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복수도 할 겸
깃털로 변한 가우리엘의 날개를 처음 잡는 순간.
콰아아아아!
마치 무너진 댐이 내뿜는 거대한 물줄기처럼.
팔을 타고 온몸으로 신성력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 이런......!'
이렇게나 큰 신성력은 나도 처음 겪었기에 순간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러나 경악과 달리.
신성력은 아주 온화하게, 그리고 빠르게 내 몸에 융화되어갔다.
거대한 그 신성력이, 온몸을 한 바퀴 돌자.
나는 내 양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빛이 손을 휘감은 채, 어마어마한 힘.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심지어는 주변에 그저 서 있기만 했던 디아즈와 앤드류도 그걸 느끼고 있는듯했다.
"이건 마치......하인트 주교님께서 휘두르시는 성검과도 같은......!"
"오, 진짜, 진짜! 그 성검이 내뿜는 기운이랑 비슷한 느낌인데요?"
그리고 그렌델과 오르헬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어마어마합니다!"
"이거 웬만한 악마는 뼈도 못 추리겠는데?"
그들의 말이 귓가를 스치던 그때.
핏!
황금의 창의 모습이 얼핏 보였던 것 같았다.
'그래......그러고 보니 황금의 창도 신성력이라고 그랬었지?'
단지 빛의 힘 정도인 줄로만 알았는데.
페트리엘의 말에 따르면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왼손에 황금의 창을 창조하였다.
이 힘을 가진 지금.
무언가 달라졌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던 까닭이었다.
파아아앗!
그다음이었다.
검은 천둥의 반지에 반응이 온 것은.
파직! 파지지지직!
느닷없이 검은 천둥의 반지가, 검은 번개를 뿜더니.
빠각!
그대로 금이 가면서 부서지는 게 아닌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대로 그 반지 안에 있던 검은 번개가 왼팔을 타고 흘러.
'으으윽?'
저릿한 감각과 함께, 황금의 창과 융합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 두 기운이 엉키는 탓에.
황금의 창이 요동을 치며, 우우웅 거리는 소음과 함께 강하게 진동하는 것이었다.
원래 황금의 창은, 투창하기 좋은 사이즈의 작고 가벼운 느낌의 창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그것은 거의 격변에 가까운 변화를 겪고 있었다.
형태 자체는 황금빛의 삼지창 그대로였으나.
창의 장대 부분은 번개와 같이 스파크를 튀기며 일렁였고.
그 크기는 이제 웬만한 성인 남성의 키만 하게 거대해졌다.
'뭐, 뭐지? 검은 천둥의 반지가 창에 흡수된 건가? 아니다. 내게 흡수 된 거 같은데?......'
게다가 무게감까지 확실하게 더 무거워진 게 전달되었다.
* * *
검은 천둥의 반지가 깨어지며, 그 힘을 내가 집어삼킨 그 순간.
그 순간을 직관한 디아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로, 로한 님? 차, 창이......! 뭐,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앤드류와 그렌델 역시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으읏. 빛이 장난이 아닌데요?"
"횃불은 이제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들 외형적인 변화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단 한 명.
오직 오르헬만이 이 변모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내가 창을 자세히 보기 위해, 세웠던 모양을 가로로 뉘이자.
펄쩍 뛰며 기겁을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어이, 씨......어, 어! 그거 휘두르지 마! 브라더!"
나는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진정해. 그러다 실수로 이거 떨어뜨릴라."
"무표정으로 세상 무서운 소리 하고 있네! 어어, 그만 휘둘러 좀!"
우리 둘의 대화를 들은 앤드류는, 물음표를 띄우며 오르헬에게 물었다.
"오르헬 형님. 왜 그래요? 저거 그냥 원래부터 로한 경이 쓰던 그 기술이잖아요. 한 두 번 본 것도 아니고."
"아이고, 작은 브라더야. 네 눈구멍은 손가락으로 구멍만 뚫어 놓은 거냐?"
"......무슨 또 그런 심한 말을......"
