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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90화 (90/194)

90화. 이카루스

"젠......장?"

페트리엘은 으르렁거리는 얼굴로 나를 한 번 노려보더니.

슈우우웅, 털썩.

저 멀리 어딘가에서 추락했다.

그 모습을 본 오르헬이 중얼거렸다.

"와, 씨. 해치웠나?"

여기서 저 클리셰에 박힌 대사를 내뱉을 줄이야.

나는 그를 힐끔 째려보았다.

"그딴 소리 하면, 진짜 해치운 놈도 되살아나겠네."

"그게 뭔 소리래, 브라더."

"그런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란 거지."

그러면서 나는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완전체 페트리엘이 고작 저 정도 소량의 독에 죽을 리도 없다."

오르헬은 내 옆으로 따라붙으며 대답했다.

"역시 그렇겠지? 그렇다손 쳐도 말이야. 드레트노어의 독에 만티코어의 독까지 섞은 건가? 굉장한데?"

"나도 생명체한테는 처음 써 보는 거라."

사실 독의 효과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좋긴 했다.

'저 정도 적은 양으로도 완전체인 페트리엘을 추락하게 만들 수준은 된다는 거네......'

죽지는 않겠지만, 찰나의 빈틈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그리고 심지어는 아직 이것도 전력이 아니었다.

만약 그 양이 또 늘어난다면......

의외로 비장의 한 방 정도는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 * *

페트리엘은 바닥에 엎드려 기침을 토했다.

"쿨럭, 쿨럭!"

그 짧은 시간.

도대체 무슨 독을 썼는지 알 수는 없으나, 순식간에 균형 감각을 잃고 눈앞이 흐려졌다.

이제 여섯 장의 날개를 가지고도 이런 치욕을 맛볼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그 때문에 더더욱 수치스러웠다.

'감히......감히! 하등 종족 따위가......!'

그러는 사이.

이미 이 새로운 몸은, 독을 거의 다 회복해 내었고.

"퉤!"

페트리엘은 남은 잔독을 뱉어내고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무릎을 짚고 일어서는 페트리엘.

그는 자신의 양팔을 내려다 보았다

근력은 상상 이상으로 부풀어 올라 있었고.

다시금 기운은 폭발할 듯한 넘쳐 흘렀다.

뱀파이어 로드?

독 같은 잡다한 기술 달랑 하나 믿고 날뛰는 하등한 인간?

여섯 날개를 가진 최고 위계 천사 앞에서는 한낱 미물에 불과할 것이었다.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내가 이기는 것은 당연지사이거늘!'

치사하게 예상치 못한 독 따위를 갑자기 써서 잠시 당황한 것뿐이다.

심지어는 그 독을 쓰고도 자신을 어찌하지 못하지 않았던가.

'격의 차이는 여실하도다.'

때마침.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들이 들렸다.

한껏 예민해진 감각을 손에 넣은 페트리엘은, 그것이 로한 일행이라는 것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그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거진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물론 공중에서 압도적으로 찍어 누르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얼마나 무모한 존재에게 덤벼들었는지, 죽기 전에 깨닫게 해주는 것도 하나의 재미이겠지. 후후후......'

페트리엘은, 천천히 뒤로 물러서며.

수풀의 어둠 사이로 몸을 감추었다.

* * *

사박, 사박.

나뭇잎을 밟는 소리만이 옅게 들렸다.

호흡 소리마저 숨기며.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던 와중.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발을 세웠다.

'이것 봐라? 매복을 하고 있어? 기습으로 시작한 뒤에 정면으로 받아주겠다 이거지?'

꽤나 기척을 잘 숨겨서, 평소라면 나도 놓쳤겠지만......

지금처럼 전력을 다해 집중을 한 제3의 눈을 속일 순 없었다.

내 수신호에 따라 내 뒤를 따르던 이들 역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고.

나는 손가락으로 페트리엘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전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이미 준비한 대로만 움직인다면, 이제 막 여섯 날개를 처음 가진 초짜 완전체는 상대할 만할 것이었다.

원작에서는 아예 완숙한 페트리엘도 상대해봤으니 말이다.

'물론 그때는 더럽게 고생하기는 했지만......'

차라리 지금 싹을 잘라버리는 게 후환을 제거하는 방법일 터였다.

