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저게 가능하다고?......
나와 오르헬이 이미 고울룬 동굴로 향하는 길은 알고 있었기에.
그곳을 찾아가는 방법에 관해서는, 딱히 마을 주민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 거리가 조금은 되는 게 문제였다.
고울룬 마을 그리고 고울룬 동굴.
비슷한 이름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꽤나 먼 곳에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중간에 하루 정도는 야영을 해야 할 정도로.
덕분에 우리 쪽 일행과 로제스타, 아펠리아는 가는 동안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해가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둘 중 그나마 더 살가운 쪽은, 이단 심문관이 아펠리아였다.
그녀는 이단 심문관이라기보다는 보통의 사제와 더 가까운 느낌의 친근한 사람이었다.
"여기쯤이 숙영하기 딱 좋을 거 같은데요?"
고울룬 마을에서 떠나고.
우리는 발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그러는 사이 해는 저물었고.
아펠리아의 말대로 적당한 곳이 보인 지금.
차라리 이곳에 숙영지를 구축하고 다시 체력을 비축하는 게 더 좋을 듯싶었다.
근처에 강가도 보여 식수도 보급이 되고.
강이 있으니 주변에 야생 동물들도 있을 터였다.
사냥으로 식사를 대신할 수 있다면 비축용 식량은 조금 아낄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우리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오늘 하루를 마무리할 준비를 시작했다.
여태껏 자금력 하나는 차고 넘쳐서 식량, 식수 걱정은 별로 없었는데......
고울룬 마을에서 워낙 보급이 안 되다 보니 다음 도시에 닿을 때까지는 조금 신경을 써야 했던 것이다.
'그래도 뭐. 쟤들이 있긴 하니까.'
나는 자연스럽게 자리를 뜨는 앤드류와 오르헬을 쳐다보았다.
"오늘은 버섯으로 술안주 좀 구해볼까?"
"저는 멧돼지 고기가 엄청나게 땡기는데, 헤헤."
원래도 도시나 마을에서 숙소를 구하지 않을 땐 항상 저 둘이서 저렇게 식량을 구해 오곤 했다.
오르헬은 주로 채소 위주로.
앤드류는 고기 위주로 말이다.
그리고 겸사겸사 저런 때에 오르헬이 가르침도 주는 모양이었다.
때문에 당장 배 곯을 걱정은 없긴 하였다.
그때쯤 그렌델과 디아즈의 대화가 들렸다.
"이쯤 했으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오늘은 로한 경께서 훈련 봐주시는 날 아닙니까?"
"아, 예......"
"하고 오셔도 됩니다. 훈련을 잘 받으셔야 고울룬 동굴의 거미 괴물도 파파박 때려잡지 않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그렌델."
나도 슬슬 자리에서 일어서서.
적당한 장소를 모색하려......하던 찰나.
로제스타의 얼굴이 보였다.
검술 지도를 해준다는 말을 들은 건지.
부러워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그녀를 말이다.
나는 디아즈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디아즈. 출발하지."
"예! 로한 님!"
그리고는 로제스타를 향해서도 한 마디를 내뱉었다.
"구경 정도는 해도 된다."
"......예?"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저, 저도 가도 되는 겁니까? 저, 정말입니까?"
* * *
"그 순간에는 왼팔을 조금 더 옆구리에 붙인다는 느낌으로. 항상 겨드랑이가 벌어진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디아즈의 움직임을 봐주고 있었다.
별로 어려운 건 없었다.
이제 디아즈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와 있었기에.
내 입장에서는 미세한 부분 몇몇 가지만 짚어주기만 하는 것 외에는 할 게 없었다.
'오히려 잘못 건드렸다가는 잘 잡혀가는 밸런스를 망칠 수도 있으니까.'
그건 그렇고.
검술 수련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디아즈도 어지간히 재능 덩어리였다.
