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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58화 (58/194)

58화. 이번에는 목숨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네

휘익!

검을 휘두르는 순간, 베었다는 감각도 없이 잘려나가는 뱀파이어의 머리들.

그런 내 좌우로는 각자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검무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촤아악!

디아즈의 검은 진득하고 깊은 무게감이 실려있는 편이었다.

그 묵직함이, 당하는 이 이외의 적에게도 공포심을 심어 줄 정도였다.

퍼퍼펑! 퍼펑!

앤드류의 검은 굉장히 화려하면서도, 박력이 넘쳤다.

거기에 폭염의 권능까지 더해지니.

아주 어그로 끌기는 딱 좋은 스타일이었다.

어쩜 그리 다들 각자의 성격과 비슷한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다만 한 명은 후에 압도적 네임드가 될 인물이고, 또 하나는 최연소 일곱 기사단의 직위를 가진 기사이다 보니.

"크르륵......!"

"케엑!"

"캬아아아오!"

하급 뱀파이어들은 큰 방해가 되지 못했다.

더불어 나도 저 둘에게 질 순 없었다.

정면으로 뱀파이어 하나가 이빨을 들이밀며 달려들었다.

나는 몸을 비틀며 아래에서 위로 검을 들었다.

서걱!

다시 아래로 휘두르며.

촤자자작!

한 번에 세 놈을 보내고.

또 날아드는 놈들을 향해 거신병의 주먹을 선사하였다.

빠각.

이제는 나도 이 정도는 가뿐하다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대로 쭉쭉 투석기가 있는 곳을 향해 진격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표 지점에 도착한 우리는.

"디아즈! 오른쪽! 앤드류는 왼쪽!"

"예! 로한 님."

"문제없음요!"

투석기들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디아즈는 달려서 투석기를 타고 올라가 위에서부터 조각내었고.

촤자자자작!

앤드류는 아래에서부터 폭염을 이용해 부수며 태웠다.

펑! 퍼펑! 화르르르륵......!

나는 간편하게 검은 천둥의 반지를 이용해서.

쩌저정! 우르르릉......콰광!

한 번에 세 기의 투석기를 재로 변화시켰다.

'이쯤 되면 인간 공성 병기네.'

앤드류가 내 쪽을 돌아보며 혀를 내둘렀다.

"번개 진짜 저거 사기네."

어느 정도 쓸려나가며 우리 쪽 무력을 체감한 탓일까.

마음껏 투석기를 박살 내고 있음에도, 뱀파이어들은 소리만 지를 뿐 쉽사리 접근하지 못했다.

"그런데 로한 님."

"무슨 일이지?"

"그 레데이아라는 마녀 말입니다. 인간을 뱀파이어로 만드는 능력도 있는 겁니까?"

"아니. 내가 아는 한, 그런 능력은 없었다. 이 뱀파이어들은 다른 이유 때문에 생겨난 것 같군."

"......신경 써야 할 적이 더 있다는 의미로군요."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데이아까지는 알아냈지만......누가 더 이 상황에 얽혀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일단은 해야 할 일만 할 뿐.

착착 일이 진행되어가던 그때.

어느 순간, 공기가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로한 님......"

"뱀파이어 놈들, 움직임이 이상한데?"

그것을 느낀 것은 나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디아즈와 앤드류도 급격하게 긴장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3의 눈 역시 위험을 벌써 감지하고 있었다.

나는 불길함이 느껴지는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쐐애애애액!

나와 디아즈, 앤드류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몸을 뒤로 날렸고.

파파팍!

우리가 서 있던 자리에는 바닥에는 피로 만들어진 거대한 가시가 박혀 있었다.

* * *

발이 공중에 살짝 뜬 채.

스스스슥.

팔짱을 끼고는 아래로 우리를 내리깔아보며, 모습을 드러낸 비쩍 마른 모습의 창백한 사내.

그가 나타나자 하급 뱀파이어들이 좌우로 갈라서며 길을 터주었다.

그리고는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하였다.

동시에 최전방에 선 놈들은, 그 사내를 지키려는 듯 우리에게 이빨을 들이밀었다.

딱 봐도 이곳의 모든 뱀파이어들을 통솔하는 고위 뱀파이어임이 분명했다.

상황을 파악하던 앤드류가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오. 드디어 이 몸이 제대로 활약을 할 수 있게, 좀 센 놈이 나왔나 본데?"

