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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47화 (47/194)

47화. 테스트해 볼 필요 없겠어요

요구르트만 한 사이즈의 유리병.

그 안에 든 빨간 약을 한입에 털어먹었다.

그러자 마치 상처 난 곳에 바르는 빨간 약을 먹으면 날 것 같은 맛이 혀에 느껴졌다.

'......'

순간 구역질이 올라올 뻔했지만, 큰 숨을 들이쉬며 겨우 최악의 사태는 막아내었다.

'강해지기 힘드네.'

물론 그래도, 이런 거 한 번 먹는 걸로 퉁쳐지면 꽤 남는 장사이긴 하지.

'재료 구하느라 고생한 것만 빼면.'

꿀꺽.

마침내 그 액체가 전부 목구멍을 통과하고.

"......"

"......"

"......삐약?"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나 스스로도 뭐가 변했는지 당장 느껴지는 게 없었으니까.

그러자 답답했는지 마르코가 물어왔다.

"저......로한 님? 어떤가요?"

"......잘 모르겠군."

내 말에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 모르겠다고요? 잉? 그럴 리가 없는데? 좋은 건 다 때려 박았는데......"

"조합식도 나쁘지 않았다, 삐약."

"맞아요. 으으음. 제 예상에 따르면 적어도 문헌 속에 나오는 고대 왕국의 슈퍼 솔저 정도는 될 거라고 봤는데 말이죠......"

흠. 그런데 진짜 모르겠는데 어쩌겠는가.

"그러면, 바깥에 가서 테스트 한 번 해보시죠!"

"테스트?"

"예. 신체 능력의 전반이 크게 상승했을 거에요. 아마 작정하고 힘을 써보시면 다른 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그걸 실내에선 할 수 없으니, 나가서 뭐라도 해보자는 거죠. 바위를 들어 본다든지. 나무를 뽑아 본다든지?"

"그러지."

나도 궁금했다.

대체 내가 얼마나 레벨 업을 했는지 알아야 앞으로 계획을 세우는 데에도 가늠이 될 테니까.

그렇게 뒤편 마당으로 나온 우리들.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높은 성벽이었다.

마르코의 실험실은 도시 최외곽 구석에 위치해 있었기에, 거의 성벽에 붙어 있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볼만한 경치는 전혀 없었다.

"원래는 여기서 바로 나가면 넓은 공터가 나왔는데 말이죠. 지금은 이 성벽이 새로 생겨서 돌아서 나가야 해요. 일단 나가서 테스트 할 만한 걸 찾아보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르코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움직이던 도중.

내 센서에 무언가 걸렸다.

후우웅......!

위에서부터 날아드는 미약한 위험 신호.

나는 바로 고개를 들었고.

성벽 위쪽의 병사들이 사색이 된 채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위, 위험해! 피해!"

성벽을 보수하는 거대한 벽돌이 정확히 우리들 머리 위로 추락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허, 허어억!"

마르코가 그대로 얼어붙었고.

"피해!"

디아즈가 그의 목덜미를 끌고 던졌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나를 향해 몸을 날렸다.

나를 밀치고, 자신이 희생을 하려고 한다는 걸 길게 볼 필요도 없이 알 수 있었다.

다만 나는 다리에 힘을 빡 주고 버텼다.

제3의 눈의 감도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이건 내게 큰 위협이 전혀 아니라는 걸.

내가 버틴 덕분에 디아즈는 내 품에 안긴 모양새가 되어버렸고.

나는 그녀를 향해 작게 속삭였다.

"머리, 숙여라."

"로, 로한 님?"

대답할 새도 없이 거대한 돌덩이가 내 바로 위로 낙하하였고.

나는 순간적으로 돌의 회전까지 감안하여 정확하게.

터어억!......꾸우우우욱!

"흐읍......!"

성벽 벽돌을 상체로 받아내었다.

묵직한 감이 있었지만, 저 아득한 높이에서 떨어진 거대 구조물을 충분히 속도를 줄여내고.

더불어 버티며 들어 올릴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찰나의 순간 판단 한 것이긴 한데, 내가 생각해도 지금 내 힘은 꽤나 놀라울 정도였다.