앤드류와 디아즈, 그리고 그렌델에게 놈을 감싸는 형태로 진영을 구축할 것을 손짓으로 알렸고.

그들은 미리 짜둔 작전대로 위치를 잡기 위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오르헬을 쳐다보았다.

오르헬의 상태는 그다지 편해 보이지 않았다.

짐짓 괜찮은 척은 하고 있었지만......

날카롭게 드러난 송곳니.

훨씬 더 붉게 변한 눈동자.

그리고 전반적으로 거대해진 근육까지.

흘깃 본다면, 다른 사람이라 착각할 정도였다.

오르헬 역시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에게 소리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만 말을 했다.

"괜찮나?"

그에 그도 소리를 내지 않고,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브라더."

오르헬 역시 나처럼 페트리엘의 매복을 감지했는지.

정확하게 놈이 숨어 있는 자리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다만, 스트레스를 조금 풀면 속이 좀 시원해질 것 같단 말이지."

그렇게 속삭이는 와중에도 그의 입술이 떨렸다.

겨우겨우 이성을 붙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에 나는.

"그럼, 먼저 선빵 휘두르는 걸 양보하지."

통 큰 이해심을 내비쳤고.

오르헬의 입꼬리가 크게 히죽 올라갔다.

엄지를 척 세우며 말이다.

"역시 브라더!"

그리고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나갔다.

로드 오르헬의 선공을 기점으로.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결국은 추락한 자의 이름을 딴.

이카루스 작전이 시작되었다.

* * *

피 냄새에 광기가 돋은 로드 오르헬의 모습은, 가히 최상위 포식자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숲을 가로지르며 겁 따위는 없이 직선으로 똑바로 달리는 그 모습이 마치.

이성을 잃고 분노하면 강해지는 괴력의 녹색 거인과, 손등에서 엄청 단단한 칼날이 튀어나오는 늑대 같은 괴물을 뒤섞어 놓은 듯했다.

실제로 손톱도 날카롭게 세우고 있었고 말이다.

'대량의 피 냄새만으로도 이 정도인데......진짜 작정하고 흡혈을 했다면......'

상상만으로도 오싹해지는 것 같았다.

지금의 나조차도 풀파워의 오르헬을 과연 막을 수 있을까?

일방적으로 당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반대로 일방적으로 압도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있는 전력 없는 전력 다 끌어모아서, 공략을 세우며 덤벼들어야 할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오르헬은 단순히 도약만으로도 압도적인 야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채식주의자라서 다행이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이미 오르헬은 페트리엘이 있는 곳에 거의 다다랐다.

페트리엘은 나뭇잎이 풍성한 나무 위에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그걸 알고 있었던 오르헬은, 고민 따위는 없이 냅다 손톱을 휘둘렀다.

퍼억!

손톱으로 나무를 긁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괴팍한 소리와 함께.

나무 밑동의 절반이 날아가고.

오르헬은 이어서 반대편 주먹을 뻗어.

쿠우웅!

반이 날아간 나무를 휘둘러 쳤다.

정말이지 무식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가장 빠른 방법이었고.

기우뚱......

실제로 채 몇 초도 흐르기 전에, 저 거대한 나무가 기울더니.

쩌저적, 쩌저적!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으니.

덕분에 위에서 매복을 하고 있던 페트리엘은 이제 내어 놓을 수 있는 수가 확 줄었다.

그 역시 과감한 쪽을 택했다.

바로 모습을 드러내며 아래로 뛰어든 것이다.

"그래! 이성을 잃고 날뛰는 그 괴물의 모습이, 로드라고 떠드는 네놈들의 본 모습이었지?"

"내가 진짜 이성을 잃었으면 넌 이미 뒤졌어!"

"글쎄. 그래 봤자 너는 내 발아래에 꿇을 것이다.

"어이, 그래. 드루 와! 드루와 이 새끼야!"

페트리엘은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오르헬은 아래에서 위로.

두 괴물이, 부딪혔다.

* * *

본성을 드러낸 뱀파이어 로드와.

여섯 장의 날개를 차지하고 완전체가 된 천사.

사실 나는 그들 둘이 맞붙었을 때.

한쪽의 우위를 점쳤다.

그것은 페트리엘 쪽이었다.

원작에서 역시 여섯 날개를 가진 페트리엘도 나왔었고.

뱀파이어 로드인 드레트노어도 나왔었으니 말이다.

