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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88화 (88/194)

88화. 잔챙이도 안 남았는데?

"진짜 미친 수준의 마법이로군."

오르헬은 혀를 내두르며 카르나이 유적지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가 워낙 놀라워하자,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 공간으로 가는 길을 여는 게 그렇게 어려운 기술인가?"

"당연하지, 브라더. 그럼 쉬워 보였어?"

"아니. 그럼 만약 페트리엘은 만나지 않았으면 어떻게 들어 올 생각이었다는 거지?"

그는 눈짓으로 내 옆구리에 채워진 검을 가리켰다.

"내 눈깔, 폼으로 달아 놓은 거 아니다. 우리 브라더가 드레트노어랑 싸울 때, 검으로 보여준 그 기예. 분명히 봤거든. 공간을 베는걸."

"......"

그걸......눈치 챈 사람은 처음이었다.

역시 로드는 로드인가?

가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는 오르헬이었다.

그는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며 걸었다.

"브라더한테 시켜 볼 생각이었지. 카르나이 유적지 어디에 가우리엘의 날개가 떨어졌는지는 몰라도, 카르나이 유적지 자체의 위치는 나도 알고 있으니까. 그 경계에서 브라더가 검을 자알 휘두른다면......"

오르헬은 나를 쳐다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우리 브라더라면 충분히 해결해 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한 거지."

불가능한 소리는 아닐 터였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것을 나는 베어 본 적이 있었으니까.

'레데이아의 차원 마법.'

그걸 벨 때의 느낌으로 벤다면, 충분히 나도 길 정도는 만들 수 있을 터였다.

페트리엘처럼 이렇게 일순간 공간 전체를 드러나게 하지는 못해도 말이다.

물론 그걸 내가 깨닫는 것과, 옆에서 잠깐 지켜본 오르헬이 깨닫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긴 했기에.

나는 내심 오르헬의 관찰력에 감탄을 하며 카르나이 안쪽으로 들어섰다.

* * *

"카르나이. 오래전 멸망한 거대한 고대 제국의 이름이다. 이 카르나이는 본래 악마들의 침공을 막기 위해 세워진 일선 방어선과 같은 곳이었지."

가장 앞에 서서 나아가던 페트리엘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은 용맹하였으며, 죽음도 불사하였지. 그에 여섯 장의 날개를 가지신 천사들께서는 탄복하시어, 이 땅에 축복을 내렸다. 그것이 카르나이 제국의 시작이었다."

그리고는 우리를 돌아다보며 물었다.

"그렇게 거대했던 이 고대의 제국이, 또 왜 멸망했는지는 알고들 있나?"

"......"

"......"

"......"

그 질문에 대답을 하는 이는 없었다.

나야 당연히 원작에 자세히 나오지 않은 이야기는 알 턱이 없었고.

다른이들 역시도 카르나이 제국에 대해서는 그다지 정보가 없는 모양이었다.

페트리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가소롭다는 느낌이 비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이 내가 친히 알려주도록 하지. 쉬이 누릴 수 없는 일이니 잘 새겨들었으면 좋겠군. 이곳, 카르나이 제국은 용감하게 악마들과 싸운 공로를 인정받아 우리 천사들의 가호 아래 번영하였다."

그는 시선을 돌려, 한때 카르나이 제국을 이루었던 건물들을 쳐다보았다.

지금의 그것들은 하나같이 무너져 내려.

마치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것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인간들은 언제나 끝없는 욕심을 가진 존재들이었지. 물론 그 덕분에 다른 어떤 종족보다도 빠르게 발전을 이룩하였지만......"

이제 페트리엘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향했다.

"나는 언제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생각해보라. 무한한 욕심을 가진 생명체들이, 과연 얼마나 많은 피해를 만들어 낼까? 다른 것들에게서 뜯어내다 못해, 자기 자신들끼리도 먹고 먹히지. 그리고 그 성질은......이 카르나이 놈들이라도 딱히 다르지 않았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페트리엘.

