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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02화 (102/194)

102화. 입 다물고 가만히 버텨라!

"어디 보자......분명히 이쯤이 맞는데?"

오르헬은 지도를 노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지도를 왼쪽으로 돌려도 보고, 오른쪽으로 돌려도 보면서 두리번거리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중이었다.

그런다고 갑자기 잃었던 길을 찾을 리가 없긴 했지만.

살라리온 고원은, 굉장히 드넓은 지역이었다.

게다가 거의 사람 키만큼 자라 있는 잡초들이 시야를 가리고 있어 앞뒤 분간도 힘들었고.

지표가 될만한 것들도 별로 없던지라, 지도만으로는 특정 지역을 찾는 게 굉장히 어려운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오르헬의 능력이라면 가능한 일이었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자료가 차고 넘치는 대교구에서는 놀고먹다가, 이동하는 와중에 알아내려니 저 꼴이 된 거지.

"아직도 못 찾았나?"

나는 지도를 째려보는 오르헬을 째려보았다.

그에 오르헬은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야! 다 찾았어. 진짜로, 브라더."

"진짜는 개뿔."

"......거, 개뿔은 너무하네. 정말로 이 근처 맞다니까? 얘들아, 혹시 모르니까 전투 준비들 해봐. 어? 그 뭐냐. 준비 많이들 했잖아."

오르헬은 괜히 디아즈와 그렌델, 앤드류를 쳐다보며 말을 돌렸다.

실제로 우리는 이곳에 살라리온 고원에 들어서기 직전까지도 모르자돈의 괴수 공략에 대한 합을 맞추었었다.

그만큼 모르자돈의 괴수는 굉장히 상대하기 까다로운 괴물이었다.

이렇게까지 우리가 준비한 까닭이 있었다.

모르자돈의 괴수는 기본적으로 스펙 자체도 압도적이었는데.

양 팔의 낫은, 거의 단분자 칼날 수준의 날카로움으로 베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하며.

곤충 특유의 날렵함에, 거신족의 중량이 더해져.

속도도 빠르면서 공격의 위력도 강한, 소위 말해 육각형 능력치를 가진 몬스터로 분류되었던 것이다.

그걸로도 모자라 지능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당장 내 능력치와, 오르헬, 앤드류, 디아즈 그리고 그렌델까지 합쳐도......

'질 가능성이 더 높을 것 같다.'

고인물인 내가 내어 놓은 판단은, 아쉽게도 우리가 불리하다는 것이었다.

해서 우리는 방향성을 확실하게 잡았다.

선 성장, 후 전투.

모르자돈의 괴수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싸움이 일어나기 이전에 가우리엘의 날개를 먼저 찾아내어 손에 넣고.

그 후에 놈을 찾아내어 전투를 시도한다.

그것 외에는, 현명한 대처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심지어 그럼에도 추가적인 전략까지 마련을 해뒀을 정도이니......

모르자돈의 괴수는 그만큼 성가신 적이었다.

다행히도 놈보다 우리가 먼저 가우리엘의 날개 위치를 알아내긴 했는데......

그것도, 날개를 찾아야 의미가 있는 말이지.

"에휴. 그러니까 미리미리 좀 해 뒀으면 좋았을 것을."

내 한숨에 오르헬이 움찔 어깨를 움츠렸다.

"아니. 그렇게 빨리 다 읽고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 * *

"크르르르......"

살라리온 고원의 땅속.

바닥을 파고, 그 아래에서 몸을 숨긴 채 웅크리고 있는 생명체가 하나 존재했다.

거대한 사마귀와 비슷하게 생긴 놈은, 세간에서는 모르자돈의 괴수라 불리우는 괴물이었다.

원래라면 그는 가우리엘의 날개를 찾아낼 작정이었다.

거신족의 염원을 이루기 위하여.

이 땅의 추잡한 것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새로이 이어질 다음 세대의 세상을 위하여!

그러나 끝까지 쫓아오던 페트리엘이 방해가 되었다.

'그 날개 달린 잡새 녀석......! 결국, 끝까지 훼방이로구나!'

이 고원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가우리엘의 날개.

혈혈단신으로 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토록 넓은 땅을 전부 뒤엎는 것은, 거신족인 모르자돈의 괴수조차 만만한 일이라 할 수 없었기에.

