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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72화 (72/194)

72화. 보는 눈이 꽤 있군

"세상에......진짜......듀라한이......"

"꿈이라도 꾸는 것 같군......"

"하, 하하하, 이, 이겼다! 살았다고!"

"듀라한을 마주한 순간, 살아 돌아갈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크하하하하!"

기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바닥에 널브러졌다.

한편, 몸을 날려 듀라한에게 뛰어들었던 나는,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착지를 해냈다.

그리고 듀라한이 완벽히 소멸한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로한 경! 로한 경! 로한 경!"

"당신이 최고요! 하하하하!"

"세상이 로한 경을 찬양할 것이오!"

"우리가 그대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날을 역사에 새길 것입니다!"

바닥에 쓰러진 기사들이 나를 쳐다보며 검을 치켜들었다.

그들의 함성이 순식간에 공간을 가득 메웠다.

예전의 나였다면, 뻘쭘해하며 그냥 사라졌겠지만.

이제는 나름 이런 환호성에도 조금 익숙해지긴 한 모양이었다.

나는 검을 든 손을 쭈욱 들어 올려 보였다.

처억!

그러자 다시 한 번, 기사들의 목청이 더 크게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

"우와아아아!"

"대단하다고 진짜! 하하하하!"

"이야아아아아! 진짜......! 당신, 미쳤다고! 크하하하하!"

꽤나 듣기 좋은 함성이었다.

* * *

마르지오 3세와 우리는, 아직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왕실 서재에서 대화를 이었다.

먼저 서두를 연 것은 해리슨 백작이었다.

"도대체......뭐가 어찌 된 일이오?"

매우 원초적인 질문.

그러나 그에 대한 모든 전말을 아는 이는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나 역시 고개를 저었고.

"크뢰이튼이 생포한 뱀파이어를 추궁했다. 하나 아쉽게도 소득이 크진 않았지."

"알아낸 것이 전혀 없소?"

"글쎄. 듀라한이 모습을 드러내리라는 말은 이미 겪었으니. 그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아직 적의 장난질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지."

내 말을 들은 해리슨 백작이 미간을 찌푸렸다.

"뱀파이어 로드들이 대체 무슨 속셈을 품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겠구려."

"......"

나는 팔짱을 낀 채, 해리슨 백작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그 말을 했었던가?

뱀파이어 로드가 하나가 아니라는 말을......

'아니. 그런 기억은 없다.'

일단은 입을 다물었다.

아직은 상황 파악을 더 해볼 필요가 있었기에.

그러는 사이 해리슨 백작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럼 남은 방법은 역시 3 왕자 저하가 깨어나는 걸 기다리는 것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전하."

그 물음에 마르지오 3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 아이의 상태가 어떠한가?"

"오는 길에 보고받은 바에 따르면, 아직 차도는 없다고 합니다."

"그렇군. 일단 그쪽은 그렇고......"

마르지오 3세의 시선이 내게로 돌아왔다.

"그대의 그 황금빛 창. 익숙한 느낌이었소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그러하다고 느꼈다."

"본인이 쓰는 그 황금의 창은, 오로지 왕가의 혈통만이 사용할 수 있던 힘이었소. 솔직히 말하자면, 그 외의 사람이 쓰는 걸 본 것이 처음인지라 합리적인 의문이 생기더군."

그가 날카로운 눈빛을 하며 내게 물었다.

"그대는, 마르지오 가문의 혈육이오?"

하나 나는 머리를 저었다.

"그건 아닌 것 같군."

마르지오 왕가의 사람들은 혈통으로 이 황금의 창을 손에 넣게 되지만.

나는 아니었다.

혈통빨이 아니라, 지하 유적지의 골렘에게서 얻어낸 것이었으니까.

"확실......한 것이오?"

뭐지? 저 못 믿겠다는 눈빛은.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여태 살면서 없었을 테지.

왕가의 사람이 아닌 자가, 왕가 대대로 내려오는 황금의 창을 쓰는 걸 본 일은.

