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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54화 (54/194)

54화. 이렇게 하면 된다

"으허어어엉! 삐약! 누가 이랬어! 삐약!"

치료를 끝마치고 깊은 잠에 빠진 디아즈를 본 피코는.

거의 대성통곡을 하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누가 보면 죽은 걸로 착각을 할 정도였다.

"허어엉! 허어엉! 삐약!"

결국 그에 디아즈가 깨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피코? 괜찮아. 그만 뚝."

"뚝. 흐어어엉! 삐약!"

아직 아기 새라 그런지, 디아즈의 품에 안겨 훌쩍이는 피코였다.

그래도 내가 보기엔 많이 회복이 된 상태였다.

포션을 쓰기 직전의 상태는 진짜 매우 나빴었으니까.

얼굴도 창백하고, 입술도 파랗게 변해 있었고.

지금은 조금 피곤해 보이는 느낌이 전부였다.

다만 아직 조금은 더 휴식이 필요한 상태이긴 했다.

"모르돈을 심문한 결과, 놈의 뒤에 솔레온 백작이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는 정황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놈은 몰렌 백작령으로 도주하였고."

"몰렌 백작령이라면......북부 아닙니까?"

"그렇다. 해서, 어제 국왕과 대면 면담을 진행한 결과. 내가 놈을 쫓는 추격대의 수장직을 맡게 되었다. 준비가 되는 대로 출발할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디아즈가, 상체를 일으켰다.

"그럼 저도......"

"너는 조금 더 회복을 하고 합류했으면 하는데."

"괜찮습니다. 지금 속도라면, 금방 퇴원도 가능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

"그리고! 솔레온 백작이 진짜 흑막이라면......저도 꼭 가고 싶습니다!"

"흠."

진심을 다해 의지를 보이는 그 모습을 보니, 나로서도 마음이 약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준비 기간이 조금은 있다. 그 시간 동안 경과를 지켜보고, 판단을 하지. 내가 직접 담당 의원에게 물을 것이다. 만일 전투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진다면......합류는 보류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전력을 다해 회복하겠습니다!"

"그래. 쉬도록."

"감사합니다! 로한 님!"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몰렌 백작령이라는 명확한 목적지가 정해진 원정대는.

착착 준비가 진행되어, 마침내 나의 뒤로 쫘악 도열을 한 상태였다.

재상과 국왕이 전력으로 지원을 하는 원정대는, 순식간에 완벽에 가까운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나의 오른쪽에는 디아즈 또한 말 위에 올라탄 채였다.

포션을 사용한 빠른 응급 처치와 왕실 의원들의 힘이 합쳐져 생각보다는 빠르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쉬게 놔두고 싶었지만......

[본인의 의지가 대단한 탓인지, 매우 빠른 속도로 회복을 했습니다. 당장은 조금 불편한 감이 있겠지만, 몰렌 백작령까지 가는 시간까지 포함한다면 충분히 완치가 된 상태일 겁니다.]

의원들도 인정을 할 정도였기에, 나는 디아즈를 합류시키기로 결정을 하였다.

그리고 왼쪽에는 칠흑 기사단의 기사단장인 빈센트가 늠름하게 상체를 세우고 서 있었다.

그는 옅은 미소가 걸린 얼굴로 가슴을 펴고 당당히.

제프론의 말에 지금껏 뭔가 탐탁지 않은 솔레온 백작의 명을 따르느라 불만이 많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게 해소가 되었으니, 이제는 진짜 기사답게 전투에만 집중을 하면 된다고 꽤나 들떠했었다 들었다.

'일전에도 함께 싸운 기억도 있으니, 더 친밀하게 느끼는 건가?'

어쨌든, 나 역시 빈센트 기사단장을 좋게 보고 있었던지라.

그와 함께하는 이번 원정이 나쁘지는 않았다.

나는 이 원정대의 사령관으로서, 빈센트 기사단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군. 출발."

나의 그 담백한 한 마디에.

빈센트 기사단장이 목청을 올렸다.

"전군! 진군하라!"

* * *

하루 종일 이동을 끝마치고.

칠흑 기사단은 능숙하게 야영지를 구축하였다.

나와 디아즈는 딱히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사령관이 직접 하는 것도 이상하기도 하고.

이미 빈센트 기사단장이 알아서 다 하겠다고 말을 해주었다.

해서 나와 디아즈는 적당히 주변을 순찰하며 지형과 위험 요소 정도를 체크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주변을 탐색하던 도중.

내 뒤를 쫓아오던 디아즈가, 무언가 할 말이 있는지 연신 우물쭈물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말을 하려다가 말고.

또 하려다가 말고.

결국 답답함을 느낀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군."

걸음을 멈추며 묻자.

디아즈는 조심스럽게 대답을 하였다.

"실은......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부탁?"

"예."

"말해보아라."

"저와......대련 한 번만 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느닷 없이 대련이라니.

