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생각을 하고, 대답을 해
디아즈는, 붉은 포션으로 임시 응급 처치를 마쳤다.
"허억......허억......"
그리고는 엉덩이를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몸을 질질 끌고 가듯 움직여, 벽에 기대고 숨을 골랐다.
피는 대충 멎은 것 같았지만, 아직 통증은 그대로였다.
머리도 약간 핑 돌리는 것 같았고.
그럼에도 그녀는 눈을 똑바로 뜨고 있었다.
아니, 눈을 뗄 수 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리라.
휘리릭!
모르돈이 자신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공격을 로한에게 시전하였다.
회전을 건 발차기.
'저 각도에서 날아오는 건......피하기 힘들었어.'
제삼자의 시선에서 보더라도, 모르돈의 공격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수비하는 입장에서는 외통수로 당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두고 공격을 하는 것이었다.
'미친 재능이군.'
저런 위대한 재능이, 저런 쓰레기에게 갔다는 게 황당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로한의 걱정이 먼저였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로한 역시 피하기 애매했던 탓에 방어를 하기로 판단을 했고.
쿠우웅!
팔을 올려 첫 번째 공격을 막아내었다.
'저걸 막으면......!'
묵직한 공격에, 방어를 해도 중심축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로한이 체감하는 충격량은, 자신이 느낀 것과는 수준이 다를 터였다.
지금 모르돈의 모습은, 훨씬 날렵하고 강인한 반인반수의 형태였으니.
'큰일이다!'
저 공격까지는 디아즈 본인도 버텨내었다.
이어지는 연계기가 문제였지.
중심을 뒤흔드는 묵직한 타격, 그다음 이어지는 콤비네이션도 워낙 날렵했기에, 복부가 텅 비었던 것이다.
첫 번째 공격까지는 어떻게 데미지 없이 넘어갈 수 있어도.
여기서부터는 방법이 없었다.
'복부를 내어주고 반격을......'
하지만 로한은 달랐다.
'......어?'
첫 번째 공격을 방어하고, 전혀 흔들리지가 않았다.
거기서부터 변수는 전혀 다른 결과를 이끌어 내었다.
몸이 흔들리지 않으니, 방어를 하자마자 동시에 반격이 가능해진 것이다.
로한은 바로 왼손으로 훅을 날려 모르돈의 무릎을 가격했다.
빠가악!
뼈가 어긋나는 섬뜩한 소음이 꽤 크게 들려왔다.
그리고 모르돈은 바닥을 구르고 튕겨 날아갔다.
"......저, 저게 된다고?......"
가능하리라고 생각도 못 한 일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이게......로한 님과 나 사이의 간극인가? 커도, 너무 크다......'
지금 이 순간.
디아즈의 눈에는 로한이 마치 거인처럼 보였다.
태풍이 몰아쳐도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 숲의 오래된 거목과도 같은 거인.
'로한 님은 아무도 이길 수 없는 것인가......'
진정한 최강의 괴물과 함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제대로 자각을 한 그녀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전투는 이어졌다.
모르돈은 야행성 맹수의 특성을 이용해 어둠으로 숨어들었다.
하나 그것도 당연히 무용하였다.
놈은 금방 붙잡혀서는.
쾅! 쾅! 쾅! 쾅!
눈 한 번 깜빡할 새에 안면에 주먹이 몇 방이나 들어갔다.
"쿠헉! 케엑! 컥! 으악!"
다급히 모르돈이 가드를 올렸다.
그러나 로한은 멈추지 않았다.
가드 위로 그대로 파운딩을 때려 박아버렸다.
막으려면 막아보라는 듯이.
물론 모르돈 또한 호락호락 당해주지는 않았다.
그는 로한의 아래에서 발버둥을 치며 몸을 튕겼고, 결국.
'빠져나왔다......!'
그 주먹세례 속에서 일어서다니.
정말이지 적이지만, 절로 혀가 내둘러 질 정도로 지독한 녀석이었다.
* * *
"허억! 허억! 허억!"
내 아래에서 탈출한 모르돈은, 급격히 체력이 빠진 것으로 보였다.
아마 벗어나라고 발버둥치며 체력이 많이 소모된 모양이었다.
놈은 네 발로 슬금슬금 기어, 다시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에 내가 피식 웃었다.
"또 해보려고?"
놈은 낮게 으르렁거리더니, 빛이 없는 곳을 골라 샥샥 계속 움직였다.
처음에는 그냥 쳐다도 안 봤는데.
이번에는 눈동자로 정확히 놈을 쫓고 있었다.
중앙에 서서 몸을 빙빙 돌리며 느긋하게.
그러자 어둠 속에서 실시간으로 놈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게 보였다.