앤드류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사내는 매우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쥐새끼 같은 놈들. 귀찮게 하는군."

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앤드류가 달려나갔다.

"저놈은 내가 찍었습니다!"

타다닷!

하급 뱀파이어들을 뚫고 순식간에 창백한 사내의 코앞까지 도약을 한 앤드류.

내가 보기에도 피하기 힘들 정도로 간결하면서도 깔끔한 검격이 놈의 목을 향해 바로 휘둘러졌다.

파앗.

하나 아쉽게도 앤드류의 검은 허공을 갈랐다.

놈이 쓰러지기 직전까지 몸을 뒤로 넘긴 덕분이었다.

그러고는 여전히 공중에 뜬 채, 쓰러지지 않고 순식간에 다시 앤드류와의 거리를 벌리기까지 해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모두들 알 수 있었다.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그 모습을 본 앤드류는, 목을 가볍게 돌려 근육을 풀더니.

"오오? 꽤 하는데?"

칭찬을 날렸다.

둘의 움직임을 확인한 나는, 앤드류에게 물었다.

"혼자서 상대 가능하겠나?"

내가 보기에는 충분히 가능할 터였다.

"물론이죠! 저놈은 내가 맡을 테니까, 둘은 남은 투석기들 전부 부탁할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나의 대답을 들은 앤드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발을 굴렀다.

* * *

후웅! 휙! 부우웅! 샤락!

앤드류는 계속해서 고위 뱀파이어를 쫓으며 공격을 가했다.

그러나 공격은 계속해서 아슬아슬하게 실패했다.

'생각보단 쉽지 않네......!'

처음에는 조금 덤벼오는 것 같더니.

몇 번의 공방이 끝나니, 작정을 하고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상황이 그리 되니 또 막상 쉽사리 죽일 수가 없었다.

덕분에 이렇게 아직도 추격전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자신만만하게 로한의 제안을 받아들였건만.

이래서야 체면이 서질 않을 것 같았다.

사실 앤드류는 옆에서 로한의 경탄스러울 수준의 무위를 직접 보며, 살짝 기가 죽은 상태였다.

그래서 오히려 호기롭게 로한의 말을 따른 것이고.

그에게 있어 로한은, 처음으로 지금껏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벽을 만난 기분을 느끼게 해준 사내였다.

그는 천애 고아로 교단의 성직자들의 손에 키워진 아이였다.

그래서 항상 조급했던 것 같았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보더라도 말이다.

'기댈 곳이 없었으니까......'

언제 또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세상에 혼자 남겨질 수도 있다는 공포감.

그 감정들이 앤드류 자신을 재촉해왔다.

검술을 키우면, 인정받을 수 있다.

검술이 특출나면, 버림받지 않을 수 있다.

압도적인 검술을 가진다면, 자신이 있어도 되는 곳이 늘어난다......

때문에 언제나 최고여야만 했다.

물론 세상에서 제일 강해지는 건 쉽지 않았다.

하인트 주교가 있었고, 크라우스가 있었고, 몬테드가 있었다.

다만......건방져 보일진 모르겠지만, 그들은 언젠가 먼 미래에는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 여겨지는 자들이었다.

나도 조금만 더 크면.

아직은 어리니까.

그런데 로한은 조금 달랐다.

'닿을 방법이......보이질 않아.'

그게 자신이 로한에게 매달린 이유였던 것 같았다.

혼자서는 도저히 방법이 보이지 않으니.

대련이라도 해보면 뭔가 실마리를 찾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해서 대련을 해보겠다고 여기까지 쫓아왔건만......

솔직히 결론적으로는, 해 볼 필요도 없다고 느껴졌다.

그 역시 어리기는 해도 일곱 기사단의 일원이었다.

상대와 자신의 차이.

그 격차가 얼마나 큰지 정도는 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던 까닭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 고위 뱀파이어에게 집착을 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자신의 실력을 납득 시키기 위해서.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서.

스스로가 그렇게 약하지는 않다는 걸, 스스로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압!"

그리고 마침내!

'잡았다!'

이건 확실한 체크메이트였다.

이제 뱀파이어 놈의 목을 베어버리고 다시 로한과 디아즈에게 당당히 합류......

후웅!

하려는 생각을 하며 휘두른 최후의 일격.

그러나 결과는 약간 허무했다.

허공을 가르는 소리만 들린 것이다.

분명 두 동강이 났어야 할 순간에, 고위 뱀파이어는 순간 온몸을 여러 마리의 검은 박쥐로 변형시켰다가.

