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내가 당해봐서 잘 알지
부우우욱!
나는 놈의 척추에 발을 가져다 댄 채.
힘껏 양팔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속이 시원하게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으아아아아악!"
페트리엘의 비명도 함께 터져 나왔다.
그리고 1열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디아즈, 앤드류, 그렌델 그리고 오르헬은 저도 모르게 입을 떡 벌렸다.
하긴.
어디서 천사 날개 뜯는 명장면을 보겠나.
그것도 실시간으로.
나는 마무리로, 페트리엘의 등을 발로 힘껏 밀었고.
퍽! 쿠당탕탕탕!
페트리엘은 네 장의 날개만 겨우 부지한 채로 바닥을 뒹굴었다.
아니, 사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일 뿐이긴 했다.
그는 고작해야 몇 시간 전만 해도 이 모습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본인은, 자신의 지금 모습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듯한 모양이었다.
"내, 내 아름다운 날개가......! 내 날개가아아아아!"
눈을 희번덕거리며 발광을 하는 페트리엘.
갑작스럽게 힘을 폭발시키는 바람에, 그를 붙잡고 있던 넷이 동시에 튕겨 날아갔다.
"크윽!"
"우아아아?"
"아이고, 내 손톱!"
"여, 염력이 풀렸......!"
오로지 나만이 바닥에 다리를 고정시킨 채.
거대한 나무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감히 내 날개를 뜯어? 그 벌로 네 사지를 뜯어버릴 것이다!"
나는 그에 팩트 체크를 해주었다.
"네 날개? 어이가 없네. 남의 날개 주워다가 붙인 주제에 뭐가 네 날개야?"
"그건 내 날개다! 신이 내게 주신 기회이고! 신이 내게 주신 날개란 말이다아아아!"
"계속 신, 신, 신 타령만 하는데. 신이 무슨 생각인지 까지는 난 잘 모르겠고. 대신 내가 신나게 혁신적으로다가 날개 없는 천사로 변신은 시켜 줄게. 등신아."
"하등한 인간 주제에! 지금 그 간사한 혓바닥으로 날 골탕먹이는 것이냐!"
"빨리도 눈치채네."
"이 노오오오오옴!"
페트리엘은 침을 질질 흘리며, 일직선으로 달려들었다.
굉장히 허접한 공격.
이성이 있을 땐 드레트노어 만큼이나 버거웠었다.
그 정도의 속도와 힘을 갖춘 채 침착하기까지 했으니까.
그 때문인지, 패턴도 내가 알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그러나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지금은?
'눈을 감아도 훤히 보이네.'
패턴은 원작에서 보여주던 그대로였다.
알고 있는 패턴대로 움직여주는데 무엇이 겁나겠나..
이건 고인물에게는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 식은 죽 먹기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그럼에도 주변에서 보기엔 그렇지 않은듯했다.
"로, 로한 경! 또 옵니다!"
"브라더! 거리를 벌려!"
"우와아아아, 뭐 하고 있어요?"
"로한 니이이임!"
뭐, 그럴 수 있지.
지금 저들의 시야로 보자면, 페트리엘은 마구잡이로 날뛰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페트리엘은 조금 달랐다.
'여기서 왼팔 먼저.'
부웅!
'그리고 하단.'
샤악!
'이어서 발검 공격이랑 십자 베기.'
촤악! 슈웅! 슈우웅!
미래를 보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내게.
이런 공격들이 통할 리가 없었다.
심지어는 원작에서 보던 속도와 파괴력보다도 훨씬 느리고 약했다.
나 또한 함께 검을 뽑고는, 다시 이어서 날아드는 페트리엘의 검을.
서걱! 서걱!
깔끔하게 베어버렸다.
그 광경을 본 앤드류가 피식 웃었다.
"와, 저거. 내가 당해봐서 잘 알지."
* * *
촤악!
내 마지막 검격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서걱.
