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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73화 (73/194)

73화. 맞장구만 잘 치면 된다

마나 차징.

내가 가진 마나 만큼 목걸이에 달린 보석에 마나를 저장하는 것.

이것이 마나 목걸이의 능력이었다.

사실 내가 마나를 그리 많이 사용하는 편도 아니고.

또 이게 구하기가 보통 힘든 물건도 아니었던지라 반쯤은 포기했던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오르헬의 이중 정신 공격을 당하며 느꼈다.

'보험 하나쯤은 있어야겠어.'

내 목숨은 소중하니까.

예전보다야 많이 강해졌다지만, 현실에서는 언제나 변수가 존재하지 않던가.

원래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최대한 그런 변수를 줄여 놓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로 갈리는 법이었다.

그리고 나는 차근차근 변수를 줄여나가는 중이었다.

'이 보물고에서, 이거보다 좋은 선택지는 없지!'

"보는 눈이 꽤 있군."

마르지오 3세 역시 내 선택을 인정하는 눈치였다.

내가 골라 온 마나 목걸이를 보고 살짝 놀라는 얼굴이 스쳐 지나간 게 보였다.

"대충 훑어 보는 것만으로 그 보물을 찾아내다니......"

훑어 본 게 아니었다.

정확히 이걸 노리고 찾은 거지.

어쨌든, 이 보물고를 빠삭하게 꿰뚫고 있는 그가 보기에도, 이만한 선택지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선왕께서 한 엘프의 목숨을 구하고, 그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받은 것이라 말씀하셨네. 엘프의 마법이 담긴 물건이니......왕실 어디를 뒤져도 그만한 물건은 찾기 어려울 것일세."

아......이게 그런 뒷배경이 있었던 물건이었구나.

원작에서는 설명을 해줄 사람이 없으니, 알 방법이 없었다.

'뭐. 알아도 별 신경도 안 썼겠지만.'

어쨌든.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으니.

다음을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마르지오 3세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인듯하였다.

"해리슨 백작은......어찌 할 생각이신가?"

"당장 목을 치는 것은 일단 보류하도록 하고......정보를 어떻게 꾀어내느냐가 관건이겠지."

"그렇군. 하나 그자가 뱀파이어 로드를 위해 움직이는 중이라면 쉽게 뭐가 나오리라고 생각되진 않네. 그도 사람인지라 이번에는 실수를 한 것 같지만......그렇게 허술한 자는 아닐세."

"그러하다면 더더욱 일단은 모르는 척 하고 있어야겠지. 이쪽에서 먼저 떠보려고 하다간 분명 눈치를 챌 테지."

마르지오 3세가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에서 실수를 할 때까지 기다리자?"

"분명 한 번은 나올 것이다. 그 단 한 번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물어뜯을 생각으로 기다려야겠지."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실수가 나올 것이고."

역시 국왕이라는 자리에 있는 자라 그런가.

확실히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금방 계략을 읽어내었다.

"정확하다."

"쉽지는 않겠군."

"내 생각이지만......3 왕자의 일에도 그가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럴 테지. 해리슨 백작이라면 언제든 그 아이와 접촉이 가능했으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기다렸다가 이제서야 그 말을 내게 하는 의의 역시 잘 알겠네."

그는 나를 쳐다보며 감탄스러운 표정을 하였다.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아. 언제나 곁에 있는 해리슨 백작을 떼어놓을 방법......그것에 왕실 보물고를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 이곳이라면 확실히 해리슨 백작이 따라오지 못할 테지. 처음부터 여기까지 계산된 것이었던가?......"

......아닌데?......

그냥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건데.

어떻게 처음부터 이걸 다 설계하겠는가.

솔직히 좀 얻어걸린 거지, 라고는 말하기 조금 애매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대충 말을 넘겼다.

"내가 먼저 놈을 찔러보도록 하지."

"어떻게 말인가? 여태 상황을 봐선 딱히 그럴듯한 건 보이지 않았네만......"

