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따끔하네
"내 장막이......이런 일이 있을 수는 없는 것인데......!"
차원을 가르는 마녀, 레데이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그에 코웃음을 쳤다.
"그건 네 생각이고."
그와 동시에 황금의 창을 소환해, 몰렌 백작을 겨냥하고는 힘껏 던졌다.
슈우우웅!
섬뜩한 소리와 함께 공기를 가르는 황금의 창.
물리적으로는 피하기 힘든 가까운 거리였기에, 몰렌 백작은 검은 박쥐 떼로 변했다.
후웅.
황금의 창이 그대로 박쥐 떼를 지나쳐 날아갔다.
박쥐 몇 마리만을 소멸시킨 채.
그 모습을 본 앤드류가 소리쳤다.
"놈에게는 물리 공격이 안 통해요! 뭔가 다른 방법을......"
"그것도 네 생각이고."
나는 앤드류의 그 말에 대답을 했다.
"아니. 장난할 때가 아니라까요? 진짜로 안 통한다고요!"
앤드류는 내 말이 단순히 농담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농담을 즐기는 타입은 아니었다.
대답 대신 턱짓으로 앤드류의 시선을 몰렌 백작에게 돌렸다.
몰렌 백작은 박쥐 떼에서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채였다.
그런데.
치이이익......!
몰렌 백작의 복부 언저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그걸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한 앤드류의 눈동자가 떨렸다.
"저거......어떻게 한 거......"
나와 몰렌 백작을 번갈아 보면서 말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고위 뱀파이어는 만나 본 적이 없는 건가?'
그러면 앤드류의 고전이 이해가 되는 바였다.
사실 처음 내 생각대로, 몰렌 백작 정도라면 앤드류가 충분히 해볼 만한 상대였다.
상황을 보니 레데이아가 끼어든 것 같지도 않고.
그런데도 이 정도로 발리고 있었다는 건......
경험의 부족이라 할 수 있었다.
'고인물의 팁을 살짝 뿌려줘야겠네.'
앤드류의 경험치를 간과한, 일말의 미안함도 있었기에.
나는 몰렌 백작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입을 열었다.
"앤드류. 놈들이 박쥐로 변했다고, 포기를 하고 공격을 멈추지 마라. 박쥐들을 베어 버리라는 말이다. 박쥐로 변하면 공격이 불가능한 게 아니라 단지 공격이 조금 힘들어지는 것뿐이다. 박쥐 상태에서는 공격이 무효화 되는 것이 아니다."
"......!"
나의 힌트를 듣자, 앤드류의 눈에 다시 생기가 돌아왔다.
반면 정곡을 찔렸는지, 몰렌 백작의 얼굴에는 심란함이 서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나의 말을 이었다.
"네 폭염의 권능이라면, 보통의 기사들보다 한 방 한 방 훨씬 큰 데미지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침착함을 유지하고 천천히 맞서라."
그리고 앤드류는 다시 검을 지팡이 삼아 일어섰다.
"후우......포기하려 했는데......"
그는 검을 귀 옆으로 바짝 세웠다.
앤드류가 즐겨 취하는 기본자세였다.
상실했던 전의의 불씨가, 재차 타오르기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역시 로한 경은......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겠네요!"
앤드류의 기세가 되살아난 게 불편했던지, 몰렌 백작은 나를 향해 그 붉은 눈을 살벌하게 떴다.
"이미 승패는 크게 기울었다. 지금 와서 네놈 하나 늘어난 것 가지고 분위기가 바뀔 성 싶으냐?"
"아. 그럴 줄 알고 더 데려왔다."
나는 다시금 검을 휘둘렀고.
사악! 삭!
디아즈와 가르겐트 백작 그리고 제프론 이단 심문관이 차례로 차원의 장막을 넘어들어왔다.
원정대 어셈블이었다.
* * *
가르겐트 백작은 나의 옆으로 서며 인상을 찌푸렸다.
"몰렌 백작. 꼴이 그게 뭔가?"
"......재상."
"내 자네를 얼마나 믿었는데 이리 보답을 해?"
"나를 믿으셨소? 재상이? 나는 그리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언제나 내게 돌아온 것은 책망뿐이었지."
"기대가 있었기에 책망도 있었던 거라 여기진 않았나?"
"......이제 와서 내 마음이라도 돌려보겠다는 것이오? 늦었소!"
몰렌 백작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었다.
"늦었소! 이미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으니! 당신도, 이 자리에 있는 모두! 살아 돌아가진 못할 것이외다."
"정녕......"
쓸데없이 말이 길어지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한 발 앞으로 나아가 둘의 대화를 끊어버렸다.
"입으로 싸울 생각인가?"
"아니. 이 내가 너희 모두를 저승길로 보내주마."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그건 어려울 것 같고. 제프론 이단 심문관."
"예. 로한 경."
"앤드류 좀 거들어줬으면 좋겠군."
"알겠습니다."
제프론을 앤드류와 페어링 시키고.
"디아즈."
"예! 로한 님!"
