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그냥 잡몹이 아니라
수도 벤마이어로 들어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로제스타와 아펠리아 덕분이었다.
물론 우리끼리 오더라도 특별히 붙들려 시간이 질질 끌리는 일은 없었겠지만.
로제스타와 아펠리아가 함께 있으니, 수도성의 성문이 그야말로 자동문으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그 둘은 이미 도시 입구에서부터 모두가 알아보는 유명 인사였다.
"로제스타 경! 귀환을 환영합니다!"
"아펠리아 사제님, 먼 길 다녀오셨다면서요? 고생 많으셨어요!"
성문을 지키는 병사부터, 길거리의 시민들까지.
누구 하나 그들을 어두운 얼굴로 보는 사람이 없었다.
마주치는 족족 환하게 웃으며 반길 뿐.
'연예인이 따로 없네.'
평소 그들의 행실이 얼마나 좋았는지 엿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전에도 느꼈듯, 둘 다 꽤나 미인들이었으니.
모양새가 더더욱 잘나가는 아이돌이 나타난 현장처럼 보여졌다.
앤드류도 그 광경에 혀를 내둘렀다.
"우와. 환대가 장난이 아닌데요? 나도 나름 일곱 기사단인데......쩝."
그러는 와중에도 로제스타와 아펠리아는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인사를 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간 잘 지내셨죠? 아주머니?"
나는 내심 그녀들의 강인한 모습에 놀랐다.
톰 신부의 죽음을 확인한 후.
그녀들은 큰 상실감에 고작 며칠 새 얼굴이 반쪽이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힘든 내색 일절 없이 모든 이들에게 저렇게 밝은 얼굴을 내비치다니.
'힘들 때야말로 그 사람의 진짜 본성이 나온다고들 하던데......'
아마 저 모습이 로제스타와 아펠리아의 본성이리라.
톰 신부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로제스타와 아펠리아를 보니 분명 훌륭한 사람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저렇게 훌륭하게 두 사람을 키워내지 않았던가.
그렇게 우리는 바로 벤마이어 대교구로 향했고.
벌써 우리가 온다는 걸 들었는지, 여러 사제들이 밖으로 마중을 나와 있었다.
"어서들 오너라."
그리고 그 가운데에.
인자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한 노인이 서 있었다.
그가 바로 이 벤마이어 대교구의 수장, 트라벤 대교구장이었다.
* * *
"긴 원정의 여독을 풀 시간도 없이 이리 면담을 부탁해서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대주교님. 괜찮습니다."
"예. 문제없어요."
의외로 이곳은 다른 교구들과는 전혀 다른,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트라벤 대주교는, 조금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다름 아니라, 혹여 톰 신부 말이다. 그는 찾았는가 그게 궁금해서......"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사람부터 챙기는 트라벤 대주교.
그러나 그의 선한 물음에도, 쉬이 대답을 하는 이는 없었다.
겨우 입을 뗀 것은 로제스타였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래? 후......그렇게 되었군. 그렇게 되었어."
트라벤 대주교는 눈을 질끔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반응을 보아하니,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모양이었다.
"그 친구. 시신이라도 건졌더냐?"
악마와 싸운다는 건 그런 일이었다.
시신조차 제대로 회수하기 힘든......그런 일.
실제로 죽기 직전의 톰 신부 역시 온전한 모습은 아니었다.
괴물이 되다가 실패한, 기괴한 형체의 무언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로제스타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였다.
"예. 다행히 시신을 거두어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무덤을?
"예. 여기 계신 로한 경께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그 정도만 되어도 정말 다행이구나......"
고개를 끄덕인 트라벤 대주교는 그제서야 내게 시선을 돌렸다.
"이거, 은인께 인사가 늦었구려. 로한 경이라 하셨소? 톰 신부의 마지막 가는 길을 챙겨주어 고맙소."
"목숨을 걸고 싸운 성기사에게 응당 합당한 보답을 한 것뿐이다."
