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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50화 (50/194)

50화. 명분은......만들면 되는 것이지

"한 방 먹은 얼굴이 볼만했겠어. 크크큭. 어떻던가?"

모르돈의 물음에, 그의 부관은 쉬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쯤되자 모르돈 역시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왜? 왜 대답이 없어?"

"실은, 경. 아무래도 일이 좀 꼬인 것 같습니다."

"꼬여? 그게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말을 해."

"출국 명령을 전언 철회하라는 명이 떨어졌습니다."

"명이 떨어져? 누가? 솔레온 백작이 직접 출국 명령을 내렸는데 대체 누가?"

"가르겐트 재상 각하셨습니다. 로한 경의 숙소에서 나오셔서는, 당장 전언 철회하시라고......"

모르돈은 이마를 붙잡고는 소리쳤다.

"가르겐......하아.......그 양반이 또 왜!"

"그것까지는......"

"망할!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군!"

모르돈은 부관에게 손을 휘저어 나가라는 재스쳐를 취했다.

그에 부관이 사라지고.

그는 지하실로 걸음을 옮겼다.

어두컴컴한 지하.

그곳에는 검은 깃털의 필멸조가 연금술로 특수 제작된 쇠사슬에 묶인 채 날개를 펴지도 못하고 갇혀 있었다.

필멸조가 매서운 눈빛으로 모르돈을 노려보았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미 저 눈빛을 한 두 번 받은 것도 아니고.

모르돈은 곧장 필멸조를 지켜보고 있는 다른 사내, 솔레온 백작에게 다가갔다.

솔레온 백작 역시 모르돈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위에서 소란이 있던데. 무슨 일인가?"

"가르겐트 백작이 끼어들었소. 그가 로한이라는 놈의 강제 퇴거 명령을 막아준 듯하오."

"......재상이? 왜?"

"나야 모르지. 정치권 일은 그쪽에서 나서주기로 한 것 잊었소?"

"......"

언제나 자신만만하던 솔레온 백작이었지만.

이번에는 즉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가르겐트 백작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가 무겁다는 뜻이리라.

그 의미를 알기에, 모르돈이 되물었다.

"약속대로 끝까지 해결해 주시오."

"재상이 끼었으면. 힘들다."

"아니. 이건 약속이 다르지. 해준다고 했으면 끝까지 해야지.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면 안 되는 거지."

솔레온 백작은 미간을 찌푸렸다.

모르돈의 태도가 확실하게 날카로워진 게 느껴진 탓이었다.

"그놈을 이 도시에서 없애준다고 했잖소."

"그건 놈이 재상을 끌어들이기 이전의 이야기지. 내 말이 바뀐 게 아니라 상황이 바뀐 것이다. 말은 똑바로 해."

"그럼 어쩌자고? 지금 와서 다 포기하자고?"

"......"

솔레온 백작도 아쉬워하는 얼굴을 하자, 모르돈이 밀어붙였다.

"6개월이요, 6개월. 딱 6개월만 있으면 저 필멸조도 말라 죽고! 당신도, 나도 저놈 심장을 먹고 영생을 누릴 수 있다고! 영원히 아프지 않고 죽지 않을 수 있다고!"

솔레온 백작은 지그시 필멸조를 노려보았다.

"우리가 필멸조를 생포한 지 6개월 째인가?"

"맞소. 마녀에게 들은 대로, 놈을 찾아내서 잡았지. 저 필멸조를 잡을 방법을 알려준 그 마녀의 말에 따르면, 필멸조는 1년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하면 죽는다 했소. 이제 6개월 남은 거지."

"그러면......저 껄끄러운 장막도 사라지는 거고."

여태 필멸조를 죽이지 못한 이유.

필멸조가 마법을 부려, 몸 감싸는 배리어를 쳐두었기 때문이었다.

별의별 방법을 다 써봤지만, 저 장막만큼은 뚫지 못했기에, 그들이 이렇게 마냥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 말이! 6개월만 더 버티면 저 시꺼먼 새는 죽을 거요. 저 새를 붙잡으려고 투자한 돈과 병력이 아깝지도 않소? 그런데 여기서 포기를 하자고?"

"......"

솔레온 백작은, 계산에 민감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손해 보는 것도 싫어하는 인간이었고.

그 심보를 정확히 노리고 따져 드는 모르돈이었다.

솔레온 백작은 결국 모르돈의 계산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팔다리부터 자르시오. 조용히 처리해볼 테니까."

"아하. 팔다리? 어디 보자, 그럼......제프론이랑 그 디아즈라는 부관 놈 둘만 처리하면 되겠네."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나, 일곱 기사단이오. 후후후."

* * *

첫인상과 달리, 가르겐트 백작은 의외로 그렇게 차갑고 무뚝뚝한 인물은 아니었다.

본성을 숨기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이게 정말 요즘 여인들 눈으로 보면, 예쁘다고 소리가 바로 나올 정도요?"

가르겐트 백작이 슬며시 물어왔다.

그 질문 자체가 약간은 민망스러운지, 말이 길어졌다.