제아무리 미래의 자신이 만들어 낼 기술이라고는 하지만, 가르치는 족족 스펀지마냥 흡수를 해버리니 말이다.
물론 이게 원래 자신이 만들 기술이라는 걸 모르는 디아즈는.
항상 배울 때마다 과할 정도로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어차피 혼자 알아낼 거면서......'
디아즈를 가르치면서 나는 슬쩍 눈을 돌려 로제스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내가 디아즈에게 가르쳐 주는 내용들을 귀동냥으로 들으며, 어깨너머로 따라 배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사실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멍청한 짓이었다.
그녀의 눈에 내가 대체 어떤 존재가 되어 있길래 저렇게 무조건 따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좋은 판단은 아니었다.
내가 디아즈에게 가르치는 것은 전부 디아즈 전용 기술들이었으니까.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검술은, 맞지 않는 옷처럼 그저 방해만 될 뿐이었다.
해서 보다 못한 나는, 로제스타에게 작은 조언을 던졌다.
"너는 거기서 왼팔을 붙일 게 아니라, 왼쪽 다리를 바닥에 더 강하게 박는다고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 팔은 원래의 각도 그대로 유지를 하고."
"......!"
로제스타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서는 조심스럽게 내 말을 따랐다.
스으윽.
그 후 다시 검을 휘둘러 보자.
휘이잉!
직전과는 전혀 다른, 깔끔하고도 위협적인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스스로의 검에 깜짝 놀랐다.
"이, 이게 어떻게......!"
* * *
'디아즈를 처음 가르쳐 줬을 때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네.'
디아즈 역시도 그 모습에서 과거의 자신을 보았는지 작게 웃어 보였다.
로제스타는 그 자세 그대로 얼어붙은 채 내게 물었다.
"호, 혹시 제가 검을 휘두르는 걸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제 검술을 알고 계신......"
"아니. 검 휘두르는 걸 본 적은 없고, 검술은 더더욱 모르고."
나는 즉각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본 적이 없었다.
그녀와 만나고 난 후 있었던 일들.
오르헬과의 대련.
그리고 권능의 발현.
두 번 모두 검을 쓰지는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과거의 나였더라면, 절대로 해줄 수 없는 조언이리라.
로제스타는 디아즈와 달리 원작에 나온 적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세계에 떨어지고 나서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거의 매 전투마다 생사를 오가는 싸움을 거쳐왔었다.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경험치였다.
목숨을 걸고 얻는 경험치이니 말이다.
더불어 제3의 눈과 같은 초월적 감각까지도 내 선구안을 돕고 있었으니.
세상 대단한 특수 능력에, 경험까지 상식 이상의 속도로 쌓여버린 덕택에.
어느샌가 지금 로제스타 정도 수준의 검은, 초견으로도 실수를 잡아 줄 정도의 경지에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생각해도 내가 놀랍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검은커녕 목검도 잡아 본 적 없던 내가 아니었던가.
차라리 군대에서 총은 쏴봤지만.
검쪽으로는 그야말로 젬병이었다.
어쨌든, 나 역시도 그간 꽤나 많이 성장을 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스스로 체감이 될 정도로.
나는 새로운 검로에 감탄을 하고 있는 로제스타에게 조언을 하나 더 덧붙였다.
"그대로 서너 번의 연격이 이어지면, 빈틈이 생길 것이다. 그때 그 반지를 써라."
"아, 예. 반지. 예? 반지라니......설마 이 반지에서 천둥이 일어난다는 것도 눈치채고 계셨던 겁니까?"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나?"
왜 모르겠는가.
나도 똑같은 게 있었는데.
지금은 흡수되어 사라졌지만 말이다.
나는 이참에 자연스럽게 물어보기로 했다.
과연 내 검은 천둥의 반지와, 로제스타가 가진 검은 천둥의 반지.
정말로 두 개가 똑같은 것인지에 대해.
"그런데. 그 반지는 어떻게 구한 것이지?"
