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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49화 (49/194)

49화. 연금술사를 갈아 넣으면, 안되는 건 없다

면담을 신청하고 고작 하루가 지난날.

제프론이 다시 내 숙소를 방문하였다.

똑똑똑.

"로한 경. 제프론입니다."

마침 함께 있던 디아즈가 나가서 문을 열어주었다.

"아, 디아즈 경. 같이 계셨습니까?"

"예. 들어오십시오."

"실례합니다."

제프론이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본 것은, 피코였다.

푸드덕! 푸드덕!

"......뭐 하고 계셨던 겁니까?"

나는 턱짓으로 피코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연습한다길래. 지켜보는 중이었다."

"이,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된다! 삐약!"

파다닥! 파다닥!

날개의 움직임 속도가 조금 빨리진 것 같지만......

"안 될 거 같은데......"

제프론의 말대로 몸통은 바닥에 딱 붙어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피코를 보며 한마디 했다.

"요즘 너무 먹더라니. 살찐 거 아닌가?"

"아, 아니다! 삐약! 원래 좀 포동포동한 스타일이다! 삐약!"

"......디아즈. 얘 밥 좀 줄여. 너는 얘한테 너무 약해."

"아, 알겠습니다."

"히잉......삐약."

대충 피코 상태를 확인한 후.

나는 시선을 다시 제프론에게 돌렸다.

"표정을 보니, 잘 풀린 모양이군."

"아, 예!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살면서 재상 각하의 응답이 이렇게나 빨리 온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리신 겁니까? 진짜로 요즘 젊은 여인들의 마음에 쏙 들만 한 액세서리가 있다는 그 한 마디만 더했을 뿐인데......"

제프론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듯 고개를 연신 갸우뚱거렸다.

"가르겐트 재상께서 딱히 여색을 탐하는 분도 아니고......그렇다고 악세사리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지실 것 같지도 않은데......"

나는 슬쩍 웃었다.

"작은 팁을 하나 주지. 가르겐트 백작은, 지독한 손녀 바보다."

"손녀 바보라고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아! 혹시 손녀를 엄청 아낀다는 의미입니까?"

"그렇지."

그럼에도 제프론은 아직 헷갈려 하는듯했다.

"한데, 재상께서 손녀가 있으시단 건 알고는 있습니다만. 아들 내외와는 딱히 교류도 없으시고, 실질적으로 손녀 따님과 만나는 걸 본 사람도 없을 정도인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손녀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

"예......그렇지요. 그래도 또 반대의 경우라고 추론하기도 어렵지 않습니까?"

"하지만 결론은 나왔지."

"예. 그래서 대단하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정말 어떤 시야를 가져야 로한 경과 같은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겁니까?

원작 게임을 해보면 된다.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저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 * *

"아, 그런데. 그 액세서리란 게 대체 어떤 겁니까?"

나는 손가락을 하나 들어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주고.

피코에게 다가갔다.

피코는 디아즈에게 앞으로 식사량을 좀 조절하자는 잔소리를 듣고 있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내가 나타나니, 잔소리가 멈출 줄 알고 벌떡 일어서서 다가왔다.

"오, 주인! 무슨 일이냐? 삐약? 이 몸의 도움이 필요한 게 있냐? 삐약?"

"음. 마침 도움이 좀 필요하다."

"삐약! 뭐든 말만 해라 삐약!"

어지간히 잔소리가 듣기 싫었던 모양이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금방 끝난다."

"오래 걸려도 괜찮다, 삐약!"

피코에게 손을 뻗은 나는.

뾱!

녀석의 깃털 하나를 뽑았다.

"끄악! 삐약! 이게 무슨 짓이냐! 삐약!"

나는 녀석에게 엄지 척을 해주었다.

"삐, 삐약?"

그러자 녀석도 따라서 날개 척을 했다.

"됐지?"

"되, 된 건가? 삐약?"

"그럼."

"아, 알겠다. 삐약."

그리고 그걸 디아즈에게 넘겼다.

"마르코에게 가서, 이 깃털로 목걸이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해. 아, 그리고 주인이 부상을 입으면 회복하는 효과도 인챈트 시켜달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인챈트는 무슨 원리인 겁니까?"

