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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84화 (84/194)

84화. 한 번 테스트해 보자고

독혈의 힘만 들어왔다면, 아마 큰 문제는 없었을 터였다.

그런데......

내 안에는 이미 오랜 세월 독을 축적 시킨, 만티코어의 내단이 자리를 잡은 채였다.

당연하게도 그 두 힘이 완벽히 찰떡궁합일 리는 없었고.

쿵! 쿵! 쿵! 쿵!

그 결과, 심장이 과열될 정도로 사정없이 뛰기 시작하며.

"쿨럭!"

내 안에서 격렬한 전쟁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덕분에 기침을 하니 피가 울컥 올라온 것이다.

그 모습을 본 디아즈는 바로 검을 뽑아 오르헬의 목을 겨누고.

차장!

그렌델은 오르헬의 온몸을 염력으로 움켜쥐었다.

꽈아아악!

하지만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마 그 역시도 이런 사태가 벌어지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모양이었다.

목에 칼날이 닿고, 염력이 온몸을 휘감았음에도, 그쪽으로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으니까.

그러는 사이에도 내부의 통증은 더욱 격렬해져만 갔다.

나는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쿨럭! 쿨럭! 커헉......!"

두 가지의 지독한 독이, 치열하게 주도권 싸움을 하는 동안 뱃속은 진탕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안쪽에서 피코의 불꽃이 일어나며, 회복을 해내는 중인듯싶었다.

계속해서 두 가지의 독은 내부의 상처를 만들고.

불사조의 불꽃은 치료하기 바빴다.

'피코......아니었으면......뒤졌겠네, 으으으......!'

다만 통증이 가라앉는 건 아니었다.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의 고통에, 나는 신음만 겨우겨우 흘릴 뿐이었다.

"끄으으......!"

그 모습을 지켜보는 디아즈와 그렌델은, 다급하게 외쳤다.

"뭔진 모르겠지만, 당장 멈춰라!"

"이런......무슨 짓을 한 겁니까!"

로드 오르헬은 당혹감이 섞인 눈빛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관찰했다.

"뭐가 문제인 거지?......"

한편, 입을 꾹 다물고 골똘히 고민을 하던 마법사 크뢰이튼이.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혹......만티코어의 독과 로드 드레트노어의 독은 상극이오?"

역시 크뢰이튼이었다.

이 와중에 원인을 간파해내다니.

크뢰이튼의 말을 들은 오르헬은 인상을 팍 썼다.

"만티코어의 독? 그 얘기가 왜 나와?"

"얼마 전, 로한 경께서 긴 세월을 살아남은 만티코어와의 격전 후. 놈을 제압하고 내단을 흡수했다 들었소."

"환장하겠네! 만티코어를 잡았다고? 그것도 내단이 생길 정도로 오래 산 놈을?"

드디어 사태가 파악이 된 오르헬은, 양팔에 힘을 꽉 주었다.

그러자.

뚜두둑!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그렌델의 제압이 순식간에 와해되었고.

시선을 돌려 목에 검을 겨눈 디아즈에게 살벌한 눈빛을 보냈다.

"꼬마야. 지금 바쁘니까 얼른 칼 치워라. 쟤 좀 도와줘야 하니까."

"......"

디아즈와 그렌델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상대도 되지 않는다......!'

'내 염동력을 못 풀어서 가만히 있던 게 아니었구나......'

오르헬은 손가락으로 디아즈의 검을 슬며시 밀어 치웠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다가와서는.

"이 괴물 같은 놈. 그 두 가지 독을 다 품고도 안 죽어?......넌 아무래도 더럽게도 길게 장수 할 운인가 보다, 야."

* * *

로드 오르헬은 나의 등 뒤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등 펴. 뒤질 거 같겠지만 그래야 살아, 인마."

"끄으......!"

나는 이를 악물며 구부정한 상체를 세웠다.

덕분에 뱃속이 더 화끈해지며 타오르는 것 같았다.

"조금만 참으라고, 브라더."

"누가......브라더야?"

"흐흐. 말하는 거 보니 아직 참을만한가 보네!"

그는 손톱을 세우더니.

푸욱!

"큭!"

내 등 어딘가를 찔렀다.

얕게 찔린 터라 크게 위협적이지는 않았으나, 이것 역시 아프기는 매한가지였다.

"지금부터 내가 피를 컨트롤 하는 방법을 몸으로 직접 알려줄 거니까, 잘 배우라고."

"무, 무슨 소리를......"

