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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53화 (53/194)

53화. 이건 내가 타 먹는 게 맞지

왕궁의 일과가 시작되기도 전의 이른 아침.

미리 기별을 넣었던 가르겐트 백작은 발트라스 왕국의 주인, 톨란드 국왕과의 독대를 하고 있었다.

"예의 그 모르돈이 정말 패배하였다고?"

"그렇습니다, 전하. 지금은 양쪽 발목도 다 부러져, 거동마저 불편한 수준입니다."

"......"

톨란드 국왕은 복잡한 얼굴이 되었다.

그를 견제하기 위해 지금껏 얼마나 많은 자금과 인력이 소모되었던가.

특히 솔레온 백작을 등에 업고 일곱 기사단의 지위까지 따낸 모르돈은, 마치 사자에 날개를 단 듯 감히 일방적으로 짓누를 수조차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나중에 가서 수습을 하려 했을 땐 이미 늦은 후였고.

일국의 국왕인 자신도 그럴진대......

"그 로한이라는 이름의 기사가, 그렇게 강한가?"

"폐하. 소신은 젊었을 적,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강대한 기사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비단 자국의 기사뿐만 아니라, 라데룬과 같은 타국의 기사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알지. 왜 모르겠나. 선왕께서 그대와 함께 지금의 발트라스 기반을 다 마련하셨지."

"예. 하나 그 많은 전투 중. 모르돈의 경지에 오른 자는 기껏해야 손에 꼽았습니다. 솔레온 백작 역시 그것을 알고 모르돈에게 접근한 것이지 않습니까."

톨란드 국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로한 경은 그 궤를 달리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무력도 무력인데......그 지혜가 남다릅니다."

"무력뿐만이 아니라 지혜도 갖추었다?"

"예. 저를 직접 만나보기도 전에 제 약점을 간파하였습니다."

"재상의 약점이라. 그건 나도 궁금한데?"

그 말에 톨란드 국왕이 굉장히 흥미롭다는 눈빛을 보내었다.

선왕 시절부터 가르겐트 백작을 봐 온 그였다.

그러나 가르겐트 백작이야말로 철인이라는 말이 딱 맞는 사람이었다.

말 그대로 완벽하고, 어디 하나 빈틈없는 그런 인간.

당연히 톨란드 국왕조차 지금까지 가르겐트 백작의 약점 같은 건 알지 못했다.

약점은 커녕 약점 비슷한 것조차도.

그렇기에 그 약점이라는 게 더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았다.

하나 가르겐트 백작은 웃음으로 슬며시 넘겼다.

"하하. 열심히 숨겼습니다. 자칫 저를 볼모로 잡아 국왕 폐하께 위해를 가하려는 세력이 나타날까 해서 말입니다."

저리 말하니 어찌 더 묻겠는가.

혹여나 그 약점이라는 게 새어나가게 되어 자신에게 위협이 될지도 모르는데.

더불어 가르겐트 백작이 뒤통수를 칠 인물도 아니고, 굳이 약점을 알 필요는 없었다.

단지 잠시 궁금했을 뿐.

그래도, 참으로 가르겐트 백작의 말솜씨 하나는 발군이다 싶었다.

때문에 더 궁금해지는 것도 있었다.

저런 가르겐트 백작이 그렇게나 칭송하는 그 로한이라는 기사가 어떤 사람인지.

'가르겐트 재상이 저렇게까지 칭찬을 아끼지 않은 인재는 드물었지.'

아주, 정말, 살짝이라도 가르겐트 백작이 칭찬을 했던 사람들은, 톨란드 국왕의 눈에는 전부 희대의 인재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가르겐트 백작은, 그가 칭찬이 짠 사람이라는 것을 잊게 만들 정도였다.

"무력, 지력, 행동력, 그리고 인재를 보는 눈까지. 어느 하나 모자라지 않은 재목입니다. 결단코 놓치면 안 됩니다. 그가 스스로 한 발 다가와 준 이상, 우리 왕국에서는 무조건 그와 좋은 인연을 구축해 놓아야 합니다. 분명 타국에서도 같은 생각을 할 게 뻔하기에 선수를 칠 수 있는 만큼 저희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일개 인간이 그 모든 능력을 갖추는 게 가능한 일이던가?......"

"그만큼 중한 일이기에, 이른 새벽부터 결례를 무릅쓰고 알현을 요청드린 것이옵니다. 처음에 그는, 이런 자리까지는 올 생각이 없다 하였습니다. 제가 억지를 조금 부렸지요."

재상은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저는 아직 그에게 큰 호감을 보여주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동맹으로서 함께 가고 싶다는 의지만을 내비쳤을 뿐입니다. 그러나, 속마음은 전혀 다릅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의 아군이 되어야 합니다. 아니, 최소한 우리에게 칼을 들이밀지는 않게 해두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

"그에게만큼은 그 무엇도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아까워하지 말라, 라......"

"예. 왕위만 빼고 전부 줄 의중으로 그를 대해주십시오. 이 재상의 자리라도 말입니다."