공간의 찢어짐과 함께 페트리엘의 마지막 남은 날개가 위에서 아래로 툭, 떨어졌다.
그야말로 압도적 격차.
두 번째 날개가 베어질 때까지만 해도, 페트리엘은 인정하지 못했었다.
"방심했을 뿐이다!"
다른 이들은 다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하나 세 번째 날개가 날아가는 순간.
"이, 이럴 수는 없는 것인데......인간이 나보다 강하다고? 이 내가, 인간보다 약하다고?......"
전의를 잃는 순간.
네 번째 날개가 날아가는 것은 금방이었다.
털썩.
페트리엘의 무릎이 꿇리고.
그는 나를 위로 올려다보았다.
바닥보다 더 낮은 곳에서.
페트리엘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날 바닥으로 끓어내려 주겠다고 하고선, 손으로 날개를 뜯어버리다니. 이런 개 같이 어이없는 경우를 보았나......"
"내가 약속은 지키자는 주의라서."
"너는......인간이 아니로구나."
"글쎄. 보시다시피 날개도 없는데?"
"후후후. 평범한 인간이 천사의 날개를 뜯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럴 수도 있나 보지."
"아니."
의외로 페트리엘은 사정없이 단호하게 대답을 했다.
그에 나도 쉬이 반박을 하지 못하였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로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인간과 천사는 다른 계의 존재들이다. 천상계의 상징인 날개를 뜯는 것이, 지옥계의 상징인 뿔을 뽑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인 줄 아는가?"
"그게 뭐 어쨌......"
"다시 말하도록 하지. 너와 내가 다른 계의 존재라면, 불가능하다는 소리이다."
"......"
"그야말로 '신'이던가. 아니면 이 세계의 규율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다른 세계의 존재이던가."
규율?
모르겠다.
분명 나는 원래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몸은 확실히 원래 이 세계의 존재였다.
크뢰이튼도, 마녀 레데이아도 과거의 이 몸과 마주친 적이 있다 하지 않았던가.
정확히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는 나도 아직 알지 못했다.
페트리엘은, 내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네놈은 대체......대체 어디서 나온 괴물인 것이더냐?"
"나도 모른다."
"본인이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는 괴물이라. 이대로 죽으려니 조금 아쉽군. 만약 내가......"
그는 힘이 많이 빠졌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점점 줄어드는 목소리를 억지로 짜내며 말을 이었다.
"내가......생각을 다르게 먹었었다면, 너와 적이 되지 않았다면.......그랬다면 내 미래가 바뀌었을까?"
죽기 직전이라 그런 것일까?
그의 입에서 나약한 소리가 처음으로 흘러나왔다.
"그랬을 것이다."
"너무 쉽게 대답하는군."
"나는 이미 몇 명의 미래를 바꾸어 놓았으니까."
"미래도......알고 있나?"
"가까운 미래는."
페트리엘이 고개를 들었다.
"미래를 보고, 모든 공격이 무위로 돌려버리니.....마치 신과 싸운 것 같군."
아예 틀린 말은 아니리라.
원작에 적으로 나와서 패턴을 알고 있는 놈들에 한해서는, 미래를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페트리엘은 씁쓸하게 웃으며 물어왔다.
"네가 아는 미래의 나는, 그때에도 네게 죽었나?"
"내가 아니라도 넌 결국 죽는다. 가우리엘의 날개에 도취되어 몰살을 시작한 탓이지."
"종국에는 죽을 운명이란 말인가. 대의라 할지라도 죽음을 동반해야 하는 일이라면......그걸 이루지 못한 이상 그저 악당이 되어버리지. 네가 아는 나는, 악이겠군."
"......"
나는 말로써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그것 자체가 이미 대답이었다.
"후후. 죽음을 앞둔 입장이 되니, 그래도 미래 하나 정도는 바꿔 보고 싶어졌다."
