
놈은 남은 앞발을 휘두르며 위협을 해왔다.
그러나 저런 허무맹랑한 협박이 통할 리 만무했다.
나는 유려하게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썩둑!
모르자돈의 괴수 목을 쳤고......
빙글!
잘린 놈의 머리가 허공으로 솟구쳐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