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잠시 쉬고 있도록
쿠웅!
회전이 실린 묵직한 발차기가, 디아즈의 관자놀이를 향해 매섭게 날아들었다.
그녀는 로한이 막았던 것처럼 똑같이 가드를 올렸다.
하지만.
"크으윽!"
휘청.
로한이 해낸 것과는 조금은 다른 결과물이 나왔다.
'로한 님은 분명히 전혀 흔들리지도 않고 막아내시던데......!'
흘려낸 것도 아니고 그대로 막아내었던 걸 분명히 눈으로 확인했었다.
자신 역시 일곱 기사단의 부관이기 이전에 성기사이지 않은가.
그 정도 보는 눈은 있었다.
한데 직접 겪는 것과, 보는 것은 전혀 달랐다.
얼핏 생각보다 덩치에 비해 모르돈의 힘이 약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전혀 아니다!'
모르돈은, 빠르고 또 동시에 강했다.
이게 도대체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오크의 힘과 늑대의 민첩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만 같았으니 말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이미 모르돈은 다음 공격을 펼치고 있었다.
바로 옆구리를 노리는 훅.
피하면 베스트겠지만, 이미 모르돈은 피할 수 없다는 것까지 계산에 둔 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옆구리 다음은 턱일 게 뻔했다.
'턱을 내주면 진짜 끝이다......!'
디아즈는 이를 악물고, 버티는 방향을 선택했다.
빠아아악!
'크헉......!'
예상을 상회하는 데미지와 함께.
뿌득!
갈비뼈 몇 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눈앞이 깜깜하고,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정신을 놓을 수는 없었다.
예측대로 이어서 들어오는 턱을 노린 펀치가 바로 보였던 탓이다.
쿠우웅!
가드 위로 모르돈이 주먹을 던졌고.
디아즈는 동시에 무릎을 올려, 놈의 급소를 노렸다.
샥!
하나 이 수까지 모르돈은 이미 꿰뚫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너무나로 여유롭게 간격을 벌리는 그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휴우! 깜짝 놀랐네. 큭큭큭."
'......칫.'
전투 센스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충분히 들어올 만 한 상황이었는데도, 적절히 거리를 벌렸다.
완벽히 이성이 통제를 하는 전투를 이어 나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와중에, 디아즈 본인은 엄청난 데미지를 입었고.
주륵......
입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언제인지도 모를 새에 입안이 크게 찢어진 모양이었다.
'이거......피해 없이 이길 생각은 접어야겠네......'
그리고 길게 끌어도 승산은 없을 것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가볍게 저 괴물을 상대하던 로한이 떠올랐다.
모르돈이 약하다고 착각을 할 정도로 가뿐하게 대응하던 그 모습이.
'도대체 로한 님은......이 괴물을 어떻게......'
* * *
"피휴우우우......"
침대 위에서는 피코가 새 답지 않게 대자로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
"옆 방에 디아즈가 들어오는 소리가 안 들리는 것 같던데......"
제3의 눈이라 할지라도, 생명과 직결된 위협이 아니면 크게 반응하지는 않았다.
주변의 모든 자극에 반응을 하면 내가 버틸 수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옆 방의 문 여닫는 소리 정도는 감지할 수 있을 터였다.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드는 와중에, 이상하게 계속해서 가르겐트 백작의 조언 아닌 조언이 입안에 씹혔다.
모르돈을 조심하라던 그 말이.
"팔이고 다리고 목이고, 죽을 때까지 집요하게 물어 뜨는 놈이라고 그랬지......"
팔, 다리라......
당연히 그게 진짜 팔다리를 뜻하는 게 아니라는 건 나 역시 알고 있었다.
마르코, 제프론......아니면 디아즈.
그 중 하나인 디아즈가 늦는 게 아무래도 마음이 쓰였다.
"들어 왔는지 확인만 좀 해봐야겠군."
나는 문을 열고 나가, 바로 옆 방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고요......
똑똑똑.
"......"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아직 안 들어 온 건가?"
벌써 디아즈와 보낸 시간이 그리 짧지 않았다.
그것도 밤이고 낮이고 매일 곁에서 보내다 보니, 그녀의 성향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어디서 술을 마시고 돌아다니거나, 산책을 즐기는 편도 아니었다.
운동을 해도 방 안에서 실내 운동을 주로 하고.
아니면 아예 아침에 몸을 움직이는 타입이었지.
이 밤중에 이렇게까지 늦은 건 처음이었다.
디아즈도 성인이고, 간단한 도적쯤은 거뜬하게 처리할 수 있는 나름 실력자이기에.
평소라면 그럼에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겠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조금 마음이 걸렸다.
"산책이라도 할 겸. 잠시 돌아만 보자."
