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한 적 없는데?
다그닥, 다그닥.
천천히 말을 몰며.
나와 디아즈, 그렌델은 인적 따위는 전혀 없는 길을 지나고 있었다.
겉으로는 느긋하게 말을 타고 산책이라도 하는 듯 움직이고 있었으나.
실제 우리들은 예민하게 감각을 바짝 세운 상태였다.
이유는 하나였다.
해리슨 백작이 보낸 잡놈들로 보이는 것들이 따라붙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미리 짜둔 암호를 이용해 둘과 대화를 나누었다.
"헤세테에 도착하면, 5일 정도는 쉬고 나서 움직여야겠어."
"예. 로한 님. 저도 5일 정도는 푹 쉬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별거 아닌 대화 같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5일.
저것은 우리들에게 붙은 추적자들의 수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즉, 지금 따라붙은 적들이 다섯이라는 소리.
나는 제3의 눈을 통해 확인을 했고.
디아즈와 그렌델 역시 나름의 방법을 써서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어떻게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질 않냐......후우.'
딱 디아즈가 매복하기 좋은 지점이라고 예측하고 체크했던 곳.
그곳에서 추적자들이 들러붙었다.
그들은 차츰차츰 거리를 좁혀왔다.
지금까지는 조금 여유를 두고 있었지만......이제는 당장에라도 덮쳐 올 기세였다.
나는 디아즈와 그렌델을 향해 마지막으로 각자 맡을 목표를 정했다.
"나는 첫날은 쉬고, 2일, 3일, 4일에 술 한 잔씩 사도록 하지."
"그럼 제가 첫날을 맡겠습니다."
"남은 건 5일입니까? 제가 5일에는 제가 쏘겠습니다."
그렇게 좌우 끝에 있는 두 놈을 각자 디아즈와 그렌델이 마크하고.
내가 가운데에 세 놈을 한 번에 전담하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그래도 내 능력을 대충이나마 확인했는데, 시시껄렁한 놈들을 붙이진 않았을 테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파앗!
뒤쪽에서부터 도약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침착하게 놈들이 일정 범위까지 다가오는 걸 기다렸고......마침내 놈들이 당황을 할 만한 거리까지 접근을 한순간!
휙!
동시에 고개를 돌려, 적들을 마주 보았다.
"헉!"
"이, 이런......?"
"젠장! 멈추지 마!"
기습적인 반응에 놈들이 깜짝 놀라며 주춤했다.
그리고 그러는 틈에 디아즈와 그렌델이 먼저 움직였다.
나 역시 바로 반응을 하려 했지만......
'저놈이 왜?......'
예상치 못한 얼굴이 끼어 있어, 순간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 * *
원작에서 등장하는 일곱 기사단의 일원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일곱 기사단의 구성은 조금 상이했다.
당장 앤드류만 해도 이미 죽어 없었으며.
지금은 내 손에 죽은, 발트라스 왕국의 일곱 기사 모르돈.
반인반수 사자로 변신을 하던 그자 역시 아직 살아 있어야 했다.
나라는 사람은 아예 일곱 기사단에 들어 있지도 않았고.
이렇듯 내 행보에 의해 많이 바뀐 일곱 기사단이었는데.
지금 그 바뀐 운명에 휩쓸린 또 하나의 인간이, 지금 내 눈앞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디몬......!'
저 놈 역시도 내 기억 속에서는 일곱 기사단의 일원이었다.
심지어는 지금 내가 가진 고유 스킬 중 하나인 제3의 눈.
그게 바로 저 녀석의 것이었다.
물론 나중에는 다 배신하면서 다른 기사들을 죽이던 악역이었기에 큰 죄책감은 없었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길래 제3의 눈을 가져가지 않고 있었나 궁금하기는 한 정도?
'그런데 여기서 해리슨 백작 따까리 노릇을 하고 있었군.'
제3의 눈을 가진 디몬이야 굉장히 무서운 괴물이긴 했지만......
고유 스킬이 없는 디몬은, 팥 없는 단팥빵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갑자기 등장한 놈에게 내가 당황하며 반 박자 늦게 반응했지만.
스윽, 샥!
그럼에도 놈은 내 반사 신경을 쫓아오지 못했다.
디몬을 선공으로 남은 둘 역시 이어서 공격해왔으나.
