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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65화 (65/194)

65화. 떠돌이 마법사이오

산은 해가 금방 저물었다.

조금 어둑해진다 싶으면 금세 횃불 없이는 쉬이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로.

그에 나와 디아즈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야영을 준비하였다.

"그런데,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앤드류에게 물었다.

분명 처음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어느샌가 멧돼지 한 마리까지 들쳐 메고 나타난 게 아닌가.

저녁 식사라고 하면서.

지금은 예쁘게 잘 구워 내가지고, 나와 디아즈에게 다리 한 짝씩 내밀고 있었다.

나도 주니까 받아먹기는 하는데......

"에이. 그게 뭐 중요한가요? 우리가 함께하는 게 중요하지."

"그것도 별로 안 중요한 것 같은데?"

"넘어가요, 넘어가. 매사에 그렇게 까다로우면 인생 피곤해요."

나는 어이 없음과 함께 고기를 한 입 물었다.

그 와중에 통바베큐 구이는 맛있었다.

풍부한 육즙이 주륵흘러 나오며 온 입안을 가득 채웠다.

게다가 뭘 어떻게 한 건지, 짭짤하게 간도 딱 맞는 게 아닌가.

식당 차려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잠시 스쳤다.

"어때요? 죽이죠? 히힛!"

저러는 걸 보니 또 칭찬이 나오다 다시 들어갔다.

하여간 붙임성 하나는 내가 인생 살면서 본 인간들 중에 최고가 아닐까 싶었다.

적당히 식사를 마무리하고.

디아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방에 정찰 한 번만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음."

"나도 갈래, 삐약!"

나는 걸어가는 디아즈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솔레온 백작을 죽인 후.

그녀는 내적으로 꽤나 큰 성장을 한 듯 보였다.

눈빛도 착 가라앉아 안정감이 있었고.

감정의 동요도 확실히 전보다는 줄어든 것 같았다.

내 기억 속의 네임드였던, 그 디아즈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디아즈가 숲 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앤드류에게 물었다.

"뭐 할 말 있나?"

시선은 모닥불에 둔 채.

괜히 그것을 나무 막대기로 뒤적거리며.

"예?......아......"

말꼬리를 늘리는 게, 정답인 모양이었다.

자꾸 힐끔힐끔 내 눈치를 보는 걸 이미 느끼고 있기도 했었고.

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지 뜸을 들이다가.

내게 물어왔다.

"왜 디아즈였어요? 처음 만났을 때. 왜 부관을 디아즈로 선택한 거에요?"

그래, 그랬었지, 참.

앤드류도 디아즈를 부관으로 삼겠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

그래서 처음부터 트러블이 살짝 있었던 것이고.

그러고 보니 나도 문득 궁금했다.

"너는 왜 디아즈를 부관으로 삼으려 했던 거지?"

"......저야......알고 있었으니까요."

"무엇을?"

"저 친구의 그 공허함을요. 고아로 자라서, 친구까지 잃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었어요. 로한 경은 못 봐서 모르겠지만, 그때 디아즈의 눈은 완전히 길을 잃은 상태였어요. 그래서 불안하더라고요."

"......"

앤드류는 숨을 한 번 깊게 쉬고는 말을 이었다.

"저는 겪어 봤어요. 아무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거든요. 물론 그것 또한 제 착각이긴 했지만요. 사실은 곁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못 알아보고 있었더라고요. 혼자서 '아, 나는 혼자다.' 그런 멍청한 생각을 했었더랬죠. 그래서 알려주고 싶었어요. 디아즈에게도."

무슨 말인지 나도 이해가 갔다.

나 역시 이 세계에 오기 전에는......혼자였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제가 아니라 로한 경을 따라가서 다행이다 싶은 기분? 솔직히 제가 디아즈를 부관으로 데려와 봤자, 기껏해야 새로운 친구 정도나 되었겠죠. 하지만 로한 경은 달랐죠. 뭔가 사람 자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힘? 그런 게 있으신 거 같아요."

