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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74화 (74/194)

74화. 그곳을 파헤쳐 보면

왕궁의 호출을 받고 가는 길.

나를 따르는 인원은, 어느덧 꽤나 많아져 있었다.

디아즈와 앤드류.

거기에 크뢰이튼과 그의 제자 그렌델까지.

최근 그렌델은 유난히 내게 말을 거는 횟수가 늘었다.

크뢰이튼조차도.

[저 아이가 저렇게 말이 많은 건 처음 보는군.]

이라고 하며 신기해할 정도로 말이다.

물론 그럼에도 앤드류에 비하면 엄청나게 말이 적은 편이라,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너무 한 마디도 안 하면 오히려 또 좀 어색하기도 하고.

어쨌든.

그녀의 질문은, 지금도 하나 튀어나오는 중이었다.

"로한 경. 궁금한 게 있습니다."

"무엇이?"

"일전에 드레트노어의 하수인 뱀파이어 있지 않습니까."

"너와 크뢰이튼이 생포했다던 그자?"

"예. 그자를 상대할 때와, 이번 해리슨 백작을 상대하는 것. 왜 다른 것입니까? 경이라면 이유 없이 이런 행동을 하시진 않으실 텐데......"

나는 그렌델이 무엇을 궁금해하고 있는 것인지 바로 간파하였다.

"왜 바로 생포해서 고문을 하지 않느냐? 그건가?"

"선 고문, 후 질문. 다시 한번 보고 싶었는데......조금 아쉬웠습니다."

정말 필터 없이 말하는 타입이네.

뭐, 그러는 편이 속을 알 수 없는 사람들 보다야 낫지만.

나는 그녀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을 해주었다.

"그쪽이 쉽긴 하지. 하지만 최종 목표가 뱀파이어 로드라는 점이 문제였다."

"뱀파이어 로드......"

"놈들은 하수인을 언제든 죽일 수 있는 능력이 있지."

"그렇지요. 자신의 피로 만들어진 고위 뱀파이어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하수인을 없앨 수 있습니다."

"해리슨 백작이 뱀파이어가 되었다......라는 가설은 세워보지 않았나?"

"......!"

내 마지막 말에, 그렌델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설마,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가능성은 있다는 거지. 지금으로서는 해리슨 백작만이 유일하게 뱀파이어 로드에게로 우릴 안내해줄 길잡이이다. 리스크를 지는 일은 지양하는 게 옳겠지."

"거기까지 생각하신 거군요. 이해했습니다. 역시, 로한 경께서는 다음 수까지 보고 계셨군요."

그렌델의 눈이 반짝반짝 거리고 있었다.

얘, 왜 이래......사람 부담스럽게.

나는 못 본 척 시선을 돌려버리고, 왕궁으로 발을 들였다.

* * *

해리슨 백작이 가져온 증거품들은, 거의 대부분이 문서 자료들이었다.

어디서 수상한 돈이 움직였고.

어떻게 미심쩍은 병력이 이동하였으며.

이렇기 때문에 이 자가 배신자라는 그런 내용들.

저런 문서 자료들에서는 미심쩍은 것을 찾아내기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었다.

왕궁의 행정을 도맡는 해리슨 백작이 직접 작업을 쳤을 테니 말이다.

해서 내가 관심을 돌린 것은, 다른 물증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눈에 확 들어온 것이 하나 있었으니......

'이걸로 장난질을 치려고? 어림없지.'

아마 내가 아니었다면, 결코 알아차리지 못했으리라.

그만큼 해리슨 백작은 나름 머리를 잘 굴렸었다.

하나, 그가 예상치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내가 고인물이라는 사실이었다.

해리슨 백작이 내민 증거품.

그것은 드레트노어의 심장 감옥검이라는 이름의 단검이었다.

'비슷하게 잘 만들긴 했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가품이었다.

내 눈에는 보였다.

조악한 데코레이션.

원본과는 다른 칼날의 길이.

손잡이 끝 부분의 마감 등등.

고가의 금속이나 특수한 광물이 들어간 부분부분에 아쉬움이 보였다.

나는 그 가짜 드레트노어의 심장 감옥을 들어 올리며, 해리슨 백작에게 물었다.

"이건 무엇이지?"

그에, 해리슨 백작이 옅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아, 역시 로한 경. 그게 가장 중요한 물건이오. 그게 바로 드레트노어의 심장 감옥검이라는 물건인데, 뱀파이어 로드는 각각이 한 가지씩. 그 힘을 봉인시킬 수 있는 물건이 있소."