'만티코어에 비하면 이건 그냥 눈 감고도 이기겠네.'
빠박! 퍽!
무릎과 팔꿈치로 정확히 두 놈의 턱을 부숴버렸다.
풀썩, 콰당......털썩.
순식간에 잔챙이 둘이 바닥에 엎어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고.
생각보다 내가 만만치 않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은 디몬은, 디아즈와 그렌델에게 붙은 남은 인원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이쪽부터! 이놈부터 처리하고......"
하나 소용없었다.
디아즈와 그렌델 역시 이미 자신들의 상대를 제압한 후였기에.
"후우!"
"와, 로한 경은 벌써 두 놈이나 잡으셨네요. 디아즈 님, 남은 놈도 같이 잡으러 가시지 않겠습니까?"
"그러죠."
그에 디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이런......!"
상황이 좋지 않다 판단했는지, 그는 동료들을 버리고 도주하기에 이르렀다.
만약 디몬이 제3의 눈을 가지고 있고.
내가 제3의 눈을 가지지 못했다면......
'놓쳤을 테지.'
제3의 눈은 적의 감시망을 피하는데에도 큰 영향을 주는 능력이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놈은 아무런 능력도 없고.
나만이 제3의 눈을 가진 채였으니까.
나는 달려서 나무를 타고 그대로 높이 뛰어올라.
타앗!
저 아래 나뭇가지 사이에 숨어 있는 디몬을 향해.
콰과가강!
벼락처럼 떨어졌다.
"도우러 갈 필요 없겠습니다. 로한 님이 벌써 죽여버리신 거 같으니."
"그, 그러게요."
* * *
그러나 놀라운 반전이 있었으니
"허, 허어억......! 괴, 괴물......!"
내가 아직 디몬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실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해리슨 백작이 혹여나 이런 암살자들을 보내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이런 놈들이 좀 나타나 줘야 두들겨 패면서, 아, 아니, 적당히 타이르면서 해리슨 백작의 꿍꿍이를 들어 볼 수 있을 테니까.
곧 나를 쫓아 온 디아즈와 그렌델도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어? 로한 님?"
"아직 안 죽이셨습니까? 바로 대가리 깨고 터트리실 줄 알았는데."
그렌델의 쓸데없는 솔직함이.
디몬을 한층 더 쫄게 만들었다.
"흐, 흐익? 대, 대가리를......!"
'거 참. 내가 또 언제 그렇게 대가리를 깨고 다녔다고.'
아, 만티코어 대가리도 깼구나......
생각해보니 비교적 최근에 깨긴 깼었다.
'그게 뭐가 중요하나.'
별일 아니기에 나는 그렌델의 말은 그냥 넘겼다.
할 일들이 많이 있었으니까.
나는 놈의 허벅지를 자근자근 즈려밟으며.
"끄악! 끄으으으으!"
질문을 던졌다.
"해리슨 백작이 시켰겠지? 놈이 무슨 속셈인지 아는 대로 말해라."
물론 이런다고 해서 술술 털어놓지는 않을 테지.
나는 다음 협박을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며......
"다, 다 말하겠습니다! 해리슨 백작은 두 뱀파이어 로드를 가지고 놀 생각입니다! 해, 해리슨 백작의 서재에는 드레트노어라는 로드의 봉인구가 숨겨져 있고, 이, 이번에 오르헬의 혈사검까지 챙겨서 모든 걸 장악할 생각이랍니다! 그리고 그게 잘 풀리면 저를 일곱 기사단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응? 이렇게나 쉽게 말한다고?
이 세계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겪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디몬은, 생각보다 솔직한 친구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네가 일곱 기사단이 될 일은 없을 것 같군."
"왜, 왜요! 다 털어놓으면 살려주신다고......"
"한 적 없는데?"
"......"
디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네요......"
심심하면 뒤통수 치는 이런 위험한 놈을 놔둘 수야 없었다.
내 미래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대신 나는 최대한 자비를 베풀어.
빠악!
고통 없이 보내주었다.
* * *
의외로 쉽게 디몬에게 정보를 얻은 나는.
헤세테 왕국에 복귀하자마자 바로 왕궁으로 향했다.
그리고 즉각 국왕과의 대면을 요청하였다.