"말로 하는 거보다 이게 빨라!"

솨아아아아!

순식간에 온몸의 피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생명의 원천 중 하나. 네 몸에 흐르는 피를 네가 원하는 대로 조종하는 거야. 그 안의 독도, 그리고 그 안의 힘도!"

"내가 그걸 무슨 수로 하냐고!"

"할 수 있지. 드레트노어의 힘을 털어먹었으니까."

솨아악! 솨아아아!

오르헬은 계속해서 피를 순환시켜 주었다.

독에 의해 굳어가던 혈액이 다시 본래의 리듬을 되찾으며, 조금은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이렇게 인가??'

놀랍게도 나는, 그의 말대로 진짜 피를 컨트롤하는 법을 점점 익히고 있었다.

오르헬 역시 그것을 느꼈는지.

"그래, 그렇게. 좀 하는데? 소질이 있어. 뱀파이어 체질인 건가?"

뱀파이어 체질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개소리를 이어나가는데, 막을 여력이 없었다.

해서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내 몸에 집중을 했다.

두근, 두근......

처음에는 요동을 치던 심장이, 어느새 제 패턴을 되찾으며 평안해져 갔다.

"후욱......후욱......"

그러자 오르헬은 내 등에 박아 넣었던 손톱을 뽑아내며, 조언을 해주었다.

"일단은 진정 됐는데.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되겠다. 만티코어의 내단. 아니면 드레트노어의 독혈. 너무 상극이라 둘 다는 안 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직접 피부로, 아니, 피로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거, 잘만 하면......'

내 반응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오르헬이 등 뒤에서 소리쳤다.

"어이, 브라더. 지금......무슨 이상한 생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이상하다기보다는, 현명한 생각이지."

"......설마......아니지. 아니야.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거랑, 네가 생각하는 그게 같다면......그건 현명한 거 아니야."

나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고개를 간신히 돌려서 뒤에 앉은 오르헬을 쳐다보았다.

불가능하지 않았다.

피코가 내게 준 회복력과......로드 오르헬.

그 둘이 있다면.

"글쎄. 네가 도와준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

"......"

오르헬은 위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뒤지고 나서 내 탓 하지 말라고!"

"잘 부탁하지."

잠시 후.

내 입에서는, 고통의 덩어리가 죄다 모인 듯한 비명이.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터져 나왔다.

* * *

털썩.

쓰러지는 로한을 보며, 오르헬은 혀를 내둘렀다.

"살면서 본 인간들 중에 제일 독한 브라더네."

여태까지 혹여나 잘못될까 봐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있던 디아즈와 그렌델, 그리고 크뢰이튼이 그제서야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로한 님......"

"자, 잘 끝난 겁니까?"

"어떻게 된 것이오?"

연달아 날아오는 질문에.

"하나씩 순서대로 질문해."

그에 디아즈가 앞으로 나섰다.

"로한 님은, 괜찮으신 거지요?"

"괜찮느냐고? 모르지 아직."

"예?......끝난 것 아니었습니까?"

"끝이야 났지. 이제 손 쓸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끝났지."

"그럼......"

"이제 내면의 안쪽에서 싸움이 시작될 거다. 드레트노어의 원념? 그런 비스므리한 놈과 싸울 테지."

"......"

디아즈의 질문이 끝나자, 그렌델이 또 다른 걸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나 정도 오래 살다 보면 별의별 꼴을 다 보거든? 이거 비슷한 것도 봤으니까 알고 있는 거지. 물론 뱀파이어 로드의 힘을 저렇게 집어삼키려는 놈은 생전 처음 보긴 본다만."

"그게......어려운 겁니까?"

"어렵다는 말로는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지. 만티코어의 내단을 삼켰을 때와는 차원이 다를걸? 모르긴 몰라도 아마 그때에도 엄청 고생했을 게 뻔한데 말이지."

그에 디아즈와 그렌델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그걸 본 오르헬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건 무슨 표정인데?"

"그게......로한 님께서는 만티코어의 내단을 먹고 나서......별로 크게 이상 없으셨는데......"

"정확히는, 이상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 둘의 대답을 들은 오르헬은 믿지 못했다.

"에이. 그럴 리가. 저 브라더가 뻥 쳤겠지."

"그건 아닙니다. 바로 앞에서 보았으니까."

"예. 저도 봤습니다만?"

"......뭐?"

오르헬은 다시 누워 있는 로한을 바라보았다.

"진짜 괴물이야 뭐야?......"