'그래도 아닌 걸 뭐 어쩌겠어.'

나는 그에게 현실을 인지시켜 주었다.

"내가 쓰는 황금의 창. 그리고 마르지오 왕가의 혈통이 쓰는 황금의 창. 창의 형태가 조금 다르더군."

"......다르긴, 많이 달랐지."

오죽했으면 나조차도 처음엔 같은 황금의 창이 아닌 줄 알았다.

솔직히 내가 쓰는 거대한 삼지창에 비하면 저건 거의 꼬챙이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마르지오 3세 역시 수긍을 하긴 했다.

'근데 아직 눈빛이 왜 저래?'

의심......은 아니고.

약간 미묘한 눈빛이었다.

뭔가 우러러보는 듯한.......

'내 착각이겠지.'

내가 독심술사도 아니고 무슨.

그가 무슨 생각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본론으로 이야기를 넘겼다.

"일전에 약속했던 걸 받아야겠다."

"아. 그렇군. 공을 세웠으면 응당 그만한 보상을 받아야겠지. 3 왕자의 목숨 값, 무얼 원하는가?"

"왕가의 보물고에서 직접 찾아보고 싶다."

"보물고라......그렇군. 왕가의 왕자를 구했는데, 최소한 왕가의 보물고쯤은 되어야 말이 되니까. 같이 가도록 하지."

나와 마르지오 3세가, 왕가에서도 가장 은밀하고 귀중한 것들이 쌓여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왕가의 보물고는 쉽게 접근조차 하기 힘들었다.

거의 지하 미궁과 다름없을 수준의 설계로 되어 있던 까닭이었다.

게다가 마법 대국답게, 가는 길 도처에 마법 함정까지 설치가 되어 있었던 탓에 한층 더 스트레스를 유발했고.

마르지오 왕가의 보물고에는 꽤나 쓸만한 물건이 잠들어 있음에도 몇 회차쯤 지나면 고인물 유저들은 그냥 지나쳐가는 이유가 바로 그런 점들 때문이었다.

'없어도 클리어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으니까. 더불어 몇몇 마법 함정은 시간도 꽤 들여야 하고.'

귀차니즘.

그 감정을 가장 강하게 작용시키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러나 원작과 달리, 국왕이 직접 앞장을 서 주니, 이리 편할 수가 없었다.

마법 함정들은 다 무효화 되고.

중간 중간 두터운 철문들은 자동문마냥 열렸다.

'원작에서는 이미 마르지오 3세도 죽은 이후라, 일일이 다 열쇠 찾으면서 돌아다녀야 했는데.'

문 하나를 열면 또 다른 잠긴 문이 나오고.

그걸 열면 또 새로운 철문이 나오고.

열쇠도 그냥 찾기만 해도 골치인데, 마법 함정들은 여전히 살아있으니......

나도 사실은 여긴 그냥 건너뛸까 생각을 했었다.

원작과 달리 왕가도 멀쩡한데 더더욱 방법이 없지 않겠나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또 이렇게 인연이 생겨버린 탓에, 쉽게 쉽게 일이 풀려가고 있었다.

뚜벅, 뚜벅.

우리는 계속해서 복도를 걸으며, 족히 몇 시간은 걸릴 길을 금방금방 지나쳤다.

사실 이 길 역시도 나에게는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원작에서는, 벽에 온통 피 칠갑이 되어 있고, 시체가 널브러진 길만 봐왔었던 까닭이었다.

'원래는 이렇게 생겼었구나. 깨끗하고 웅장하고......하긴. 한 국가의 가장 큰 보물 창고인데. 너저분한 게 더 이상하지.'

그렇게 몇 개의 관문을 지나고.

종국에는 우리를 따라오던 해리슨 백작과 디아즈마저도 더 들어 올 수 없는 곳에 다다랐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전하."

"다녀오십시오, 로한 님."

우리 둘은, 말없이 걸었다.

마침내 마지막 문에 다다라서야.