어지간히 나랑 대련하고 싶은 사람이 많긴 많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그녀에게 다시 질문을 하였다.

"이유가 있나?"

"로한 님의 실력. 조금이나마 배우고 싶습니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었다.

나는 그저 능력빨로 버티는 사람에 불과했다.

진짜 '실력'을 가진 건 디아즈나 빈센트 기사단장 같은 사람들이었지.

나는 아니었다.

그런 내게 뭘 배울 수 있다는 말인가.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부상을 당한 상태라 걱정하는 점, 알고 있습니다.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가상으로 전투한다 생각 정도만 해주셔도 됩니다."

아니.

걱정되는 건 디아즈가 아니라 나였다.

미래의 그녀가 가진 힘을 알고 있었으니까.

'뭐 그래도. 전력도 아니고, 살살하는 것 정도는......'

실제로 지금의 상태에서는 아직 내가 조금 더 위라고 느껴지고는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도 궁금하기는 했다.

지금의 내가 어디까지 올라왔는지.

'검은 천둥이나 황금의 창 같은 건 빼고 말이지.'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짧게만 해보도록 하지."

누군가의 대련 신청에.

* * *

디아즈는 적극적으로 질문해왔다.

"가장 궁금한 건 모르돈과의 전투에서 보여주신 방법입니다."

"모르돈?"

"예. 쉼 없이 이어지던 연타 도중에, 그가 자신 있게 펼친 연격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하. 뭔지 알 것 같았다.

"상단 차기 이후 복부를 노리는 그 공격 말인가?"

"정확합니다. 저는 그 공격을 버티지 못했고, 결국 검상을 입었습니다."

그렇구나.

디아즈에게도 똑같은 공격을 했던 거였군.

그런데......그거 그냥 막은 건데?

디아즈는 내 속마음은 모른 채.

천천히 다리를 들어 올려, 모르돈이 한 공격을 그대로 카피해 내었다.

역시 재능이 차고 넘치는 디아즈다웠다.

"여기서......이렇게."

대신 공격은 아주아주 느렸다.

걸어서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이렇게 해 본 적은 없었기에, 나는 처음으로 내 스스로에 집중을 해보았다.

그러자.

놀라운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나......막 싸운 거 아니었네?'

지금까지는 반응하기 급급해서 알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세한 근육들의 반응, 뼈의 위치, 그리고 그 순간순간마다 해내야 할 적합한 동작들.

과거 내가 봐 왔던 격투기 선수의 움직임들이나, 이곳에서 본 기사들의 전투 방식 같은 것들이 한데 뭉쳐, 반응해야 할 방법들이 그림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여태까지는 거의 본능에 가깝게 움직였기에 알지 못했는데.

원래부터도 나는 이렇게 싸워 온 모양이었다.

다만 이걸 자각할 수 있게 된 건, 아마 제3의 눈과 불사조의 포션이 시너지를 일으킨 효과가 아닐까 싶었다.

감각이 더 민감해진 덕분에 말이다.

나는 디아즈가 보기 편하도록 천천히 팔꿈치를 움직여 가장 적당한 위치에 가져다 놓았다.

내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간단한 작업이었다.

한눈에 딱 보이니까.

그리고.

"차 보아라."

"......예?"

"적당히 힘을 주고 차도 된다."

"저, 정말입니까?"

"너무 세게 차면 네가 다칠 테니 적당히."

"아, 알겠습니다."

대답을 한 디아즈는, 그대로 내 가드 위로 공격을 가했다.

퍼억!

"으윽!"

오히려 비명이 나온 것은, 디아즈였다.

"어,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는 가볍게 대답을 했다.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한의 반격."

내 말에 디아즈가 멍하니 얼굴을 끄덕였다.

"이렇게 하면 된다."

"......예?......"

아무래도 제대로 이해가 안 된 모양이었다.

* * *

나는, 아무래도 내 전투 방식을 디아즈에게 그대로 주입하는 건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아내었다.

'굳이 내 기술을 가르칠 필요가 없지, 애초에.'

디아즈는 이미 디아즈만의 훌륭한 전투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아직' 모를 뿐.

내가 원작에서 봐왔던.

그러니까, 미래의 디아즈가 쓰는 전투 스킬을 지금 그녀에게 가르치면 되는 게 아닌가.

'어차피 디아즈 본인 건데 뭐.'

내가 쓸데없이 머리를 짜내지 않아도, 디아즈에게 가장 완벽하게 적용이 되는 전투법일 터였다.

그녀 스스로가 창안한 것이니까.

"내 움직임을 자꾸 따라 하려 하는군."

"예? 아......알고 계셨습니까? 실은, 로한 님을 조금이라도 따라가고 싶은 마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디아즈의 전투 방법을 떠올렸다.

"지금부터 머릿속의 내 움직임은 다 잊어라. 나를 따라 하지 말고, 네게 맞는 길을 찾을 필요가 있다."

"제게 맞는......길 말입니까?"