"실은 본인이 미적 감각은 떨어진다는 소리를 많이 듣소. 보는 눈이 없어서 말이지. 그래도 이왕 손녀딸 줄 건데, 마음에 들었으면 해서."

"이 정도면 나름 어디 가서 자랑할 정도는 되지."

"부가적인 효과도 확실한 거고? 응급 치료 효과."

"당신도 연금술사니까, 대충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알아볼 수 있지 않나?"

"보통은 그런데. 이건 꽤나 수준 높은 연금술이군. 그래서 그런지 쉽게 파악은 어렵소. 재능 있는 놈이 만들었어. 나는 워낙 공성용 무기만 만들어서 그런지, 이런 섬세한 작업하는 친구들 건 따라가기 힘들더라고."

"실력은 내가 보증하는 사람이다."

가르겐트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지 궁금하네. 다음에 소개 한 번 시켜주시오."

그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얼굴로, 목걸이를 상자에 곱게 넣어 둔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자. 그건 그렇고.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보지. 나 역시 실은 모르돈 그 작자의 뒤를 캐던 중이었소. 그래서 경의 제안을 받아들인 거고."

그래도 한 왕국의 재상쯤 되는 사람이다 보니 장님은 아닌 모양이었다.

"어제, 그 필멸조라는 신수가 사라진다면......언데드가 창궐한다고 했었지. 묶어 두는 것만으로도 벌써 효과가 있다고 하던데, 모르돈도 그걸 알고 있지 않았겠소? 알고서도 저질렀다? 경은 그리 생각하시오?"

"그 자체도 어느 정도는 이용하고 있는 것 같더군. 대교구의 기록에 따르면 최근 놈이 급격하게 여러 업적을 세웠다. 더불어 명성과 부도 크게 키웠고. 냄새가 나지 않나?"

"아, 확실히. 최근 들어 언데드의 출몰도 잦긴 했지. 그럴 때마다 모르돈 경이 직접 나서서 사태를 제압하고, 또 그만큼 명성이 올라갔고. 너무 딱딱 맞아떨어지는 탓에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였소. 흐음. 그런데 그게 우연이 아니라, 부와 명예를 위해 일부러 언데드를 유도한 것이다?......모르돈 그자의 성향이면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군."

"필멸조의 깃털 정도만 있어도 언데드를 상대하는 데에 매우 유리하다고 하였다. 모르돈은 그런 것들을 이용해 쉽게 언데드를 상대하면서 세를 강대히 키웠겠지."

가르겐트 백작은 머리를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크긴 어지간히 컸지. 덕분에 나도 아주 골치라오. 국민들 사이에서 그의 신망이 두터워지고 있으니, 건드리기가 매우 어려워졌거든. 덩달아 솔레온 백작도. 내 오래전부터 그자들의 성향을 이미 알고 있어 걱정이 컸소. 그 둘은 견제가 좀 필요한 인물인데......요즘의 상승세는 조금 걱정스러울 정도니......"

"하지만 이 일은 그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다. 그 언데드들이 결국 악마 군단을 이끌고 오게 될 것이다."

"......"

그는 품에서 작은 쪽지를 꺼내더니, 그것을 확인했다.

"그건 안 될 일이지. 어제 그 말을 듣고, 나도 가지고 있는 정보들을 다시 취합해 보았소. 놈들이 필멸조를 잡고 있다는 가정하에 다시 자료들을 살펴보니......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더군. 모르돈이 잡고 있을 가능성은 확실히 있소."

"증거가 있다고?"

"솔레온 백작이 작년부터 마법에 거의 반응하지 않는 금속을 대량 구매했다는 첩보가 있었소. 아마 그걸로 구속구를 만든다면......신수라 할지라도 효과는 있겠지. 더불어 솔레온 그 친구의 성격이라면 사전에 신수를 약하게 만드는 작업도 해뒀을 것이고."

"여러 가지 방법을 총동원해 생포까지 이르렀을 거란 뜻이군. 다 계획된 것들이었고."

"솔레온 백작의 성격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오."

가르겐트 백작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탁탁 두들기며 고민을 이어갔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오?"

"정보가 필요하다. 일단 어디에 숨겨 두었는지 알아내어야겠지."

"그건 쉽소. 조금 전 말했던 마나 저항 금속. 그걸 추적한 기록이 있소. 도시 외곽에 지어진 솔레온 백작의 별장이더군."

가르겐트 백작이 꺼낸 쪽지를 뒤집자, 지도가 나타났다.

그는 지도의 한 구석을 가리켰다.

"여기가 지금 우리의 위치. 그리고 여기가 앞서 말한 별장이오."

"멀진 않군."

"하지만 제아무리 나라고 한들 아무 이유 없이 거길 들쑤실 순 없소. 명분이 없거든."

"명분은......만들면 되는 것이지."

"하하! 명분을 만든다? 그것참 재미있는 말이로군. 그럼, 어떤 명분이 만들어질지 기대해보겠소."

가르겐트 백작은 그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명분에 필요한 게 있거든, 언제든 말하시오. 가만히 앉아 이 나라가 멸망하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으니."

그는 문을 열고 나가다가.

잠시 멈춰 섰다.

"아, 그런데. 어제 그 부관은 안 보이는구려?"