오르헬은 손가락으로 새로운 황금의 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거 지금 쟤가 힘 조절 안 된 상태로, 풀 파워로 만든 거라고. 저렇게 휙휙 휘두를 상태가 아니란 말이다!"
"그래......요? 저게요? 으으음. 그냥 좀 커진 것 같아 보일 뿐인데......"
"모르는 소리, 안 그래?"
오르헬은 뒤를 돌아보았다.
디아즈와 그렌들을 향해.
팩트 체크를 좀 해달라는 얼굴로 말이다.
그러나 그녀들도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오히려 당황한 것은 오르헬이었다.
"저걸......아니! 이 사람들이 진짜! 저게 감이 안 와? 저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고도 모르겠다고? 저거, 저거! 와, 씨! 답답해 뒤지겠네! 어이, 브라더! 그거 좀 보여 주라. 이 멍청이들한테."
나는 그를 보고 피식 웃었다.
내가 당사자인데, 왜 자기가 더 답답해하는지.
그리고는 저 멀리 시야를 두었다.
구울과 망령들이 도망친 방향을 향해서.
'느낌이 꽤나 묵직한데......멀리 던질 수 있으려나?'
사실 황금의 창을 던질 땐 적지 않게 힘이 들어가는 편이었다.
그래서 더 커진 이 황금의 창은 어떨지 살짝 걱정이 되었다.
"흐읍!"
나는 목표를 노리며 힘껏 창을 던졌고.
쩌저저정!
이전과는 다르게, 천둥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황금의 창.
그것은 정확하게 내가 이미지 했던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오히려 이전보다도 더 가벼워진 감각이었다.
던지기 직전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였다.
그리고.
콰과가가강!
땅에 떨어진 그 황금의 창은, 불꽃놀이보다 화려한 폭발을 피워내었다.
확실히 달라지긴 달라졌었다.
이전에는 단순히 황금의 창에 맞은 적만 타격을 입힐 수 있었는데......
우르릉......콰광!
창이 떨어진 주변으로 몇 가닥의 번개가 내리쳐졌다.
그 번개는 주변의 잔챙이들을 죽이기에 충분할 정도의 위력을 가졌음을, 멀리서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우, 우와아아악!"
"이럴 수가......!"
"무, 무슨 이런......"
앤드류와 디아즈, 그렌델이 그 광경을 목도하며 기겁을 하고.
오르헬은 그들을 보며 가슴을 펴고는 목소리를 내었다.
"푸하하하! 거 봐!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이걸 못 알아봐? 에라이 놈들아!"
아니.
네가 한 거 아닌데 왜 그러냐고......
태클을 걸 뻔했지만.
나는 오르헬에게서 신경을 끄고, 내 앞에 벌어진 일에 집중했다.
'신화 클래스 전용 스킬인 황금의 창......팔라딘 클래스 전용 아이템 검은 천둥의 반지. 그리고 가우리엘의 날개에서 얻은 거대한 신성력.'
나는 머릿속으로 그 스킬들 사이의 연관성을 되짚어 보았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하나.
신......
신화.
신을 섬기는 성직자.
신의 힘, 신성력.
모든 것들이 신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점.
같은 뿌리에 근원을 둔 힘이기 때문일까?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이, 하나 더 늘어난 것 같았다.
* * *
그렇게 한참을, 내 힘에 대해 자기가 더 흥분하며 떠들던 오르헬이.
마침내 할 말을 다 했는지, 내게 다가왔다.
"어이, 브라더. 그런데, 고울룬 동굴에는 왜 가라고 하는 건데? 거긴......거미 많아서 딱 질색인데."
그 물음에 나는 페트리엘이 죽기 직전 내게 털어놓았던 이야기들을 꺼내었다.
모든 말을 들은 오르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안에 아라크네가 숨어 있었다고? 하......"
"아라크네와 모르자돈의 괴수가 함께 움직이고 있는 모양이더군."
"확실히......아라크네라면, 여덟 개의 눈으로 만물을 관찰하는 힘을 가지고 있긴 하지. 그런데, 그 괴물하고 모르자돈의 괴수가? 괴물끼리 짝짜꿍이 잘 맞나 보네."
