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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98화 (98/194)

98화. 아직 일곱 번 남았다

"쿨럭! 쿨럭! 허억......!"

아라크네는 피를 토하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부, 분명히 나도 할퀴었는데......?"

"아, 그래. 분명히 할퀴었지."

나는 머리를 기울여, 목을 살짝 보여주었다.

그러자 얕은 상처가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보고는, 아라크네가 입꼬리를 찢었다.

"후, 후후! 그래! 착각한 게 아니었어!"

"응, 그래. 착각한 건 아니겠지."

나는 미소를 짓는 아라크네를 보며, 같이 씨익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피를 닦아내었다.

당연하게도 이미 그 정도 얕은 상처는 회복이 되어 있었고.

핏자국은 있었으나, 그 자리에는 흉터조차 남지 않은 채였다.

그때쯤이 되어서야 아라크네 뭔가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사이 벌써 회복을 했다고?......아니야! 그럴 리 없어! 상처는 회복되었을지언정, 독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 그럼 효과가 좀 늦게 나타나는 독을 쓰는가 보군."

"......"

아라크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아닐 테니까.

암살도 아니고, 전투 중에 쓰는 독이 천천히 효과가 나타날 리 없었다.

그렇다면 뻔하게도, 답은 하나였다.

"내 독이 먹히지 않는다고? 그리고 내게 독으로 덤비겠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겠다는 것이더냐!"

찢어지는 목소리로 아라크네는 소리를 빽 질렀다.

나는 반대로 아주 낮고 작은 목소리로 여유롭게 대답을 했다.

"왜 안 되지?"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에 나는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라크네의 얼굴에는 의문이 떠올랐고.

나는 친절히 부가 설명을 해주었다.

"말도 안 된다, 불가능하다, 그럴 수 없다. 그딴 소리 내게 지껄인 놈들. 전부 이 바닥 아래 잠들어있거든. 영영 깨어나지 못하는 잠에."

"......!"

악마 놈들을 보면 이렇다.

마음의 저 안쪽.

꺼내볼 수도 없을 정도로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증오와 분노.

그리고 광기.

나는 놈을 향해 한발 다가갔다.

거울이 없어 알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지금 내 얼굴에는 두려우리만치 섬뜩한 미소가 걸려있으리란 것을.

실제로 아라크네 역시 그것을 보고 슬금슬금 뒷걸음질치고 있었으니까.

"오, 오지 마!"

"크흐흐흐. 그래. 떨어라, 악마야. 겁먹은 채 도망쳐라. 그 끝에 지옥이 기다릴 테니까!"

"으, 으아아아아악!"

아라크네는 비명을 지르며, 거미줄을 뿜어내 천장으로 냅다 도망을 쳤다.

"날 지켜! 여왕을 지키란 말이다!"

그녀는 제대로 시선을 돌리지도 않고서, 다른 거미 병정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나.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제서야 먼저 전투가 일어났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아라크네.

그곳에는 벌써 바닥에 배를 까뒤집고 죽은 거미 병정들만 보였다.

서 있는 것은 앤드류와 디아즈, 그리고 로제스타와 오르헬 뿐이었으니......

"제, 젠장!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쩌저저정!

"으그그그극?"

그 순간 진짜 날벼락을 처맞은 아라크네.

그 벼락의 정체는, 내가 날린 검은 천둥이었다.

물론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내장이 타들어 가며 다시 추락했고.

쿠웅!

정확히 내 발 앞에 고꾸라진 아라크네의 얼굴은 순식간에 공포에 질려 사색이 되었다.

내 다리가 들어 올려지는 것을 보고서.

"어딜 도망가시나? 응?"

콰득!

"끄, 끄아아아아아......!"

그대로 아라크네의 여덟 다리 중 하나를 밟아 부러뜨린 나는.

친절하게 카운트를 세어 주었다.

"아직 일곱 번 남았다."

"히, 히이이익......!"

* * *

거미 병정들을 전부 해치운 후.

디아즈는 로제스타에게 말했다.

"로한 님이 놈을 상대하실 테니, 저희는 내부를 수색하시죠."

"아직 싸우는 중이신데......"

그 말에, 디아즈는 시선을 돌려 로한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봐와서일까.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걱정할 것은 없다는 것을.