그렇게 나는 기감을 곤두세우며, 여관을 빠져나갔다.
* * *
"하아......하아......!"
디아즈의 입에서 불규칙한 호흡이 이어졌다.
완전히 모르돈의 스타일에 흐름이 빼앗겼다는 방증이었다.
자신의 패턴을 살려서 움직였다면......호흡이 가빠졌다고 해도 안정적이었을 테니까.
그 사실을 디아즈 본인도 절절하게 느끼고 있었다.
'가, 강하다......정말 너무 강하다......!'
팔은 부들거리고, 다리는 서 있는 게 고작이었다.
어깨는 벌써 한 번 빠졌다가, 놈이 여유를 부린 덕분에 겨우 끼워 넣었다.
'심지어 아직 권능은 쓰지도 않았어......'
왜 일곱 기사단이, 일곱 기사단인지.
왜 저들이 악마에 대항하기 위한 최종 병기로서 선정된 자들인지.
모르돈은 인정하기 싫을 정도로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분했다.
레아노아를 죽였던 악마군단장 칼라림이 죽으며, 복수할 기회가 영영 사라졌다는 사실에, 마음의 짐을 영원히 간직한 채 살아야겠다고 단념을 했었다.
그런데 레아노아의 죽음과 연관된 놈이 하나 더 나타난 것이다.
그녀의 죽음에 대한 전말을 밝히고, 더불어 드디어 복수를 할 기회가 다시 돌아왔다고,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그때와 마찬가지로......이번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무기력할 수가......
"허억......허억......"
숨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모르돈의 입꼬리는 점점 더 비틀어졌다.
"분풀이도 적당히 했으니, 이제 슬슬 끝을 내지."
디아즈는 이를 꽉 깨물었다.
'그래......갈 때 가더라도, 네놈 눈깔 하나는 뽑아 가겠다......!'
스릉.
모르돈이 품에서 작은 단검을 뽑아들고.
다음 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휙!
'또......보이지 않는다......!'
이 말도 안 되는 스피드.
이걸 결국 넘어서지 못하고 여기까지 당했던 디아즈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쫓는 걸 포기했다.
'뼈라도 내주고......살이라도 취하겠다!'
푸욱!
"커헉!......"
디아즈의 복부에 단검이 박히자.
그녀는 눈을 번뜩이며 손가락을 날카롭게 세워 모르돈의 눈을 향해 뻗었다.
콰악!
"아아악! 이, 이 미친년이!"
모르돈은 비명을 지르며, 칼을 뽑고.
촤악!
디아즈의 목을 향해 칼날을 찔러 넣었다.
그런데 그때.
콰가가각!
황금빛의 손 하나가 중간에 끼어들며 단검의 날을 잡아 버리는 게 아닌가.
모르돈이 그 손의 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이, 개새......!"
빠악!
대답을 할 틈도 없이 손바닥이 날아가 그의 뺨을 휘갈겼다.
쿠당탕탕탕!
* * *
나는 짜증이 팍 치솟았다.
디아즈의 얼굴을 보고.
그녀는 복부에서 피를 흘리며 나를 겨우겨우 올려다보았다.
"로, 로한 님......죄, 죄송합니다......"
상태가 심각했다.
바닥에 흩뿌려진 피의 양도 적지 않고.
모르긴 몰라도, 저 상태라면 얼마 못 가 진짜 위독해질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도 내게 사과를 하다니.
"네가 죄송할 일이 뭐가 있나."
"로한 님의 부관으로서 부족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치료부터 해라."
나는 품에서, 로메인에게 받았던 붉은 포션을 꺼내었다.
혹시나 해서 챙겨와 봤는데 다행이었다.
그것을 디아즈에게 내밀었다.
"반은 찔린 곳에 붓고, 반은 마셔라. 거동할 정도는 안 되더라도 당장 응급 치료 정도는 될 것이다."
"하, 하지만 이건......귀한 포션인데......"
"그래 봤자 포션이다. 쓰려고 만들어진 물건이다."
어차피 내겐 더 필요하지도 않았다.
피닉스의 회복력에 비하면 저 정도 중급 포션은, 거의 쓸모도 없는 수준이었다.
"두 번 말하지 않는다. 치료하고, 잠시 쉬고 있도록."
"로, 로한 님!"
"왜?"
"그......조심하십시오."
"그러도록 하지. 그리고.....놈의 숨도 붙여 놔 주겠다."
"......?"
"복수, 끝내야지."
그에 디아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알고 계셨던 겁니까?"
"조금 전 가르겐트 백작에게 들었다. 일부러 모르는 척했던 것은 아니다."
"그, 그랬군요......"
"어쨌든. 복수할 기회는 남겨 주마."
"......예!"
디아즈가 응급 처치를 하는 모습을 확인한 후.