"그럼 이건 드레트노어라는 뱀파이어 로드의 목줄이라는 것인가?"

"정답이오. 저자가 로드 드레트노어의 하수인이기에, 저런 보험을 들어 놓은 것으로 보이오."

해리슨 백작의 설명에, 무고 죄인이 소리쳤다.

"전하! 저는 모르는 물건이옵니다! 그런 말도 처음 듣습니다! 흐흐흑......!"

마르지오 3세는 죄인을 바깥으로 내보내라는 손짓을 하였다.

병사들이 순식간에 그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전하! 전하아! 억울하옵니다! 전하아아아!"

누명을 쓴 무고 죄인은, 자신의 원통함에 국왕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여긴 모양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당연히 굳이 그 무고 죄인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소음을 줄인 것뿐이었다.

어차피 범인은 해리슨 백작이니까.

나는 그가 올린 서류들을 대충 훑는 척하며 물었다.

"저 죄인이 뱀파이어 로드와 결탁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아낸 건가?"

"그건 지금부터 면밀히 조사해 봐야 할 것 같소이다."

"그렇군."

대충 이야기를 들은 나는, 디아즈와 앤드류에게 말했다.

이것은 마르지오 3세와 미리 짜 둔 신호였다.

"둘은 3 왕자 곁을 좀 지켜주었으면 좋겠군."

"알겠습니다."

"문제없죠."

내가 저 둘을 보내면.....

마르지오 3세 역시 해리슨 백작에게 명을 내리기로 한 것이었다.

"경도 함께 가 주겠나?"

"하나, 전하. 지금부터 죄인을 심문해야......"

"해리슨 경."

"아, 알겠습니다."

그들을 자연스럽게 해리슨 백작을 내보낸 우리는, 다시 의논을 시작했다.

* * *

나는 가만히 드레트노어의 심장 감옥검을 쳐다보았다.

한편, 물건의 진위 파악조차 되지 않은 마르지오 3세의 시선도, 단검을 향해 있었다.

"그런 물건이 있을 줄이야. 몰랐군."

"아니. 이건 가품이다."

"가품? 그럼 그런 물건이 없다는 말인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드레트노어의 심장 감옥검이 실제로 존재하기는 한다. 다만 이건 아니라는 거지."

"......그, 그걸 알아볼 수 있다고?......"

마르지오 3세가 뭔가 중얼거렸지만, 나는 지금 해리슨 백작의 속내를 캐내는 게 더 급선무였다.

"왜 이걸 가품으로까지 만들어서 증거품으로 가져온 걸까? 아무 의도도 없이 이 짓을 하진 않았을 텐데......"

분명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그리고 그 말에 마르지오 3세 역시 동의를 하였다.

"무던히 이유 없는 행동을 할 자는 아니네."

차근차근 파고 들어가 보자......

'지금 엮여 있는 뱀파이어 로드는 둘. 로드 오르헬이랑 로드 드레트노어.'

내가 원래 알고 있는 쪽은 로드 드레트노어였다.

원작에서도 놈은 보스 중 하나로 등장하기도 했으니까.

반면 오르헬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었고.

크뢰이튼 역시 고민을 하며 의견을 내었다.

"그 물건이 가품이라면, 진품을 본 적은 있다는 소리로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그 말인즉, 놈도 저 물건이 있다면 뱀파이어 로드와 거래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는 소리인데......"

그의 말을 들으니, 의심 한 가지가 슬며시 피어올랐다.

'그래. 그런 물건이라면 해리슨 백작도 탐을 내겠지. 해리슨 백작이 진품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드레트노어가 살짝 보여준 건지, 그건 모르겠지만......가품을 만들었다는 자체가 이미 드레트노어의 심장 감옥검은 발견이 되었다는 뜻인 거고.'

그럼에도 아직 오르헬을 컨트롤 할 무기는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나는 그 사실에 집중을 하며 입을 열었다.

"만약 우리가 저걸 진짜라고 생각한다면......어떻게 행동했을까?"

"어떻게 라니? 그야 잘됐구나, 하고 그냥 감탄하고 있지 않았겠나?......"

"아니. 나라면 거기서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오르헬이라는 이름이 이미 내 입을 통해 나온 이상, 그리고 그 로드 오르헬이 3 왕자를 노렸다는 걸 안 이상."

거기까지 들은 그렌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오르헬의 봉인 아이템을 찾아 나서겠죠."

나는 그렌델을 보며 동의하였다.

"정답."