둘의 차이는 확실했다.

드레트노어의 패배.

이미 네 장의 날개를 가지고 있던 시절부터 드레트노어와 거의 동급이었던 페트리엘이었으니.

완전체가 된 이후의 시점에서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러나 의외로 오르헬은, 놈에게 밀리지 않았다.

'이거 어쩌면......내가 나설 일이 없을 수도 있겠는데?'

그만큼 오르헬의 전투력은 내 상상 이상이었다.

반면에 완전체 페트리엘은 내 기억보다 조금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저것보다 훨씬 날쌔고, 훨씬 강해야 하는데......

'아직 가우리엘의 날개에 적응을 덜 한 건가?'

자연스럽게 내 생각이 그리로 흘렀다.

그러고 나니, 시선도 가우리엘의 날개로 향하게 되었는데......

'음? 저게 뭐야? 뭔가......부실해 보이는데?'

워낙 빠른 공방이 이어지는지라, 쉽게 눈에 띄지는 않았으나.

집중을 하니 보이기 시작했다.

희한하게도 페트리엘의 등에 붙어 있는 가우리엘의 날개는, 뭔지 모르게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빠르게 몸을 비틀기만 해도 떨어질락 말락해 보이는 게.

물론 그러는 와중에도 점점 더 강하게 붙고 있는 것 같긴 했다.

덩달아 오르헬도 점점 밀리기 시작했고.

결국은 피를 마시지 않은 오르헬과.

매 초 가우리엘의 날개에 적응을 하는 페트리엘.

대의를 위해 힘을 포기한 자와.

자신을 위해 힘을 고집하는 자의 차이가.

둘의 격차를 꾸역꾸역 좁히고 있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른다면......종국에 웃는 것은 오르헬이 아니라 페트리엘이 될 터였다.

아직 몸을 숨긴 채 지켜보던 디아즈와 앤드류, 그리고 그렌델도 그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들이 당장에라도 튀어 나갈 듯 조급한 얼굴을 하고는 내게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 눈빛에서, 오르헬을 향한 걱정이 비춰졌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혈사검 되찾으러 온 놈이랑......벌써 다 친해지고 난리야."

그만큼 오르헬은, 우리들 사이로 빠르게 스며들었던 것 같았다.

나도 싫진 않았고.

그렇기에 그를 믿었다.

나는 디아즈와 앤드류, 그렌델에게 침착하라는 표시의 수신호를 보내고는.

최적의 타이밍을 기다렸다.

단 한 번에 페트리엘을 끝낼 그 움직임을.

'이제 막 완전체가 되었다고는 해도, 분명히 그 패턴이 나올 거다......나는 그거만 잘 노리면 돼. 인생 한 방!'

그리고 마침내!

페트리엘은, 원작에서 보여주었던 그 패턴을.

날개를 펄럭이며 백 텀블링을 하고, 이어서 주먹을 앞세워 다시 날아가는 그 패턴을 보였다.

저건 맞으면 겁나게 아프지만.

반대로 페트리엘이 각종 스턴기에 완전 무방비가 되는, 유일한 패턴이었다.

나는 소리를 쳐 신호를 보냈고.

"지금이다!"

그렌델이 염력을 일으켜 페트리엘의 속도를 늦추고.

동시에 디아즈와 앤드류가 튀어 나가 페트리엘의 팔을 하나씩 각각 부여잡았다.

"뭐, 뭐야! 이것들이......!"

공격마저도 포기하고 오로지 묶어놓겠다는 일념 하나로 덤빈 그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오르헬이 놈의 두 다리를 묶어 둘 차례였다.

그는 손톱을 세워, 페트리엘의 양발에.

푸욱!

"끄, 끄아아악!"

두 손을 찔러 넣고는 그대로 관통하여 바닥에 콱 박아 넣었다.

일순간에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되어 버린 페트리엘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거칠게 흔들렸다.

어느새 페트리엘의 등 뒤에 도착한 나는.

그가 흡수한 가우리엘의 두 날개를 단단히 양팔로 붙잡았다.

그리고는 속삭였다.

"내가 말했지? 끌어내려 주겠다고!"

"아, 안 돼......!"

"돼!"

나는 이두박근을 힘껏 부풀리며.

부우욱!

두 장의 날개를 다시 뜯어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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