우리 둘의 대화에.
앤드류가 끼어들었다.
"아라크네? 아라크네가 뭔데요?"
"작은 브라더. 아라크네도 몰라?"
"......그거 알아야 해요?"
"너, 일곱 기사단의 일원이라면서."
"그렇죠."
앤드류가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자.
오르헬은 어이없음을 온 얼굴로 드러내었다.
"......"
"왜요?"
"근데 뭐가 그렇게 당당한 거냐?"
"모를 수도 있지."
"그래, 그래. 모를 수도 있지. 아라크네는 꽤 오래된 괴물이니까. 그래도 신화로 전승되긴 하는 거 같던데."
"오르헬 형님도 본 적 있어요?"
오르헬은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징글징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다마다. 그 거미 괴물 놈. 예전에는 고울룬 동굴이 아니라 다른 곳에 둥지를 틀고 있었는데. 하필 내가 제일 좋아했던 양조장 주인을 잡아먹어 가지고. 대판 싸웠지!"
"오! 그래서 누가 이겼는데요?"
"거, 뭐......싸움이 꼭 결과가 있나. 그냥 내 의견을 피력한 거지."
"......"
앤드류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졌죠?"
"지, 지기는 인마! 아, 안 졌어!"
"에이. 졌구만."
"비겼어. 결국 아라크네 놈도, 다른 곳으로 도망을 쳤고. 나한테 쫓겨 난 다음에 새로 둥지를 튼 게 거기 고울룬 동굴인가 본데."
"음음. 그냥 그렇다고 칩시다."
앤드류는 전혀 안 믿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오르헬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치긴 뭘 쳐! 한방 후려쳐 버릴까 보다! 진짜 안 졌어. 그냥 거미가 역겨워서 물러서 준거지."
"물어보지도 않은 걸 왜 자꾸 대답하고 그래요? 찔려요?"
"아니, 근데 이 놈이 진짜, 콱!"
"우아아아아!"
앤드류가 풀쩍 도망가고.
오르헬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씩씩거렸다.
그런데.
나도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물론 지금 상태의 오르헬이라면 힘들긴 해도......
피를 보고 본성을 드러낸 오르헬이라면, 그에게도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기에.
"왜 아라크네를 죽이지 못한 건가?"
"......많아."
"뭐?"
"거미가 너무 많아. 나랑은 상성이 안 맞더라고. 끝도 없이 쏟아지는 그런 잔챙이들 일일이 밟아 죽일 수도 없고. 놔두자니 독을 뿌려서 방해하고. 나는 브라더랑 다르게 독 내성도 없잖아."
아하.
확실히.
한 방 한 방이 굵직한 오르헬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게다가 그 거미 괴물 녀석. 여기저기 함정처럼 뻗쳐 놓은 거미줄도 골치더라고. 해서 죽이지 못한 거지. 그래도 그때 둘 다 거의 빈사 상태까지 싸우긴 했다."
상성도 맞지 않는데.
그럼에도 오르헬은 끝까지 싸운 모양이었다.
잃은 친구를 위해.
"그렇군."
"그런데......지금 우리 브라더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겠는데? 특히 조금 전 그 황금의 창......주변의 구울들을 한 번에 태워버렸지. 거미라고 별수 있겠어?"
"해봐야지."
"해보나 마나야. 이참에 어차피 죽여야겠네. 과거의 복수도 할 겸."
"복수? 아, 그 양조장 주인?"
"그래. 그 녀석......내 평생 몇 없는 진짜 술친구였거든."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일까.
오르헬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 친구 녀석. 통째로 잡아 먹혀서는, 뼈도 못 추려서......무덤도 없어. 복수라도 해줘야지. 안 그래?"
"나쁘지 않지. 겸사겸사."
"하하. 그래. 겸사겸사. 자! 그럼 가자고. 고울룬 마을로! 거기 술이 또 맛나거든!"
나는 작게 미소 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억지로 밝은 척을 하려는 게, 보였다.
그러나 그걸 지적할 수는 없었다.
단지 같이 걸을 수밖에.
그렇게 우리는, 고울룬 마을로 출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