"우리 천상계의 천사들은, 신을 대신해 그들에게 신벌을 내렸다. 모조리 죽였지. 욕심의 벌이었고, 오만의 대가였다."

모조리 죽였다는 그 말을 하는 순간.

페트리엘의 입꼬리는 미묘하게 올라가 있었다.

"내가 직접 지상에 강림해 그들의 목을 쳤으니. 그들에게는 영광스러운 일이었지."

한 제국을 몰살시키던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는 놈에게 죽는 게 영광?

지랄도 풍년이다 싶었다.

그는 자신에게 취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대 역시 '욕심'이 적지 않더군. 내가 모를 줄 알았나? 네놈이 뭘 찾으러 왔는지 말이야."

역시 이미 알고 있었던가.

하긴.

바보도 아니고 그렇게 쉽게 속진 않을 테지.

내가 그냥 조사 차 이곳에 왔다는 그 거짓말에.

나는 오히려 맞불을 놓으며, 당당하게 나갔다.

"그래. 우리 서로 알고 있었지. 말만 하지 않았을 뿐. 둘 다 목적은 같잖아? 가우리엘의 날개."

"후후후. 이제야 속내를 드러내는군. 그런데 말이지, 그 생각부터가 벌써 건방져. 어디 감히 인간 주제에 천계의 사령관이었던 그분의 날개를 탐하는가?"

"네 날개가 아닌 건 매한가지 아니고?"

"다르지. 나는 그분의 후계자이니까."

후계자?

이런 개소리가 어디 있나.

원작에서 저놈이 하는 행태를 내가 다 봤는데 말이다.

가우리엘조차도, 페트리엘은 같은 천사라는 게 부끄럽다고 했을 정도인데.

"그 썩은 속내를 다 알고도 내가 왜 이곳까지 네놈들을 안내했는지, 궁금하지 않나?"

페트리엘이 특유의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그의 뒤로 무언가 검은 무리가 몰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디아즈가 그것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로, 로한 님! 저 뒤에......"

나는 안력을 키워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저 검은 무리의 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망령과......구울?"

그 수가 가히 어마어마하였다.

한 도시 통째로 언데드와 구울을 만든다면, 겨우 저 정도가 될까 말까 싶을 수준이었으니.

그 순간에 페트리엘은 공중으로 비상하였고.

그리고 그의 옆을 따르던 행상인 역시 날개를 펼쳤다.

행상인 역시 천사였던 모양이었다.

페트리엘은 우리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네놈들은 미끼이다. 살아있는 미끼. 네놈들이 저 구울과 망령들의 이목을 좀 끌어주어야겠어. 그동안 나는 편히 날개를 찾으마. 크하하하하."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그에 페트리엘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왜? 억울한가? 너도 날 이용하려 하지 않았던가. 네가 하는 건 되고, 당하는 건 싫은가 보지?"

"아니. 그게 아니라. 좀 어이가 없어서."

"......"

"천사가, 그것도 네 장의 날개를 가진 천사가, 고작 구울과 망령 때문에 가우리엘의 날개를 찾지 못했다고? 후후후......"

내 시선이, 페트리엘의 눈동자를 관통했다.

"네놈. 이미 신성력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군."

"......!"

정곡을 찔린 놈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 *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서 더더욱 가우리엘의 날개에 집착하는 것이었어. 신성력을 잃어가는 천사라......그것만큼 하찮은 존재도 없으니까."

"......혜안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하나 이제 와서 뭘 어쩔 건가? 지상은 구울과 망령이 덮칠 것이고. 나는 위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볼 것이다. 죽는 건......네놈들이야."

"누구 마음대로!"

나는 순간 품에서 미리 챙겨온 투척용 단검을 꺼내, 페트리엘을 향해 냅다 던졌다.

파앙!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손을 떠나간 투척용 단검.

페트리엘은 깜짝 놀라며, 날개를 접고는 휘릭 회전을 하여 그걸 피해냈다.