"과대평가다. 나는 그런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실수도 많았고, 좌절도 숱하게 겪은. 보통의 사람일 뿐이지."

"글쎄요. 그건 로한 경 스스로도 로한 경을 아직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고요. 아니면 과한 겸손이거나. 사람을 믿고, 믿음을 주는 거. 그거 쉬운 거 아니에요. 저도 그랬지만, 로한 경도 사람에게 많이 당해봤을 거 아니에요."

"......"

왜 아니겠나.

아니, 오히려 사람한테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 역시 넌덜머리가 날 정도로 발등도 찍혀보고, 뒤통수도 맞아보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믿을만한 사람만 믿은 것이고.

"저도 믿어주었잖아요? 몰렌 백작을 이길 수 있다고 믿어주었고. 그만큼 당한 후에도 또 믿어주었고. 그건 로한 경의 능력인 거죠."

"......"

그래......

앤드류만은 조금 달랐다.

사실 나는 앤드류라는 사람을 전혀 알지 못했다.

어디서 죽었는지는 몰라도 원작에서는 등장조차 하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해서 스트라운에서 그를 본 게 내게는 첫인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봐온 그가, 내가 아는 전부였고.

그럼에도 그를 믿은 건......순수한 내 의지였다.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어린애인 줄 알았는데. 제법 말솜씨는 있네. 후후.'

꼭 그런 건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고기, 맛있네."

* * *

밤이 지나고 새벽의 동이 떠오르자.

우리는 바로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산길의 해는 짧았다.

몇 번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야영을 할 때마다 등이 뻐근했다.

찬 바닥에 그대로 누워 잠들기 때문인듯싶었다.

"후우."

그래도 느긋하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천천히 이동하면 할수록, 하루 더 이런 돌 바닥에서 자야 될 테니까.

차라리 빨리빨리 도착해서 침대에 눕는 편이 더 좋았다.

말을 타고 이동을 하는 길에, 앤드류가 물어왔다.

"그런데. 그 뱀파이어 로드라는 놈 말이에요. 어떻게 찾아야 해요? 헤세테 왕국이 손바닥만 한 것도 아닌데다가, 내가 뱀파이어 로드가 나 여기 있소, 하면서 나와주지도 않을 텐데."

나도 사실 그 부분이 조금 걱정이었다.

악마 놈들은 냄새가 풍겨왔지만......뱀파이어는 아니었다.

한 국가 안에서, 사람 하나 찾는 게 쉽지는 않을 터였다.

그것도 모자라 아마 작정하고 숨었을 테니......

다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일일이 뒤져서라도 찾아야지."

"뭐. 그거야 그렇긴 하죠."

디아즈도 한마디 거들었다.

"해당 지역의 교단 관계자들과 왕실에도 도움을 요청하면, 방법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

"아니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네만?"

디아즈와 대화를 하는 도중.

한 노인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우리 셋은 모두 화들짝 놀라며, 목소리의 방향을 돌아다 보았다.

"반갑소들. 나는 마법사, 크뢰이튼이라고 하오."

내 기억 속의, 플레이어블 마법사 캐릭터가 눈앞에서 웃고 있었다.

* * *

크뢰이튼은 별로 인기가 있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마법사 클래스라는 특징이 있기는 했지만, 일단 사람들이 플레이 할 캐릭터를 고를 때는 외형도 많이 보지 않는가.

커스터마이징이 불가능한 파오갓의 특성상.

원래 잘생긴 용병 클래스를 고르거나 예쁜 도적 클래스 같은 걸 고르기 일쑤였다.

아니, 사실 크뢰이튼을 제외하고는 다들 웬만큼 각자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더더욱 크뢰이튼의 선택률이 떨어졌던 게 아닐까 싶었다.

거기에 더불어.

'사실 다른 게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마법사이고.'