"하하. 다들 성기사를 존경한다고는 하지만......성기사들의 노고를 진정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지. 그 마음만으로도 감사드리오."
내게 가벼운 목례를 한 트라벤 대주교는, 로제스타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한데......여기 손님분들은, 누구신 건가? 자세히 소개를 좀 시켜주지 않겠느냐?"
그 질문에, 로제스타는 왼쪽에서부터 차례대로 한 명씩 정식으로 소개를 시작했다.
"그렌델 님. 헤세테 왕국 크뢰이튼 경의 제자십니다."
"오! 크뢰이튼 경의 제자라니.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오."
"반갑습니다."
그리고 옆으로 넘어가.
"이 분은 앤드류 경. 일곱 기사단의 일원이십니다."
"앤드류 경. 우리는 구면이지요?"
"예. 오랜만이네요!"
"잘 오셨소."
로제스타는 저쪽 한구석에서 의자 몇 개를 붙여 놓고 드러누운 오르헬을 가리켰다.
"저분은......그......"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뜸을 들이는 로제스타에.
트라벤 대주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말을 하다가 마는 게야?"
"그......뱀파이어 로드십니다."
"아하. 뱀파이어 로......엥? 배, 뱀파이어 로드가 왜? 어째서?"
"여기 로한 경이랑 함께 볼 일이 있으시다고......"
트라벤 대주교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을 해도 소개는 다 끝나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또 이쪽은 디아즈 경. 성기사이시면서 동시에 일곱 기사단의 부관을 하고 계십니다."
"처음 뵙겠소, 경. 디아즈 경은 앤드류 경의 부관이신 건가?"
그에 디아즈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는 이쪽 로한 님의 부관을 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군. 그럼......로한 경도?......"
로제스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로한 경께서도, 일곱 기사단의 일원이십니다."
"오? 그래? 처음 뵙는 얼굴이구려. 일곱 기사단에 든 것, 축하하는 바이오."
"음."
우리는 악수로 인사를 나누었고.
로제스타는 설명을 보태었다.
"그리고, 또 이단 심문관이십니다."
"아하, 이단 심문관도 계셨군. 어떤 분이 이단 심문관이신가?"
"로한 경이요."
"......?"
"로한 경이 이단 심문관이십니다."
"일곱 기사단이라면서?"
"예. 그리고 이단 심문관이십니다."
"......?"
아주 혼란스러워하는 트라벤 대주교를 보며.
로제스타가 작게 웃었다.
"괜찮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 * *
"그, 그럼 로한 경께서......아라크네를 죽이셨단 말인가?"
더듬더듬 거리는 트라벤 대주교에게, 아펠리아가 대답을 하였다.
그녀는 직접 본 것을 꽤나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는 재능이 있었다.
덕분에 트라벤 대주교는 마치 눈앞에서 그 광경이 펼쳐지기라도 하고 있는 듯, 마른 침을 삼키며 아펠리아의 말에 집중을 했다.
"그렇죠! 마지막 팔까지 싹뚝 베어버리시고는, '말이 많아, 귀 아프게.'라는 한 마디와 함께 뎅강!"
"오오오!"
트라벤 대주교는 거의 반쯤 자리에서 일어서 경청을 하고 있었다.
아펠리아의 설명이 쓸데없이 디테일 했던 탓에, 트라벤 대주교는 거의 홀딱 빠진 상태였다.
막상 내 앞에서 내가 해치운 일을 신화 속 영웅담처럼 듣고 있자니.
뭔가 모르게 민망해지는 기분이었다.
슬슬 아펠리아의 이야기도 끝이 났으니, 나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아펠리아의 말을 끊으며 트라벤 대주교를 쳐다보았다.
"그건 그렇고,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오, 말씀하시오!"
"......"
내 활약상을 듣기 전과 후의 태도가 많이 바뀐 거 같은데?......
굉장히 내게 적극적으로 변한 트라벤 대주교였다.
