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99화 (99/194)

99화. 수고를 덜었군

"휘유, 정말 가차 없네."

아라크네의 목이 바닥에 툭 떨어지는 순간.

오르헬이 혀를 내둘렀다.

동시에 아라크네의 거미줄에 발이 묶여 있던 그렌델과 아펠리아도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렌델은 아쉬운 표정을 내비쳤다.

"뭐 해보기도 전에 다 끝나버린 거 같습니다?"

아펠리아는 웃으며 대답했고.

"덕분에 편하지 않았나요?"

나는 속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끼며.

이만 검을 거두었다.

그러는 사이, 먼저 동굴 내부로 진입했던 인원들이 다시 돌아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행색을 보아하니 특별히 추가적인 전투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았다.

한데......

그들의 표정은, 그와 별개로 썩 밝지가 않았다.

오라크네가 죽어 있는 걸 보았음에도 말이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디아즈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나?"

디아즈는 잠깐 아펠리아의 얼굴을 살피더니.

이내 내게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로한 님. 안쪽을 직접 한 번 봐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의 말투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그렇게 우리는, 선발대의 뒤를 따라 고울룬 동굴 가장 깊숙한 곳으로 발을 들였다.

* * *

내부로 들어갈수록 나를 포함한 후발대의 표정 역시 차갑게 굳어갔다.

지옥과 다름없는 처참한 광경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횃불의 작은 불빛 아래, 시야에 들어온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바닥에는 피로 그려진 마법진이 여기저기 퍼져 있었고.

수 없이 많은 그 마법진 가운데에는, 하나씩 제물이었던 사람들이 죽은 채 드러누워 있었다.

목이 잘린 채로.

앞서 만났던, 여덟 개의 다리가 달린 거미 병정들과 달리.

사방에 널브러진 이 실패작들은, 다리가 모자라거나 아니면 눈알이 모자라는 등.

딱 보아도 하자가 있는 괴물들이었다.

디아즈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실패한 괴물들......전부 살아 있었습니다. 추측컨데, 제대로 성공한 거미 병정들의 먹이 정도로 사용되어 진 것 같았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군데군데 뜯어 먹힌 실패작들이 있습니다."

나는 시야를 크게 두고 주변을 살폈다.

확실히 디아즈의 말 그대로, 몸통이 뜯어 먹힌 거미 괴물들이 몇몇 보였다.

"이들을 구제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해서......저희가 목을 베어 편안히 해주었습니다."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슬프게도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나 또한 알고 있었다.

"잘하였다. 어차피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으니까."

"예......"

다만 약간 아쉬움은 있었다.

"아라크네 그 놈......조금 더 괴롭히다가 죽일 걸 그랬군."

이 풍경은, 인간이 아닌 뱀피이어 로드 오르헬조차도 썩 불쾌한 듯 혀를 내를 정도였으니까.

"그러게. 이거, 이거......생각보다도 더 지독한 놈이었어."

오르헬의 그 말에, 그렌델도 동의하였다.

좀 격하게.

"와, 진짜 미친 개 또라이 새끼였습니다!"

"......"

"......"

한편.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아펠리아의 얼굴이 점점 더 얼어갔다.

그녀는 먼저 들어갔다가 나온 로제스타를 쳐다보며 억지로 웃어 보였다.

"벼, 별일 없었지요?"

"......"

하나 로제스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목이 잘린 괴물들을 지나 걷다가.

로제스타는 한 괴물 앞에서 멈춰 섰다.

"아펠리아 이단 심문관. 마지막 인사라도 하십시오......"

"그게 무슨......"

"톰 신부님이십니다."

아펠리아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로제스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로제스타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제서야 이 모든 게 현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인 아펠리아는.

털썩 무릎을 꿇은 채.

"아아아아아아아아!"

잘린 톰 신부의 머리를 안고.

한참을......한참을 울부짖었다.

* * *

톰 신부와의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도록 로제스타와 아펠리아를 남겨두고.

우리는 조금 더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안쪽의 막다른 곳에서.

불길한 육망성을 우리는 마주하였다.

거꾸로 뒤집힌 거대한 육망성을.

디아즈는 나를 돌아다 보며 말을 했다.

"이것 때문에 와보시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나는 그 육망성을 둘러 걸어 다니며 살폈다.

하나 내가 그런 쪽의 지식이 있을 리 만무했다.

원작에 나온 것들이라면 몰라도, 이건 아예 처음 보는 것이었으니까.

"......"

육망성을 이루는 모든 점에는 잘린 머리가 하나씩 붙어 있었는데.

그것을 본 오르헬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거......딱 보니까 탐지용 마법인데?"

다행스럽게도 이 육망성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낸 모양이었다.

"탐지?"

"그래. 천족 탐지. 저 육망성. 정확히 천족의 마법을 그대로 뒤집어 만든 거거든. 잔존 마력을 보아하니......조금 전에 마법을 성공 시켰나 본데?"

역시 오래 살아온 오르헬의 지식은 예사롭지 않았다.

앤드류는, 먼저 이곳을 수색하고 왔던 탓에 오르헬의 말을 듣자마자 무언가 떠올랐는지 손가락을 튕겼다.

"아, 그럼 이거 보면 뭔가 도움이 될 게 있을까요?"

그는 저 반대편 구석을 가리켰는데.

그쪽으로 횃불을 가지고 가자.

이상한 그림이 나타났다.

앤드류는 그것을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이거, 아무래도 그냥 그림이 아니라 지도 같아 보였거든요. 처음 볼 때부터. 그런데 확증이 없어서 일단 조용히 있었는데......"

나는 그 그림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도가 맞군."

"역시!"

