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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61화 (61/194)

61화. 무단 침입을 막 함부로 하면 안 되지

내 주먹에 몸이 붕 뜬 레데이아는, 허공에서 몸을 바로 세우며 온 얼굴에 핏대를 세웠다.

꽤나 정타로 들어간 것 같았지만 그 짧은 순간 방어막을 두른 게 손에 느껴졌다.

몰론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다.

레데이아를 날린 사이.

화르르륵!

불사조의 불꽃이 내 몸에 뚫린 구멍을 완벽히 메웠으니까.

피코는 여전히 피난처에 두고 온 상태였지만, 이 거리에서도 충분히 회복이 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언가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있었기에.

더불어.

'남은 기회는......없겠어.'

데미지가 없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게임과 달리 실제가 된 지금은 통증은 고스란히 내가 감내해야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체력이 조금 빠진 기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워낙 큰 공격을 한 번 버티다 보니, 피코의 체력이 바닥난 것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그간 함께 지낸 시간이 길어진 덕분일까.

이전에는 전혀 감지할 수 없던 감각들이 차츰 깨어나는 듯 했다.

피코의 체력을 희생양 삼아.

나는 레데이아의 패턴을 완전히 꿰뚫었다.

이제는 미래를 아는 것과 거의 다름이 없었다.

남은 것은......

'노히트 클리어한다고 생각하고, 미스 하나 없이 완벽하게 공략하기.'

사실 여기서부터가 진짜 어려운, 본 게임의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 * *

가르겐트 백작은, 내가 당하는 순간에도 나를 믿고 꽤나 잘 참아내었다.

이 레데이아의 공간 안에 들어오기 직전.

나는 모두에게 한 가지 부탁 아닌 부탁을 했었다.

레데이아의 고정 패턴을 끌어내기 위해서.

[내가 한 방 먹더라도 조금 기다려라.]

내 말에, 가르겐트 백작은 고개를 갸웃거렸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에 나는 확실히 못을 박아두었다.

[한 번은 맞아주고 시작할 것이라는 소리다.]

이렇게 얘기를 해두긴 했지만, 혹여나 발생할 돌발 상황이 걱정이긴 했었다.

갑자기 패턴 중간에 끼어들면, 패턴이 어그러지며 복잡한 상황이 나올 수도 있었기에.

그러나 다들 내 생각처럼 잘 참아 주었다.

중간에 앤드류가 잠깐 놀라 반응을 할 뻔했지만.

옆에 있던 디아즈가 그를 잡아주는 게 보였다.

사실 이 일은 나 같은 딜러가 나설 일은 아니었다.

방어력에 몰빵을 한 성기사들이 주로 최전방에서 어그로를 끌었지.

'그래도 지금은 나를 대신할 사람이 없으니까.'

나는 이제 때가 되었다는 눈빛으로 가르겐트 백작에게 신호를 주었고.

가르겐트 백작은 순식간에 맹수와 같은 모습으로 돌변하며.

"공격 개시!"

전투의 서막을 알렸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궁수가, 오로지 단 한 명.

레데이아에게 화살을 쏘아 내었다.

피융! 피융! 슝! 슈우우욱!

나의 귓가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스쳤다.

그것만으로도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기분이었다.

그 화살들과 함께 나 또한 발을 굴렀다.

화살과 나란히 달리며, 나는 레데이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자! 패턴을 보여라. 패턴을 보자, 어서......!'

그녀의 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온 신경을 집중시켜야 했기에.

마침내.

레데이아의 팔이 교차되었다가, 좌우로 넓게 뻗쳐졌다.

내가 아는 모션이었다.

'됐다!'

우로보로스의 방패.

지금 레데이아가 펼친 마법의 이름이었다.

차원의 문을 열어, 자신에게 날아온 공격을 모조리 되돌려 날리는 마법이었다.

정확히 내가 노렸던 그 패턴이 튀어나온 것이다.

저 마법 역시 일대일 상황에서는 굉장히 버거운 패턴이었겠지만......

'레이드 상황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나를 노리는 게 아니라, 저 화살들에 대비하기 위한 기술이었다.

그말은 곧, 내 움직임은 놓친다는 뜻이었고.

실제로 원작에서도 레데이아를 레이드로 공략한다면, 똑같은 상황이 일어났다.

원거리 공격에 먼저 반응을 한 레데이아가 우로보로스의 방패를 펼치고.

