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다시 끌어내려 줄게!
"페, 페트리엘 님! 저, 저 로한이라는 자가 계속 창을......!"
추종자 천사가 매우 당혹스러워하며 페트리엘을 불렀다.
하지만 정신없는 건 페트리엘도 매한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페트리엘이 더 정신이 없었다.
로한이 던지는 황금의 창은, 추종자 천사가 아니라 페트리엘을 향해 집중포화 되고 있었으니.
"시끄럽다!"
때문에 페트리엘은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슈웅!
"크윽!"
그러는 동안에도 황금빛 창은 계속해서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뿐만이 아니었다.
황금의 창만큼 위협적이지는 않아도.
로드 오르헬의 피의 꼬챙이 역시 끊임없이 쏘아지고 있었다.
핏! 피핏!
'젠장! 오르헬 녀석만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뱀파이어 로드.
그 굵직한 타이틀을 달고 있는 저 술주정뱅이만을 신경을 썼던 페트리엘이었다.
저렇게 허술한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도, 그 안에 숨겨진 진정한 힘은 페트리엘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착각이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고작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오르헬의 공격이 만만하다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놈들을 떨쳐낼 수가 없습니다!"
"시끄러워! 나도 보고 있으니까, 일일이 말 할 필요 없다!"
"예, 예......"
놀랍게도 저 로한이라는 인간은 천사인 자신조차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았던, 지상의 그 빼곡한 구울과 망령들을 마치 가을 날씨의 낙엽처럼 쓰러뜨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아니, 쫓아오고 있었다.
"젠장!"
저 뒤에서, 죽음의 신처럼 따라붙고 있는 모습이 썩 불쾌하였다.
심지어는 그게 다른 어떤 존재도 아닌, 하등한 인간이라니.
"야! 거기, 서! 이 날벌레 새끼들아!"
뿐만이 아니었다.
하등한 놈들 주제에 말투까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깟놈이 서라고 하면, 감히 고위 천사인 자신이 말을 듣고 멈춰 서야 하는가?
'어림없는 소리......!'
페트리엘은 언제 날아올지 모를 황금의 창을 예의주시하며.
아래를 내리깔아보았다.
그때.
추종자 놈이 또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닌가.
"페, 페트리엘 님......! 이, 이번에는 진짜 자, 잠시 멈추셔야......!"
페트리엘은 쳐다보지도 않고, 빽 성질을 내었다.
도대체 인간 따위에게 저렇게 겁을 먹어서야 어디다 써먹겠나 싶을 정도였다.
"그 입 다물라! 좀!"
안 그래도 짜증이 나는데, 그 와중에 아래의 인간 놈도 소리를 치고 있었다.
"멈춰 이 새끼야!"
페트리엘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이것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감히 누구에게 계속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음?"
그때였다.
갑자기 눈앞이 어두워진 것은.
페트리엘은 태양 빛을 가린 원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앞에 존재하는 것은......거대한 아가리였다.
텁!
* * *
페트리엘이 먹힌 직후.
그의 추종자 천사는 빠르게 위로 비상하며, 괴물을 쳐다보았다.
"히, 히이이익! 씨, 씨 서펜트? 저 바다 괴물이 왜 여기에?"
바다를 지배하는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이자.
가장 원시적인 드래곤이라고도 불리우는 해룡.
그 씨 서펜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나도, 디아즈나 그렌델, 앤드류 그리고 오르헬까지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상위 천사 하나를 씹어먹으면서 등장해버리니.
덩치도 덩치이거니와, 그 압도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졸지에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된 페트리엘 추종자는,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뒤로는 우리가 버티고 서 있었고.
앞으로는......
"크워어어어어어!"
바다의 괴물이, 페트리엘로는 아직 모자랐는지 입을 쩌억 벌리고 있었으니.
결국 놈은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저울질을 하더니.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놈은 날아오면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거, 거래를 하자! 나, 나를 살려주면 가우리엘의 날개가 있는 곳까지......!"
하지만 추종자 천사가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도 못했다.