푸드득, 푸드득!

저 멀찍한 곳에 다시 한 데로 뭉쳐 원래의 형상으로 돌아왔다.

앤드류가 벤 것은 고작해야 박쥐 몇 마리가 전부였다.

앤드류는 이를 악물었다.

비록 공격에는 실패했지만......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슬슬 고위 뱀파이어 놈의 다음 움직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좋아. 이해했어!'

그는 자각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천재적인 재능의 영역이었다.

'박쥐로 변하는 것도 연속으로는 못하는 것 같은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실제로 박쥐 상태에서 돌아온 직후에는, 검에 베이더라도 또 변하지는 않았다.

'변신하지 못하는 시간 안에 엄청나게 많이 베어 버리자!'

앤드류는 검을 연격으로 휘두르며.

하나, 하나 뱀파이어의 도주 경로를 조여 나갔다.

마치 사자 무리가 사슴의 퇴로를 점차 좁혀가듯이.

"칫! 이 와중에도 더 성장을 하다니......!"

뱀파이어는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날렸다.

아무래도 이 방법이 정답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추격전이 이어지던 와중.

'조금만 더......! 음?'

앤드류는 문뜩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

무언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듯한......

순간 자신이 쫓고 있던 뱀파이어 놈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놈은 쫓기고 있음에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눈에는 일말의 두려움도 없었다.

오로지 여유로움 뿐.

지금까지 미간을 잔뜩 찌푸리던 놈이 왜?......

앤드류의 눈이 부릅떠졌다.

'지원군이 더 있었구나!'

놈은 혼자가 아닌 모양이었다.

혼자라면 자신이 이겼겠지만......숫자가 늘어난다면 골치가 아파질 게 뻔했다.

그걸 깨닫는 순간.

어둠 속에서 쇳소리 가득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이구나. 감히 내 성지가 될 곳에 계속해서 매캐한 냄새를 퍼트리던 놈 말이다. 끌끌끌......"

온몸에 소름이 돋는 목소리였다.

굉장히 거슬리며, 당장이라도 입을 틀어막아 버리고 싶은 그런 소리.

애초에 살아있는 존재의 목소리 같지도 않았던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이어서 드러난 모습은 더욱 끔찍하였다.

눈은 쥐가 파먹은 듯 패여 있었으며.

코 역시 삭아서는 해골처럼 뜯겨 있었고.

피부 역시 가뭄이 난 대지처럼 쩌억, 쩌억 금이 간 모습이었다.

"우웩! 더럽게 못생겼네."

앤드류는 평소 성격대로 할 말은 참지 않고 내뱉었다.

하나 쫄지 않은 척만 할 뿐.

속으로는 굉장히 불길한 감각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자가 그 차원을 가르는 마녀, 레데이아인가......못생긴 만큼 세게 생겼네......'

심지어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푸드드득!

저 뒤에서 박쥐 떼가 또 몰려오더니, 레데이아를 감싸고 몇 바퀴 돌다가.

그녀의 좌측에 모이기 시작하며 사람의 형상으로 변하였다.

머리를 깔끔하게 넘긴 중년 남성의 모습으로.

딱 뱀파이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고위 뱀파이어도 한 마리 더 있었어?'

새로이 나타난 놈이 입을 열었다.

"몰렌 백작. 아직도 끝내지 못했소?"

"생각보다는 검 좀 쓸 줄 아는 자이오. 혼자서는 반격도 쉽지 않더군."

"후후. 그럴만하오."

앤드류의 시선이, 새로운 뱀파이어에게로 향했다.

빙그레 웃으며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놈.

"앤드류 경......오랜만이오."

앤드류 역시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일곱 기사단이 된 이후 만난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솔레온......백작."

"오호. 기억하시는군요."

"그런데 내 기억에는, 그땐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요? 사람이길 포기하셨나 봐요?"

"굳이 종족에 얽매일 필요가 있겠습니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필요 없는 건 포기해야지요."

"원하는 건 얻으셨나요?"

"곧 잘 얻게 될 것 같으니......방해 마시고 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순간 그의 눈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거친 살기가 휘감겼다.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 역시 고위 뱀파이어가 되었다는 것을.

앤드류는 검이 쥐어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조금 전까지만 가지고 있던, 살아 돌아갈 생각은 싹 지운 채로 두 고위 뱀파이어를 올려다보았다.

"이거......이번에는 목숨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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