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이런 공략은 처음이지?
빛의 축복을 품은, 선택받은 자들.
마르지오 왕가.
예로부터 마르지오 왕가의 사람들은, 신의 가호와도 같은 빛의 마법을 다루는 가문이었다.
그들의 그 장대한 힘은 과거 악마들의 억압과 속삭임을 전부 그 빛으로 물리쳐 왔다.
악마들에게 있어서 마르지오 왕가의 사람들은, 눈엣가시요.
인간들에게 있어서 마르지오 왕가의 사람들은, 신의 구원일지니.
그러나......
악마와 인간 그 어딘가.
과거 인간이었던 기사이자, 지금은 악마의 하수인이 된 괴물인 듀라한은.
마르지오 왕가의 핏줄까지도 당혹게 하고 있었으니......
"히이이이잉!"
뼈로 이루어진 듀라한의 말이, 앞다리를 들어 올리며 위용을 자랑하였다.
구울 따위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고위 언데드의 그 압도적인 존재감은.
단지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살아있는 자들에게 피어를 뿜어내었다.
그리고 그 언데드 피어는, 순식간에 기사들을 집어삼켰다.
"허, 허억......!"
"숨이, 숨이 안 쉬어지......!"
말도 안 되는 광경이 마르지오 3세와 해리슨 백작의 앞에서 펼쳐졌다.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병사들이 저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털썩, 털썩.
마치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병사들의 모습에.
둘 역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범한 병사와 달리 고도의 훈련을 받은 기사들만이, 겨우 정신을 부여잡고 서 있을 뿐.
그러나 그들 역시도 한계에 다다른 듯 보였다.
물론 왕가를 지키는 수호자들이 이것 뿐일 리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 뒤에서 새로운 병력들이 몰려오고 있었으니까.
"전하를 지켜라!"
"이 목숨을 헤세테에!"
몇몇의 기사들은 마르지오 3세를 지키고 섰으며.
나머지는 목숨을 내던지며 적에게 몸을 날렸다.
때문에 마르지오 3세 역시 물러설 수 없었다.
그는 마나를 전부 끌어 올려, 양손에 불어넣었다.
그의 두 손이 찬란함에 휘감겼다.
'조금 더......! 조금만 더......!'
이내 그의 팔뚝이 전부 빛으로 뒤덮이며.
"크으으으읍!"
손을 앞으로 쫘악 뻗었다.
그러자.
솨아아아아!
마르지오 3세의 주변으로 황금의 창들이 여러 개 생겨났다.
우우웅, 우우웅!
그의 눈빛에 살기가 감돌았다.
비록 첫 번째 공격이 막히기는 했으나......
'이번 것은 다를 것이다!'
한 발로 안 된다면, 죽을 때까지 쏘아주겠노라!
그의 황금빛 창들이, 마치 화살처럼 쏘아졌다.
파파파파파팍!
정확히 듀라한을 노렸지만, 구울 몇 마리가 정면으로 달려들다가 꿰뚫리기도 했다.
관통을 당한 구울들은 그대로 찍소리도 못한 채 완전히 죽어버렸다.
하나 황금빛 화살은 전혀 속도가 줄어들지 않았다.
물리적인 화살과 달리, 마법으로 창조된 것이었기에.
그렇게 그대로 듀라한에게 날아간 수 발의 창들은.
푹! 채앵! 푸푹!
비록 몇 개는 튕겨내 졌으나, 꽤 많이 창이 결국 놈의 몸에 박혔다.
그에 기사들이 소리쳤다.
"돼, 됐다아!"
"하, 하하하하! 꼴 좋다, 이 엿 같은 새끼!"
"뒈져라, 악마 놈!"
"그게 바로 헤세테의 군주라 이 말이야!"
황금의 창을 맞고 버틴 언데드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 어어?"
"왜, 왜 계속 움직이는......! 커헉?"
"주, 죽지 않았다! 아직 죽지 않았어! 방패 들어!"
콰과가가가가가가!
듀라한은 여전히 그 거대한 대검을 휘둘렀다.
고작 이 정도로는 자신을 막을 수 없다는 듯이.
마르지오 3세는 그제서야 처음으로 깨달았다.
마르지오 왕가의 창조차도 막을 수 없는 악이 있다는 것을.