암살자나 용병과 같은 근거리 딜러가 후방으로 돌아들어 가 첫 번째 공격을 시도한다.

'게임에서는 아군 피격 판정이 없어서, 그냥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돌면 되지만......'

지금은 그렇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바로 아군의 화살을 맞을 테니까.

해서 나는 바닥을 강하게 밀어서.

타앗!

공중으로 튀어 올라, 백플립으로 레데이아의 머리를 뛰어넘어.

터억.

그녀의 뒤를 잡았다.

그러는 동안 아군의 화살은, 레데이아가 만든 우로보로스의 방패를 통해 다시 되돌아 날아갔다.

"방패 들어!"

가르겐트 백작은 미리 해두었던 내 조언에 따라 활을 쏘아내자마자 방패를 준비시켰다.

척! 투두두두둥!

자신의 방패 위로, 자신들이 쏜 화살이 날아오는 기이한 현상을 눈앞에서 겪는 기사들의 얼굴은 꽤나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그나마 내가 언질을 해둔 덕분에 진영은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었지만.

'진짜 골치 아픈 마법은 패턴을 그나마 제한시켜서 나오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아마 레데이아가 쓸 수 있는 최악의 패턴이 나온다면, 저들은 금세 정신줄을 놓을 게 뻔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 저들의 역할이 끝났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진짜 일대일의 상황과 다름없었다.

그에 나는, 차근차근 레데이아를 공략해 나갔다.

'어떻게든 뒤는 잡았으니까!'

타다닷!

나는 힘껏 달려, 거리를 좁혔다.

검이 닿을 거리까지.

물론 여기서도 레데이아를 죽일 수는 없을 터였다.

패턴대로라면 이걸 막아낼 테니까.

'그래서 여긴 두 명이 뒤를 잡아야 하는데......'

나는 나 혼자서 어떻게든 해결을 볼 작정이었다.

다만 혹시나 어쩌면 막아내지 못하고 한 방에 끝낼 수 있지 않을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전력을 다해 레데이아의 목을 그었다.

샤악!

하지만 애석하게도, 슬픈 예감은 빗나가질 않았다.

레데이아는 마녀스러운 그 요망한 마법을 또다시 펼쳐 나를 묶었다.

'그림자 묶기!''

그녀의 손은 여전히 우로보로스의 방패를 펼치고 있었지만, 소름 돋게도 그림자가 따로 움직여 내 그림자를 붙잡았다.

이걸 실제로 당해보니 진짜 마녀와 싸우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그림자를 붙잡힌다는 건, 실제로 겪기엔 굉장히 꺼림칙한 기분이었으니까.

이래서 두 명이 뒤로 뛰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남은 하나가 공격을 해서 이걸 풀어줘야 했으니.

그럼에도 나는 일말의 당황도 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 내게는 아직 검은 천둥의 반지가 남아 있었으니까.

파직! 파지지직!

왼팔에 스파크가 순간 튀었고.

쩌정!

* * *

"으윽!"

레데이아는 처음으로 데미지를 입었다.

일격에 목숨을 잃을 정도의 공격은 아니었다고는 하나, 아마 섬뜩했을 것이었다.

'100년 전, 마법사에게 당한 것도 뇌전 계열 마법이었으니까.'

그때의 기억이 슬금슬금 피어올랐으리라.

일부러 이걸 골라서 먹여준 것이었다.

뭐, 이거 말고는 얼어붙은 채 쓸 수 있는 원거리 공격 수단도 없긴 하지만......

어쨌든.

효과는 확실한듯했다.

"히, 히이익......!"

레데이아가 주춤주춤 물러서며, 차원 도피 마법을 시전하는 걸 보니.

그런데 솔직히, 내 앞에서 차원 도피 마법을 쓴다는 것은......자결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왜나하면 차원 도피 마법은 딱 풀리는 장소가 정해져 있었으니까.

'처음 발동한 곳에서 북동쪽으로 15보.'

차원 도피 마법은, 사용 시간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육체에 영혼이 온전히 들어 있는 상태로 다른 차원에서 오래 있다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되니 말이다.

해서 기껏해야 이 근방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데......이것 역시 랜덤이 아니라 패턴이 있었다.

나는 한발 먼저 움직여 레데이아가 튀어나올 장소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거의 도착할 때쯤.

스윽!

레데이아가 차원을 넘어 다시 나타났다.