"로한 님께서 알아서 하실 겁니다. 그리고 오르헬 님도 있고요."

"아, 예......"

로제스타 역시 그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꿀꺽.

긴 시간을 함께한 것은 아닌지라, 그녀는 로한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래도 대충은 느끼고 있었다.

'말은 많지 않지만......겉으로 강한 척하는, 부드러운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전투에서 보여주는 그 위압감은 세상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였다.

적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싶을 수준이었으니까.

자비도 없었으며, 조급하지도 않았다.

서서히, 천천히.

목숨을 앗아가고 있었다.

최대한 고통을 온전히 음미하도록 만들면서.

절대 부드러운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그 발톱을 주변의 사람들에게는 숨기고 있었을 뿐.

로한은......굳이 따지자면 무서운 사람에 가까워 보였다.

"가시죠."

다시 자신을 부르는 디아즈의 목소리에.

로제스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신을 차렸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먼저 고울룬 동굴의 안쪽으로 탐색을 시작했......

"잠깐만!"

하기 직전에, 거미 병정을 다 처리하고 할 일이 없어진 앤드류가 다가왔다.

"심심하니까, 나도 같이 가죠."

디아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함께 가시죠."

앤드류가 더 붙어준다면, 나쁠 건 없었다.

어차피 로한 쪽에 지원군이 필요해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그렇게 그들 셋은.

고울룬 동굴의 안쪽을 향해 발을 들였다.

* * *

다행히도 내부로 들어가는 동안 다른 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 여왕이 있는 곳에 총력을 동원한 모양이었다.

덕분에 그들은 특별한 방해 없이 마지막 방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고.

여유가 생긴 앤드류는, 슬쩍 로제스타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냥 조사 차 온 거 아니죠?"

"예?"

"에이. 우리 너무 바보로 보지 마요. 로한 경이 대신 처리해준다고 했을 때. 그냥 돌아가도 아무 문제 없었을 거에요. 그런데도 유난히 집착하더라고요. 합류해서 함께 싸우려고. 그래서 눈치챘죠. 아, 뭔가 다른 이유가 있구나."

"......"

"로한 경도 알고 계시지만 그냥 모른 척 묵과해주신 걸 거에요. 오래 본 건 아니지만, 보긴 봐서 알잖아요? 그 사람, 보통 아니라는 거."

"그, 그렇습니다."

"뭔데요? 무슨 일인데요?"

앤드류의 물음에, 로제스타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천천히 입을 떼었다.

"실은, 저와 아펠리아가 파견되기 직전에 먼저 선행 출발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앤드류와 디아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야 무시 아닌 무시를 받지만, 그들은 이단 심문관과 일곱 기사단이었다.

당연히 그들이 나선다는 것은, 그만큼 큰일이라는 게 확인되었다는 소리였다.

일개 조사 임무에, 이 정도 고급 인력을 일일이 파견할 수는 없었으니까.

"먼저 조사 차 출발한 사람은, 성기사에요?"

"예. 그분은 성기사이시면서 훌륭한 성직자셨습니다. 저와 아펠리아를 키워주신 분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한데......이곳에 파견된 것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기셨습니다."

"아......그래서......"

앤드류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공교롭게도 이 자리에 있는 셋은 모두 다 고아 출신이었다.

앤드류가 처음 디아즈를 자신의 부관으로 들이려고 한 것 역시, 디아즈의 사정을 알고 걱정을 한 탓에 진행한 것이었으니까.

같은 처지였기에.

때문에 디아즈도 말을 하진 않았지만, 로제스타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고 있었다.

얼마나 걱정스러울까.

부모와도 같은 사람이 이곳에서 행방불명 되었으니 말이다.

셋은 더 이상 말없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제는 다들 같은 마음이었다.

그 성기사가 살아있기를......

반쯤 달리다시피 한 그들은, 꽤나 빨리 마지막 방에 당도할 수 있었다.

발걸음도 재촉했고, 끝까지 방해꾼도 나타나지 않았기에.

그러나 그렇게 편히 도착하였음에도, 그들의 얼굴 표정은 썩어들어갔다.

눈 앞에 펼쳐진 지독한 현실 때문이었다.

"키엑......"

".......크륵."