일반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패턴이었다.
왕국의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타국의 국왕쯤 되는 것도 아닌 내가 일국의 왕에게 오라 가라 하는 게 말이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나는 다급하게 그를 불렀고.
마르지오 3세 역시 만사를 제쳐두고 나를 만나기 위해 서재에 얼굴을 비추었다.
"로한 경. 어떻게 된 것인가? 엘프들이 만나 주던가?"
"그러려고 준비해 갔던 것들이 있었으니까."
"아, 그대가 부탁해서 찾아주었던 그 이상한 낡은 반지? 그게 통했단 말인가?"
마르지오 3세의 물음에, 그렌델이 대신해서 대답을 해주었다.
"그 반지가 엘프들에게는 굉장히 큰 유물이었던 듯 하였습니다. 덕분에 큰 충돌 없이 엘프들의 도시에 발을 들였습니다."
"그, 그것이 엘프의 유물이었다고? 그런 게 이 땅에 잠들어 있었다? 그럼 그대는 그걸 또 다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허허......"
"솔직히 동행을 했던 저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엘프가 위협한다고 쏘아낸 화살도 맨손으로 잡아내시고, 만티코어의 상대법도 다 알고 계셔서, 만티코어도 사냥하고......"
그렌델은 그간 있었던 일들을 쭈욱 읊었다.
듣고 또 듣던 마르지오 3세의 얼굴이 점점 놀라움에서 황당함으로 변해가는 게 눈에 보였다.
그 모습이 조금 재미있었다.
"도대체.....그 며칠 사이에 무슨 일을 하고 온 건가?"
"좀 바쁘긴 했군."
"좀 바쁘다......라니......"
"그건 그렇고, 중요한 건 그 이야기가 아니다."
"그게 중요하지 않으면 뭐가 중한가?"
"해리슨 백작이, 암살자들을 보냈다."
"......!"
나는 품에서 오르헬의 혈사검을 꺼내 탁상 위에 올려놓았다.
타악!
"엘더로부터 받아 온 뱀파이어 로드 오르헬의 봉인구, 오르헬의 혈사검이다. 이걸 노리고 있더군."
"......이, 이게 바로 엘프들이 가지고 있던......"
"이것만 있으면, 로드 오르헬조차 쉽게 덤비진 못할 테지."
"굉장한 물건이군......"
"암살자들에게 물어보니, 이 굉장한 물건과 비슷한 걸 해리슨 백작도 가지고 있다더군."
"암살자들이 그걸 술술 불......던가?"
"불더군."
"......?
못 믿는 눈치인데?
'진짠데. 진짜 술술 불던데.'
마르지오 3세가 갑자기 존경이 가득 담긴 눈빛을 보냈다.
"뭘 어떻게까지 했길래......배우고 싶군!"
"그냥 불었다니까."
"그렇다고 하지. 알겠네."
"......"
사람 참, 속고만 살았나.
"어쨌든, 해리슨 백작이 드레트노어의 심장 감옥검 가지고 있다는 듯 하다."
"그래서 그 가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로군. 지독한 인간......! 해서, 어쩔 셈인가? 역시 이제 해리슨 백작을 우리가 선공을 하는 게 좋지 않겠나?"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생각이 바뀌었다고? 다른 방법이 있는가?"
나는 탁상 위의 검을 집어 들며 흔들었다.
"이걸, 해리슨 백작에게 넘기겠다."
"......! 그, 그게 무슨 날벼락 같은 말인가! 해리슨 백작에게 그걸 넘기겠다니!"
"그쪽이 더 좋을 것 같거든."
"설마......그대도 뱀파이어의 편에 붙으려는......"
"그건 아니고."
"그럼 대체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인가? 알아듣게 좀 말해주게."
나는 입꼬리를 싸악 올리며,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를 그에게 털어놓았다.
"이걸로 유인을 해서, 해리슨 백작도, 그리고 숨어 있는 드레트노어도 다 꾀어내어......"
내 설명을 듣던 마르지오 3세가, 마른 침을 삼켰다.
꿀꺽.
그를 보며 나는, 웃었다.
씨익!
"모조리 싹 죽여버릴 생각이거든."
그렇게 회의가 마무리되고.
그리고 다음 날.
해리슨 백작이, 왕궁을 방문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