씨 서펜트가 물속에 잠겨 있던 몸까지 끌어내어, 한입에 그 날파리 같아 보이는 놈까지 씹어 먹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휴. 가우리엘의 날개가 어디 있는지 물어 봐야 하는데, 다 죽었네."
이제 씨 서펜트의 눈동자는 우리를 향했다.
놈이 나타나자 구울들마저도 사방으로 도망쳤으니.
남아 있는 먹이는......오로지 우리 뿐이었다.
씨 서펜트가 우리를 향해 굉음을 지르며 포식자의 위압감을 뿜어내었다.
"캬아아아아아!"
나의 옆으로 디아즈와 오르헬, 앤드류가 나란히 섰고.
반 보 뒤에서 그렌델이 마법을 준비하였다.
그렇게 씨 서펜트와의 전투가 임박한 순간.
"캬아아아아! 아아! 아! 아악?"
갑자기 놈의 비명이 뭔가 좀 이상해지기 시작하더니.
"쿠어억? 쿠억! 쿨럭!"
기침까지 하며 몸을 베베 꼬는 게 아닌가.
심상치 않음을, 우리들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퍼어어어엉!
느닷없이 씨 서펜트의 몸통 중앙이 폭발을 했다.
놈의 대가리가 공중으로 솟구쳤고.
피의 비가 하늘에 흩뿌려지기 시작하였다.
이미 마법을 준비한 그렌델이 재빠르게 우리들의 머리 위로 장막을 펼쳤다.
덕분에 피에 쫄딱 젖는 일은 없었지만......
나는 고개를 돌려 오르헬을 쳐다보았다.
채식주의자니, 술주정뱅이니 해도 그는 본디 뱀파이어 로드가 아니던가.
피를 보면 흥분하는 건, 로드 건 하위 뱀파이어건 똑같았다.
단지 자제력의 차이일 뿐.
오르헬 역시 내 시선을 느꼈는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괜찮아. 아직은."
하나 이미 그의 눈동자는 조금 더 붉게 물들었고.
뺨으로는 식은땀이 살짝 흘러내렸다.
걱정을 하는 내게 오르헬은, 턱짓을 보냈다.
조금 전 씨 서펜트가 터진 그 방향으로.
"저기다가 이 스트레스 좀 풀면, 해결될 것 같아. 물론......그런다고 우리가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나는 오르헬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페트리엘......"
여섯 장의 날개를 가진.
내 기억 속의 그 페트리엘이, 고고하게 떠 있었다.
* * *
"갑자기 어떻게......?"
앤드류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페트리엘을 올려다보았다.
씨 서펜트에게 먹혔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여섯 장의 날개를 달고 나타났으니.
그의 중얼거림에, 오르헬이 대신 대답을 해주었다.
"아마......그 씨 서펜트가 가우리엘의 날개를 집어삼켰던 모양인 것 같은데."
"그럼 바다가 없는 이곳에 저런 괴물이 있었던 이유도......설마. 그 날개 때문에......?"
"그래. 원래는 호수 근처에 살던 물뱀 같은 놈이었겠지. 근데 하필 가우리엘의 날개 때문에 저렇게 커진 거고. 이제야 앞뒤가 맞네."
그런데 또 하필 그 씨 서펜트에게 페트리엘이 먹히고.
뱃속에 있던 가우리엘의 날개를 페트리엘이 흡수하였다.
'운도 더럽게 좋네.'
괴물한테 먹히고 레벨 업을 하다니.
생각도 못 한 전개였다.
그대로 소화되어 끝일 줄 알았는데 말이다.
페트리엘 본인 역시도 스스로가 운이 좋은 걸 느낀듯했다.
"크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역시 하늘은 나의 편이로군! 죽음조차 허락하지 아니하고, 내가 세운 정의를 실현토록 도와주시니!"
아마 원작에서도 저렇게 가우리엘의 날개를 얻었던 듯싶었다.
그러니 저렇게 광오해질 수가 있지.
마치 자신이 모든 정의인 듯.
페트리엘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았다.
세상 모든 것이 본인의 위주로 굴러가는 것이라 생각하는 그 마인드가.
'운빨 제대로 한 번 터지고 나서 박힌 정신머리인가 보네.'