내 생각을 훨씬 웃도는 회피 기동이었다.

'역시 오랜 세월 날아다닌 짬이 있다는 건가?'

그래도 그의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 정도는 되는 모양이었다.

"......느리진 않군."

그에 손가락을 까딱까딱 흔들며, 나는 이리 오라는 손짓과 함께 대답했다.

"지상에서 보면 좀 더 빠를 걸? 내려오면 보여주지."

"흥! 개소리하지 마라. 곧 죽을 놈의 실력이 궁금하지는 않다."

"내기할까? 누가 뒤지는지."

내가 히죽거리자.

페트리엘은, 살짝 쫄았는지 더 높이 날아올랐다.

"저 많은 망령과 구울 떼는......상대하기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과연 네놈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니. 그러니까 내기하자고."

"......"

결국 페트리엘은 내 제안에 대답하지 않은 채 꽁지를 말고 날아가 버렸다.

그의 뒤를 쫓아 추종자 천사 역시 빠르게 비행하였다.

'쫓아야 한다. 솔직히 지금도 쉽지 않은데......가우리엘의 날개까지 달고 오면 진짜 골치니까!'

타닷!

나는 그들이 날아가는 방향을 따라, 앞으로 달려나갔다.

내 옆으로 오르헬이 바짝 붙으며 물었다.

"브라더! 저건 숫자가 너무 많지 않아? 내가 아무리 뱀파이어 로드라고는 해도, 한계라는 게 있다고!"

"내가 선봉에 선다. 내 손을 벗어난 잔챙이들만 처리해."

"잔챙이? 뭐, 뭘 어쩌려고?"

구울과 망령들은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고.

나는 검을 뽑아들며 외쳤다.

"보면 안다!"

"키에에에에엑!"

"크르르륵!"

"캬아아아아!"

부우우웅!

검이 한 번 휘둘러지자.

후두둑......

구울들이 그대로 필멸조의 권능에 의해.

시체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본 오르헬이 깜짝 놀랐다.

"이, 이건 필멸조?......"

그러는 사이 몇몇 놈들이 다시금 덤벼들었으나.

콰릉......! 쩌저저정!

검은 번개가 휘몰아치며, 놈들을 쓸었다.

다만 망령들은 그런 물리 공격에 전혀 데미지가 없이, 여전히 몰려들었다.

"꺄아아아아!"

"스스스!"

"샤아아아아!"

나는 침착하게 망령들을 향해 황금의 창을 던졌고.

후웅......!

그들 역시 세상에서 완전히 소멸하였다.

내 옆에 선 오르헬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잔챙이도 안 남았는데?......"

* * *

"페, 페트리엘 님!"

추종자 천사의 목소리에, 페트리엘은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지상에서 펼쳐지고 있는, 말도 안 되는 광경이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무, 무슨......!"

검은빛의 번개가 휘몰아치고.

콰과광......!

황금빛 창이 망령을 가르며.

번쩍!

일검에 구울들은 그저 시체로 돌아가 버렸다.

부웅!

"페트리엘 님. 구, 구울 놈들이 밀리고 있습니다......!"

제아무리 천사라고 한들, 저런 압도적인 무위를 보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두 장의 날개를 가진 추종자 천사 역시도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추종자 천사도 만약 날개를 다치거나 해서, 지상에 있었다면.

순식간에 구울 떼의 먹이가 되어버릴 것이었다.

그만큼 한두 마리의 구울은 별거 없었으나, 저렇게 끝도 없는 물량을 바탕으로, 떼로 덤비는 구울은 또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그 모습에 고위 천사인 페트리엘마저 혀를 내둘렀다.

"뭐가 어떻게 된 놈들인 거지?"

그때.

피유우웅!

이쪽을 향해 찬란한 황금빛의 창이 날아오는 게 아닌가!

"흐읍!"

뒤를 살피지 않았다면, 날개를 꿰뚫렸으리라.

페트리엘은 경악을 하며 부릅 뜬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시, 신성력?......이걸 네놈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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