횃불에 의해 밝혀진 그 내부는,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바닥에는 뜯겨진 사지들이 나뒹굴고.

거미 병정이 되다가 만 산제물들은 뒤집어진 채로,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한 채 펄떡 펄떡이고 있었다.

끔찍한 소리를 내뱉으며 숨도 거의 넘어가고 있는 게......

아마 가만히 놔두면 곧 죽을 것 같아 보였다.

그에 앤드류가 앞으로 나서서, 그들의 목을 베어버렸다.

서걱!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목이 잘린 괴물.

그런 놈을 내려다보며, 앤드류가 말을 했다.

"이게 차라리 고통을 줄여주는 거겠네요."

"......"

"......"

잠시 가만히 서 있던 디아즈 역시, 검을 빼 들었다.

그런 그녀를 로제스타가 쳐다보았다.

디아즈는 고개를 끄덕이며, 로제스타에게 대답을 해주었다.

"앤드류 경의 말씀이 맞습니다. 저희 손에 피를 묻히는 게, 한시라도 빨리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일듯싶습니다."

"알겠......습니다."

서걱! 서걱!

로제스타 역시 검을 뽑아들고는 그 끔찍한 괴물들의 고통을 줄여주는 일에 동참을 하였다.

그런데......

멈칫.

도중에 로제스타가 갑자기 멈추는 게 아닌가.

덜덜덜덜......

동시에 검을 쥔 그녀의 손이 떨리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디아즈가 다가왔다.

"로제스타 경? 무슨 일이십니까?"

하나 로제스타는 디아즈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시선도 돌리지 않았다.

단지 작게 중얼거릴 뿐.

"......신부님......"

"설마......!"

굳이 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크르르르......!"

저 괴물이 되다 만 존재가, 바로 로제스타와 아펠리아를 키워준 성기사라는 걸.

이게 악마였다.

악마라는 놈들이 저지른 일......!

디아즈는 로제스타의 팔을 붙잡았다.

그제야 로제스타는, 디아즈를 돌아다 보았다.

"괜찮으십니까?"

"아뇨......괜찮지 않네요."

로제스타는 억지 미소를 지었다.

"사실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예상하기는 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아펠리아는 두고 온 것이고요. 그런데......직접 두 눈으로 이런 일을 마주하니, 생각보다 괜찮지가......않습니다......"

디아즈의 얼굴도 굳었다.

자신이 지금 해줄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뿐이었기에.

"제가......대신 해도 되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신부님의 고통을 줄여 드리는 건......제가 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이해합니다."

디아즈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고.

부웅, 서걱!

괴물의 목을 베었다.

뎅강 잘려진 그 목은, 몇 바퀴 구르더니.

"고맙......"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는 눈의 초점을 잃었다.

그 모습을 본 디아즈는, 이를 갈았다.

"로한 님이 그 악마를 더 괴롭혀주시길 바라야겠네요......"

* * *

여섯 개의 다리가 부러진 아라크네는.

유일하게 남은 두 팔을 가지고 기어서 도망쳤다.

당연하게도 너무나 느렸기에 도망이라고 하기에도 뭣했지만.

"헉! 허어어억! 사, 살려 줘! 제발! 제바아알!"

도망을 포기하지도 않고 목숨을 구걸하는 아라크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저기 널브러진 거미 병정들.

바쳐진 인간 제물들을 매개체로 하여 만들어낸 끔찍한 괴물들.

저걸 만들었을 때, 저 인간들은 과연 어땠을까?

제 발로 괴물이 되겠다고 했겠는가?

아니.

발버둥치고 도망치고, 살려달라고 애원했을 터였다.

거미 병정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고통과 공포에 일그러진 모습들이었다.

아마 그게 생전 마지막 얼굴이었겠지.

그런데 자신은 살려달라니.

이건 너무 비겁하지 않은가.

'이래야 이리 비겁해야 악마지, 그래.'

또 이렇게 나와줘야 짓밟는 맛이 있었다.

끝까지 역겨워야지.

그게 악마라는 족속이니까.

나는 휘파람을 불며 걸어가서.

서걱!

남은 두 팔 중 왼팔을 자르고.

"아아악!"

촤악!

오른팔도 잘랐다.

"사, 살려달라고 이 개새......!"

뎅강.

"말이 많아. 귀 아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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