눈을 희번덕 거리며 달려들고 있는 내 앞에 말이다.

"허, 허억!"

왼팔에는 뇌전을 두르고, 오른팔의 검을 젖히며 나는 쏘아졌다.

당황한 레데이아가 바닥의 돌을 일으켜 방패를 세웠다.

'응, 그럴 줄 알았어.'

나는 가볍게 오른손의 검을 휘둘렀고.

서걱!

그것을 베었다.

잘려진 방벽 너머에서 흔들리는 레데이아의 눈동자가 보였다.

치직......파지지직!

다시 한 번 전력으로 전기 찜질을 해주고.

"으그그극!"

레데이아의 텅 빈 눈 안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신체 내부 장기의 수분을 통해 퍼지는 자극이 쩌릿할 터였다.

'그래도 좀 버티네.'

놀랍게도 아직 죽지 않은 레데이아는, 내가 도착하기 직전에 다시 차원의 문으로 도망을 쳤다.

'어디 보자......다음은 저기였던가?'

플레이 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바로 어제 일처럼 공략들이 떠올랐다.

그 때문일까.

굉장히 흥이 올랐다.

공략대로 착착 진행되는 그 쾌감이 가슴을 간질였다.

나는 이번에도 레데이아보다 먼저 그녀가 가려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다른 차원에서 되돌아온 레데이아는 경악을 했다.

분명 차원을 넘었는데도, 정확히 정면으로 다가오는 나를 보먀.

"또......또! 어, 어떻게 내 움직임을 다 아는 거냐고! 이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인데에에에!"

일이 마음대로 안 풀리자, 어떤 만화 속 단비 마냥 짜증을 부렸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나는 걔 좀 별로였는데.

"시끄러워!"

이번에는 아예 내가 뭔가 모션을 취하기도 전에 다시 도망을 쳤다.

"젠자아아아앙!"

슈욱!

저 짓거리도, 이제 고작해야 한 번이었다.

그리고 그게 실패하면......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지!'

실제로 이걸 보게 될 날이 올 줄이야.

나는 그 이스터 에그스러운 숨겨진 데드 신으로 천천히 레데이아를 몰아넣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예 내가 먼저 다른 차원으로 쑤셔 넣어 줄 생각이었다.

재차 레데이아가 문을 열고 나타났고.

새로 나타난 자리엔 벌써 내가 도착한 채였다.

"허억?"

나는 친절히 발바닥으로 레데이아를 차원의 문 안쪽으로 밀어 찼다.

어차피 들어갈 건데 뭐.

"으, 으아악! 자, 잠깐! 또 들어갔다간......!"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다른 차원에 한 발을 들인 레데이아.

그녀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끝이군.'

다른 이들은 이해하지 못했지만......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레데이아가 차원의 문에 발을 들이는 그 순간.

휘리릭! 척!

새까만 손 하나가 그녀의 발목을 휘감았다.

아기 손만 한 그것은, 그림자보다 까맣고, 또 엄청나게 얇고 긴 팔이 달려 있었다.

그것이 팽팽하게 당겨지는가 싶더니, 레데이아를 잡아당겼다.

콰당!

발목이 붙들린 레데이아는 턱을 바닥에 찧으며 쓰러졌다.

하나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휘릭! 휘리릭! 휘리릭! 척, 처척!

고작 몇 초 사이에 수십 개의 팔이 더 튀어나와.

레데이아의 머리, 어깨, 무릎, 발을 전부 휘감은 것이다.

"아, 안 돼.....!"

레데이아는 끌려가는 것에 격렬히 저항을 했다.

손톱을 세워 바닥을 부여잡으며 말이다.

지직! 지직!

"이, 이럴 순 없어......! 사, 살려 줘! 제발, 제발!"

나는 입꼬리를 올린 채.

바닥을 붙들고 있는 그녀의 손을 살포시 밟으며 쭈그려 앉았다.

꾸우욱!

"다른 차원에 무단 침입을 막 함부로 하면 안 되지. 안 그래?"

"잠깐! 그, 그러지 마! 멈추라고! 이 개 같은 자식아! 당장 네놈의 눈알을 뽑아 갈아 마셔버려 줄 테......!"

"해보시던가."

콰득!

나는 그녀의 손가락을 밟아 부러뜨렸고.

손에 힘이 빠진 레데이아는 검은 손들에 의해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엄청난 속도로, 다른 차원 안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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