'이전 같았으면 피하거나 왼팔로 부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을 것인데......'

지금은 그냥 감당이 된다고 여겨지고, 또 실제로 감당을 해내지 않았나.

확실히......여느 영화에서 보던 슈퍼 솔저급이 된 것 같기는 했다.

'고대의 슈퍼 솔저는 모르겠고......영화에 나오는, 혈청 맞은 슈퍼 솔저랑은 해볼 만 하겠는데?'

확연한 성장을 직접 체감하자, 가슴 깨가 간질간질 한 게 기분이 꽤나 좋았다.

최대한 입꼬리를 컨트롤하느라 고생이었다.

나는 적당히 빈 곳으로 성벽 벽돌을 툭 던졌다.

쿠우우우웅!

살짝 던졌는데, 무게 때문인지 땅이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본 마르코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저, 저거......그냥 돌이 아니고 왕실 연금술사들이 특수 제작한 합성 벽돌이라......엄청 무거울 텐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위에 있는 병사들도 심히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무겁긴 무겁더군."

"어......그냥 다시 실험실로 돌아가죠. 테스트해 볼 필요 없겠어요......"

* * *

다시 마르코의 실험실로 돌아가자.

문 앞에는 제프론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서 있었다.

그를 알아본 마르코가, 목소리를 키웠다.

"제프론 님?"

"아......마르코 군."

고개를 돌린 제프론은, 내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머리를 숙였다.

"로한 경. 숙소에 계시지 않아, 이리 찾아왔습니다."

"표정이 좋지 않군?"

"......하하......"

"들어가서 얘기하도록 하지."

"예."

우리는 그렇게 조금 무거운 분위기로, 실내로 들어섰다.

나와 제프론은 적당한 자리에 마주 앉았고.

마르코는 눈치를 슬쩍 보더니.

"저는 차를 좀 내올게요."

자리를 비웠다.

제프론은 한숨을 작게 쉬었다.

그에 내가 물었다.

"무슨 문제가 있나?"

"실은......로한 경께서 제게 맡기신 일을 완벽히 수행해내지 못했습니다. 송구합니다."

맡긴 일?

아, 설마 필멸조에 대해 조사를 부탁한 걸 말하는 건가?

그건 맡겼다기보단 그냥 부탁한 건데.......

어쨌든 그게 잘 안 풀린 모양이었다.

제프론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해당 사항에 대해 저 역시 중요성을 느끼고 곧장 대교구장님께 직접 면담을 신청하였습니다. 당연히 대교구장님께서도 조사해 볼 의의는 있다고 판단하셨고, 특별 조사단을 꾸려 조사를 시작했었습니다."

그는 피곤한지 마른 세수를 한 번 하였다.

"후......그런데, 그 조사가 지금 막혀 버렸습니다."

"무엇 때문인지 물어도 되나?"

"그게......왕실 측에서 정식으로 조사를 중단하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합니다. 대교구장님께 직접 말입니다."

"왕실? 왕실에서 이 일을 막을 필요가 있나?"

"정확히는 왕실이라기보다는 일곱 기사단 놈 때문입니다."

갑자기 일곱 기사단이라니?

그 말에 나는 뜨끔하며 놀랐다.

제프론은 노기 서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

"발트라스 왕국의 일곱 기사단의 일원, 모르돈. 그자가 막은 것 같다고, 대교구장님께서 슬며시 언질을 해주시더군요."

아......나보고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다른 놈을 말하는 거였구나.

하긴.

나는 제프론에게 아직 내가 일곱 기사단의 일원이라고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건 그렇고 모르돈이라면......

나는 디아즈를 슬쩍 쳐다보았다.

그녀의 친우이자 전 일곱 기사단의 일원이었던 레아노아가 죽은 후.

레아노아의 자리를 이어받은 자가 바로 모르돈이었다.

다만 그에 대해 큰 정보는 나도 없었다.

원작이 시작될 시점에는 이미 모르돈 역시 사망한 이후의 시점이었기에.