"그건 마르코가 이제부터 생각해 봐야지."

"......예?"

"불사조의 깃털이니까, 그 정도 기능은 있어야지. 연금술사를 갈아 넣으면, 안되는 건 없다."

"......"

"기한은, 음. 이틀 정도로 하지."

"이틀......이요?"

"마르코 이름값이 있는데, 충분하지."

"......걔 아직 지망생이라 이름값이......"

"걱정 마라. 녀석은 잘 해낼 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디아즈가 사라지고.

나는 다시 제프론을 쳐다보았다.

"들었듯이. 이틀 후, 찾아간다고 전해주게."

"예, 예......로한 경."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마르코는 퀭한 눈이 되어 완벽한 결과물을 가져왔다.

"와, 완성했습니다......"

내게 완성품을 가져다준 마르코는.

내 방에서 곯아떨어졌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틀 내내 철야 작업으로 완성을 했다고 한다.

역시 천재는 천재인가.

진짜 만들어서 눈앞에 가져오다니.

'혹여나 못 만들면, 그냥 디자인이 아름답다는 걸로 밀어붙여 볼 생각이었는데.'

덕분에 진짜 모양도 예쁘고 효과도 확실한 목걸이가 내 손에 들어온 것이다.

준비는 다 끝났으니.

이제는 내 말발로 조져봐야 할 타이밍이었다.

나는 이것을 들고, 아주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이곳 발트라스 왕국의 최고 권력가 중 하나인 국가 재상.

가르겐트 백작의 저택으로.

* * *

"손님들께서는 잠시만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현재 재상께서 왕궁에서 복귀하시는 중이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곧 도착하실 예정입니다."

"알겠습니다."

우리를 응대하는 집사장에.

제프론이 대답을 하였다.

나와 디아즈, 그리고 이 회담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제프론.

우리들 셋은 응접실에 자리를 잡고 가르겐트 백작을 기다렸다.

차를 홀짝이며 시간을 축이고 있던 그때.

문이 열리며.

끼이익.

희끗한 백발에, 날이 선 눈빛을 가진 노인.

가르겐트 백작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굉장히 왜소한 체격임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사람이었다.

한 나라의 재상쯤 되는 인물이라 그런가.

오히려 일곱 기사단에다가 덩치도 훨씬 거대한 모르돈보다도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우리 셋을 싸악 훑어 보더니.

"처음 뵙겠소. 본인은 발트라스 왕국의 재상 직을 맡고 있는 가르겐트라 하오."

"반갑습니다. 저는 교단의 이단 심문관, 제프론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쪽에 계신 분들은 이단 심문관이자 일곱 기사단의 일원이신 로한 경, 옆에는 부관 디아즈 경입니다."

가르겐트 백작은 계속 내게 시선이 고정된 상태였다.

내가 누군지 제프론이 말을 하기도 전부터 말이다.

감이 좋은 건가?

제프론의 소개를 듣고 나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하가 내게 만남을 요청하신 장본인이시군."

"그렇다."

"그래, 뭐 이야기 길게 끌 것 있소? 바로 본론으로 넘어갑시다."

"거래를 하러 왔다."

"거래라......여인들이 좋아할 법한 액세서리라고 했던가? 내가 그런 것에 관심이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오?"

"관심이 있으니 자리를 만드는 데에 동의한 것 아닌가?"

나는 대답을 하며, 멋들어진 상자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마르코는 센스를 가득 담아 케이스까지 완벽하게 준비를 해온 것이다.

확실히 덕분에 안에 있는 목걸이의 태가 확 살아나는 듯 했다.

그것을 확인한 가르겐트 백작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내게서 떨어져 한 자리에 고정되었다.

"......"

"불사조의 깃털로 만든 목걸이이다. 급할 경우 깃털을 떼내어 상처에 올려두면 가벼운 응급 처치도 가능하지."

"......이걸 내게 가져온 연유가 무엇이오?"

"글쎄. 나는 그저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런 아이템이 있는데, 관심이 있느냐고. 대답을 한 것은 오히려 당신 쪽이지. 필요한지 아닌지는 내가 정할 게 아니군."