자신도 모르게 그런 소리에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 * *

"으음......"

감은 눈 위로 밝게 비치는 햇빛에.

나는 문득 정신을 차리며 눈을 떴다.

그러자 내 침상의 옆에서 엎드려 있던 디아즈도 깬 모양이었다.

"로한 님! 정신이 좀 드십니까?"

"기운이 좀 없긴 한데. 정신은 드는군."

"다행입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찬물과 수건을 들고 들어오는 그렌델이 보였다.

"앗! 로한 경? 괜찮으신 겁니까?"

"음."

그러고 보니, 지금 이마 위에도 찬물에 적신 수건이 올려져 있었다.

내가 정신을 잃고 있던 사이에도 계속 저 둘이 신경을 써 준 모양이었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대자로 뻗어 자고 있는 피코도 보였다.

"이 녀석은, 잘만 자네."

내가 피코를 쳐다보며 중얼거리자.

디아즈가 작게 웃으며 말을 했다.

"저래 보여도, 사실 엄청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었습니다. 피코."

"......그래?"

"예."

흠.

원래 내가 살던 세상에서도 이렇게 나를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었던가?

아니......애석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하나 원래 세상보다 훨씬 짧았던 이곳의 삶.

그럼에도......

'헛살지는 않았나 보네......'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있었다.

한 명만 있어도 다행인데 말이다.

그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나자.

문득 기절하기 직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로드 오르헬은?......떠났나?"

뱀파이어 로드들이야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존재들이니.

나는 그리 물을 수밖에 없었는데......

디아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저기. 저기 보시면, 엎어진 거. 저거 오르헬입니다."

"......?"

그녀의 말에 고개를 살짝 돌려보니.

맨바닥에 뒤집어져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놈이 하나 보였다.

그리고 그런 놈의 주변으로는 빈 술병들이 주르륵 세워져 있었다.

등만 봐도 딱 술주정뱅이 같은 게......

'오르헬 맞네.'

"근데 왜 내 방에서 저러고 있지?"

"......실은, 로한 님이 이러고 계시니까 왕실에서 안부를 묻은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르헬이 그 왕실 심부름꾼들에게 술 좀 달라고......"

아,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내가 왕실이랑 연결된 인맥이 보이니까, 술 쳐 먹는 데 이용했다?

'왕실의 심부름꾼이라고는 해도, 귀한 술 정도는 구해올 수 있을 테지.'

잘도 거기까지 머리를 굴린 모양이었다.

물론 그렇긴 해도......잘도 요구했네 싶었다.

'철면피인가?'

나는 몸을 일으켜, 그에게 걸어가서는.

툭툭.

발끝으로 오르헬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오르헬은 술 냄새를 풍기며 눈을 떴다.

"우어어어......"

좀비인가?

그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나를 올려다보더니.

한 템포 쉬고.

"......어? 뭐야? 벌써 일어났다고?"

"그럼 언제까지 누워 있을 줄 알았나?"

"아니......최소 일주일은 걸릴 거라 생각했단 말이지. 진짜 괴물이라서, 빨리 회복한다 쳐도......근데 이틀 만에 일어나? 선 넘네."

"근데 왜 아쉬운 표정이야?"

"브라더가 좀 더 누워있었으면, 왕실에서 빵빵하게 나오는 술을 좀 더 먹을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

이것도 뱀파이어 로드라고......에휴.

그래도 내 목숨 구하는데 도움은 줬으니......

"근데, 누가 브라더야."

"술 사주면 브라더지."

"사 준 게 아니라 네가 뜯어 먹은 거겠지."

"그게 그거 아니겠어? 하하!"

그는 비몽사몽 한 얼굴로 상체만 일으켜, 바닥에 앉았다.

"어후. 역시 고급진 술이라 그런지 숙취도 덜하네."

"......"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뻗어 있었으면서......

뭐, 그런 사사로운 것들은 잠시 접어두고.

나는 오르헬에게 궁금한 것을 하나 물어보았다.

"정확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듣고 싶은데."

"모르지, 나도. 이 브라더야. 세상에 만티코어 내단이랑 독혈의 드레트노어의 힘 그 두 가지 동시에 가진 인간이 역사상 존재했을 거라고 생각하나? 그러니까......"

로드 오르헬은 무릎을 짚으며, 읏차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가서 한 번 테스트해 보자고. 과연 우리 브라더가 어떤 힘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가 먼저 방을 빠져나갔고.

나 역시 그를 따라......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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