그래도 그의 평가가 썩 좋지 않았다는 건 기억에 남아 있었다.

'탐욕을 채우기 위해 일곱 기사단이 된 인물이었더랬지?......'

대충 들어도 결코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가 이런 훼방을 놓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모르돈 그자가 왜 조사를 막은 것이지?"

무릇 일곱 기사단이라 함은, 악마와 싸우기 위해 창설된 인류의 특수 병기와도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왜?

아쉽게도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제프론도 알지 못했다.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무슨 꿍꿍이속인지!"

그 역시도 답답해하고 있었다.

"로한 경. 일단 이 내용은, 내부 기밀입니다. 제가 더 알아보고 다시 알려 드릴 테니 모르는 척 해주시지요. 그리고 별도로 성기사들을 추려 조사 역시 진행하고 있으니 곧 무언가 단서가 나올 겁니다."

"흠. 알겠다. 한데 궁금한 게 있군."

"예? 무엇입니까?"

"원래 일곱 기사단과 교단은 함께 움직이지 않나?"

시포레오에서도 시포레오 대교구의 성기사들과 일곱 기사단의 기사인 크라우스는 거의 친우인 것처럼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심지어 크라우스는 다쳤을 때에도 대교구의 치료실에 머무르지 않았던가.

그리고 디아즈처럼, 일곱 기사단의 부관 역시 교단의 성기사이고.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원작에서는 이미 대침공이 성공한 이후이기에, 일곱 기사단 자체가 거의 궤멸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두 집단 간의 정확한 관계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에 대한 대답은, 디아즈가 해주었다.

"기본적으로 두 집단은 한배를 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약간 다른 게, 아를렘 교단은 신도로서 악마와 싸우는 것이고, 일곱 기사단은 인류로서 악마와 싸운 다는 것입니다. 해서 미묘한 차이점이 존재하고, 국가마다 그 대우도 다릅니다. 어떤 곳에서는 평등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교단의 힘이 더 강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곳 발트라스 왕국은, 일곱 기사단 쪽의 권력이 더 강합니다."

"음. 그렇군."

"다만, 타국의 일곱 기사단이라 할지라도 일곱 기사단으로서의 지위는 동등합니다."

그건 꽤 마음에 들었다.

그 모르돈이라는 녀석이 아무리 날뛰어도, 나에게는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

아마 그걸 알려주기 위해 디아즈가 마지막 말을 덧붙인 것 같았다.

'내가 직접 나서야 하나......'

고민을 하던 그때.

쿵! 쿵! 쿵!

누군가 문을 거칠게 두들겼다.

차를 준비하던 마르코가 후다닥 문으로 나갔다.

"문 부서져요! 살살! 살살요! 지금 나가요!"

그가 문을 열자.

한 사내가, 마르코의 어깨를 밀치며 들이닥쳤다.

"썩 비켜라! 어디 미천한 놈이......!"

"누, 누구 신데 남의 집에 이렇게 함부로 들어오십니까?"

사내는 슬쩍 비켜서며, 자신의 뒤에 선 이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모르돈 경이시다! 당장 비키지 못할까!"

* * *

부관과 함께 나타난 모르돈.

그는 딱 봐도 장군감 느낌이 드는 사내였다.

거의 2미터에 달하는 키에.

갑옷 사이로 슬쩍 보이는 목은 무슨 허벅지 수준이었다.

덥수룩하게 기른 갈색의 수염과 얼굴 곳곳의 흉터가, 그의 인상을 더 강렬하게 해주었다.

문조차 낮아 고개를 숙이고 들어 온 그는.

마치 탱크처럼 그대로 밀고 들어왔다.

책상을 손으로 스윽 쓸면서.

쨍그랑, 쨍그랑!

테이블 위에 있는 유리병들을 모조리 떨어뜨리면서.

그 모습을 본 마르코는 기겁을 했다.

"우아아아! 머, 멈춰 주세요!"

하지만 모르돈은 멈추지 않았다.

그에 제프론이 앞으로 나섰다.

"뭐하는 짓이오! 이게 무슨 행패란 말이오!"

제프론의 호통에, 모르돈이 드디어 우뚝 멈춰 섰다.