뭐, 저 정도로 운수가 좋으면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했다.
다만 그걸로 이룬다는 정의가 개떡 같아서 그렇지.
나는 놈을 향해 소리쳤다.
"나오려면 좀 빨리 나오지 그랬나. 늦은 탓에 네 친구가 저 꼴이 됐는데."
내 턱짓의 끝에는.
씨 서펜트의 입에서 반 토막이 난 채 씹히다 만 추종자가 있었다.
놀랍게도 추종자는 아직 살아 있는지, 페트리엘을 향해 구원을 바라고 있었다.
"페, 페트리엘 님......부디 자비를......! 사, 살려......"
하나 그를 보고도 페트리엘은 전혀 관심 없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저런 하등한 천사 따위. 내가 가우리엘의 자리에 오르면 얼마든지 차고 넘친다."
본인 하나 빼고는 다 하등하네.
인간이건 천사이건.
의외로 평등한 녀석인 모양이었다.
그러는 사이 결국 추종자의 숨도 끊어졌다.
이제 이 자리에 남은 것은 우리 일행과......
완전체가 된 페트리엘 뿐.
페트리엘은, 직전의 상황보다 자신의 아군이 줄어들었음에도 오히려 더 여유가 가득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굳이 정면승부는 하려 하지 않더니.
지금은 단독으로 우리와 한 판 붙을 기세였으니까.
"후후후후. 영광으로 생각하라. 한층 진화한 나의 손에 죽는 것을. 아, 그러고 보니 이곳이 내가 처음으로 인간들을 죽인 곳이었지."
그는 추억에 잠긴듯한 표정을 지었다.
"새로 태어난 지금. 또 이 땅에서 처음으로 신벌을 내리다니. 아무래도 이곳은 오래오래 전설로 남을만한 곳이 되겠어."
나는 그에 코웃음을 쳤다.
"또 모르지. 네놈 무덤이 되어서 오래오래 전설로 남을 수도 있는 거 아니겠나."
그는 가소롭다는 듯 비웃었다.
"정말 한결같이 건방지구나. 하지만 이제 그 세 치 혀로 지금의 날 도발 할 수는 없다. 지금 이 자리에 올라오고 나니 깨닫게 되더군. 미개한 자들의 말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가치 없는 것인지."
"올라간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한 시간? 후후. 네놈이 평생 매달려도 겪어 보지 못할 한 시간이지."
"그럼 질투 나니까, 다시 끌어내려 줄게! 여기 바닥으로!"
나는 황금의 창을 창조하고는 놈의 미간을 노리고 정확하게 쏘아내었다.
파아앙!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창은 마치 빛처럼 날아갔다.
그러나 완전체 페트리엘은 이전과는 다르게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롭게 몸통을 살짝 비틀며.
오른팔을 뻗어 내 황금의 창을 잡아낸 것이다!
터업!
"후후후! 신성력도 이제 돌아왔군. 이제 이거 하나로 날 어떻게 할 수는 없......"
그때였다.
페트리엘의 눈이 부릅 떠진 것은.
무언가 작은 물체 하나가 황금의 창 뒤에 바짝 붙어 날아온 걸 본 것이었다.
단검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땐 한 발 늦은 후였다.
페트리엘은 재빠르게 고개를 꺾어 회피하였으나.
살짝 스치는 것까지는 피하지 못했다.
촤악!
완전체 페트리엘의 뺨에, 피가 한 줄기 살짝 흘러내렸다.
나는 놈의 말을 맞받아쳤다.
"누가 한 개밖에 못 던진대?"
"흥. 고작 피 한 방울 흘리게 했군."
물론 놈의 말대로, 피 한 방울 가지고는 승패에 변화가 없을 것이었다.
다만, 정말 피 한 방울이 끝일까?
"그래? 과연 그게 피 한 방울이려나......"
휘청!
순간 페트리엘은 눈앞이 잠시 흐려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나는 그를 보며 하얀 치아를 드러내었다.
"그 단검......독 발라 놨거든."
보랏빛으로 물든 팔을 살랑살랑 흔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