뭐......덕분에 물어보기는 편할 것 같다만.
"그, 반지."
나는 트라벤 대주교의 손가락을 보며 말을 이었다.
놀랍게도 트라벤 대주교 역시 로제스타와 똑같은 검은 천둥의 반지를 끼고 있었던 것이다.
"아. 이것 말입니까? 보는 눈이 예사가 아니시오. 하하하!"
"로제스타도 같은 것을 가지고, 번개를 다루던데."
"검은 천둥의 반지! 라고 들어 보셨소?"
왜 모르겠나.
내가 벌써 그걸로 죽인 악마가 몇인데.
"실은 이 검은 천둥의 반지는, 가품이라오."
"가품?"
"진짜는 따로 있다고 하오. 이 가품은 그 진품을 보고 이곳 벤마이어 초대 대주교께서 직접 만드셨다고 하는데......초대 대주교께서는 연금술의 왕국 발트라스 출신이셨다고 전해지고 있소."
"연금술로......만들었다는 것인가? 그게 가능한 일인가?"
"놀랍게도, 그렇소. 진짜 검은 천둥의 반지는 사실, 신의 무기였다고 하더이다. 그래서 신만이 쓸 수 있었다지."
"신의 무기라......"
'신만이 쓸 수 있다니......그럼 내 것도 가짜인가?'
"하지만 진품은 악귀 대공 아크비톤이라는 심연에서 탈출한 고대의 고위 악마를 봉인하는 데에 쓰였다는 기록이 있긴 하던데, 정확한 위치는 아무도 모르오."
그 말을 듣던 앤드류가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로한 경! 그때, 시포레오에서 전투 한 번 거하게 벌였다면서요."
"시포레오?"
알고 있는 지명이었다.
내가 썼던 검은 천둥의 반지를 찾은 곳이, 바로 시포레오의 지하 유적지였으니까.
그리고 그걸 꺼내고, 안개의 일곱 기사 크라우스와 함께 이상한 잡몹 하나를 힘들게 쓰러뜨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잡몸에 고생고생해서, 성장하는 데 집중을 좀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
"그게 악귀 대공 아크비톤이였잖아요?"
"......?"
응? 이게 무슨 소리야?
"엥 설마 모르고 있었어요? 저는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제가 로한 경 만나려고 따라가다가, 크라우스 아저씨한테 들었거든요. 시포레오 대교구 측에서 밝혀냈다고. 뭐라고 그랬더라? 고대종 마수, 작위를 빼앗긴 고대 악마 귀족, 뒤틀린 심연의 탈주자......뭐 그런 명칭들이 줄줄 붙어 있었는데."
전혀 몰랐다.
그게 그런 괴물이었다고?
그냥 잡몹이 아니라?
'모르면 겁이 없다더니. 진짜 겁도 없이 덤볐었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지금 당장 대공급 악마와 싸우라고 해도, 쉽지 않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그 당시에 싸운 게 악귀 대공이었다니......
'이, 일단 원작의 스토리대로라면 거의 굶어 죽기 직전이었을 테니까. 그래서 그나마 이겼겠구나. 아니, 근데 잠깐만. 그럼 내가 가진 게 신만이 쓸 수 있다는, 신의 무기라고......?'
나는 침착한 척을 하며, 그때의 상황을 되짚어 보았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을 다른 이들은 침착함을 유지하지 못했다.
저 멀리서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오르헬이 벌떡 일어났고.
"뭐? 악귀 대공 아크비톤을 죽였다고? 브라더가? 직접? 진짜로?"
로제스타와 아펠리아도 눈이 동그래졌다.
"로한 경은 정말 사람 끝도 없이 놀라게 하시는 재주가 있으신 거 같습니다......아크비톤이라니......!"
"와, 와......! 이건 정말......말도 안 나오네요......"
그렌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게......되는 거였습니까?"
사실 제일 놀란 건 나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