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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95화 (95/194)

95화. 완전히 같은 기운이다

"귀, 귀하들께서는 그럼......어쩐 일로 이곳에 오신 것입니까?"

똑같은 장소.

똑같은 인원.

그러나 로제스타가 우리를 대하는 말투는 아주 크게 변해 있었다.

그녀의 질문에 디아즈가 간단한 설명을 해주었고.

모든 이야기를 들은 둘은, 조심스럽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었다.

"실은 저희들 역시 이 마을에서 요사스러운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 하여 파견을 나온 와중이었습니다."

로제스타의 말에 이어.

아펠리아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겪어보셔서 아시겠지만, 이 마을 사람들. 이상할 정도로 외부인에게 배타적이더라고요."

우리들 중 그 누구도 그 말에 부정할 수는 없었다.

만약 오르헬이, 블랑코와 그의 딸들에 인연이 없었더라면?

아마 우리도 그 노인으로부터 정보를 얻지 못했으리라.

"저희 둘도 막다른 길에 막혀서 헤매고 있었는데 때마침, 여러분들이 마을로 들어오시더라고요. 솔직히 저희들처럼 아무것도 못 하실 줄 알았는데......이 숙소도 구하시고, 양조장에서 마을 사람과 대화까지 하시는 걸 보고 뭐라도 좀 들어야겠다 생각한 거죠."

그렇구나.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직업이라고는 해도, 기껏 마을 사람들 구하겠다고 이런 위험한 곳까지 나섰는데.

정작 도움을 받기는커녕 방해만 받았을 테니.

그러는 와중에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보이는 우리들이 눈에 들어온 것일 테고.

'그래서 계속 쫓아온 거군.'

더불어 사실 로브를 완전히 벗은 그녀들은, 꽤나 아름다운 편이었다.

만약 직업이 다른 것이었다면 몰라도......

이런 이단 심문관이나 일곱 기사단과 같이 험한 일이 자주 있는 직업이라면.

모르긴 몰라도 그간 무시도 많이 당했겠지.

그러니 초면에도 그렇게 강하게 나온 걸 거고 말이다.

다 이해가 되었다.

다 이해가 되긴 되는데......

"알겠으니, 둘은 그냥 돌아가라."

나는 그녀들을 데리고 함께 움직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딱 잘라, 할 말은 해야 했다.

"도, 돌아가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다. 너희들의 목표가, 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요사스러운 일을 조사하는 것이라면. 이제 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그, 그게 무슨......"

"이미 원인은 알고 있으니까."

"......!"

로제스타의 두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부릅떠졌다.

나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해결도 할 생각이고."

"그 말씀이......정말, 사실입니까?"

"여기서 거짓말을 해서 내가 득 볼 게 있는가?"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였다.

그리고 그 질문에, 로제스타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을 테지.

왜냐하면 진짜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그만 돌아가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로제스타는 납득이 되지 않는 얼굴이었다.

"왜입니까! 혹여 처음에 보인 태도 때문인 겁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재차 사과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기분이 나빠서라는 식의, 그렇게 시답잖은 이유도 아니었고.

또한 동시에 그렇게 거창한 이유도 아니었다.

단지......

"너무 약하다."

건방진 태도 때문에, 내가 직접 피해 본 것도 없고.

아니, 오히려 재미있는 구경이나 하나 한 것일 뿐이었다.

해서 내가 기분 나쁠 건 사실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재미있는 구경을 하는 동안 확인한 로제스타의 무위였다.

그것이 내가 동행을 거절한 이유였다.

"너희 둘이 우리 원정대에 합류한다고 해서, 도움이 될 것이 없다."

"......!"

"기존 인원과 전력의 차이가 적지 않다는 소리다."

로제스타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다른 그 어떤 말보다 그게 더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앤드류가, 살짝 끼어들려 했다.

"에, 에이......그래도 일곱 기사단원인데 너무 그렇게 차갑게 말할 건 없지 않아요?"

앤드류가 끼어들자.

오르헬도 덩달아 한 마디를 보태었다.

"차갑기는. 브라더 말이 맞지. 막말로다가, 전투 도중에 오히려 우리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니까?"

"......"

사실 앤드류도 이미 아는 눈치인듯했다.

그 역시 평소에야 저렇게 장난스러워 보여도, 실력 하니만큼은 진짜였으니까.

그 실력을 가지고 로제스타의 무위를 감지하지 못한다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단지 성격이 워낙 서글서글한 편이라 모진 말을 하는 게 어려운 것이겠지.

다만 그것도 앤드류의 장점이었기에, 나는 더 이상 그를 나무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로제스타에게는 단호하게 말을 해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너희들이 위험한 상황에 닥치게 된다면......솔직하게 말하지. 우리도 결국 돕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구해주러 가겠지.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러다가 더 큰 인명 피해로 일이 번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일이 있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나?"

일곱 기사단으로서.

여태 그런 취급을 받아 본 적이 없는지, 로제스타는 당황하는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그, 그런......"

"그쪽의 실력이 아예 없다는 말은 아니다. 충분히 높은 경지인 것은 확인하였다. 그러니 일곱 기사단의 일원이 되었겠지. 하지만 앞서 본 실력으로 미루어 봤을 때......이 그룹 어디에도 당신보다 약한 사람은 없다. 그 말인즉, 우리에겐 너희의 존재가 방해될 거라는 소리지."

"맞다, 삐약!"

아니, 피코 쟨 아까 자는 거 같더니......또 언제 깨서 분위기를 망치는 건지.