"목표가 확실하군."
"그렇습니다."
디아즈의 시선은 오로지 솔레온 백작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모르돈의 뒤에서 레아노아의 죽음을 이끌어낸 흑막인, 놈에게.
"혼자 문제없겠지?"
"물론입니다. 대응법, 방금 들었으니 말입니다."
"마무리 지어라. 네 복수를."
"명을 받듭니다!"
나는 디아즈에게 솔레온 백작을 맡기기로 했다.
"가소롭구나. 혼자서 나를?"
디아즈는 살짝 긴장한 채로 대답을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 그녀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해볼 만했다.
최근 내 특훈의 성과 덕분에, 디아즈 본인은 깨닫지 못했지만, 그녀는 이미 앤드류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앤드류야 파훼법을 몰라 당한 것 같지만.
지금의 디아즈는, 내가 알려 준 덕분에 고위 뱀파이어 파훼법을 알고 있으니까.
'가소로운 건 오히려 네 쪽이 될 테지.'
덕분에 할 일이 애매하게 없어진 가르겐트 백작이 내 옆으로 섰다.
"대단하구만. 뱀파이어에 대해서 어찌 그리 잘 알고 있나? 이단 심문관이라 그런가? 이거 앞으로 교단에 대한 지원도 좀 늘려야겠어."
사실 유저들 사이에서는 고위 뱀파이어 상대법 정도는 거의 그냥 기본 상식이었는데......
여기선 나만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겨우 이 정도로 놀라면......
나중에 진짜 고인물의 힘이 나올 때쯤엔 다들 기절하지 않을까 싶었다.
* * *
대충 쩌리들을 아군들에게 맡긴 나는.
이제 본격적으로 레데이아와 정면으로 마주 서게 되었다.
고위 뱀파이어도 물론 결코 만만한 놈이라고는 할 수 없긴 했다.
초반부에 처음 고위 뱀파이어가 나타날 때는, 그만큼 지옥 같은 순간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차원을 가르는 마녀, 레데이아에 비한다면 그들은 그저 중간 보스급에 불과했다.
'공략법은 알고 있지만......겁나긴 하네.'
레데이아는 지금 보이는 모습대로, 앞을 볼 수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다른 감각이 더 민감하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그 때문에 혹여나 내 공포심이 들켜, 그녀가 마음껏 활개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레데이아는 지금의 내 수준으로는 상대가 거의 불가능한 존재였다.
내가 택한 공략법은, 합동 공격으로 레데이아가 다른 패턴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뿐이었다.
그런 공략을 선택해야 할 만큼, 모든 마법을 편안하게 다 쓸 수 있는 상태의 레데이아는 강력한 존재였다.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맡기지 못한 것이고.
앤드류와 디아즈는, 명백히 아직 나보다 아래였으니.
나 말고는 이 자리에서 저 괴물에 맞설 수 있는 이가 없었다.
'애초에 설정부터 차원 같은 개념을 쓰는 괴물이니까.'
그것만 들어도 벌써 가뿐하게 보통은 넘기지 않는가.
원작에서 보던 것과 똑같은 패턴을 유도해내지 않으면......
어쩌면 패배하는 건 내 쪽이 될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 누구를 만나도 딱히 겁을 낸 적이 없었는데.
이번 만큼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후우......!'
나는 최대한 공포감을 내면 깊숙한 곳으로 삼켰다.
혹여나 호흡이 떨릴까 까지 신경 쓰면서 말이다.
'티 안 났겠지?'
나 역시 온 기감을 극도로 키워 레데이아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엥?'
오히려 저쪽이 미세하게 떨고 있는 게 내 눈에 들어왔다.
'왜?'
내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가득 찼다.
* * *
"네, 네놈......! 서, 설마 백 년 전의......!"
레데이아의 손끝이 덜덜덜 거리고 있었다.
이거, 잠깐만?......
제대로 착각하고 있는 건가?
'내가 마법사라고?'
그래, 눈이 없으니 내 얼굴을 보지는 못했을 거고.
마법사의 얼굴도 볼 수 없었겠지.
디아즈와 앤드류 또한 내 생각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레데이아의 발언에, 씨익 웃었다.
특히 여태 얻어맞고 있었던 앤드류는, 맺힌 게 남아 있었던 듯 한 마디 내뱉었다.
"눈치채는 게 늦었어! 아줌마!"
"......!"
앤드류의 그 발언이, 오해의 쐐기를 박아주었다.
"그랬군. 감히 누구도 내 장막을 가를 수는 없는 것인데......이상하다 싶더라니!"
알아서 쫄아 주는데, 내가 굳이 '그건 내가 아니오.' 라고 하면서 부정을 할 필요는 없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용케도 다시 빠져나왔구나......"
"후후. 설마 아직도 살아 있었을 줄이야. 분명 일전에도 비슷한 것을 느꼈다. 네놈, 인간이 맞긴 한 건가?"
"대답해 줄 거라 생각하고 물은 건 아니겠지? 우리가 서로 살아온 이야기나 하면서 지낼 사이는 아닌 걸로 기억하는데."
