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62화 (62/194)

62화. 나를, 믿어라

고요......

레데이아가,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사라진 직후.

이 공간에는 오로지 고요함만이 남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던 나만 빼고는, 모두가 꽤나 당황을 한 듯한 얼굴이었다.

"대, 대체 뭐가 어찌 된 것인가?"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가르겐트 백작.

그에 짧게 대답을 해주었다.

"차원을 함부로 넘나든 대가이다. 제 입으로는 차원을 가르는 마녀라고 지껄이고 다녔지만, 사실은 그저 차원의 빈틈을 무단 침입하는 좀도둑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면......마녀는, 그 벌을 받은 것이고?"

"그렇지. 이제는 다른 차원에 갇힌 채 나오지 못할 것이다. 영원히. 함부로 넘나들었던 그 차원에서 온몸이 갈갈이 찢길 거거든."

일부러 두 뱀파이어 놈들, 몰렌 백작과 솔레온 백작을 쳐다보며 나는 대답을 했다.

당연히 그 둘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겁나겠지.

레데이아 하나 믿고 여기까지 일을 벌였는데, 그 레데이아가 사려졌으니 말이다.

나의 시선을 받은 몰렌 백작과 솔레온 백작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몸을 날려 도망치는 길을 선택했다.

"오늘 일은 잊지 않을 것이오!"

"다음에 다시 보도록 하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박쥐 떼로 변신을 하는 둘.

그들을 상대하던 디아즈, 앤드류, 그리고 성기사들과 제프론 이단 심문관이 당황을 하였다.

위로 날아올라 도망치는 놈들을 따라갈 수단이 없었던 까닭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유로이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눈앞에서 적들을 놓치게 생긴 그들은 나를 바라보았다.

제프론과 앤드류가 가장 성급해 보였다.

"로, 로한 경!"

"저거 어떻게 해요? 좀 도와줘 봐요!"

그들에게 나는 턱짓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파다닥!

박쥐 떼로 변한 그들은 쭈욱 날아가더니......

다시 반대편 벽에서 나타났다.

"아!"

"장막이 아직......있었구나?"

저 장막 때문에 우리도 드나들기 힘들지만.

저들 역시 다르지가 않았다.

'마음대로 왔다갔다할 수 있는 건 나와 레데이아 뿐이지.'

나야 검으로 길을 만들 수 있고.

레데이아는 이 마법의 주인이었으니까.

물론 레데이아가 사라졌기에, 이 마법도 곧 사라질 것이긴 했다.

"레데이아는 다른 차원에 갇힌 것이지 죽은 게 아니다. 아직은 말이지. 이제 슬슬 저쪽 차원에서 몸이 갈라지고 찢어지고 있는 중일 테니, 대략 10분 정도 숨이 붙어 있겠지. 그리고 이 장막 역시도, 10분 정도는 더 유지될 것이고."

내 말을 들은 솔레온 백작과 몰렌 백작은, 당장은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바닥에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내려앉았다.

굉장히 찡그린 얼굴로.

나는 그들에게 한마디 충고를 날렸다.

"10분 동안 잘 도망친다면......살아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크으윽......!"

"망할......!"

* * *

몰렌 백작과 솔레온 백작은 서로 돕지 않았다.

잘 알고 있었겠지.

아군이라고 옆에 붙어 있긴 했지만......믿을만한 종자는 아니라는 걸.

양쪽 다 말이다.

팔짱을 낀 채 지켜보는 내게, 가르겐트 백작이 물었다.

"돕지 않아도 되는가?"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에?"

나는 턱짓으로 디아즈와 앤드류를 가리켰다.

"저 둘. 지금은 아직 미숙하지만, 훗날 악마들의 큰 장벽이 될만한 인재들이다."

"......미래를 위해서 한발 물러선 것이로군?"

내 대답을 들은 가르겐트 백작이 슬며시 웃었다.

나는 그를 스윽 쳐다보았다.

"왜 웃는 것이지?"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

"......?"

"자네는 참......사람 보는 눈이 좋아. 연금술사 마르코. 그 친구도 내 직접 만나봤다네. 굉장한 인재이더군. 그 친구도 그렇고......저 둘도 그렇고. 자네 주변에는 별보다 반짝이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모이는구만. 그런데......내가 더 놀란 게 뭔지 아나?"