내 말에, 크뢰이튼과 마르지오 3세도 인정을 했다.

"......확실히. 충분히 가치 있는 추론일세."

"그럼 해리슨 백작은, 왕가에서 총력을 기울이기를 바란다는 말인가?"

내 생각이 맞다면......

"손대지 않고 코를 풀겠다는 것이겠지. 왕가에서 오르헬의 약점을 찾아낸다면. 그리고 그걸 중간에서 가로챌 수만 있다면?"

"......최악이군."

마르지오 3세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모두들 굉장히 침울해진 모습으로 변했다.

하지만 내게 이건 굉장한 기회로 보였다.

"해리슨 백작이 우리를 이용하려 했다는 걸 알았으니, 우리가 역으로 그를 이용하면 되는 거 아닌가?"

나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마르지오 3세를 보며,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한 마디만 흘리면 된다. 가짜 죄인의 집을 뒤져, 오르헬의 목줄이 어디 숨겨져 있을 것 같은지 찾아내오라고. 그러면 해리슨 백작은 자신이 알고 있는 걸 술술 털어놓겠지. 마치 찾아내어 온 것처럼 생색을 내며 말이다."

"어차피 어디 있는지 내가 알아야, 찾아 나설 테니까? 그래야 가로채도 챌 것이고."

"그래. 내 말이 바로 그 말이다."

"후후. 그대는 정녕......적으로 두면 안 될 사람인 것 같구만."

* * *

마르지오 3세는 내 의도 그대로 해리슨 백작에게 말을 흘려 주었고.

예상했듯, 해리슨 백작은 오르헬의 약점이 될 그 봉인구가 어디 있는지 알아 내어왔다.

크뢰이튼의 거처로 몰래 찾아온 마르지오 3세가, 의자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그대의 말대로, 해리슨 백작이 자랑스럽게 정보를 찾아냈다고 내게 보고를 올리더군."

그 말을 들은 크뢰이튼이 혀를 찼다.

"쯧쯧. 철면피에 염치도 없는 녀석이로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놈이니 여태 뒤에서 몰래 칼을 갈아왔겠지. 해서, 어디라고 하던가."

"그게......조금 골치가 아픈 부분이 있네."

위치를 묻는 내 질문에, 마르지오 3세가 말끝을 흐렸다.

뭐지?

대체 어디길래......?

마르지오 3세의 눈동자가 우리를 전부 스윽 훑더니.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었다.

"마스트로프 숲이라고 하더군."

그의 말에, 크뢰이튼이 깜짝 놀랐다.

"서, 설마 마스트로프 숲이라면......"

"그래. 맞네. 엘프들의 도시가 있는 곳이지."

"그곳에 오르헬의 봉인구가 있다는 말입니까?"

"해리슨 백작의 말이 진실이라면, 그렇지."

"하나......전하의 말씀대로 이건 문제가 조금 복잡해지겠습니다. 엘프들은 기본적으로 인간들과의 교류를 즐기지는 아니하니 말입니다."

그들의 고민이 한층 더 깊어지던 그때.

나는 조용히 팔짱을 끼고 그 숲의 이름을 되뇌이고 있었다.

'마스트로프......마스트로프......'

기억이 날 거 같은데......아!

이거 잘만 하면......!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겠어.'

계산이 끝난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설마......또 뭔가 방법이 있는가?"

"그럴 리가......엘프는 조금 결이 다른 문제인데?"

하나 나는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여전히 그것을 유지한 채.

디아즈에게 말했다.

"이동 준비를 시작해두어라."

그에 디아즈가 함께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눈치를 챈 앤드류가, 번쩍 손을 들며 외쳤다.

"나, 나도! 나도 엘프 보고 싶은데요! 듣기로는 엄청 예쁘다던데!"

나는 앤드류를 보며, 대답했다.

"넌 여기 있어. 3 왕자 지켜야지."

"......아니......왕자 말고 엘프......"

그 중얼거림은 그저 무시한 채.

마르지오 3세에게 눈을 돌렸다.

"원정은 내가 다녀오겠다. 대신 몇 가지만 준비해줬으면 하는데."

"그렇게 해주기만 한다면야......말해보게.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주지."

"왕궁의 북쪽 성문 옆,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있을 것이다. 그곳을 파헤쳐 보면, 마법으로 후처리 된 나무 상자가 하나 나올 텐데......"

그렇게 출정 준비는 순식간에 착착 진행되어갔고.

다음 날, 우리는 바로 엘프들의 도시가 숨겨진 땅.

마스트로프 숲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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