"어, 어째서 날 볼 수 있는 거지......!"
"느리니까."
내가 젠틀하게 대답을 해 주자, 눈이 핏대를 세우고는.
"내가 느릴 리 없어!"
현실을 부정하고 덤벼들었다.
이미 인간의 이성보다는 짐승의 본능이 앞선 듯.
이빨을 앞세워 냅다 직선으로 쏘아져 왔다.
나는 침착하게 검을 뽑아들고.
검을 가로로 휘둘러.
서걱.
놈의 이빨을 모조리 평평하게 만들어주었다.
후두두둑.
"어억?"
평생 겪어 보지 못한 상황에 모르돈은 당황하며 바닥을 또 뒹굴었다.
쿠당탕.
그는 바로 일어나기는 했지만, 자신의 이빨을 더듬거리며 패닉에 빠져있었다.
"내, 내, 내 자랑스러운 송곳니가......!"
마침 모르돈의 앞에 잘린 송곳니 하나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집어 들더니, 떨리는 눈동자로 그걸 쳐다보았다.
"아, 안 돼......"
그러는 사이 이미 놈의 지척에 다가선 나는, 놈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차피 이렇게 된 김에......여기서 끝을 보자."
"무, 무슨......!"
"탐문수사라고 들어 봤나? 원래는 목격자에게 묻는 건데......이왕이면 본인한테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르지 않겠어? 자, 그럼. 질문이다. 대체 네놈이 어떻게 필멸조를 붙잡았을까?"
피코의 말에 따르면, 필멸조를 잡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모르돈이 과연 혼자서 어떻게 그 필멸조를 잡아낸 걸까?
"필멸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내 질문에 모르돈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하나 입은 내가 원하는 게 아닌 다른 대답을 내어 놓았다.
"아. 그래?"
퍼억!
"컥!"
모르돈에게 주먹을 한 방 휘갈기자, 그나마 반만이라도 남아있던 이빨 하나가 완전히 빠지는 게 보였다.
갑자기 한 방 맞은 놈의 얼굴에 물음표가 가득 찼다.
"......?"
그래서 나는, 친절히 왜 맞았는지를 설명해주었다.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생각을 하고, 대답을 해. 대답을 하고 생각하지 말고."
나는 놈의 갈기를 붙잡고.
본격적으로 수사를 이어나갔다.
주먹으로 수사를 하니, 약간 스스로 박쥐 다크 히어로 같기도 한 기분이 들었다.
"필멸조. 네가 데리고 있지?"
"모른다!"
퍼억!
"컥!"
"어디에 붙잡아 뒀지?"
"개소리 마라! 나는 그런 적이 없......!
빠악!
"어억! 이, 이 시발 놈이......!"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다."
짜악!
"으악!"
박자감을 잘 살려서 치니, 조금 신나는 것 같기도 하고.
처음에는 어찌저찌 버티던 모르돈이었으나.
얼굴을 막으면 간을 치고, 복부를 막으면 코를 치니.
"우욱! 우웁......!"
갈기가 뜯기든 말든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물론 한 번 잡은 놈을 놓아 줄 내가 아니었다.
나는 뜯어진 놈의 갈기를 버리고, 발목을 덥썩 잡아끌었다.
바닥을 손톱으로 긁으며 딸려 오는 모르돈.
지지지직.
"아악! 아아악!"
아직 밤은 충분히 길었다.
벌써 끝내긴 아쉽지.
퍼어억!
감히 도망을 치려 한 괘씸죄를 더해, 놈의 등을 왼팔로 내리찍었다.
콰득!
척추 어딘가에서 재미있는 소리가 났다.
"으아아아아악!"
"재밌네. 계속 버텨 보던가."
남의 배에는 구멍도 숭숭 잘만 내더니.
제 등이 아픈 건 싫은 모양이었다.
자꾸 도망을 가니.
발목도 좀 분질러 놔야겠다 싶었다.
뭐든 안전제일 아닌가.
보험은 들어 놔야지.
뿌득!
"끄아아아아악!"
흥이 조금씩 오르던 그때.
"마, 말하겠다! 다 말할 테니까! 그, 그마아아안!"
"잠깐만. 조금만 기다렸다가 대답해라. 오른쪽 발목도 좀 처리해두고."
"왜? 왜? 마, 말한다니까? 왜? 아니, 아니, 아니이이이이!"
뽀각!
"우억! 우억! 우어어억! 피, 필멸조 내가 데리고 있다! 맞다고! 솔레온 백작의 별장에 가둬 놨다! 마, 마녀에게 필멸조를 잡는 법도 배웠어! 다, 다 말했다!"
"칫."
"......!"