"이곳이 바로 왕가의 모든 보물이 잠들어 있는 곳이네."

마르지오 3세가, 문 손잡이를 잡으며 동시에 황금빛 기운을 일으켰다.

화아아아아......!

빛이 뿜어지며, 문과 반응하더니.

쿠구구궁......

그 거대한 문이 큰 힘을 들이지 않았음에도 가벼이 열렸다.

그리고 마르지오 3세는 다시 발을 움직여, 내부로 들어섰다.

"이곳이 바로 마르지오 왕가의 금고라네. 왕실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곳에 발을 들인 건 그대가 처음일세."

마르지오 3세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대가 원하는 것이 이 안에 있길 바라네."

있겠지, 당연히.

나는 거침 없이, 내 기억을 따라 발을 옮겼다.

그러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해리슨 백작. 믿을만한 사람인가?"

* * *

갑자기 그의 이름을 언급하니, 마르지오 3세는 고개를 기울였다.

"해리슨 경? 그야......몇 없는 내 사람이긴 하지. 적어도 나는 믿고 있네."

"그렇군. 그런데, 당신도 뱀파이어 로드가 하나가 아닌 걸 알고 있었나?"

나는 그 질문을 던지며, 마르지오 3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표정을 살피기 위해.

'만에 하나, 두 놈 다 한 통속이라면......차라리 여기서 베어버리는 것도 방법이겠지.'

당장에라도 검을 뽑아들 수 있도록, 나는 오른팔을 잔뜩 긴장시킨 채였다.

하나 다행스럽게도.

마르지오 3세는 경악을 하였다.

"하,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고? 그건 또 무슨......!"

제 3의 눈이 가진 감각까지 모조리 곤두세워 그를 살폈지만......

거짓말로 보이진 않았다.

'진짜 모르는 얼굴이네.'

그래서 나는 오른팔에 주었던 힘을 풀고.

다시 물건을 찾기 시작하며 말을 이었다.

"몰랐던 모양이로군. 그런데 해리슨 백작은 알고 있는 눈치였는데 말이지."

"......!"

"조금 전, 서재에서 해리슨 백작이 그러더군. 뱀파이어 로드'들'이 대체 무슨 속셈을 품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겠다, 라고."

내 말을 들은 마르지오 3세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 한 글자의 차이가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알아차린 듯했다.

그 직후.

그의 얼굴은 매초마다 변했다.

배신감, 분노, 억울함, 황당함......

종국에는 부들부들 떨며 낮게 읊조렸다.

"내, 내 이놈을......! 당장 모가지를 베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침착하게 쇼핑을 이어나가며 대꾸하였다.

"안 될 말이지."

"무슨 뜻인가, 그게! 그대는 아직 이 땅에 발을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르겠지만. 감히 신성한 헤세테에서 그런 배신자는 당장에 사지를 뜯어버려도 시원치 않네!"

"베어도 천천히 베라는 뜻이다."

"......?"

"친구는 가까이. 그리고 적은 더 가까이."

내가 원래 살던 세계에서는 흔한 말이었지만......

처음 들은 마르지오 3세는,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름 큰 깨달음을 얻은듯싶었다.

그가 생각을 정리하는 그 사이.

나는 내가 찾던 물건을 발견하였다.

'여기 있었구나! 대박!'

생각보다 빨리 찾은 것에,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마르지오 3세는

마음을 다시 다잡은 듯, 되살아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하, 하하......완전히 한 방 먹은 느낌이군. 반박을 할 수가 없어. 대체 그대는......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있는 것인가?......"

나는 왕가의 보물 중 하나인 그것을 집어 들며.

뒤로 돌아서서 대답하였다.

"놈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살펴볼 시간이다."

"......그대의 말에 따르도록 하지."

"아, 그리고. 나는 이걸 가져가겠다."

내 손에 들린 걸 확인한 마르지오 3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는 눈이 꽤 있군."

나는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런 손바닥 위에는, 마나 목걸이가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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