에휴.

다행스럽게도, 로제스타의 귀에 지금 피코의 말은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웃음을 참고,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을 계속했다.

"크흠. 아라크네를 처치한 공은 그 쪽에게 돌리겠다. 먼저 와서 준비를 한 것도 그쪽이고. 더군다나 우리는 지금 공을 차지하러 온 게 아니니까."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태 아무 말 못 하던 로제스타가.

처음으로 눈에 진심을 가득 담고 대답을 하였다.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건가......'

하지만 그건 그쪽 사정이었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런 사연 하나 때문에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지금 이 원정대의 모든 책임은 내가 져야 했으니까.

이건 게임도 아니었고, 놀이도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작은 실수가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현실 말이다.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쉽지만, 너희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공로 말고는 없다."

꽤나 칼같이 끊었음에도, 로제스타는 쉬이 포기하지 않았다.

"도움이 된다는 걸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증명을 하겠다고?"

"예!"

그녀는 굳은 결심을 다진 표정으로 문을 열더니.

다시 바깥으로 향했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직접 봐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 * *

로제스타의 고집 아닌 고집에.

우리는 다시 공터로 나왔다.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은 바깥은.

횃불이라도 없으면 그야말로 한 치 앞도 제대로 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높게 솟은 나무들이 달빛마저도 가렸기 때문이었다.

그런 공터에서.

로제스타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나를 살짝 돌아보았다.

"보고 판단해주십시오. 만약 그럼에도 안된다고 하신다면......깔끔하게 포기하겠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게 아닌가.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이 있다는 건가? 비장의 수라도 있나 보군.'

팔짱을 낀 채.

나는 조금만 더 그녀를 지켜보기로 하였다.

로제스타는 다시 전방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 권능의 이름은, 물의 창. 마치 물의 정령 왕처럼 그 어떤 곳에서도 이 물의 창 하나 만큼은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래......일곱 기사단이었지.

당연히 권능을 하나 가지고 있을 테지.

오르헬과의 대련에서는 권능을 쓰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물론 오르헬도 그게 전력은 아니긴 했지만.

로제스타는 양팔을 넓게 펼치더니.

슈우우우욱!

자신의 주변으로 물의 구를 창조해내었다.

그 모습에 여태 심드렁하던 오르헬마저도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오?"

앤드류야 당연히 눈이 동그래졌고.

"와......진짜 물이다, 물!"

마법을 쓰는 그렌델 역시도 이번만큼은 반응이 달랐다.

"이건......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저런 마법은 진짜 보기 드문데......"

하지만 나는 아직 만족스럽지 않았다.

연신 내 눈치만을 살피던 로제스타는 이번에도 힐끔 날 살피더니.

내 표정이 별로 밝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를 악물었다.

"흐아아압!"

전방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 물 덩어리들이 앞으로 쏘아지며 점차 가시처럼 날카롭게 변하였고.

팍! 파팍!

목표로 삼았던 나무에 박히는 순간.

나쁘지 않은 데미지를 먹히고는 물방울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그런데......

'이걸로는 아쉬운데?......'

말 그대로 나쁘지 않은 수준의 데미지였다.

하지만 이걸로는 아라크네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을 터였다.

내가 속으로 적지 않게 실망을 하고 있던 그때였다.

로제스타가 또다시 팔을 휘저은 것은.

콰르르릉!

익숙한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쩌정!

그녀의 손으로부터 검은 번개가 뻗어 나가는 게 아닌가!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약간 작긴 하지만......저건 분명 검은 천둥의 반지였다.

'내가 쓰던 것보다는 약하긴 한데......완전히 같은 기운이다......!'

* * *

물의 창과 검은 천둥.

그 시너지는 확실했다.

사방으로 퍼진 물방울에 번개가 적절히 타고 흘러.

파스스슷!

엄청나게 강력하지는 않아도, 잔 벌레쯤은 충분히 몰살시킬 정도의 위력을 자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라크네의 거미 군체는 나 역시도 조금 귀찮기는 했기에......

'이건 쓸만하겠는데?'

검은 천둥의 위력은 아쉬움이 있었으나.

그래도 저 물의 창.

저게 진짜 좋아 보였다.

번개야 뭐, 로제스타가 아니더라도 내가 직접 쓰면 되는 부분이니까.

한편, 직접 전력을 내비친 로제스타는.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이번 건 나도 인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저 능력을 쓸 수 있는 인원이 추가된다면.

아라크네를 대적하는 데에는 나쁘지 않은 전력이 되리라.

나는 이런 부분에서는 또 나름 합리적인 사람이었기에.

앞에 있었던 작은 사건들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인정하지. 도움이 된다는 걸 증명했군."

"그, 그럼......!"

"충분히 휴식을 취해두어라. 내일 전투에 참가하려면 컨디션 관리는 필수다."

"아, 알겠습니다! 로한 경!"

그건 그렇고.

과연 로제스타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검은 천둥의 반지는 과연 어떻게 된 것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내 호기심을 가장 크게 자극하는 것은 바로 저것이었다.

'일단 함께 하기로 했으니......천천히 물어 볼 만한 시간은 있겠네.'

오늘은 날이 늦었으니.

나는 그렇게 일단 그 일은 뒤로 미루기로 하였다.

내일은 또 일찍부터 움직여야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동이 트자마자 출발 준비를 마쳤고.

타이밍 좋게 로제스타와 아펠리아 역시 집결을 했다.

전체 인원을 스윽 둘러본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울룬 동굴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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