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힘에는 더 센 힘으로, 권력에는 더 센 권력으로
모르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네놈이 그걸 왜......분명히 이단 심문관이라고 들었는데?......"
오호. 나름 사전 조사는 하고 온 건가?
그럼 아주 작정을 하고 나타난 모양이었다.
힘으로 찍어 누르기 위해서 말이다.
근데 뒷조사를 하려면 제대로 하지, 하다가 만 듯싶었다.
"왜 둘 중 하나만 된다고 생각했는지 의문이군."
"그, 그야 역사상 그 누구도......그 두 직위를 동시에 가진 사람은......"
"지금 보고 있잖나. 네 눈으로 직접."
"......!"
그래.
어딜가나 꼭 이런 놈들이 있었다.
힘이고 권력이고, 자신이 가진 걸 이용해서 상대방 눌러버리고 깎아내리고.
우월감을 느끼는 놈들 말이다.
그러니 오히려 더 강자인 내 존재 자체가 분하겠지.
'그런데 일곱 기사단에도 이런 암덩이 같은 새끼들이 끼어 있었군.'
말세다, 말세.
그런 말이 절로 떠올랐다.
이런 놈들이 일곱 기사단에 끼어 있으니까 대침공이 일어나도 별 대응도 못 하고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기껏 일곱 기사단이랍시고 권능까지 퍼주는데도, 권력 놀이나 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이가 없다는 생각을 하던 그 순간.
모르돈은 꺾인 팔을 풀기 위해 다리를 뒤로 구르더니.
뒤로 뛰어 올라 온몸을 크게 빙글 돌려 내 머리를 향해 마치 크랙 슛처럼 발꿈치를 날렸다.
후웅!
저 거대한 덩치에서 이런 날렵한 동작이 나올 줄은 몰랐기에, 나도 깜짝 놀랐다.
그 깔끔한 동작에 꼬였던 모르돈의 팔이 풀렸고, 나는 팔을 들려 올려 방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공방을 한 번에 해낸 것이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그래도 일곱 기사단이라 이건가?
쿵.
방어한 팔 위로 느껴지는 묵직한 타격감.
'근력이 강화되었는데도 이 정도라고?'
큰 타격이 있지는 않았지만, 조금 반칙 수준인 피지컬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마 불사조의 포션이 아니었다면 지금 공격은 내게도 치명적이었을 터였다.
너무나 빨라, 왼팔이 아니라 오른팔로 막았기에.
다행히 조금 전에 한 단계 레벨 업을 해서 천만다행이지.
이제, 한 방 맞아줬으니 내 차례였다.
나는 왼팔을 간결하게 휘둘러 놈의 턱을 노렸다.
한 방에 잠재울 생각으로.
부웅!
그런데 모르돈은 또 한 번 나를 놀래켰다.
그걸 또 팔을 들어 올려 방어한 것이다.
콰앙!
물론 나 역시 죽일 생각은 없어, 호라이크던 때와는 달리 힘 조절을 하긴 했다만.
모르돈은 오른 팔뚝을 들어 1차 방어를 하고, 왼팔로 오른팔을 지탱하며 버텨내었다.
'이거, 안 죽인다는 생각으로 대충하면......시간 좀 걸리겠는데?'
파오갓의 세계관에는 가끔 저런 인간들이 존재했다.
먼 과거 거인들의 피가 섞이거나, 고대인의 혈통인 경우.
아예 기본 체력 자체가 판타지스러운 괴물들이 있었다.
'플레이어 캐릭터들이 대부분 그런 놈들이긴 했지.'
대침공 이후의 악마 아포칼립스를 버티는 주인공이여야 하니까 당연했지만......
모르돈 역시 그런 혈통의 후손인 모양이었다.
한 번씩 주고받은 공방.
공기가 급격히 사나워지자, 모르돈의 부관가 내 부관인 디아즈가 끼어들었다.
"모르돈 경. 이 이상은 안 됩니다."
"로한 님. 이쯤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모르돈은 반쯤 무릎을 꿇은 낮은 자세로 나를 올려다보며 으르렁대는 표정이었고.
나는 놈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단 한 방씩이었지만, 적어도 이 자리에서의 승패는 확실했다.
나는 놈에게 경고를 해주었다.
"타당한 이유가 없다면, 제프론 경이 진행하던 조사를 계속하겠다."
"......그러지 않는 게 좋을 텐데?"
"이상하리만치 집착하는군?"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의 표정을 살폈다.
"......"
그에 모르돈이 한발 물러섰다.
그는 다시 똑바로 서며 말을 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지. 하지만 분명 경고하였다. 적당히 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리고는 끝까지 등을 보이지 않고 천천히 뒷걸음으로 마르코의 실험실을 빠져나갔다.