"......!"

그 한마디에, 톨란드 국왕은 로한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가늠이 되었다.

또한 재상의 저 발언이 진심이라는 것도.

"오후 만찬에 시간을 빼두어 전하와 소신. 그리고 로한 경만 참석을 하는 소소한 자리를 준비했습니다. 전하, 이 노신의 말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그가 우리를 적이라고 생각하게 하여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우리만큼 든든한 아군은 또 없다는 걸 느낄 수 있도록 하셔야 하옵나이다."

* * *

해가 조금 떠오른 아침.

가르겐트 백작은, 한 허름한 판잣집을 찾았다.

문고리도 없는 문이 그를 반겼다.

가르겐트 백작은 손으로 문을 비집어 잡고 열었다.

끼이익.

"계신가?"

그의 목소리에, 저 안에서 사람 하나가 눈을 비비며 나타났다.

마르코였다.

"누구세요?"

"가르겐트라는 사람일세. 연금술사이지."

"가르......예? 뭐, 뭐라고요?"

"하하. 아마 자네가 아는 그 사람일걸세."

"재, 재상 각하께서 이 누추한 곳까지는 어떻게......!"

"잠시 들어가도 되겠는가?"

그에 마르코가 화들짝 놀라며 튀어 나가 문을 열었다.

"무, 물론입니다!"

마르코의 안내를 받아, 가르겐트 백작은 완전히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신기하다는 듯 실험실을 살폈다.

마르코 역시 신기하다는 듯 가르겐트 백작을 살폈고.

그도 그럴게, 가르겐트 백작은 왕국 내 최고의 연금술사 중 한 명이었다.

오로지 연금술만으로 마법만큼이나 화려하고 강력한 화력을 구현해내어, 이 발트라스 왕국을 강대국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었다.

왕국 내 연금술사 중, 그를 모르면 연금술사 자격도 없다는 농담이 나돌 정도였으니.

"어,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아. 로한 경의 말을 듣고 왔다네."

마르코는 정신이 어질어질해졌다.

너무 기뻐서.

로한과 알게 된 이후.

그간 지옥 같았던 인생이 한 방에 풀리는 느낌이 들었던 까닭이었다.

"하, 하하! 로, 로한 경께서 저를 재상 각하께 소개하셨다고요?"

"비슷한 셈이지."

"믿기지가 않네요......"

"여기가 연구실인가? 이런 시설에서 잘도 연구를 이어나갔구만."

가르겐트 백작 역시 놀랍기는 매한가지였다.

고작 이 정도 수준의 연구실에서, 자신이 본 그 목걸이가 탄생했다니.

'조금만 다듬으면......나를 뛰어넘는 천재가 나올지도 모르겠군.'

상상 그 이상이었다.

정말로 탐이 나는 인재였다.

로한에게 받은 불사조의 목걸이를 보는 순간 이미 마음이 굳긴 했지만......

'이건 당장 데려가야겠군.'

지금 이곳을 직접 와 보니, 확신이 드는 가르겐트 백작이었다.

"자네. 왕실에서 연구를 해 볼 생각은 없나? 연구는, 원하는 걸 아무거나 해도 상관없다네."

"......저, 정말로요?"

"그럼."

마르코는 눈이 왕방울만 해져서는 말을 더듬었다.

"제, 제가 왕실 연금술사가......된다고요?"

"이 친구. 이해력 빠른 게 아닌가?"

"아, 아닙니다! 다 이해했죠, 물론!"

"하하. 그럼 내일부터 왕실로 나오게. 사람 하나 보내 줄 터이니, 따라오면 되네."

마르코가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감사는 내가 아니라 로한 경에게 해야겠지. 자네 같은 인재를 발굴해주었으니."

"물론이죠! 로한 님은 제 은인이십니다. 저도 믿지 못한 저를 믿어주신 사람이거든요."

그 대답에, 확신에 찬 대답에.

가르겐트 백작은 살짝 장난기가 올라왔다.

"그래? 그 정도라고?"

"예!"

"그럼 만약, 로한 경이 왕실 연금술사가 되지 말라고 한다면......어쩔 텐가?"

놀랍게도, 마르코의 대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튀어나왔다.

"안 할 겁니다."

"오호? 왕실 연금술사를?"

"예. 그 자리가 아니어도, 저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단호한 대답.

가르겐트 백작은 저절로 미소가 새어 나왔다.

이 자는 정말 물건이었다.

"하하하. 그렇군, 그래. 역시 왕실 연금술사라면, 그 정도 자신감은 있어야지!"

로한의 인재를 찾는 그 눈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며.

* * *

저녁 시간.

나는 가르겐트 백작을 따라, 귀찮은 만찬에 합류를 했다.

그래도 든든한 후원자가 생긴다고는 하니 나로서는 손해 볼 건 없는 일이었다.

연고가 하나도 없는 이곳에.

내 편이 생긴다는데 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가벼운 인사와 만찬이 진행되었고.

메인 메뉴를 거의 다 먹을 때쯤.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본론에 들어섰다.