해서 필요했던 게 아라크네의 도움이었다.

모르자돈의 괴수는 아라크네가 거미 군체를 다루는 그 힘을 빌리기로 했다.

거미 여왕의 지배를 받는, 무한한 숫자의 거미는.

거미 여왕에게 엄청난 양의 정보를 물어다 주었으니까.

이곳 살라리온 고원까지 범위를 좁힌 것 역시, 실은 아라크네의 정보력 덕분이었다.

한데......

'아라크네 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계속해서 정보를 물어오던 그녀의 거미들이.

어느 순간부터 뚝 끊긴 것이었다.

'배신은 아닐 터.'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된다면, 양쪽 모두 원하는 것을 손에 넣게 될 터였다.

한데 느닷없이 연락이 끊겼다?

모르자돈의 괴수는 직감했다.

아라크네가 죽은 것이라고.

그리고 모르자돈의 괴수가 알고 있는 한, 그런 일을 저지를 만한 인물은 단 한 명뿐이었다.

지금껏 자신에 끈덕지게 따라붙었고, 동시에 아라크네조차 상대할 수 없는 존재.

'페트리엘......이 씹어 먹어도 모자랄 놈!'

아마도 페트리엘은, 다른 가우리엘의 날개를 차지하고선 여섯 장의 날개를 완성해 완전체가 된듯싶었다.

그러니 아라크네가 도망조차 치지 못하고 죽었겠지.

만약 살아 있었다면 자신에게 도움이라도 요청했을 테니까.

동시에 그 말은 곧, 그 정도로 페트리엘이 강대해졌다는 의미였다.

'정면 승부는 피곤할 수도 있음이야.'

그에 모르자돈의 괴수는 꾀를 하나 내었다.

이 고원 아래에서 자리를 잡고, 페트리엘을 기다리는 것.

제아무리 완전체의 페트리엘이라 할지라도, 땅 속에서 튀어나오는 매복 공격에 당한다면 치명상을 피하긴 어려울 터였다.

딱 한 방.

딱 한 방만 제대로 먹인다면 페트리엘 놈도 크게 흔들릴 것이었다.

그렇게 생체 기관들을 거의 다 멈춰버리고, 식음도 전폐한 채 지하에서 기다린 게 자그마치 일주일.

드디어 누군가가 접근하는 게 그의 센서에 감지되었다.

인적이 드문 이곳에서 느껴진 인기척.

그는 분명 페트리엘 놈일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건......인간인가?'

페트리엘이 아니었다.

한 무리의 인간들에 불과했던 것이다.

페트리엘은 그의 부관 천사 하나만 대동하고 움직였으니, 놈은 아니라는 걸 금방 알아챈 모르자돈의 괴수였다.

자신이 노리던 먹잇감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그만 신경을 끄고 다시 숨을 죽이려던 찰나.

'......!'

모르자돈의 괴수는, 땅속에서 눈을 번뜩였다.

그저 인간 무리인 줄 알았던 놈들이 조금 더 가까워지자.

생각치도 못했던 기운들에, 민감한 자신의 육감이 경고를 울리는 게 아닌가.

'뱀파이어 로드?......'

그뿐만이 아니었다.

깊숙히 숨겨져 있어 희미하기는 하나.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는 천사 놈들을 잡아먹는, 포식자였으니까.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이건......가우리엘의 신성력이다......!'

* * *

오르헬은 약간 의기소침해진 모습으로 지도에만 집중을 했다.

저 장면을 보고 과연 누가 뱀파이어 로드라고 생각을 할까?

참......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런데 그때.

갑작스럽게 내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살기가 느껴졌다.

그것도 바로 발밑에서!

나는 다급히 바닥을 박차며 소리쳤다.

"아래! 매복이다!"

너무 갑작스러운 그 외침에.

다들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심지어 나를 제외하고는 이 중에서 가장 빠른 오르헬조차도 반박자 늦게 움직인 것이다.

콰가가가가!

바닥을 뚫고 튀어나온 그것은.

마치 날이 잘 벼려진 낫처럼 보였다.

나는 살짝 드러난 그 일부만 보고도 바로 알 수 있었다.