"걱정할 필요 없다. 놈을 흔들어 볼 만한 아이디어는, 이미 있으니까."

"......그런 게 있다고?"

나는 마르지오 3세를 보며 씨익 웃었다.

"맞장구만 잘 치면 된다."

드레트노어와 동맹이었던 차원을 가르는 마녀, 레데이아.

나는 그 이름을 빌려 써 볼 작정이었다.

* * *

나와 마르지오 3세가 다시 서재로 돌아왔다.

그런데, 서재의 문을 열자 디아즈와 앤드류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

해리슨 백작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가 앉아 있던 자리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나?"

그에 디아즈가 무릎 위의 피코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아. 왕궁 내 피해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듣고 온다 하였습니다. 오래 걸리진 않을 거라고 합니다."

"그렇군. 혹시 우리가 없는 사이에 따로 대화한 내용이 있나?"

혹여나 떠보기 작전에 변수가 있을까 싶어, 나는 확인을 하였다.

그러나 디아즈는 고개를 저었다.

"거의 두 분이 가신 직후 사라졌습니다. 별개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딱히 없었습니다."

"그래? 잘되었군."

"예? 무엇이......?"

"지금부터 해리슨 백작은 적으로 명시한다."

"가, 갑자기 말입니까?"

디아즈와 앤드류가 무슨 일이냐는 듯 나와 마르지오 3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게, 그들의 시점으로 보자면 왕실 보물고에 갔다 온다고 했는데, 돌아오니 느닷없이 이런 소리를 하니 이상하게 보일 테지.

이해가 되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길게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내 센서에, 누군가 이리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린 까닭이었다.

십중팔구 해리슨 백작일 게 뻔했다.

나는 손가락을 세워 입술에 붙였다.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

디아즈와 앤드류는 눈동자를 굴려 서로를 쳐다보고는.

다시 나를 보고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이런 상황에서는, 담궈야 하는 놈 하나 빼고는 싹 다 한통속이어야 하는 법이었다.

저 둘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도 말은 잘 맞춰줘야 할 텐데......

그 직후.

끼이익.

서재의 문이 열리고.

"아, 전하. 벌써 돌아오신 것입니까?"

"음."

"로한 경이 뭘 고르셨는지 궁금하군요. 어엇? 그것은......! 마나 목걸이?"

"그렇다네."

"안목이 출중하시오."

해리슨 백작도 이게 무엇인지 아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왕가의 최측근다운 면모였다.

'그래......왕가의 재물을 잘 알고 있단 말이지?'

해서 나는, 해리슨 백작이 왕가의 재산에 빠삭하다는 점을 레데이아와 연결시켜보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디아즈에게 시선을 돌리며.

작전이 시작되었다.

* * *

"디아즈. 그러고 보니, 마녀 레데이아가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던가? 헤세테의 왕가는 곧 자신들의 손에 떨어질 것이라고."

내 말에 디아즈는 즉시 눈치껏 대답을 해주었다.

"예. 분명 그런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게 아무래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단 말이지."

더불어 마르지오 3세까지 맞장구를 치기 시작하였다.

"그런 말을 했다고? 마녀가? 그건 좌시할 수 없는 말이로군."

나는 이제 시선을 해리슨 백작에게 돌렸다.

"해리슨 경."

"마, 말씀하시오."

"마녀가 무슨 속셈을 품고 저런 말을 했었는지, 알 수가 있겠나?"

해리슨 백작은 알고 있을 터였다.

레데이아가 드레트노어와 손을 잡고 있다는 걸.

그 역시 뱀파이어 로드의 수하일 테니까.

그러니 더더욱 내 말을 신빙성 있게 듣겠지.

레데이아라면 저런 말을 충분히 할 법하니 말이다.

때문에 그는 지금 알면서 모르는 척을 해야 할 터였다.

"감히 왕가를 모욕하다니, 몹시 불쾌하군. 전하! 당장 의심 가는 이들을 전부 낱낱이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호.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꽤나 좋은 수를 내어 놓은 해리슨 백작이었다.