"이건......"
내 질문에 로제스타가 잠시 뜸을 들였다.
말하기 곤란한 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로제스타는 결심을 굳힌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실 이건 물려받은 것입니다. 아라젠트 대교구의 교구장님께."
"물려받은 것이라고?"
"예."
"원래는 성기사였었나?"
"저 말씀이십니까? 예. 맞습니다. 아펠리아 이단 심문관과 함께 사제로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내가 썼던 검은 천둥의 반지 역시 팔라딘 클래스 전용 아이템이었다.
로제스타 역시 성기사였다면, 그 부분은 동일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나 결국 지금 이 자리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는 어려울듯싶었다.
너무 파고들면 오히려 거부감이 생길테니까.
이미 로제스타의 표정은 약간 곤란한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군......"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이쯤에서 만족을 해야 했다.
아직, 시간은 있었다.
* * *
앤드류가 저 멀리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오! 보인다, 보여. 저기가 그 동굴 입구 같은데요?"
다음 날.
부지런히 움직인 우리는, 제법 빠른 속도로 목표 지역인 고울룬 동굴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미 내 코에는 악마의 악취가 슬며시 느껴지고 있었다.
원래 아라크네는 악마가 아니라 신화 계열의 몬스터로 분류되어야 했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악마와 계약을 해서, 지금은 신화, 악마 두 속성을 모두 가진다는 설정이 있었던 걸로 기억을 한다.
덕분에 간만에 악마의 냄새를 감지한 나는.
슬금슬금 증오심이 피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동굴에 진입하기 전에, 나는 로제스타에게 한 가지 확인을 했다.
전략상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될 부분을.
"그 물의 창. 사용할 수 있는 횟수 제한이 있나?"
"물의 창 말입니까? 예. 대략 스무 번 정도가 한계이긴 합니다. 대신 번개의 힘은, 그것보다 조금 더 많은......"
"그건 알아서 써라."
"......예?"
"물의 창만 내가 말하는 순간까지 아끼고. 번개의 힘은 알아서 쓰라는 소리다."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검은 천둥이라고 부르지 않고 번개의 힘이라 부르네.
게다가 그것보다 조금 더 많다는 걸 보니......횟수 제한도 있는 건가?
나는 그런 거 없었는데.
의외로 비슷한듯하면서도 다른 점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사사사사삭!
아직 동굴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저 안쪽에서부터 우리에게 다가오는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다.
해가 아직 떠 있었기에 동굴의 입구 근처는 빛이 비치고 있었는데.
그에 소리의 원인인 놈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우와아아악! 거미다!"
앤드류가 그것을 보고 펄쩍 뛰어오르며 소리를 질렀다.
놀랄만 했다.
워낙에 양이 엄청났으니까.
로제스타는 즉각 앞으로 뛰어나오며 권능의 사용을 준비했다.
"로한 경! 지금 씁니까?"
그런데 나는 그녀의 목덜미를 잡아채서는 다시 내 뒤로 보냈다.
지금은 때가 아니었기에.
"아직 아니다."
내가 먼저 앞으로 나아가며.
왼팔을 휘저었다.
파지지직......!
그 순간 왼팔 전체를 휘감는 거대한 번개가 한 번 번쩍이고.
파아아앗!
번개를 머금은 황금의 창이 창조되었다.
나는 동굴의 안쪽을 향해 그 황금의 창을 투창하였다.
콰광! 쩌저정! 콰과강!
황금의 창은 사방으로 번개를 흩뿌리며 쏘아졌고.
우리를 향해 몰려오던 거미 떼는 순식간에 잿더미로 산화하였다.
나는 로제스타를 돌아보며 말했다.
"물의 창은 필요할 때 말하도록 하지."
그녀는 반쯤 넋이 나간 채.
"......버, 번개가......세상에나......저렇게까지 된다고?......저게 가능하다고?......"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