자신이 생각보다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음을......
이어서 다가온 감정은......절망.
그 이상 적합한 단어는 없으리라.
그 순간.
슈와아아아아악!
마르지오 3세와 해리슨 백작의 머리 사이로, 무언가가 굉음을 내며 날아갔다.
지나간 다음에야 알 수 있었다.
그것이 거대한 황금의 창이라는 것을.
심지어는 마르지오 3세가 만들어낸 황금의 창과 같은 빛을 뿜고 있다는 것을.
물론 그 크기의 차이가 너무 압도적이긴 했지만 말이다.
* * *
나는 황금의 창을 창조하여, 달려오는 듀라한에게 투창하였다.
최근 강화된 신체와, 거신병의 왼팔이 콜라보를 일으켜 믿을 수 없는 속도를 자아내었다.
퍼엉!
내 귀에는 거의 투창의 소리가 포탄이 발사되는 것처럼 들릴 정도였다.
덕분에 시원스레 날아간 창은.
푸학!
듀라한 놈이 검을 휘둘러 막아낼 엄두도 내지 못하게 냅다 박혔고.
털썩......!
놈이 말에서 추락을 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제서야 뒤를 돌아본 마르지오 3세와 해리슨 백작이 나를 알아보았다.
"로한......경?"
"어, 어떻게 여길......!"
일격에 듀라한을 쓰러뜨린 걸 보고 놀란 얼굴로.
그리고 황금의 창에 두 번 놀란듯했다.
"저, 전하. 방금 저거......황금빛 창 말입니다......"
"그래. 나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네. 분명히......왕가의 그 황금의 창과 같은 빛이었네......느낄 수 있었어......"
"저, 정말입니까? 정말로 로한 경이......왕가의 그 신성한 힘을......!"
굉장히 뭔가 질문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나는 거기에 느긋하게 대답해주며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듀라한은 그리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기에.
황금의 창이 제대로 들어가긴 했지만, 저걸로 끝날 놈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이 정도로 죽을 놈이었으면, 내가 오기 전에 죽었겠지......'
듀라한의 체력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보스 몬스터를 통틀어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황금의 창은 단지 말에서 놈을 떨어뜨리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말 위에 있는 듀라한은 나라고 해도 정면 승부는 까다로웠으니까.
어쨌든 첫 번째 목표는 완수했으니.
나는 투창을 위해 갈무리했던 검을 다시 뽑아들었다.
스르릉......!
그리고 그러는 동안, 예상대로 듀라한은, 그 거대한 몸집을 일으켜 세웠다.
몸만 일으키는데 무슨 건물이 일어서는 것 같았다.
악마의 힘에 의해 한층 커진 덩치는, 머리가 없음에도 거의 2미터에 가까웠으니까.
압도적.
그것 외에는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확실히 게임에서 보던 것과 실제로 보는 듀라한은, 그 갭이 너무나도 컸으니까.
놈은 자신의 덩치에 걸맞은 웅장한 대검을 지팡이처럼 짚으며 내게 마주 섰다.
'그래. 그럴 줄 알았지.'
내 황금의 창에 직격을 당한 것치고는 굉장히 멀쩡해 보였다.
하나 놀랍지도 않았다.
상정했던 바였으니까.
'그래도 데미지가 제로는 아닐 거다.'
나 역시 뽑아든 검에 곧장 필멸조의 가호를 흘려보냈다.
우웅......우우우웅......!
검에서 기분 좋은 공명이 느껴졌다.
그때, 사방의 구울들이 일제히 내게 날아들었다.
하나 듀라한 외에 다른 잡놈들은......
휘익.
검에 닿기도 전에 필멸조의 가호에 의해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였다.
날아올랐던 구울들은 순식간에 그저 시체로 변해 끈 떨어진 인형처럼 무너졌다.
투두두둑.
"이, 이, 이게 가능한 것인가?"
"허, 허허......!"
내 시선은, 뛰어드는 구울들 따위는 애초부터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오로지 저 대가리 없는 떡대에게 향하고 있을 뿐.
나는 검을 꽈악 꼬나쥐고는.
타닷!
발을 굴려 쏘아지듯 나아갔다.
그 순간, 듀라한 역시 발을 구르며.
쿵! 쿵! 쿵!