이번에는 내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이것은 파오갓의 월드맵을 그대로 축소해 놓은 축소판이었기에.

나는 지도의 중심부를 손가락으로 찍었다.

"이곳이 고울룬 동굴이다."

오르헬 역시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럼 이쪽이 고울룬 마을일 테고......여기, 표식이 찍힌 부분이......"

"가우리엘의 날개가 있는 곳."

내 대답에.

오르헬과 내 눈이 마주쳤다.

오르헬이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그렇구만. 그걸 추적한 거였어. 그래......하하. 이거, 독거미 덕분에......"

나도 그를 보며 함께 미소 지었다.

"수고를 덜었군."

* * *

아라크네 동굴에서 예상치 못한 수확을 얻은 후.

우리는 동굴을 빠져나왔다.

우리가 가우리엘의 날개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고 오는 사이.

로제스타와 아펠리아는 마음을 추슬렀다.

말이 쉽지만, 사실 우리가 돌아오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로제스타와 아펠리아는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물론 완전히 슬픔을 떨쳐낸 얼굴은 아니었지만......그래도 완전히 주저앉은 모습 또한 아니었다.

동굴 입구에 다시 선 우리.

로제스타가 내게 물어왔다.

"고울룬 마을의 사람들은......이제 괜찮은 겁니까?"

"아라크네의 독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던 자들은, 곧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럼에도 약간의 혼란은 있겠지. 가능하다면 교단 측에 도움을 요청해 사람을 보내어, 한동안 마을을 안정시킬 필요는 있어 보이는군."

내 말에, 로제스타가 머리를 주억였다.

"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제가 책임지고 교단에 요청을 올리겠습니다."

"음."

"그럼......마을의 문제는 해결되었는데. 로한 경께서는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안쪽에서 내가 찾던 물건의 행방을 알아내었다. 살라리온. 그리로 가야겠지."

"살라리온이라면, 여기에서 남쪽 아닙니까."

"그렇다."

"그러면, 가시는 길에 벤마이어 대교구에 한 번 들르시는 건 어떻습니까? 식료품이나 보급과 장비 점검도 할 겸."

발트는 이 아라젠트 왕국의 수도였다.

당연히 발전도 충분히 되어 있을 것이고.

필요한 물건들을 구하기도 어렵지 않을 터였다.

더불어 어차피 지나쳐야 하는 경로이기도 했다.

또한 원정대의 전반적인 살림을 챙기는 디아즈 역시, 보급이 필요하다는 생각인듯하였고.

"슬슬 정비가 필요하긴 합니다, 로한 님."

"그래......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정황상 모르자돈의 괴수가 포용력의 날개를 찾는 것은 이미 막은 상황이었다.

모르자돈의 괴수는 아라크네로부터 정보를 얻고 있다고, 페트리엘이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방금 확인한 바에 따르면, 아라크네도 이제 막 가우리엘의 날개가 어디 있는지 알아낸 것 같았으니......

'모르자돈의 괴수가 가우리엘의 날개 위치에 관한 정보를 얻을 방법은 없다.'

시간은 벌만큼 벌었으니.

잠시의 정비는 정도는 괜찮을듯싶었다.

오히려 그런 괴물을 상대하러 가는데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는 게 더 위험할 테지.

그리고......로제스타의 손가락에 걸린 저 검은 천둥의 반지.

저것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었고.

아마 직접 대교구로 간다면,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리라.

"그럼 벤마이어 대교구까지 함께 동행하도록 하지."

"예. 알겠습니다."

그리하여 조금 더 우리들의 동행이 결정되었고.

나는 마지막으로 고울룬 동굴을 바라보며, 로제스타와 아펠리아에게 말했다.

"인사는......다 끝냈나?"

"아......예. 시간을 주신 덕분에......감사합니다."

"다만 무덤이라도 만들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 정도 여유는 없겠네요. 여기 땅도 워낙 딱딱한지라......파내는 것만 해도 한 세월일 거 같더라고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일은 지금 바로 해줄 수 있었다.

"무덤이라. 지금 만들고 가도록 하지."

"예?"

"지, 지금이요?"

"동굴을 무너뜨려, 돌무덤을 만들겠다. 그간 죽어간 모든 사람들과 톰 신부의 합동 묘지로서. 톰 신부의 시신이 발견된다면......그의 명예에는 흠집일 터."

성기사였으나, 결국 악마의 손에 패퇴하였다.

그리고는 심지어 그 하수인이 되는 굴욕까지 겪은 톰 신부였다.

차라리 밝혀지지 않는 게 더 좋은 진실도 있는 법.

톰 신부의 일이 그러하였다.

나는 끝까지 싸웠을 그의 명예를 조금이나마 지켜주고 싶었다.

그에 오르헬이 깜짝 놀랄 정도의 최대 화력으로, 황금의 창을 만들어내어.

파스슷! 콰르릉!

"우, 우왁! 또 그걸 만들어? 사, 살살 휘둘러 제발!"

"다들 뒤로 물러서라."

"튀, 튀어! 큰 거 온다!"

"우, 우와아악!"

그대로 동굴의 안쪽으로 집어 던졌다.

콰광! 콰르르릉, 콰광!

동굴 안에서부터 천둥소리가 몇 번 메아리 치는가 싶더니.

쿠구구구구궁......!

이내 안쪽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결국 입구까지 완전히 동굴이 무너져 내리자.

동굴 자체가 하나의 돌무덤이 되어버렸다.

그 광경을 보고, 로제스타와 아펠리아가 작게 말을 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톰 신부와 아라크네에게 죽은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무덤을 세운 우리는.

이제 아라젠트 왕국의 수도.

벤마이어, 그곳을 향해 조금은 가벼운 발걸음을 돌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