왜냐하면 나도 설명해 줄 게 없거든.
마법사는 워낙 이상한 캐릭터라서.
대충 넘긴 말에, 레데이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죽인 다음 샅샅이 해체 시켜보면......조금은 알 수 있겠지?"
살벌한 소리를 다 하고 있네.
하나 아쉽게도 그럴 일은 없을 터였다.
나도 전력으로 발버둥칠 생각이었으니까!
나는 다시 한 번 가르겐트 백작에게 했던 말을 상기시켰다.
"궁병이 중요하다."
"물론. 기억하고 있다네."
가르겐트 백작을 다른 두 뱀파이어에게 붙이지 않은 이유.
그저 그가 노병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에게 맡길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궁병 부대의 통솔.
잠깐 봤었지만, 그의 지휘 능력은 탁월한 편이었다.
충분히 내 뒤를 맡겨도 될 정도로 말이다.
가르겐트 백작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한 발 나아갔다.
물량 압박을 통한 패턴 제한.
더불어 원작에서는 불가능했던......거짓말을 이용한 정신 공격까지!
'충분히 승산은 있다!'
나는 때가 되었다는 눈빛으로 가르겐트 백작에게 신호를 주었다.
가르겐트 백작은 팔을 들어 올렸고.
그에 궁병들이 일제히 활을 걸고 끝까지 당겼다.
꾸우우욱!
뒤로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의 묵직한 소음이 옅게 들렸다.
'자. 어쩔 테냐? 마녀.'
나의 물음에 대답이라도 하듯.
레데이아는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끝에서 작은 원형의 차원이 형성되었다.
그녀는 마치 그것을 일그러뜨리듯 양손으로 압축을 하더니.
쩌저적, 쩌적!......쨍그랑!
엄청나게 작게 조각을 내었다.
신기하게도 부서진 차원의 조각은, 하나하나가 딱 총알 정도 사이즈에 뾰족한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다시 양손을 쫘악 펼치자.
파바바바밧! 파파팟!
셀 수도 없이 엄청난 수의 날카로운 조각이, 오로지 나만을 향해 날아들었다.
내가 가장 앞에 서 있었던 까닭이었다.
퓩! 퓨퓩! 퓨퓨퓩!
그것은 다른 차원에서 온 물질이었기에, 이곳의 물리 법칙을 벗어나.
그 어떤 암기보다도 빠르게, 거의 총알에 필적하는 속도로 날아와 내 온몸에 박혔다.
그 어떤 기사도 이것을 피하지는 못했다.
총알의 속도로 날아오는데 인간이 어찌 반응을 하겠나.
원작에서도 피할 수 있는 논타게팅이 아니라, 그냥 무조건 맞아야 하는 타게팅 마법이었고.
그런 확정 공격이, 심지어 웬만한 탱커도 반피 정도는 날려버리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니 고렙들도 버거워했지.'
나를 벌집으로 만들고 나자, 레데이아의 입가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하나 진짜 웃어야 할 쪽은 오히려 내 쪽이었다.
'걸려들었다! 패턴!'
가장 앞에 선 적에게 부서진 차원의 조각 공격이 성공한다.
그리고 그걸로 상대를 죽이지 못하면......다음 패턴이 고정되었다.
이것은, 수십 가지의 레데이아 공격 패턴 중 한 줄기가 선택되었음을 확인시켜주는, 아주 고마운 일격이었다.
그것도 딱 내가 바라던 것으로!
화르르륵!
꿰뚫린 내 몸은, 불사조의 힘에 의해 금세 회복이 되었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검을 들었다.
"따끔하네."
"......! 그걸 회복했다고?......말도 안 되는......!"
피코의, 불사조의 힘을 가진 나만이 쓸 수 있는 전략이라 할 수 있었다.
나는 곧장 다음 동작을 이었다.
이걸로 첫 번째 패턴은 결정되었다만, 아직도 몇 가지 줄기는 남아 있었다.
그걸 완벽하게 고정시키기 위해.
벌써 완전히 멀쩡해진 몸으로, 그녀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 나갔다.
타탓!
살짝 당황한듯한 레데이아는 다급히 다음 마법을 준비하였다.
빈 손을 모았다가 쫘악 펼치니, 붉은 빛의 채찍이 생겨 났다.
'좋아. 그 패턴이다 이거지?'
레데이아는 채찍을 크게 휘두르며 내게 날렸고.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반 박자 먼저 안전한 경로를 타고 뛰었다.
짜악! 짜악!
채찍이 살벌한 소리를 내며 날아들었지만.
나는 마치 미래를 본 사람처럼, 그 모든 공격을 피했다.
그에 레데이아의 얼굴이 점차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이게 왜 맞지를 않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나는.
레데이아의 면상을 정확히 노려, 거신병의 왼팔에 잔뜩 힘을 싣고......!
꾸우우욱!
움켜 쥔 주먹을 뻗었다.
레데이아의 입에서는, 한숨 섞인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젠장할?......"
빠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