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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83화 (83/194)

83화. 그게......가능한 거였구나......

푸우욱!

로드 드레트노어의 심장에, 그의 봉인구가 박히자.

솨아아아아!

단검의 칼날을 따라 붉은 기운이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오랜 세월 드레트노어가 모아온 피의 힘,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힘을 모두 빼앗긴 드레트노어는.

"으어......어어어어어......"

급속히 늙어가더니, 결국 거의 미이라처럼 변하며 명을 달리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드 오르헬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 있어 하더니......진짜로 해냈네, 저걸?......하하, 와 씨."

사실 이런 좁은 공간에서 드레트노어를 상대한다는 것은 자결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독혈이 품은 맹독을 가진 드레트노어의 힘은, 그만큼 위험한 것이었다.

심지어는 같은 뱀파이어 로드인 자신조차도 꺼렸으니까.

'적당히 놈을 꿰어내가지고, 바깥에서 족칠 생각이었는데.'

바람이 불고, 독무를 피워내어도 피할 공간이 많고.

그런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오르헬이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것은 독혈에 대한 완전한 면역이었다.

'만티코어 고기라도 삶아 먹었나......'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만티코어 고기를 삶아 먹는다고 저런 능력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만티코어는 진작에 멸종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물론 세상 통틀어 단 다섯뿐인 뱀파이어 로드 중 일인인 드레트노어와 맞서는 데에는, 독무 이외에도 조심해야 할 요소들이 너무 많았다.

예를 들면, 드래곤의 뼈로 만들었다는 그 흉갑.

그런 물건들도 일일이 다 걸림돌이었다.

그리고......

'특히 놈의 뱀과 같은 움직임......그것도 진짜 더럽게 골때리는 부분인데.'

저 평범해 보이는 인간 놈은, 그걸 너무나도 쉽게 해내었다.

다른 인간들은 보지 못했겠지만, 자신은 알 수 있었다.

그 뿌연 독무 안에서 일어난 일을 말이다.

'분명히 거의 움직임을 멈췄다가,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서 폭발적으로 반응을 했지?......'

그건 압도적인 전력의 차이가 존재할 때.

상대가 가소로워 보일 때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걸 드레트노어도 느꼈기에, 중간에 약간은 무모하면서도 직선적으로 날아든 것이고.

'설마 심리적인 것까지 다 계산하고 저러는 거야? 어디서 저런 괴랄한 괴물이 튀어나왔대? 미친......'

한데......그 인간.

갑자기 자신을 휙 돌아보더니, 눈을 번뜩였다.

"뭐, 뭐야. 뭔데? 어라라?"

그리고는 드레트노어의 품에서, 단검을 하나 꺼내는 게 아닌가.

그것은 명백한 오르헬의 혈사검.

즉, 자신의 봉인구였다.

오르헬은, 옆에 있던 크뢰이튼의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야, 야! 노인네! 저거 안 말려도 되냐?"

"말린다고 말 들을 사람으로 보이오?"

"......아, 안 되냐?"

* * *

드레트노어의 죽음을 확인한 나는, 놈의 품을 뒤졌다.

'오르헬......아직 놈이 어떤 놈인지 모른다.'

3 왕자를 통해 만난 로드 오르헬은, 가짜였다.

드레트노어가 연기한 가짜.

그러나 진짜 오르헬 또한 어떠한 성향을 가진 놈인지 모르기는 매한가지였다.

'적의 적이라서 그냥 도운 것 뿐일 수도 있고.'

단순히 나를 이용해 먹고 버리려 했는지 아닌지 알게 뭔가.

해서 나는 보험을 하나 찾기로 했다.

'여기 있네.'

그리고는 시선을 들어, 오르헬이 뭘 하고 있는지 확인하였다.

동시에 손은 오르헬의 혈사검을 잡아채서.

스윽......

뽑아들었다.

'별다른 제스쳐는 없긴 한데......'

만약 나까지 죽이려 들 거라면, 드레트노어를 찌른 그 타이밍이 가장 좋긴 할 터였다.

한창 드레트노어에게 정신을 쏟고 있을 시점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아직 적대적인 움직임은 없었다.

오히려 크뢰이튼의 뒤로 숨기 바빴다.

'진짜 아군인 건가?'