"글쎄."

"그 모든 자들이 하나같이 자네를 철석같이 믿는다는 것이야. 사람 마음 사는 게 그리 쉽지 않은데 말이지. 나 역시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게 바로 그것이거든."

"운이 좋았을 뿐이다."

얼핏 겸손을 떠는 말 같았지만, 정말 사실이었다.

운이 좋게도 그들의 미래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이용해 그들이 필요한 걸 조금 빨리 내민 것뿐이니까.

그러나 가르겐트 백작은 내 대답을 썩 믿지는 않는 표정이었다.

"그게 운으로 될 일은 아니지. 그 인재들이, 아무 생각도 없이 자네 곁에 있진 않을 테니. 나 역시 그렇고."

굳이 믿지 않는데 내가 더 나서서 바로 잡아 줄 생각은 없었다.

"그 말은, 당신도 그 천재들 중 하나라는 말이로군."

"하하. 그게 또 그렇게 되나? 내 입으로 나를 칭찬한 꼴이 되었군. 그래, 어떻게. 자네가 보기엔 나도 그런 인재로 보이나?"

나는 딱히 숨기지 않았다.

가르겐트 백작처럼 자신을 잘 숨기는 자에겐, 오히려 스스로를 먼저 오픈해주는 것도 가까워지는 방법 중 하나였다.

"물론. 나는 당신도 내 사람으로 만들 생각이다."

"나를? 하하하. 자네가 내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자네 사람이 된다라? 그런 방법이 있으리라고는 또 생각도 못 했군. 그래. 그런 발상을 할 수 있지. 음. 어디 한 번 해보시게."

그는 재미있다는 얼굴로 웃었다.

이미 보였다.

그가 내게 많이 넘어왔다는 게.

애초에 손녀부터 공략을 했으니까.

나 역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였다.

"이번에는 새로운 귀걸이를 한 번 준비해보도록 하지."

"하하하하. 그건 거절할 수가 없겠는데? 기대함세."

나는 그리고 그만 고개를 돌렸다.

'앤드류와 제프론 연합 쪽은 금방 이길 것 같으니 신경 꺼도 되겠군.'

그러나 내 등에 그의 시선이 계속 들러붙어 있는 건, 제3의 눈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 * *

디아즈는 다시금 솔레온 백작을 향해 쏘아졌다.

타닷!

그에 솔레온 백작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자존심을 팔아서, 귀족의 꼭대기까지 올라갔고.

영혼을 팔아서, 인간을 뛰어넘는 이 몸을 얻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고위 뱀파이어가 되어도 진정한 의미의 영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생존을 위해서는 신선한 인간의 피가 끊임 없이 필요했던 것이다.

절망을 했었다.

영생도 얻지 못했고, 피에 대한 갈증은 멈추지도 않았다.

인간일 때는 상상할 수도 없던 목마름이 계속해서 자신을 괴롭혔다.

처음에야 노예들을 이용해 피를 수급했었다.

그런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해서 인간의 피를 찾다 보니, 어느샌가 흉흉한 소문이 퍼져 나갔던 것이다.

[솔레온 백작이 인간을 잡아먹는다.]

[솔레온 백작이 악마에게 제물을 바친다.]

[그의 근처에서는 피 냄새가 멈추지를 않는다.]

덜컥 겁이 났다.

이러다가는 교단이고 왕실이고 분명 누군가는 찾아올 게 뻔했으니까.

그리고 만약 뱀파이어가 되었다는 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솔레온 백작은 자신의 목표만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때 만난 게 바로 차원을 가르는 마녀 레데이아였다.

그야말로 궁지에 몰린 솔레온 백작의 앞에 나타난 그녀는, 그의 눈에는 거의 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지금껏 막막했던 모든 일들을 해결해주고.

심지어는 영생을 이룩할 수 있는 방법까지 제시해주었으니까.

신도 그렇게까지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지는 않았지 않나.

그때부터 솔레온 백작은 레데이아의 충실한 심복이 되었다.

그녀를 남의 목숨을 가볍게 버리기도 하고.