* * *
으득!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모르돈은, 이를 갈았다.
"이 내가......내가 꼬리를 말았다고?......그 비실비실한 새끼 하나에? 이게 말이 되느냐고!"
노기를 터트리며 걷어찬 의자가 벽으로 날아가.
콰앙!
부딪히며 산산이 조각이 났다.
그 괴력이 얼마나 무지막지한 지 한눈에 보이는 광경이었다.
그렇게 강인한 육체를 가졌음에도, 지금 그의 오른팔은 부들부들 떨리며 제대로 들어 올리기도 힘들었다.
팔을 거울에 비춰보니, 정확히 맞은 곳이 퍼렇다 못해 검게 멍이 들어 있었다.
분명히 제대로 가드도 올렸고, 상대는 대충 휘두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이 꼴이라니......'
이건 진짜 턱에 들어갔다면, 기절이 아니라 턱이 날아갔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죽이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을 의심이 들 정도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인정할 수도 없었다.
'내가 권능만 썼으면......이기는 건 내 쪽이다!......'
자신은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모르돈이었다.
한편, 그의 곁을 지키는 보좌 성기사 역시도 앞서 본 광경이 믿기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는 아주 박살이 난 바닥의 의자 조각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 괴물의 힘을 어떻게 막아낸 거지?......'
일곱 기사단들이란 원래 다 그런 것인가?
알 수 없었다.
본디 일곱 기사단의 일원은 그리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으니까.
'다들 저런 거라면, 정말 소름 돋겠지만. 그건 아닐 텐데......'
모르돈은 일곱 기사단 중에서도 힘으로는 제일이라는 평가를 받은 적이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성지 스트라운의 교구장 하인트 교주가 그리 말을 했으니 틀릴 리는 없었다.
그는 일곱 기사단의 모든 인원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어찌 된 건지 알 수가 없군.'
어쨌든, 그럼에도 모르돈의 부관은 속으로 로한을 불쌍히 여기고 있었다.
'비단 강함이란 힘으로만 결정되는 건 아니니까. 독하기로는 모르돈 경도 결코 모자라지 않는다. 잘못 건드렸어.'
심지어 모르돈도 아직 그 권능을 쓴 건 아니었으니까.
아직 끝난 건 아니었다.
모르돈은 애초부터 바닥에서부터 일곱 기사단까지 올라온, 독하디독한 인간이었다.
물론 그 말도 안 되는 괴력과 내구성이 바탕이 되긴 했지만......
그걸 떠나서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서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던 모르돈이었다.
'또 사람 하나 죽어나겠군......'
그리고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모르돈이 살기 가득한 눈으로 돌아보며 외쳤다.
"이봐! 당장 솔레온 백작에게 기별을 넣어라! 내가 찾아간다고! 필멸조를 가지고 거래를 좀 해야겠어......"
"알겠습니다, 모르돈 경."
대답을 하면서도 씁쓸한 입맛을 다시는 부관이었다.
* * *
나는 내 숙소에 앉아 씁쓸한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모르돈 놈의 팔모가지를 분질러, 다시는 검도 못 쥐게 만들어버리고 싶었다.
악마나 이놈이나 다를 게 뭔가 하는 생각에.
그러나 살아가면서 어떻게 마음 내키는 대로 다 저지를 수 있겠는가.
하나 역설적이게도, 지금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일을 저질러버릴까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또 이런 놈들은 족쳐놓아 줘야 재발도 방지될 테니까.
'전 인류를 위해, 내가 고생을 좀 해야지.'
정의로운 마음으로.
'어디 보자......합법적으로 이놈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을 몽땅 분지를 방법이 뭐가 있을까?......'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이 자식은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수색을 막는 거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상식적으로 그걸 막을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물어보면 대답을 해 줄 놈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나였다면. 내가 놈이었다면, 나를 왜 방해를 했을까?'
나는 그의 입장이 되어 추론을 해보기로 했다.
'내가 만약......모르돈이었다면, 흠......이미 내 먹잇감인 걸 누가 노린다면 불쾌하겠지.'
그런데 필멸조를 붙잡을 이유는?
공개적으로 알리지는 않은 걸 보니, 떳떳한 이유는 아닐 테고.
'필멸조를 가두어두고 이득을 볼 수 있는 방법. 일곱 기사단이 이득을 볼 수 있는 방법......아!'
계속 머리를 굴리다 보니, 그럴듯한 추측이 하나 떠올랐다.
디아즈의 말에 따르면, 녀석도 거저 일곱 기사단이 된 건 아니라고 했었다.
'실적이 좋았다고 했지. 특히 언데드를 상대로.'
하나 사실 대침공 이전에는 언데드가 그리 흔하지는 않았다.