거리를 좁혀왔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앙!
두 검이 중앙에서 부딪혔다.
* * *
"저, 저 괴력을 막아냈다고? 검으로?"
"내가 뭘 본 거지?......"
"......말도 안 돼!"
귓가에 기사들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그들이 왜 저런 소리를 하는지 너무나도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듀라한의 검격은, 절대로 가볍지 않았다.
워낙에 수월하게 휘두르는 탓에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실상은 그 하나하나가 전부 일격필살에 가까웠으니까.
더불어 확실히 보통의 인간이 상대하기는 힘든 존재인 건 확실했다.
공간 베기로 분명 놈의 몸과 검을 베었건만.
스스슥......!
검은 연기 같은 게 잘린 단면에서 흘러나오더니 다시 붙어버리는 게 아닌가.
최상위 언데드쯤 되니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싶었다.
물론 공략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조금 귀찮을 뿐.
'결국은 원작에서처럼 체력을 다 빼놓고 마지막에 핵까지 찔러 없애야 된다는 건데.'
나는 솔직히 조금 기분이 좋았다.
간만에 깨어난 악을 증오하는 자가, 이놈을 더 괴롭히기를 바란 까닭이었다.
지금 필멸조의 가호가 서린 내 검을 받아내는 것 자체만으로도, 놈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선사하고 있는 꼴이었으니까.
쾅! 쾅! 쾅!
검이 부딪힐 때마다, 놈의 영혼과 육체가 귀곡성을 질러대며 떨어졌다가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강제로 영혼이 몸에서 뜯겨나가는 기분?
모르긴 몰라도, 놈이 부들부들 떠는 걸 보니 보통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 그래! 이 정도는 버텨 줘야 듀라한이지! 큭큭!"
악마 놈들이 괴로워하는 걸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즐거웠다.
마음 같아서야 몇 년 정도는 묶어놓고 패고 싶지만......
아직 더 팰 놈들이 좀 남아 있었기에 나는 슬슬 마무리 작업에 착수했다.
어차피 듀라한 패턴이야 뻔했다.
공략을 모르면 마구잡이 공격처럼 느껴질 테지.
하지만 나는 달랐다.
일단 한 방 데미지를 먹이고 나면.
'좌에서 우로 긴 횡 베기.'
고개를 숙이자, 후웅 소리를 내며 내 머리가 있던 자리를 놈의 검이 쓸었다.
'그리고 이어서 발차기.'
놈이 발바닥을 세워 쭉 뻗어오자.
촥! 촤자작! 촤작!
침착하게 그 타이밍을 노려 극딜링.
이후 다시 다음 찌르기 공격을 살포시 피해준 다음.
'뻗은 팔을 극딜!'
촤자자작! 촤자자작!
한계에 가까운 효율을 끌어내며, 한 치의 빈틈도 없는 보스 공략이 몇 분이나 이어졌다.
주변의 사람들이 멍하니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이런 공략은 처음이지?'
그렇게 몇 분이 지나자.
놈의 명치 부분에, 검은 영력 덩어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체력 끝났구만!'
나는 앞으로 한 바퀴 구르며, 놈의 휘두르기를 피하고.
바닥을 박차며 튀어 올라!
"흐으으읍!"
푸욱!
언데드 핵에 검을 쑤셔 박고는 필멸조의 가호를 발현하였다.
파아아아아앗!
언데드의 핵에 내 검이 박혔다.
원래라면 여기서도 끝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2페이즈로 넘어가는 타이밍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나는 피곤한 2페이즈를 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콰득!
검을 비틀며, 더 깊숙이 검을 박아 넣자.
삐그덕, 삐그덕!
대가리가 없는 놈은, 비명을 지르진 못했지만.
부들부들 떠는 걸 보니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곧 뒤질 거란 걸.
그리고 몇 초 후.
놈의 육체가 언데드 핵의 방향으로,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쪼그라들더니.
슈화아아아아악!
얼마 버티지 못하고 이내.
콰드득, 콰드드드득!......핏.
세상에서 완전히 소멸하였다.
그 광경을 코앞에서 직관한 마르지오 3세와 해리슨 백작의 중얼거림이 살짝 들렸다.
"마, 맙소사.......이게......"
"......대체 무슨 일이......말도 안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