'모르자돈의 괴수!'

사마귀의 발톱과 같은 그런 살벌하고 거대한 낫을 달고 있는 놈은.

모르자돈의 괴수뿐이었으니까.

'미친! 인기척을 완전히 지우면서 땅을 파고 숨는 능력도 있었다고?'

내가 속으로 혀를 차는 그 순간에도.

놈의 발톱은, 사정없이 날아들어서.

촤아아악!

오르헬의 옆구리를 거의 절반쯤 잘라버렸다.

"커헉!"

오르헬의 피가 사방으로 튀고.

"혀, 형님!"

"오르헬 님......!"

"이, 이게 무슨......"

앤드류와 디아즈, 그리고 그렌델은 깜짝 놀라며 자세가 무너져 바닥에 엎어졌다.

가장 예민한 나조차도 감지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아니었다.

위험해 보일 정도로 치명상을 입은 것은, 오르헬이었으니까.

"커헉!"

모르자돈의 괴수는 땅을 비집고 솟아오르며, 우리가 밟고 있던 곳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고.

덕분에 오르헬은 몸이 반쯤 찢겨진 상태에서 바닥을 굴렀다.

나는 그의 이름을 외치며 눈을 부릅떴다.

"오르헬!"

그리고는 곧바로 그에게 향했다.

모르자돈의 괴수 앞을, 앤드류와 디아즈, 그렌델이 막아서고.

나는 오르헬을 살폈다.

"젠장......!"

오르헬은 바닥에 누워 나를 올려다보았다.

"난 괜찮......쿨럭!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놈부터 처리해, 브라더......"

그 짧은 말을 하는 동안에도, 오르헬의 입으로는 피가 역류하고 있었다.

"괜찮기는! 입 다물고 가만히 버텨라! 금방 올 테니까."

"어, 어이. 브라더. 나 안 죽어. 걱정 마. 쿨럭......!"

"그래. 네가 죽을 거라고 생각한 적 없다."

나는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모르자돈의 괴수를 향해 눈을 돌렸다.

모르자돈의 괴수가 내뿜는 위압감은......장난이 아니었다.

마치 총 한 자루를 들고 탱크를 눈앞에 마주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까.

왜 이름에 굳이 괴수가 들어가는지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놈에게서 풍겨지는 기세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의외로 전투 경험이 많은 앤드류는 물론이요.

그렌델과 디아즈도 반쯤 얼어붙은 느낌이었으니까.

그리고 앤드류, 디아즈, 그렌델이 긴장했다는 것을, 모르자돈의 괴수 역시 모르지 않고 있었다.

놈의 입가에, 만만한 사냥감을 포착한 포식자의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사마귀와 같은 얼굴임에도, 놈이 웃고 있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놈은 오르헬의 피가 묻은 발톱을, 입으로 가져가 핥았다.

"큭큭큭큭! 아깝군. 한 방에 토막을 낼 작정이었는데......"

그 한 마디가, 내 화를 더 돋웠다.

나는 앤드류, 디아즈, 그렌델을 지나쳐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작게 그들을 향해 속삭였다.

"오르헬을 살펴라."

"아, 알겠습니다."

그들 셋은, 모르자돈의 괴수에게 병장기를 들이민 채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고.

나는 반대로 모르자돈의 괴수에게 다가섰다.

모르자돈의 괴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어왔다.

"이거, 재미있는 놈이로고. 페트리엘 놈이 그 힘을 차지하고 나타날 줄 알았건만.....왜 인간인 네놈이 가우리엘의 기운을 품고 있는 것이지? 무슨 짓을 벌인 것이더냐?"

하나 지금의 나는, 사람 좋게 그따위 것들에 대한 설명을 해줄 기분이 아니었다.

"내 입에서 곱게 대답 나올 거라 생각했다면......오산이다."

"하아, 그래? 팔다리가 다 잘려도 대답을 않고, 그딴 소리가 나오는지 어디 한 번 볼까?"

나는 빠드득 이를 갈며 모르자돈의 괴수를 노려보았다.

"내가 할 말이다. 곱게 죽을 생각은......집어 치워라!"

그와 동시에 내 손에서, 번개를 머금은 황금의 창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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