초탈한 표정을 지으며, 페트리엘의 눈동자는 나를 쳐다보았다.
점점 초점이 흐려지는 게 느껴졌다.
제대로 나를 찾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게 보였으니.
"모르자돈의 괴수. 그놈 역시 가우리엘의 날개를 찾고 있다. 그 정도는 물론 알고 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모르자돈의 괴수는, 천사를 먹고 허물을 벗고 진화하는 마수이다. 그 마수가 왜 가우리엘의 날개를 찾겠는가?"
"그걸로 배라도 채우려는 거 아니었나?"
"가우리엘의 날개를 자양분 삼아 성장한다고? 아니. 그렇지 않다."
"뭐?"
내 되물음에, 페트리엘은 마지막 말을 기침과 함께 토해내었다.
"놈은 거신족들의 분노 안에서 태어난 존재. 쿨럭, 쿨럭! 그렇기에 신의 창조물인 우리 천사를 먹으며 그 덩치를 키워간다. 쿨럭! 후우......하지만 모르자돈의 괴수는 그렇게 생각이 단순한 놈이 아니다."
"다른 속셈이 있다는 건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 위계 대천사들의 날개는, 그 날개 쌍마다 다른 힘을 내포하고 있다. 상급 천사나 하급 천사의 날개에는 모든 힘들이 뭉뚱그려져 잠재된 것과 달리. 지금 이 자리에 있었던 날개는 신성력의 날개. 내가 여기 있던 이유도, 내게 가장 필요한 게 신성력이기 때문이었지. 그리고 모르자돈의 괴수는 그 비밀을 알고 있었다. 놈이 노리는 것은, 포용력의 날개."
"포용력?......"
"가우리엘이 초월적인 존재에서 추락한 자로 전락한 이후. 그분에게 가장 큰 전력 손해를 입힌 것이 바로 포용력의 날개를 잃은 것일 테지. 나도 이번 일만 잘 마무리 되면 그걸 취하려 했을 테니까."
"그 날개는 무슨 힘이 깃들어 있는 것이지?"
"중간계의 정령왕. 그들과의 계약이 담겨 있다. 그 날개만 있다면, 봉인되어 있는 정령왕들의 기운을 허락도 없이 강제로 끌어다 쓸 수 있지! 놈은 그것을 노린 것이다."
"......!"
정령왕의 힘을 쓸 수 있다니......
그런 능력도 있었던 것인가?
그럼 과연 완전체 가우리엘은 대체 얼마나 괴물이었을까?
상상이 가질 않았다.
"최고 위계 대천사들은 각자 다른 속성의 정령왕과 계약을 한 상태이다. 가우리엘은 모든 것을 태우는 성스러운 불꽃. 불의 정령왕과 이어져 있었지."
"불의 정령왕......"
지옥의 불길조차 버티던 그 힘이, 거기서 비롯된 것이었구나.
물론 원작의 시점에서는 그 힘도 거의 잃은 채라, 버티긴 해도 치명상을 입었지만 말이다.
"모르자돈의 괴수가 포용력의 날개를 가지지 못하게 하려면, 먼저 아라크네를 죽여야 한다. 그녀를 통해, 모르자돈의 괴수가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그런 게 있었군."
"어때? 미래가 좀, 바뀌었나?"
원작의 미래 시점에서 모르자돈의 괴수는 포용력의 날개를 손에 넣지 못한 채였다.
아마 원작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페트리엘이 아라크네를 죽였기 때문이었겠지.
하나 지금의 미래는 확실히 바뀌었을 터였다.
페트리엘은 여기서 죽고.
그가 죽여야 할 아라크네를 내가 죽이지 못한다면......
모르자돈의 괴수는 결국 포용력의 날개를 손에 넣었을 테니까.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바뀌었을 듯싶군."