저렇게 일을 진행해버린다면, 자연스럽게 자신은 용의 선상에서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사회생활을 할 때 익힌 혓바닥 드리블을 본격적으로 뽐내보았다.

"좋은 생각이군. 해리슨 백작은 믿을 만한 사람이니, 그에게 맡겨도 충분할 것 같은데."

내가 마르지오 3세를 보며 그리 말을 하자.

마르지오 3세는 매우 당황을 했다.

그럼에도 일단은 내 말에 동조를 하려고 아등바등 노력했다.

"그, 그런가? 그대가 보기에도 그럴 정도라면......하긴, 해리슨 경 만큼 믿을 만한 사람도 어, 없긴 하지."

연기 실력이 생각보다 조금 아쉬운데.

하지만 일단 위험한 상황은 넘겼다 생각한 해리슨 백작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듯했다.

거기에 국왕이 동조까지 해주니, 해리슨 백작의 기세는 더욱 올랐다.

"제 이름을 걸고 이번 일을 완수하겠나이다!"

마르지오 3세의 눈이 나를 슬쩍 향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아주 미세하게 끄덕였다.

'조금 지켜보자고. 어떻게 나오는지......'

그 역시 눈을 천천히 깜빡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했다.

'그리하지.'

마르지오 3세는 해리슨 백작을 돌아다 보았다.

"이번 일도, 그대에게 맡기겠네. 해리슨 경."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마르지오 3세는 나를 믿고, 우직하게 처음 세웠던 계획대로 밀고 나아갔다.

며칠 후.

나는 마르지오 3세의 긴급한 호출을 받고, 왕궁을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매우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해리슨 백작이, 누군가를 죄인이랍시고 붙잡아 온 것이었다.

그 속내가 뻔히 보였다.

'아무런 연관도 없는 무고한 인간을 하나 잡아왔군.'

실제로 그는 연신 읍소를 하고 있었으니.

"전하! 억울하옵니다! 저는 결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른 적이 없습니다! 이건 음해입니다!"

"닥쳐라, 네 이놈! 감히 왕가를 무너뜨리고 왕국을 무너뜨리려 한 죄! 결코 좌시할 수 없음이다!"

"전하아아아! 아닙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없었습니다!"

해리슨 백작은 몸을 홱 돌려.

나와 국왕 마르지오 3세의 앞으로 다가왔다.

"전하! 속하가 죄인의 거처를 수색하여, 여러 증거를 찾아내었습니다."

"증거? 과인이 직접 확인할 수 있나?"

"예. 여봐라! 증거를 들여라!"

그의 신호에, 신하들이 손에 하나씩 증거품을 올린 채 주루룩 나타났다.

'꽤나 열심히 준비했군.'

나는 그의 놀라운 준비성에 내심 놀랐다.

실제 뱀파이어 로드와 관련된 자들만이 알아낼 법한 물건들만 딱딱 챙겨 온 것이었다.

"전하! 기필코 저는 이런 물건들을 알지 못합니다! 정말입니다!"

무릎을 꿇은 자가, 눈물을 글썽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접 보진 않았지만, 눈에 선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저자의 집에서 찾아냈다고 우기는 거네.'

나는 찬찬히 증거품들을 살폈다.

그때.

하나의 물건이 내 시선을 확 사로잡았다.

'어엇? 이건......이거는, 잠깐만......!'

그러는 사이에 해리슨 백작은 마르지오 3세에게 결단을 요청하였다.

"전하! 당장 이 무뢰한의 목을 치시길 간청드리는 바입니다!"

"억울합니다, 전하아아!"

마르지오 3세의 시선이 살짝 내게로 향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를 마주 보며,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알아낸 것이 있는 것이오?"

그의 물음에, 나는 웃음으로 답했다.

씨익.

그걸 본 마르지오 3세의 입꼬리도 함께 올라갔다.

이제 반격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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