그 흔하지 않은 언데드를 모르돈은 꽤나 많은 수를 처치해냈고.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일부러 필멸조를 묶어두고 언데드를 일으켰다.'
그런 식으로 필멸조를 이용해 먹는다면, 가능은 했다.
더불어 필멸조의 발톱 같은 이런 물건은, 언데드에게 추가 효과도 달려 있었고.
'유리하게 실적을 올릴 수 있었겠지. 다만......이건 아직 심증밖에 없군.'
심증보다는 정확한 물증이 필요했다.
빼도 박도 못할 확실한 그런 것 말이다.
일단 내가 할 일부터 좀 진행해 나가면서 증거를 찾아내야겠다 싶었다.
일정을 다 멈출 순 없었으니까.
'필멸조 수색은 재개되었으니까......그러면 이제 필멸조의 발톱 쪽은 어떻게 처리를 할까......'
앞으로의 상황을 가늠해보던 그때.
똑똑똑.
노크 소리가 나고.
그리고 이어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한 경. 계십니까? 제프론입니다."
나는 걸어나가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런데, 나를 찾아온 것은 제프론 혼자가 아니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로한 경."
"빈센트 기사단장?"
호라이크던과의 전투에서 함께 싸웠던, 흑철 기사단의 기사단장인 빈센트가 제프론의 뒤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로브로 얼굴을 깊게 가린 채.
딱 봐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숨어서 온 게 보였다.
한데 그의 표정도 썩 좋지 못했다.
나도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기에, 일단 둘을 안으로 들였다.
"들어들 오지."
"예."
"실례하겠습니다."
내 방이 딱히 넓은 방은 아니라서 우리는 대충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앉자 마자 빈센트 기사단장의 입에서는 한숨이 나왔다.
"후우......"
뭐지?
무슨 일이길래......사람 불안하게.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송구합니다, 로한 경."
"앞뒤 설명이 있으면 좋겠군."
"......근래에 모르돈 경과 마주치신 일이 있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
있다마다.
바로 어제였는데.
"실은, 그 모르돈 경이 저의 주군이신 솔레온 백작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솔레온 백작님께서 조만간 로한 경께 공식적으로 수색을 중단해 달라는 요청을 하실 겁니다. 더불어 도시에서 나가 달라는 축객령과 함께 말입니다. 아마 내일이면 벌써 도착할 겁니다."
빈센트 기사단장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
나 역시 그리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기에, 표정이 좋지는 않았다.
"모르돈이라는 자가 그 정도 능력이 있나?"
"저도 몰랐습니다만......저희 주군께 뇌물이 꽤나 많이 들어왔었나 봅니다. 그래서, 거의 반박도 못 하셨습니다......면목 없습니다, 로한 경."
"......"
나는 팔짱을 끼며,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내가 기분이 많이 상했다고 생각했는지, 제프론이 말을 보태었다.
"로한 경. 빈센트 경은 솔레온 백작님을 평생 모셔온 기사입니다. 오직 로한 경을 위하는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내부 정보를 가지고 온 사람이니, 그를 너무 책망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에 내가 머리를 저었다.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내 말에, 빈센트 기사단장의 얼굴이 미세하게나마 좋아졌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덕분에 대응할 방법이 생각났거든."
"......예? 이렇게 빨리 말입니까?"
"힘에는 더 센 힘으로, 권력에는 더 센 권력으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프론을 쳐다보았다.
"가르겐트 백작에게 면담을 요청해 줄 수 있나?"
"허, 헉! 그, 그분과 연줄이 있으신 겁니까?"
그 이름에, 제프론도, 빈센트 기사단장도 깜짝 놀라는 얼굴이 되었다.
"재, 재상께서도 로한 경과 친분이 있으실 줄이야......"
"없다."
"......예? 예? 어, 없다고요?......"
내 대답에 둘의 표정이 혼란으로 가득 찼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나는 가르겐트 백작과 연줄이 전혀 없었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그......재상께서는, 그분의 흥미를 끌만 한 타당한 이유가 없으면 아예 만나주시질 않습니다. 제 이름으로 면담을 요청해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에 내가 입꼬리를 올렸다.
"무조건 나올 것이다. 지금 내가 말하는 그대로 말을 전한다면."
도대체 무슨 말이 나오는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둘은, 내 입에 시선을 집중하였다.
나는 전할 말을 천천히 읊어 주었다.
"요즘 젊은 여인들의 마음에 쏙 들만 한 목걸이가 있다, 라고."
"......?"
"그게 무슨......"
둘은 아직도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확신했다.
이 말을 전한다면 가르겐트 백작은 무조건 나올 것이었다.
왜냐하면 원작에서 슬쩍 드러나는......
'그의 약점을......이미 알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