말은 그리했지만, 나는 그가 이 목걸이에 큰 관심이 있을 거라 확신을 하였다.

가르겐트 백작이 원작에서 등장하는 시점은, 그녀의 손녀딸을 이미 잃은 후였다.

계속해서 후회와 분노 속에서 살아가던 그는.

결국 등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폭 연금술로 악마들과 함께 잿더미로 화하며 죽음을 맞이하였다.

비교적 짧게 등장하는 인물이었지만, 그가 얼마나 손녀를 아꼈는지는 너무나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손녀가 아끼던 팔찌라며 자랑하던 말도.

손녀가 좋아하는 꽃이라며 키우던 것도.

가르겐트 백작의 마지막 삶에는 오로지 그의 손녀 리아젤 뿐이었다.

그 외에도 거처 곳곳에 남겨진 편지나 일기를 보더라도 오로지 그녀에 대한 이야기들밖에 없었다.

그런 사람이 과연 이것을 거절할까?

'절대로.'

그리고 내 확신은 다행히 빗나가지 않았다.

"일곱 기사단의 일원에 이단 심문관까지 역사상 최초로 겸직하신 분이, 돈을 원하는 건 아닐 테고. 내게 뭘 원하는 게 있어 오셨소?"

역시 재상쯤 되니 벌써 하루 만에 내 직위까지 전부 파악을 한 모양이었다.

여유만만한 표정을 보니, 아마 요 며칠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다 알고 있는듯싶었다.

"일곱 기사단으로서, 업무 태만인 놈 하나 제대로 교육 좀 시키려 하는데, 귀국의 고위 관료 하나가 훼방을 놓아 귀찮게 되었다. 당신이 손을 좀 보태주었으면 하는데."

"동종 업계라면......음. 대충 감이 오는데, 혹시 그 고위 관료라는 게 솔레온 백작이오?"

"그렇소."

"하하! 재미있겠네. 어디 한 번 계속 말해보시오."

* * *

다음 날 정오.

쾅! 쾅! 쾅!

누군가가 내 숙소의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솔레온 백작 각하의 명이오! 로한 경은 당장 나와 솔레온 백작 각하의 명을 받으시오!"

나는 문을 빼꼼 열고는, 얼굴을 내밀었다.

문을 두드린 자는 다름 아닌 모르돈의 부관이었다.

"누구라고?"

"솔레온 백작 각하께서 보내셨소."

"무슨 내용이길래 이리 소란이지?"

까칠한 내 대응에, 모르돈 부관의 얼굴도 찌푸려졌다.

"로한 경께서는 이 올드리온에서, 일곱 기사단의 모르돈 경과 다툼을 벌이며 문란을 빚은바. 더 큰 소란을 방지하기 위해 올드리온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며, 앞으로 6개월간 올드리온의 출입을 자제를 권고하는 바이오."

둘이 싸웠는데 나만 나가라니.

뻔히 보였다.

저건 단순한 핑계일 뿐.

앞으로 6개월 안에 모르돈이 필멸조를 죽일 방법이 이미 있다는 의미였다.

나는 부관을 쳐다보며 물었다.

"싫다면?"

"그렇다면, 흑철 기사단이 직접 나서서 강제로 경을 안내할 것입니다."

"그들이? 나를?"

"솔레온 백작 각하의 명이라면, 움직일 겁니다."

"그렇군."

나는 방 안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을 했다.

"그렇다는데, 이제 어떻게 하지?"

부관은 대체 누구에게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해, 물음표 가득한 얼굴을 하였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그의 얼굴이 바짝 굳어버렸다.

내 뒤에서 나타난 인물을 보고.

"어쩌긴, 뭘 어찌하나. 당장 가서 솔레온 백작에게 전하게. 전언 철회하라고."

"......재, 재상 각하? 재상 각하가 어째서 거기서 나오시는......."

"내 말을 듣지 못했나? 당장 가서 철회하라고 전하라니까!"

가르겐트 백작이 특유의 위엄을 담아 소리를 치자.

모르돈의 부관이 주춤주춤 물러섰다.

나는 그를 보며 씨익 웃었다.

"가서 모르돈에게도 전하라. 넌 사람 잘못 건드렸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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