"디아즈 말인가? 심부름 잠시 보내 놓은 상태다. 왜 그러지?"

"그 친구가 직전에 모시던 기사를 본 적이 있소."

레아노아 말인가?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일곱 기사단의 중에서 발트라스 왕국의 대표였고, 가르겐트 백작은 발트라스 왕국의 재상이었으니까.

둘이 한 번쯤 만났다는 것도 이상할 리 없었다.

"한데 실은, 발트라스 왕국의 전임 대표 일곱 기사였던 레아노아 경의 죽음에 의문이 조금 있었소. 내부적으로만 조사를 하다가 멈춘 것인데......"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의문이 있다니?

레아노아는 분명 제3 악마군단장, 칼라림에게 죽은 걸로 알고 있었는데?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가르겐트 백작이 말을 이었다.

"레아노아 경이 악마군단장과 전투가 있기 직전, 모르돈과 만났다는 첩보가 있었소.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나, 직후의 전투에서 그녀는 본래의 힘을 다 꺼내지 못했지. 나는 오래전부터 모르돈을 탐탁지 않게 지켜 보고 있었는데......레아노아 경은 사람을 잘 믿는 편이라 의심을 하지 않았던 모양이오."

"......"

"그 후로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소. 그래서 묻힌 거고.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모르돈은 오래전 부터 일곱 기사단의 자리를 탐했다는 것이오. 하지만 일곱 기사단의 자리는, 기존의 기사가 죽지 않으면 생기지 않지. 개인적으로는 참 아쉽다고 생각하는 일이오. 레아노아는 드물게 훌륭한 기사였거든."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죽이지 않으면, 빈자리가 생기지 않는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보태었다.

"조심하시오. 모르돈 그 작자가 여기서 물러설 인물은 아니니까. 놈은 상대의 팔이고 다리고 목이고, 죽을 때까지 집요하게 물어뜯는 성향의 인간이오. 명심하시오."

"다 물어뜯는 다라......주의하도록 하지."

그리고 가르겐트 백작은 사라졌다.

* * *

디아즈는 볼일을 끝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녀는 봉투에 든 물건들을 살폈다.

"식료품도 다 샀고, 피코 밥도 샀고, 장비 수리도 다 맡겼고.......할 건 다 한 건가?"

그리고는 피코에게 줄 과일을 꺼내어 보며 미소 지었다.

"이거 달달한 게 딱 피코가 좋아할 스타일이네. 주면 진짜 좋아하겠지? 후훗."

피코가 맛있게 먹어 줄 생각을 하니, 벌써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다시 과일을 잘 정리해두고.

그녀는 지름길인 골목을 통해 걸어갔다.

조금 어둡기는 해도, 나름 성기사이기에 딱히 강도들이 겁나지도 않았으니까.

적당히 성기사라는 것만 상대에게 알려도 웬만한 강도들은 줄행랑치는 게 보통이었다.

여러 곳들을 돌아다니며 한두 번 겪어 본 일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익숙하다 할 수 있었다.

물론 아무도 안 만나고 깔끔하게 지나가는 편이 가장 편하겠지만......

"하필 이런 날은 꼭 나타나서 길을 막는단 말이지."

좀 쉽게 쉽게 가고 싶다고 생각한 날은, 지금처럼 강도가 나타났던 것 같았다.

또 하필 이런 날은 꼭 무기도 정비를 맡겨 둔 채였다.

그럼에도 디아즈는 흔들리지 않았다.

"어이. 물러서라. 나는 교단의 성기사다. 곱게 물러나면 못 본 걸로 해주마. 하지만 굳이 싸움을 걸면, 곱게 끝나진 않을 것이다."

"......"

디아즈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보통 이 정도로 겁을 주면 물러서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나타난 의문의 복면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움찔하는 느낌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이상함을 느낀 디아즈는, 놈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장을 본 봉투를 한쪽 구석에 고이 놓았다.

그때.

놈이 입을 열었다.

"오래간만이지?"

동시에 복면을 벗어 재끼는 놈.

"모르돈?"

그는 다름 아닌 일곱 기사단의 모르돈이었다.

한데, 그는 보자마자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너는 내가 죽이려고 하는 놈들만 쫓아다니는구나."

갑자기 저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자신은 누굴 따라다닌 적이 없었......

'레아노아......'

그 순간 친구의 이름이 머리를 스쳤다.

"죽이려고 하는......뭐라고? 네놈.......지금 한 말, 제대로 해명해야 할 것이다."

"해명? 그럴 일이 있을까? 넌 여기서 죽을 거거든."

"너......설마......정녕......!"

디아즈의 눈에 핏대가 섰다.

친우와의 소중했던 추억이, 기억들이 지금도 꿈에 나타나며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 역시 아직까지도 악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토록 사람이 괴로워하는데......

반면 모르돈은 재미있다는 듯 씨익 웃는 게 아닌가.

"곧 따라 보내 줄 테니, 가서 레아노아에게 전해라. 덕분에 내가 자아알 살고 있다고! 크흐흐!"

"그 입 다물어어어!"

디아즈는, 인생 최악의 격분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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