"하하하. 다행이군. 내가 이렇게 죽는 것도 억울하긴 하지만......그 괴수 놈이 가우리엘의 날개를 얻는 것도 썩 마음에 들지가 않아서 말이지. 아, 참. 아라크네는 고울룬 동굴에 몸을 숨기고 있다. 이게 내가 아는 전부다. 후우......이제 슬슬 졸리는군."
페트리엘이 고개를 푹 떨구었고.
"인간들은 항상 욕심에 휘둘려, 악마의 꾐에 넘어가곤 하지. 그런데 이상하지? 그대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인간들이 모두 그대와 같았다면......내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군. 후후. 이것조차 남 탓을 하는 것이긴 하네......하여간, 끝까지 어리석군. 나라는 놈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페트리엘의 목소리는.
그는 천천히 눈을 감고 영면에 들었다.
* * *
"아이고, 허리야."
"으으......"
"로한 님! 괜찮으십니까?"
"로한 경!"
페트리엘이 힘을 폭발시킨 탓에 날아갔던 넷은.
겨우 몸을 추스르며 다시 다가왔다.
오르헬은 어느샌가 평소의 그 모습이 되어 있었다.
그의 말대로, 한껏 힘을 쏟아 붓고 나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오르헬과 앤드류는 무릎을 꿇은 채 죽은 페트리엘을 살폈다.
"그나저나. 진짜 손으로 날개를 뜯어버리다니. 우리 브라더 장난 아니네, 어후."
오르헬은 몸을 한 번 부르르 떨었고.
"미쳤다, 미쳤어. 진짜 해버렸어......미쳤드아!"
그 옆에서 앤드류가 또 맞장구를 치며 혀를 내둘렀다.
한편, 디아즈와 그렌델은 나의 곁으로 와서 나를 살폈다.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저 천사 녀석. 엄청나게 날뛰던데......"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디아즈는 작게 미소를 지었고.
"문제없다."
"다행입니다."
그렌델은 엄지를 치켜세웠다.
"정말 굉장했습니다! 저런 괴물 같은 천사를 상대로, 이렇게 가볍게 이기시다니. 날개 자르는 걸 보니, 닭 날개 요리가 먹고 싶어 질정도였습니다!"
"......"
저걸 보고 왜 닭 날개가......?
하여간.
그렌델 얘도 4차원은 제대로 4차원이었다.
디아즈도 그걸 느꼈는지.
분명히 그 말을 들었음에도, 못 들은 척 하며 말을 넘겼다.
"그런데......무슨 대화를 나누신 겁니까?"
"페트리엘?"
"예."
"다음으로 가야 할 곳을 알려주더군."
"다음......말입니까?"
그 말을 하자, 오르헬도 슬금슬금 다가왔다.
"다음? 어디로 가라던데?"
"고울룬 동굴."
"뭐? 고울룬 동굴? 거기에 뭐가 있다고?"
"아라크네가 있다고 하더군."
"......이런, 미친? 아라크네라면......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거미인, 괴물이잖아?"
"그렇지."
모르자돈의 괴수가 먼저 움직이고 있을 테니.
원래의 역사대로, 놈이 포용력의 날개를 가지지 못하게 하려면 먼저 아라크네를 치는 수밖에 없었다.
"바로 출발하지."
"예, 로한 님!"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경."
"허리 아직 뻐근한데......"
"또 가요? 어디 가는데요? 나도 알려 줘야지!"
그렇게 우리는.
쉴 틈도 없이 다시 고울룬 동굴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아, 그 전에.'
가우리엘 신성력의 날개부터 좀 챙기고 나서.
나는 제일 먼저 뜯어낸 가우리엘의 날개 쪽으로 걸어갔다.
그것은 놀랍게도 작은 깃털의 모양으로 변해 있었는데.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제3의 눈을 통해, 엄청난 양의 신성력이 일렁이는 게 보일 정도였으니.
나는 손을 뻗어 그 깃털을 쥐었고.
화아아아악!
엄청난 양의 신성력이, 온몸으로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