크뢰이튼도 꽤나 실력이 좋은 마법사임과 동시에, 감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 역시 크게 반응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나는 일단 오르헬의 혈사검을 역수로 꽈악 쥐고는, 놈에게 다가갔다.

언제나 방심은 금물이니까.

"하나는 처리했고......이제 그쪽 차례인듯한데."

"살벌해서 혀 놀리겠나, 이거."

"그러니까 잘 생각하고 놀려. 원래 혓바닥 때문에 흔히들 죽는 놈들 많이 봤거든."

"이야. 살다 살다 내가 뱀파이어도 아니고 인간한테 협박도 다 들어보네."

나는 고개를 까딱여, 드레트노어의 시체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인간한테 죽는 놈도 있던데?"

"크흐흐. 아, 맞네, 맞아. 죽은 놈도 있네. 근데 나는 아직 죽고 싶은 생각은 없고. 처음에 말했듯 그냥 저 염병할 놈 쳐죽일 생각 하나로 온 거야. 네가 누군지도 모른다고. 응?"

"그럼 볼 일 다 본 거 아닌가? 그 염병할 놈은 내가 쳐죽였으니까."

"그래. 그래야 했는데 말이지......"

오르헬은 내 손을 쳐다보며, 입술을 핥았다.

"잘 숨겨 놓으면 또 몰라도. 그걸 보고 내가 마음 편히 가겠느냐는 말이지."

"안 갈 거면? 무력시위라도 할 텐가?"

"어이쿠. 코앞에서 뱀파이어 로드 하나가 뒤지는 걸 똑똑히 봤는데 미쳤다고? 나는 평화주의자야, 평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펴어어엉화!"

그는 양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활짝 웃었다.

......아무래도 이놈도 제정신은 아닌듯싶었다.

'오래 살면 다들 정신이 나가나?'

내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걸 봤는지.

오르헬은 헛기침과 함께 다시 말을 이었다.

"크흠, 흠. 뭐, 믿기진 않겠지만 난 사실 인간들 틈에서 같이 살고 있는 중이거든. 인간들이 빚는 술맛이 아주 예술이란 말이지. 그거에 미쳐서 내가 또 세상 한가운데서 평화를 외치게 된 거지."

아......그러니까 술이 맛있어서 평화를 사랑하게 되었다?

거 참 설득력 개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또 신기한 건, 저 거지꼴을 한 인간이, 아니, 뱀파이어가 저런 소리를 하고 있는데.

'희한하게 술만 먹고 살 것 같긴 하단 말이지.'

묘하게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딱 술주정뱅이처럼 생기긴 했으니.

"나, 이래 봬도 채식주의 뱀파이어야. 인간의 피를 먹지 않고 살고 있거든. 그만큼 의지가 확고하다는 말씀이지!

그게......가능한 거였구나......

나름 속으로 좀 놀라는 동안에도 오르헬의 입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말인데. 거래 하나 하지 않겠나? 내가 원하는 건 당연히 내 목숨줄이고......"

"네가, 내가 원하는 걸 가지고 있나?"

"음. 고오오급 술 하나 묻어 둔 게 있는데, 솔직히 그건 좀 아깝긴 해."

필요 없어, 그런 거.

"그러니, 다른 걸 주지! 이것도 꽤 재미있는 거거든."

"......?"

"혹시 추락한 천사, 가우리엘이라고 알고 있나?"

"......!"

느닷없는 이름의 등장에,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 * *

가우리엘이라니.

당연히 알고 있었다.

내가 이 파오갓 세계에 떨어지고 가장 처음 만난 자가 바로 그였으니까.

그리고 그 덕분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고.

"에헤이. 눈으로 죽이겠다. 그만 째려봐, 이 인간아."

"말을 하다가 끊으니까 그렇지."

"뭐, 그건 인정. 크! 방금 나 좀 쿨하지 않았어?"

"시끄럽고.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해라."

"에잇......정 없기는. 여하튼, 그 가우리엘이라는 놈이, 지상으로 내려올 때 포기한 게 있어."

"포기한 것?"

오르헬은 손가락 하나를 세우며, 웃었다.

"바로바로! 뭘까? 브라더."

"아이, 씨. 팍! 그냥!"

나도 모르게 눈을 부라리며, 욕을 할 뻔했다.