"행패라......고작 이걸로 행패라니. 내 경고를 무시한 당신의 행동이 더 행패에 가깝지. 내가 모를 거라 생각했나?"

"......!"

"앞으로는 말 듣는 척하더니 뒤로는 성기사들을 빼돌려 계속 올드리온 숲의 일을 조사하고 있더군."

"그런 적 없소."

"그런 적 없다라......크큭. 어지간히 뻔뻔스럽군. 내가 놈들을 다 생포했는데......그놈들 발모가지를 다 분질러 놔도 똑같이 대답할 수 있겠나?"

제프론이 이를 뿌드득 갈았다.

모르돈은 그런 제프론을 보며 씨익 웃었다.

"내가 한다고 했으면, 내가 한다. 예외는 없어."

그리고는 내게 모르돈의 시선이 꽂혔다.

"이 새끼는 또 뭐야? 성기사들로 모자라서 날파리들을 더 불러들였나? 모르는 얼굴인데......어디서 굴러다녔는지도 모를 개뼈다귀 같은 잡것들까지 다 끌어들이는군."

모르돈은 앉아있는 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검지 손가락을 세워 나의 이마를 툭 밀쳤다.

내 머리가 뒤로 밀렸다.

"이런 놈 데리고 오면 뭐, 상황이 좀 바뀔 줄 아는가?"

한 마디를 내뱉고는 또 툭.

"천만에.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알겠나?"

내게 겁을 주고 물러서게 하려는 속셈인 게 뻔히 보였다.

모르돈은 다시 내 이마를 밀치기 위해 손가락을 들이밀었다.

두 번까지는 당했는데.

세 번은 안 될 말이었다.

나는 오른팔을 뻗어 그의 손가락을 턱 잡았다.

"어쭈? 잡아? 잡으면 어쩔 건데? 내 손에 닿으면 다 으스러지는 거, 모르나?"

모르돈은 왼팔을 뻗어 내 손목을 붙잡고.

힘을 빠악 주기 시작했다.

놈의 팔뚝에 핏대가 서는 게 보였다.

꾸우우우욱!

확실히 힘이 약하진 않았다.

나 역시 오른팔이었기에, 이전 같았으면 당했겠지만......

불사조의 포션 덕에 한 단계 진화를 한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어어? 힘을 줘? 내 앞에서? 하하하! 지금 나랑 힘 싸움이라도 하자는 것인가? 오냐, 그래 내가 직접 힘의 차이란 게 무엇인지 똑똑히......으윽?......!"

뿌드득!

나는 그대로 놈의 손가락을 꺾었다.

아직 부러지진 않았어도, 꽤나 크게 꺾였는데 놈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버텼다.

그래서 조금 더 뒤로 꺾어 보았다

결국 놈의 무릎이 꿇렸다.

"크으으으읍......!"

그래도 비명은 지르지 않는 걸 보니, 참을성은 꽤 되는 놈이네.

더불어 포기도 할 줄 모르고.

정신력은 좋다만, 아쉽게도 버틸 상대를 잘못 골랐다.

모르돈은 왼팔에 힘을 주어, 내 꺾기를 막으려고 발버둥쳤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2미터에 달하는 덩치가 바들바들 거리는 꼴이, 썩 우스웠다.

"다 으스러진다더니. 아직 멀었나?"

자신보다 훨씬 덩치가 작은 내게 힘이 밀리니, 놈은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였다.

그럼에도 주둥이는 아직 나불거렸다.

"가, 감히! 일곱 기사단인 내게 대항하는 것이냐?"

"왜? 힘으로 안 되니까, 이제 권력으로 밀어붙이나?"

"권력? 그래! 그 권력도 내 것이니까! 내 것을 내가 쓴다는 데 무슨 상관이야?"

"그럼 나도 그 권력이라는 걸 좀 쓰지."

나는 남은 손으로 품에서 일곱 기사단의 인장을 꺼내어, 모르돈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놈의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리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이, 일곱 기사단?......"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상황이 바뀔 일은 없다던데......아직도 바뀐 게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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