포문을 연 것은, 가르겐트 백작이었다.

"전하. 현재 죄인 모르돈의 자백에 따르면, 솔레온 백작의 개입이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고 합니다."

"상상 이상이라? 우리도 전혀 예측하지 않은 것은 아니잖소."

"예. 한데도 오전 중에 받은 보고에 의하면, 몰랐던 내용들이 꽤나 많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모르돈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였습니다."

"전폭적인 지지라?"

"익히 알고 있던 대로라면, 모르돈이 성인이 된 후. 솔레온 백작이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접근하였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그게 아니란 소린가?"

가르겐트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키워진 것이라 합니다. 손꼽히는 무력을 가지게 된 것도, 일곱 기사단이 된 것도, 전부 솔레온 백작의 계획이었다 합니다."

그 말을 들은 톨란드 국왕은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인간의 인생 하나를 통째로 설계한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모두가 그의 손에 놀아났군......그러니 아무리 모르돈과 접촉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지."

"예. 모르돈의 마음을 얻기 위해 투자한 것들 역시 전부 솔레온 백작에게 고스란히 돌아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황당하군."

그들의 대화를 듣던 내가 물었다.

"결코 기사라는 호칭이 어울리지 않던 자인데, 애초에 그 위치까지 어떻게 올라간 거지?"

그 물음에, 가르겐트 백작이 대답을 해주었다.

"자네쯤 되니 쉽게 이겼지. 그자는 명실공히 발트라스 왕국 내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였다네. 특히 우리 발트라스 왕국은 실적 우선주의인지라, 아무 능력도 없는 놈이 저 위치까지 올라갈 수는 없음이야. 일곱 기사단은 결국 대악마 결전병기. 어느 정도 인성이 모자란다고 뽑지 않을 수는 없었다네. 일곱 기사단을 도덕성으로 뽑겠나? 악마에 맞설 수 있는 실력으로 뽑지."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악마와 대적도 못할 놈보다는, 돈 욕심이나 권력 욕심이 조금 있어도 맞설 수 있는 놈이 낫긴 하지.

그때 톨란드 국왕이 오히려 가르겐트 백작을 꾸짖었다.

"로한 경의 말이 맞네. 재상. 앞으로는 최소한의 검증은 필요할 것이라 생각되네."

"예. 전하. 다시는 이번과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에 주의를 기울이겠나이다."

"그건 그렇고. 로한 경이 말한 필멸조와 솔레온 백작의 신병은 확보되었나?"

"실은......솔레온 백작의 저택을 급습하였으나, 이미 도주를 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내가 모르돈을 생포하고, 가르겐트 백작의 저택에 도착하고 고작 몇 분.

가르겐트 백작이 곧바로 솔레온 백작을 붙잡으라고 병력을 보내는 걸 내 두 눈으로 직접 보았었다.

그런데 그 새벽에 벌써 눈치를 채고 도망을 치다니.

그럼에도 톨란드 국왕은 크게 놀라진 않았다.

"그래. 순순히 붙잡힐 그가 아니겠지. 추적은?"

"전방위적으로 진행 되고 있습니다. 현재 예측에 따르면, 몰렌 백작령으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몰렌 백작령이라......북쪽의 변경이로군. 둘이 원래 친분이 꽤 있었지?"

"예. 변경백인만큼 워낙 강대한 병력을 가진 몰렌 백작이기에 서로 욕심을 채우기 충분한 사이였습니다."

"골치 아프군......"

그들의 대화에 내가 끼어들었다.

"내가 직접 가겠소."

필멸조의 가호.

그것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불사조 피코의 능력도 고유 스킬에 버금갈 정도로 훌륭했으니, 쌍둥이인 필멸조의 능력 역시 훌륭하리라.

'이건 내가 타 먹는 게 맞지. 여태 고생한 게 아까워서라도! 뺏기면 억울하지!'

그에, 톨란드 국왕과 가르겐트 백작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목소리로 동시에 외쳤다.

"지, 진심인가?"

"지, 진심이시오?"

둘은 매우 감격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경의 그 헌신! 본인은 절대 잊지 않겠소!"

"하, 하하. 이제 로한 경 앞에서는 감히 인격을 논할 수 없겠구만. 내 생에 본 가장 완벽한 사람일세."

뭐지? 왜 저래?

"차마 부끄러워서 도와 달라 말할 수도 없는 일에 직접 나서주다니......국왕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리다. 그 어떤 것이든 우리 발트라스 왕국은 그대에게 아낌없이 베풀 것이오. 이건...... 일곱 기사라는 명예나 그대의 강함과는 상관없이, 그 인성에 감복해, 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오. 재상!"

"예. 전하."

"로한 경에게, 발트라스 왕국의 명예 백작 직위를 하사하겠소. 또한, 칠흑 기사단의 특별 지휘권을 넘겨주어, 그의 정의로움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 보좌하기를 명하는 바이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냥 필멸조의 가호나 얻으려고 했는데......뭐가 생각보다 많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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