원작 속에서의 크뢰이튼은 뭐 특별히 다른 게임에 비해 신기한 마법을 쓰지도 않았다.

때문에 별로 특출나게 재미있지도 않았고.

그런데......

'실제로 마주하니, 느낌이 많이 다른데?......'

은발의 머리와 수염이 신비로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는, 의외의 공포감을 떠오르게 하였고.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제3의 눈이 거의 감지하지 못했다.'

살기가 아예 없기 때문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우리들이 당황을 한 채 아무런 말이 없자.

크뢰이튼이 다시 입을 열었다.

"뱀파이어를 찾는다고 하지 않았소?"

그에 디아즈가 대답을 했다.

"귀하는 누구 신지......"

"보시다시피. 떠돌이 마법사이오. 마법사라서 몇 가지 재주가 있지. 해보진 않았네만, 잘하면 그 뱀파이어 로드도 찾을 수 있을 거 같긴 하오. 대신, 헤세테의 왕실과 연결을 좀 시켜 줄 수 있겠소? 듣자 하니 왕실에 도움도 요청할 정도가 되는 모양인데."

"......"

디아즈는 미간을 찌푸렸다.

정체를 전혀 알 수 없는 상대가 갑자기 돕겠다고 다가오니 의심이 드는 게 정상이었다.

덥석 믿는 게 더 이상할 테지.

그런데 나는.

"좋다."

그를 덥석 믿기로 했다.

나의 대답을 예상치 못했는지, 디아즈가 내 옆으로 다가와서 속삭였다.

"로한 님. 상대가 누군지 전혀 모르는 상황입니다. 괜히 정보가 새어 나갈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옆으로 슬그머니 앤드류도 끼어들었다.

"나 예전에 저런 사기꾼 만나 본 적 있어요. 그놈 좀 닮은 거 같기도 하고."

그들의 걱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 크뢰이튼은, 대침공이 일어난 이후 목숨을 걸고 악마와 싸웠던 사람이었다.

미래를 알고 있는 나이기에.

"저자를 믿지 말고, 나를 믿어라."

나는 자신 있게 둘에게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흠. 그럼 저도 오케이요."

그들의 동의와 함께.

나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크뢰이튼. 내 이름은 로한이다."

"로한? 좋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구만, 그래."

"그런데 하나 물어보아도 되나?"

"그러시오. 뭐가 궁금하신가?"

크뢰이튼의 신분에 대해서는 걱정이 없었다.

하나 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게 하나 있었다.

"뱀파이어를 어떻게 찾아낸다는 거지?"

내가 아는 크뢰이튼은, 화염 계열 마법만 쓸 수 있는 자였다.

전투 외 기술도 있긴 하지만......

'뱀파이어를 찾아낼 만한 것은 없었는데?'

"아. 그 부분 말이오? 그래, 궁금할 만 하지."

그는 슬며시 웃으며, 전혀 예상치도 못한 발언을 꺼냈다.

"고위 뱀파이어 세 놈이 어제 나를 습격 하였소. 지금도 한 놈 처치하고 돌아가는 길이고."

그 말에 디아즈와 앤드류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세 놈이라니......!"

"지금 저 노인이......내 귀가 이상한 거 아니죠, 디아즈?"

둘의 반응에도 크뢰이튼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게 생포하는 게 쉽진 않더라고. 그래도 고생 고생해서 하나는 생포했는데......그 놈을 털어볼까 하오. 나를 왕실과 연결시켜 준다 약속만 한다면, 생포한 놈의 신변을 넘기겠소이다. 깔끔하게."

크뢰이튼은 내게 물었다.

"어떻게......흥미가 좀 돋소?"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왕실과 연결만 시켜주는 거?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거의 거저나 다름없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나는,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

"매우."

"좋소이다. 그럼 협상 타결이오!"

그렇게 우리는 이상한 마법사 크뢰이튼을 따라.

고위 뱀파이어가 생포된 채 우리를 기다리는, 헤세테 왕국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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