"그래. 개개인마다 신체 조건은 전부 다르다. 당연히 전투 방법도 달라야지. 직접 해보면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나는 다시금 모르돈이 펼쳤던 공격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디아즈가 지금껏 하던 대로 방어를 했다.

그 모습을 보며, 교정을 시작했다.

"거기서는 각도를 조금 더 아래로 막아라."

"아, 예! 로한 님!"

그리고 약간 힘을 실어주자.

터엉!

의외로 가볍게 막아내는 게 아닌가.

나도 솔직히 살짝 놀랄 정도였다.

고작 저 정도 차이로 이런 큰 변화가 생길 줄이야.

당연히 디아즈는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이럴......수가......"

그녀는 눈동자를 또르르 굴려 나를 쳐다보았다.

"제가......이런 능력이 있었던 겁니까?"

"이전부터 늘 말했지. 너는 재능이 있다고. 그래서 내가 널 데려온 거라고."

"......로한 님께서는, 정말 예상할 수 없는 경지의 시야를 가지고 계셨군요......"

너무 놀란 나머지, 표정에서 그녀의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어떻게 지켜본 것만으로 이렇게 찰떡같은 전투 방법을 만들어 줄 수 있느냐는 얼굴이네.'

물어보나 마나 절대 불가능하지.

어떻게 옆에서 슬쩍슬쩍 본 걸로 딱 맞는 전투 기술을 만들겠나.

'다 네가 만든 건데.'

다만 그렇게 말을 해봤자 믿지도 않을 테니.

나는 슬쩍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말을 이었다.

"좀 더 해보지."

"예!"

단 한 번 만에 성공을 맛보자, 기합이 잔뜩 들어간 디아즈였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몰렌 백작령으로 가는 길의 밤마다.

나의 특강 클래스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걸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생각보다 내 보는 눈이 꽤나 올라간 상태라는 거였다.

몇몇 부분은 원본의 디아즈보다 더 나은 길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왼쪽으로 피하려면 앞선 공격이 더 컸어야지!"

"아, 알겠습니다!"

막상 제삼자의 눈으로 전투를 지켜보니, 참으로 부족한 것이 많이 보였다.

물론 지금 디아즈가 천천히 움직이는 탓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내 눈에는 계속해서 아쉬운 점들이 들어왔다.

"타이밍을 잘 봐야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을 텐데! 벌써 잊었나?"

"아닙니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공격을 하려면 빠르고 확실하게!"

"옙! 시정하겠습니다!"

더불어 나 역시도 남을 가르치다 보니 스스로 부족한 점을 깨우치기도 하였다.

'나도 저랬던 것 같군. 앞으로는 신경을 좀 써야겠어.'

그렇게 우리 둘은, 각자의 깨달음을 얻으며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었다.

덕분에 시간은 금방 흘렀고......

"도착이군."

우리들의 시야에, 북방의 방어선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다리를 세워도 올라가기 힘들어 보일 정도의 성벽.

그 높은 성벽이 좌우로 길게 뻗어 있었다.

몰렌 백작령의 성벽이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런데......

몰렌 백작령에 대한 내 첫인상은, 도착도 하기 전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 매우 안 좋아졌다.

사건의 시작은 성문으로 다가가던 도중에 벌어졌다.

"들어간다."

"예!"

내 명령에 의해, 원정대 전체가 수풀을 가르며 나아가던 와중.

'음?......'

뭔가 찝찝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성에서부터 날아왔다.

굉장히 역한......

그리고 다음 순간.

퉁!

크고 불쾌한 소리가 성 안쪽에서부터 들렸다.

"투, 투석기 공격이다!"

기사 하나가 뒤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나도 보고 있었다.

분명 그 돌덩이는, 정확히 우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다짜고짜 공격이라고? 그것도 아군한테?'

짜증이 팍 치솟았다.

이 불결한 냄새.

분명 악마의 것과 비슷한 감각이었다.

악마에게 공격을 받았으면......갚아줘야 성이 차지 않겠나!

나는 어깨를 풀며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

"전부 물러서라!"

뒤의 기사들에게 외쳤다.

"로, 로한 님?"

"로한 경! 뭘 어쩌시려고......"

그리고 대답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흐읍!"

날아온 돌덩이를 그대로 받아내 버린 것이다.

투웅......!

가슴팍에 묵직한 감각이 느껴지고.

나는 밀려나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꽉 주었다.

그럼에도 꽤 무거운 무게에 발바닥이 조금 끌렸다.

지지지직.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결국 완전히 바위를 멈춰 세운 나는.

"흐으으으압!"

그걸 다시 되던지기에 이르렀다.

투석기보다 조금 낮은 각도로 날아간 돌덩이는.

콰아아아아앙!

성벽을 박살 냈다.

"어......"

"아.....저걸 하려고 하셨구나."

"그리고......하셨네?"

"저게 되네......근데 저게......왜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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