손에 칼 들고 있는 사람한테 저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러자 오르헬이 반 발자국 물러섰다.

"어, 어우. 장난, 장난. 지상으로 내려오려면, 당연히 날개를 포기해야지. 신의 귄능이 가득 담긴 그 날개."

"흠......"

"가우리엘은 스스로 날개를 뜯어내어 추락했고. 세상 어딘가로 날개들도 떨어졌지. 그런데 바로 이 몸이! 그 날개들 중 하나를 찾아냈다는 말씀!"

나는 뚱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래서?"

"아니, 그래서라니. 천사의 날개라니까? 그것도 천계 최강의 천사였던 가우리엘?"

"알겠는데. 그걸 내가 어디다 쓰냔 말이다."

"어허. 내 눈에는 보이는데......"

"뭐가?"

"너. 보통 인간이랑 좀 달라. 아예 기운 자체가 다르다고. 모르지는 않겠지?"

"......"

물론, 보통 사람들과는 확실히 다르긴 했다.

일단 시작부터 권능을 무한대로 가질 수 있었으니까.

'그래. 이상하긴 하지.'

"그거까지는 못 속여. 나도 눈깔이 달려는 있거든. 내 말 맞지?"

이 정도에선 나도 인정을 하는 편이 옳았다.

우겨봤자 이미 꿰뚫어 본 눈치이기도 하고.

"영 까막눈은 아니로군."

"하하하! 그러엄! 그러취! 내가 보는 눈이 보통이 아니거든! 푸하하하!"

어느샌가 내 옆으로 다가온 그렌델이, 옆에서 속삭였다.

"로한 경. 저놈 이상한 거 같은데 그냥 죽여버릴까요?"

"......"

정말이지 필터링 전혀 없네, 여기도.

둘 사이에서 겨우겨우 이성을 부여잡고 있는 내게.

로드 오르헬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 넌, 그 날개에 담긴 힘을 꺼내 쓸 수 있을 거 같다는 말이지. 예를 들자면......그래, 저거. 저걸로도 테스트해 볼 수 있겠네."

그는 미이라가 된 드레트노어의 심장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그 심장에 박힌 드레트노어의 심장 감옥검을.

"저거, 가져와 봐. 재밌는 걸 보여주지."

오르헬의 말에, 디아즈가 나를 쳐다보았다.

명령을 기다리는 눈빛으로.

나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가져와 주겠나."

"예. 로한 님."

그리고 곧 그녀는 내 앞에, 드레트노어의 심장 감옥검을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었고.

오르헬은, 이번엔 내 손을 가리켰다.

"그걸로 손바닥 그어 봐. 만약 네가 정말 이거저거 다 흡수할 수 있는 그릇을 가진 자라면......드레트노어의 힘 일부가 네 것이 될 테니까."

"그게 무슨......"

"그 봉인구. 그냥 순전히 죽이는 용도로 만들어진 게 아니야."

"......아니라고?"

"당연하지. 그런 단순한 물건인 줄 알았나? 그 검은 애초에 로드의 힘을 담는 용도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뭐, 자세한 건 차차 설명해주면 되고. 일단 그어 봐."

나는 약간은 미심쩍은 마음을 삼킨 채.

스으윽......

드레트노어의 심장 감옥검으로 손바닥을 살짝 그어보았다.

당연히 피코의 힘이 발동하며.

화르륵!

불사조의 불꽃과 함께 금방 상처는 사라졌다.

그걸 본 오르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 미쳤네. 이놈 이거 진짜 물건일세? 불사조의 불꽃 같은 것도 쓴다고? 와, 씨."

의외로 보는 눈은 진짜 있네.

이걸 한 번 보고 불사조의 힘이라는 걸 알아채다니.

정확히는 그냥 비스므리한 걸로 느낀 모양이지만......

일단 방향성 자체를 맞춘 게 신기했다.

하나 그것에 감탄할 시간도 없이.

'으음?"

상처가 생겨났던 손바닥을 중심으로.

엄청난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진짜......드레트노어와 싸울 때 그 감각이?......'

제3의 눈을 통해 정확히 느낀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힘이 진짜 로드 드레트노어가 다루던 그 힘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독혈의 힘이.....내 안에 똬리를 틀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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