생각보다 내겐 심문의 재능도 꽤 있는 듯싶었다.
좀 재미도 있는 것 같고.
끝나니 이렇게나 아쉽지 않은가.
'적성에 맞는 건가?'
강아지는 강 훈련사가 잘 다루는 것 같던데, 아마 반인반수는 내가 좀 더 잘 다루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 * *
"재, 재상 각하. 급히 나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집사장의 말에, 가르겐트 백작이 미간을 찌푸리며 창 밖을 살폈다.
하지만 밖은 아직 어두웠다.
"으으으음......해도 안 떴는데. 무슨 일인가?"
"로한 경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로한 경이? 이 새벽에?"
"예. 한데......혼자 오신 게 아닙니다."
가르겐트 백작은 몸을 일으키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후우. 그게 무슨 소린가? 알아듣게 말을 해."
"그......모르돈 경과 함께......왔습니다."
"모르돈? 그자와 함께? 별난 일이군."
그 말을 들으니 잠이 확 달아나는 가르겐트 백작이었다.
그는 가운을 걸치며, 방을 나섰다.
가르겐트 백작의 뒤로 집사장이 따르며, 계속해서 브리핑을 이었다.
"함께라는 말이 조금 이상하기는 한데. 로한 경께서 모르돈 경을 질질 끌고 나타나셨습니다."
"......? 그건 또 무슨 뜻이야?"
"그게......말 그대로입니다. 질질 끌고 나타났습니다."
자신이 자다 깨서 그런 건지, 아니면 집사장이 자다 깬 건지.
가르겐트 백작은 헷갈렸다.
그도 그럴게, 벌써 50년 이상 자신을 보필했던 집사장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해야 상황이 파악될 것 같았다.
"일단, 가지."
"예, 예."
* * *
응접실까지 나간 가르겐트 백작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 모르돈이,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매달리고 있었으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다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저 미친놈 좀 옆에서 떼내 주십시오!"
가르겐트 백작이 매우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얘는 왜 이러고 있으며, 뭐가 어떻게 된 상황이며, 또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는지.
한 번에 그 모든 의문이 다 느껴지는 아주 복잡미묘한 눈빛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조금 주었다.
잠시 후.
"크흠. 크흠. 일단 이자를 포박하여 수감해 두거라."
"예! 재상 각하!"
가르겐트 백작은 휘하 기사들에게 모르돈을 넘겼다.
이미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모르돈이었으나, 기사들은 엄청나게 긴장을 하며 그를 포박하여 사라졌다.
"잠이 확 깨는군."
가르겐트 백작은 내게 앉기를 권하였다.
첫 만남과는 벌써 조금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게 보였다.
목걸이 이야기로 친해진 것도 있었지만......
"내 보다시피 잠자리에 들었다가 나오는 길이라. 양해 좀 해주게."
특유의 그 매서운 기세를 내 앞에서는 접어주는 게 보였다.
"양해는 내 쪽에서 구해야지. 모르돈 놈을 생포는 했는데, 딱히 둘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이리 왔다."
"생포라......하하. 그 단어를 모르돈에게 쓰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한데, 뭐가 어떻게 된 건가? 자세히 좀 말해보게."
나는 놈이 끌려나간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내 부관을 기습했다. 내가 없는 틈을 타서."
"......!"
가르겐트 백작의 눈이 살벌하게 변했다.
"저 미친놈이......결국 일을 저질렀군."
"작정하고 살인까지 준비했더군. 내 부관도 자상을 입었다."
"찔렸다고? 정말인가? 목숨은? 지장은 없나?"
진심으로 걱정하는 게 보였다.
그래서 조금 더 그에게 호감이 가는 기분이었다.
"일단은 포션으로 응급 처치는 해 둔 상태이다. 회복에 시간은 좀 들겠지만......"
"내일 왕궁으로 같이 가지. 디아즈 경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겠네."
"가능......한가?"
왕실의 의료 시설이라면.
확실히 회복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물론. 어차피 일곱 기사단이 연루된 사건이라면, 여기서 처리할 수도 없네. 최소 왕실이 끼어들어야지. 모르돈 놈의 자수도 찬찬히 들어 볼 겸. 같이 가세."
"그리하지."
"그......동행을 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국왕 폐하도 접견을 좀 해야 할 텐데. 괜찮겠나?"
"......"
그건 좀 귀찮긴 한데......
내가 대답을 망설이자, 가르겐트 백작이 조금은 솔깃한 제안을 던졌다.
"자네의 둘도 없는 뒷배경이 되어 주도록 판을 벌여 두겠네! 대륙에서 가장 강대국 중 하나의 전폭적인 지지. 그거, 쉽게 얻을 수 있는 건 아닐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