자식의 목을 자르기도 했다.

그렇게 갖은 제물을 바쳐 여기까지 왔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었는데......!

그런데 고작 여기서 이리도 허무하게 죽는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여기서 살아나갈 작정이었다.

10분만, 따악 10분만 버틴다면 길이 나오리라.

솔레온 백작은 그 10분을 벌기 위해, 간사한 혀를 놀렸다.

"네가 그리도 원수를 갚으려 하는 그 레아노아! 그자가 왜 그렇게 강한지, 이유가 궁금하지 않나?"

예상대로.

멈칫.

디아즈가 발을 세웠다.

* * *

디아즈가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헛소리를......"

그녀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솔레온 백작이 다시 입을 열었다.

"레아노아는 일곱 기사단의 자격이 없는 자였다. 그녀는 내 꾐에 넘어와, 레데이아의 마법으로 만든 묘약을 먹었다. 물론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들어가 있었지."

"......!"

"나는 그것을 레아노아에게 전했고, 그녀는 결국 그걸 먹었다. 우스운 일이지. 선한 일을 하겠다면서, 사람들의 영혼을 삼키다니. 그러고도 과연 그녀가 영웅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가?"

디아즈가 조금 흔들리는 걸 확인한 솔레온 백작은, 그 세 치 혀를 멈추지 않았다.

"나를 죽인다면, 왕실에서 내 서재를 수색하겠지. 그러면 자연스레 '레아노아는 영웅이 아니다.' 라는 그 사실이, 전부 까발려질 것이다. 그래도 괜찮나? 하지만 나를 살려 보내준다면 그 증거들을 전부 없애주겠다. 그 후에 나를 죽여도 되지 않나?"

당장 도망치기 위해.

그는 디아즈를 살살 꼬드겼다.

"레아노아의 명예를 지켜 줄 마지막 기회이다. 장담하지. 만약 내 서재에 있는 것들이 세상에 퍼진다면, 그녀는 쓰레기보다 못한 쓰레기로 전락할 것이다. 친우를 위해, 자네는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디아즈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거짓말!"

"거짓말이라고? 과연 그럴까?"

그에 내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렇고말고. 거짓말이지."

하지만 솔레온 백작은 흔들리지 않았다.

"딱 5분. 5분만 저자를 막아준다면, 모든 자료를 없애주지, 디아즈. 그대 친우의 치부를 없앨 마지막 기회다."

그러나 나 역시 흔들리지 않았다.

가르겐트 백작이 말했듯, 나를 믿는 그녀를, 나도 믿었으니까.

"레아노아는, 그 약을 받고 고민을 했다. 하나 결국 삼키지는 않았지."

디아즈의 시선이 내게로 돌아왔다.

"정말......입니까?"

원작에서의 디아즈는, 어디서 들었는지는 몰라도 레아노아의 진실을 찾기 위해 한참을 배회한다.

그 일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무너졌다가 또다시 일어서기도 하며.

플레이어와 엮이고, 갖은 일을 겪으며 하나의 서사를 완성하게 되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와의 친분도 쌓고 말이다.

그런데 내가 왜 그걸 다 기다려야 하지?

이미 내 사람이 되었는데, 굳이 빙빙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

나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데?

지름길을 놔두고 굳이 고생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디아즈의 물음에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믿어라."

그에 디아즈가 입술을 꾸욱 다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선 그녀의 시선은, 이제 더 이상 의구심 따위는 없이, 완전히 단단해져 있었다.

솔레온 백작조차 당황할 정도로.

"내, 내가 지금 없는 말을 지어낸 것 같은가? 아니! 절대 아니야! 그대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는 거라고! 평생 후회할 걸세!"

말이 길어지는 걸 보니, 많이 다급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미 디아즈의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여기서 내 복수를 끝내겠다!"

"제, 젠장! 이 미친년이!"

확신을 가진 디아즈는, 처음으로 내가 알려주었던.

미래의 자신이 쓰던 그 기술을......

여태까지는 단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던 그것을!

파팍! 샤악! 퍽!

완벽히 구현해내며, 한 단계 더 성장을 하였다.

"크헉......이럴 수는......"

솔레온 백작의 목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