나는 다시 일어나 몸을 추스르는 모르돈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악마보다 더 살벌한 얼굴을 한 채로.
* * *
"차라리 나를 건드렸다면......좋았을 것을."
"아, 그래? 그걸 몰랐네, 내가. 큭큭!"
"모르는 것도 죄지. 아주 큰 죄. 내가 널 합법적으로 어떻게 두들겨 팰까 고민을 좀 했거든. 만약에 내가 방법을 찾을 때까지 기다렸다면, 적당히 맞고 끝났을 거다."
"지금은 불법적으로 두들겨 패려고?"
"어. 그러려고."
모르돈이 킬킬 웃었다.
"이봐. 넌 날 못 건드려. 저번엔 나도 제대로 하지 않았거든. 내 권능을 일절 쓰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이번엔 보여주마!"
그가 이를 드러내며 부릅뜨며,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크르르르르르......!"
그와 동시에, 손톱이 길어지고 이빨이 날카롭게 커졌다.
눈은 푸르게 빛났으며, 근육은 부풀고, 온몸에 털이 돋아나는 것이다.
몸의 체형도 조금씩, 조금씩 변했다.
그 모습이 마치, 짐승과도 같았다.
"흐아! 하하하하! 이게 바로 내 권능이다! 사자 변화!"
동물형 변화 고유 스킬인가?
아예 반인반수가 되다니.
저건 조금 귀한 권능이긴 하였다.
고작해야 동물의 일부 능력만 가져오는 권능도 있었으니까.
아마 저건 사자의 힘과 민첩성, 감각 등등 모든 걸 가져오는 능력일 터였다.
놈은 발광을 하는 그 맹수 특유의 눈으로 안광을 번뜩이며 나를 노려보았다.
"사람 잘못 건드렸어! 합법적으로 두들겨 팬다고? 웃기지 마라! 뼈째 씹어 먹어주마!"
놈이 튀어 올라 내게 날아들었다.
"내가 이 상태가 되면 조금 흥분을 해서 말이지! 크하하하! 어디 한 번 놀아 볼까?"
휘릭!
몸을 한 바퀴 감으며 채찍처럼 휘어지는 발차기.
나는 가볍게 오른팔을 들어.
콰아아앙!
그것을 막았다.
모르돈은 자연스럽게 연격을 이었다.
옆구리를 노리는 펀치.
뻔히 보였다.
그래서 나는.
'어딜, 감히!'
펀치가 날아오기도 전에 놈의 무릎을 향해 왼손 훅을 날렸다.
빠악!
타격이 들어간 놈의 무릎에서 무언가 뚜둑, 하는 소리가 들렸고.
쿠당탕탕!
놈은 회전이 걸린 채 날아가, 바닥을 구르더니 벽에 부딪혔다.
"크윽!"
물론 그걸로 뻗진 않았다.
일부러 한 방에 끝내줄 생각도 없어 살살 친 것이기도 하고.
놈은 무릎을 부여잡고 다시 자세를 바로잡았다.
"제법인데......어디 이것도 막아 보시지!"
샤삭!
놈이 어둠을 이용해 몸을 숨겼다.
꽤나 빠른 몸놀림이 더욱 추적을 어렵게 만들었다.
"어둠 속에서, 짐승의 감각을 쫓아올 수 있을까? 크하하하!"
놈은 내가 자신을 놓쳤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내 제3의 눈은 이미 그를 따라잡고 있었다.
거기에 불사조의 포션으로 모든 능력치가 한층 업그레이드된 지금.
이런 잡기술이 내게 통할 리 없었다.
파앗!
시야 사각에서 네 발로 바닥을 달리며 튀어나오더니.
입을 쩌억 벌리며 내 뒷덜미를 향해 쏘아졌다.
보고 있지않아도, 뻔히 느껴졌다.
불사조의 포션이 가진 능력이 더해지니 확실히 제3의 눈도 더욱 강화된 느낌이었다.
나는 허리를 살짝 숙이고.
어깨 너머로 손을 뻗었다.
턱!
놈의 팔이 붙잡히자.
"어어?"
그대로 업어치기를 써서 놈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콰아아아앙!
제 발로 날아오던 속도 덕분에, 충격이 매우 강하게 들어갔다.
"커억!"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걸 보니 효과는 확실했다.
아파할 틈은 없었다.
지금부터 더 아파질 예정이었으니까.
"이 꽉 물어라."
"......!"
쾅! 쾅! 쾅! 쾅! 쾅!
놈의 얼굴을 향해, 진심 연타가 폭풍우처럼 쏟아졌다.
"어허. 이 풀린다. 꽉 물어. 이제 시작이니까."
"어, 어어어억......!"
쾅!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아직 밤은 충분히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